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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64화 (65/219)

64화

위로해준 덕분인지 에이들러는 곧 기운을 차렸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카이엔은 미심쩍어하면서도 그 말을 믿어주었다. 물론, 그래도 에이들러의 옆에 바이스를 붙여두기로 했다.

카이엔과는 영 딴판인, 심술궃은 사촌형의 등장에 에이들러는 뺨을 부풀렸다.

“이제 저 형이랑은 안 놀 거예요.”

“하하. 저도 놀아드린 기억은 없습니다.”

“어휴…”

저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카이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과 멀어지게 하면서 그와는 가깝게 지내게 하려고 한 건가? 바이스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의절도 한 몸이니 현 왕권과 척을 져도 상관없다고 여긴 건지 뭔지.

다행히 이를 드러낼 정도로 사이가 나빠보이진 않으니까 왕성에서 에이들러를 데리러 올 때까지만 두 사람을 같이 있게 해야겠다며 카이엔이 말했다.

“사이 나빠도 싸우진 마.”

“안 싸워요.”

“안 싸웁니다.”

“하여간… 이건 또 무슨 정신 나간 관계야.”

건너건너 사촌이라니. 게다가 관계를 하나하나 짚어보다 보면 더 꼬인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며 카이엔은 몸을 일으켰다.

바이스가 에이들러에게 세자르에 있을 때 쓸 시간표를 짜서 보여주니 단숨에 에이들러가 얼굴을 찌푸렸다.

“공부하기 싫은데…”

“하셔야 합니다. 펑펑 놀다 가면 나중에 진도 따라가기도 어려울 테고요.”

“힝.”

에이들러가 카이엔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카이엔은 그 눈빛을 외면했다.

그가 말려봤자 바이스가 들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에는 그도 동의했다.

몰래 마차에 숨어들어서 가출한 걸로도 모자라서 놀기만 하고 돌아온다면 왕성에 돌아가서 더 혼날테니 조금이라도 덜 혼나려면 여기서 뭐라도 배워가는 게 나았다.

다행히 바이스는 점심 이후부터 공부 시간을 정해놨기에 에이들러는 오전에는 내내 카이엔과 있을 수 있었다.

꼼꼼히 시간표를 보던 에이들러는 그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럼 형, 오전에는 주로 뭐하세요?”

“나? 으음… 산책? 독서? 별거 안 해.”

“그렇구나.”

“산책갈까? 오전 시간이 비었다고 해서 계속 내 옆에만 있지 않아도 돼. 다른 사람들이랑 놀아도 돼. 슬로세이라면 괜찮은 친구 아닐까?”

“저는 싫어요.”

에이들러는 고개까지 저으며 강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고 그 모습에 카이엔은 의아해했다.

“왜? 첫인상이 별로였어? 그럴만한 일은 없었을 텐데.”

“그래도요.”

“전 알 것 같은데요.”

“어?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자리에 없었잖아.”

“다 아는 수가 있답니다. 흠, 제가 왕자님을 너무 무르게 키운 것 같군요. 다시 어려지실 수 있나요? 이번엔 제대로 키워드리겠습니다.”

“못 해.”

다시 어려지라니 무슨 개소리람.

카이엔은 인상을 구겼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세 사람은 정원을 산책하게 되었다. 바이스는 몇 걸음 뒤에서 따라올 뿐이었지만 같이 걷고 있으니 같이 산책하는 셈이었다.

사트로누스와 릴리시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별채로 향하는 길에 에이들러가 카이엔에게 물었다.

“맞다. 그런데 늑대랑 고양이는 어디에서 키워요?”

“응?”

“애완동물이라면서요.”

“어…”

방에 뒀어야 했나!

에이들러가 처음보는 몬스터에게 시선을 뺏길 테니 며칠은 좀 쉬었다 오라고 두 사람에게 이야기 해둔 뒤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에이들러는 고양이와 늑대의 존재를 떠올렸고 카이엔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로 변신할 수 있는 마녀와 늑대로 변할 수 있는 늑대인간이라니.

그는 그 두 사람을 애완동물로 위장해서 왕성에 데리고 갔다. 그곳 사람들을 속인 셈이었다.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서 카이엔이 끙끙대고 있으니 뒤에서 바이스가 한 마디 했다.

“애완동물들의 방도 따로 있으니 거기 있습니다. 관리하는 사람도 있고요.”

“우와.”

“왕성에서 애완동물을 기르게 되면 그곳에도 담당 관리사가 생길겁니다. 돌아가게 되면 요청해보는 건 어떠신가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배시시 웃으면서 에이들러가 대답했다. 카이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저찌 잘 넘어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남은 고비가 있기에 카이엔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물었다.

“고양이랑 놀고 싶어?”

“아뇨. 여기까지 오는 길에 저랑 많이 놀아줘서 고양이도 힘들었을 거예요. 늑대도요. 집에 왔으니까 걔네도 편히 쉬어야죠.”

“그렇지.”

“형이랑 있는 게 더 좋아요.”

“어… 그래? 맨날 산책만 하고 재미도 없잖아.”

“그래도요.”

애라서 그런가?

북부의 환경이 신기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 생겨서 그게 좋은 걸지도.

별채 근처의 인공 호수에 도착하니 오늘도 슬로세이가 그곳에서 놀고 있었다. 물 위로 드러난 꼬리 지느러미에 에이들러가 깜짝 놀라 외쳤다.

“꼬, 꼬리?!”

“아, 저번엔 두 다리가 있는 모습을 봤었구나?”

“어어, 그런데 그땐 말도 했었고…”

“인어의 마법. 동화는 구시대 이야기라더라. 슬로세이!”

“어? 왕자님!”

물에서 나오지 않고 슬로세이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물속에 있을 때 그녀의 두 다리는 인어의 지느러미로 변했고 귀 대신 자리 잡고 있는 지느러미 또한 더욱 길어졌다.

꼬리가 거세게 움직이며 물을 튀겨대니 카이엔은 호수에서 멀찍히 떨어져서 슬로세이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수영?”

“응! 왕자님은 오늘도 산책? 옆에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말이야-”

“나야 뭐 항상 그렇지.”

“나도 왕자님이랑 산책할까? 옷 금방 입는데!”

“거기 있어라.”

“칫. 나도 왕자님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데. 거기 어땠어? 파티라면서? 예쁜 사람 많았어?”

“몰라.”

“왜 몰라?”

“관심이 없어서.”

카이엔의 대답에 슬로세이는 까르르 웃었다. 그러더니 턱을 괸 채로 고개를 들어 카이엔을 올려다보았다.

“왕자님 그러다가 결혼 못 한다~”

“생각 없다.”

“히히.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형 결혼 이야기 나왔었잖아요.”

“윽.”

“뭐? 진짜?! 왕자님 왜 거짓말 했어!”

옆에 서있던 에이들러가 가만히 한마디 했다. 그 말에 슬로세이가 첨벙 소리를 내면서 호수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물 속에 있을 땐 그 위에 퍼져있던 머리카락들이 물 밖으로 나오자 단숨에 그녀의 몸에 달라붙었다.

“결혼? 누구? 어떤 사람이야!”

“넌 또 왜 그렇게 흥분하냐…”

“왕자님-!”

“후… 현 공주가 내 사촌이야. 그 애를 언급하길래 그 자리 박차고 나왔고. 어린애랑 결혼할 생각 없어. 그걸로 끝이야.”

“정말?”

“정말. 거짓말 아냐.”

“난 또 뭐라고. 깜짝 놀랐잖아.”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한 슬로세이는 곧 에이들러를 째려보았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놀라게 했다는 원망을 담은 눈총임에도 에이들러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한바탕 불꽃이 튀겼지만 카이엔은 눈치채지 못했고 바이스는 조용히 숨죽여 웃었다.

“별거 아닌 일이야. 그 애는 슬로세이 너보다도 어린애거든. 에이들러의 쌍둥이 여동생이고. 아, 말 나온김에 너희 둘이 친구하는 것도 좋겠다. 또래 애들처럼 보이니까.”

“에엥?”

“형?”

“친하게 지내. 에이들러 너도 여기에 나 말고 친한 사람이 생기면 좋을 거아냐.”

“그, 그치만 쟤는 좀…”

“나도 얘 싫어!”

“얼굴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나 모르는 새 둘이 싸우기라도 했나?

카이엔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유를 물어본다고 둘 다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

오전에는 카이엔과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바이스에게 시달리며 공부를 했다.

저녁 식사 이후엔 자유시간이었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에이들러는 방에 있거나 영주성 내의 도서관에 가거나 가까운 정원에 나갔다 왔다.

그 위험천만하다는 검은 숲을 인근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자르는 평화로웠다.

검은 숲이 궁금해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카이엔이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아쉽지만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이종족 손님들은 별채에만 있는 게 아니라서 밖을 돌아다니다보면 가끔씩 만날 수도 있었다. 카이엔에게 이야기를 들은 건지 다들 그를 보면 간단한 인사를 해줬다.

주로 도서관에 갔을 때 페이리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항상 대여섯 권의 책을 가지고 가곤했다.

뭘 읽는지 궁금해서 슬쩍 페이리가 책을 고르던 서가로 가니 도서관을 담당하는 하인이 깜짝 놀라서는 여기 책은 보면 안된다며 그를 말렸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어린애는 보면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카이엔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니 카이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보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 거예요? 금서같은 건 아니죠?”

“법에 저촉되는 건 아니고.”

“항상 책을 읽던데 뭔지 모르겠어요. 저번엔 로맨스 소설이라고 했는데.”

“워낙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둬서 그럴 거야.”

카이엔의 설명에 에이들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사촌 동생이 가고나자 카이엔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저번에 바이스가 말했던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신체상 어쩌구 한 게 관능 소설에 대한 이야기인 건가 싶었다.

안 보이는데에 치워놓으라고 해야 하나. 페이리의 취미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았지만 왜곡된 지식을 얻을까 봐, 그게 좀 걱정이었다.

나이대가 엇비슷해 보였기에 카이엔은 에이들러가 슬로세이랑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 두 사람은 서로를 견제하느라 바빴다.

에이들러는 카이엔에게 친근하게 달라붙은 슬로세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슬로세이 또한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카이엔의 사촌동생이라는 에이들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한마디로, 둘 다 카이엔에게 붙어있는 서로를 경계하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그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둘 사이에 엄청난 신경전이 벌어진다는 건 오직 카이엔만 모르고 있었다.

“너 언제 집에 갈 거야?”

혼자서 산책하던 에이들러를 발견한 슬로세이가 한마디 했다.

그 물음에 에이들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데리러 와야 가지.”

“가출 소년.”

“너야말로.”

“난 허락 받고 나온 거거든?”

“맨날 물장구만 치고있으면서.”

“자기도 똑같으면서.”

“난 공부도 하고 있거든?”

발끈해서 에이들러가 외치자 슬로세이는 관심없다며 혀를 삐죽 내밀었다.

인공 호수안에서 상반신만 내민 채로 슬로세이는 에이들러를 놀려댔다.

“얼른 돌아가! 집에 가! 왕자님 사촌동생이라고 해도 난 안 봐줄 거거든?”

“이익…”

“지금까지 왕자님이 있는 줄도 몰랐으면서 달라붙어있기나 하고!”

반박할 말이 없어서 에이들러는 분해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굴만 빨개져서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는데 슬로세이는 멈추지 않았다.

안그래도 카이엔이랑 같이 있으려고 할 때마다 바이스가 옆에서 방해해대는 통에 심통이 났는데 에이들러는 사촌에 남동생이라 그런지 옆에 있는게 빤히 보이는데도 말리지 않았다.

단단히 심통이 난 눈에 에이들러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왕자님이랑 딱 붙어있고, 너 진짜 싫어!”

“나, 나도 너 싫어!”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란 말이야-”

“너나 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나가는 하인들이 목격했다. 걱정하면서도 말다툼일 뿐이니 가만히 둬도 될지, 끼어들어야 할지 난감해했다.

한 명은 왕자고 다른 한 명은 카이엔의 손님인 인어 공주였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간 그 사이에 끼어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어쩔 줄 몰라 그 주변을 맴돌던 하인들은 두 사람이 서로의 뺨을 잡아당기면서 꼬집기 시작하자 화들짝 놀라서 누구든지 좋으니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이익- 이거 안 놔?”

“너야말로 이거 안 놔?”

처음엔 뺨 한쪽만을 꼬집었지만 둘 다 오기가 생긴건지 서로의 양 뺨을 잡아당기면서 죽 늘이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아무도 손을 떼지 않았다.

훨씬 가까워진 시야에 비치는 서로의 눈동자는 핏발까지 서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왓, 둘 다 지금 뭐하는 거야? 어, 얼른 손 놔!”

다른 요리사들과 식재료를 옮기던 비셰는 에이들러와 슬로세이가 싸우는 걸 보고 달려온 하인과 마주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이 둘 사이에 끼어들게 되었다.

일단 종족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 역시 이종족이었기에 하인이 도움을 요청했고 비셰는 어버버하다가 부탁을 받고 온 것이었다.

잔뜩 당황해서 비셰는 슬로세이와 에이들러의 팔을 하나씩 잡고 외쳤다.

“셋 하면 손 놔! 알겠지? 하나, 둘, 셋!”

그러나 둘 다 손을 놓지 않았다.

곡소리를 내면서 비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으아아- 역시 다른 사람 불러왔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딴 사람도 더 불러와주라고 할걸!”

후회가 막심했지만 여기서 그가 자리를 비우고 다른 사람을 불러올 수도 없었다.

지금은 뺨만 꼬집고 있지만 나중에 서로 주먹질이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슬로세이도 인어족의 공주이긴 하지만 에이들러는 이 나라, 가르간트의 왕자였다. 그런 에이들러가 놀러와서 다치기라도 하면 그건 모두 카이엔의 책임이었다.

“너희 대체 왜 싸우는 건데?!”

늘 주방에만 있는지라 소식이 느린 비셰로서는 가슴을 칠 정도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그가 뭐라고 떠드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에이들러와 슬로세이는 고집스럽게 서로의 뺨을 잡아늘리는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손톱 끝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음에도 서로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보다 못한 비셰가 억지로 손을 떼내려고 했다.

그러자,

“방해하지 마!”

“방해하지 말아요!”

“우왓!”

풍덩!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비셰의 손을 뿌리쳤다.

안그래도 인공 호수 가까이 불안정한 자세로 한쪽 무릎을 굽힌 채로 앉아있던 비셰는 두 사람이 팔로 자기를 밀어버리자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우뚱 흔들리고 말았다.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그는 그대로 인공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잔뜩 물이 튀기고 옆에 있던 슬로세이와 에이들러도 조금이지만 물을 뒤집어썼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 다 멍한 표정을 지으며 스르륵 서로의 뺨을 잡고 있던 손을 떼었다.

“어…어어어?!”

“괘, 괜찮으세요?”

인공 호수는 그리 깊지 않았다. 성인 남성이 들어가면 가슴께 만큼 찰 정도였다.

다행히 비셰는 곧 호수에서 고개를 내밀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어버렸다.

콜록거리면서 호수 물을 뱉어내며 그가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넘겼다.

“하아… 둘 다 이제 진정한 거야?”

“으응…”

“네에…”

“에휴. 그래도 왕자님 오기 전에 끝내서 다행이지.”

카이엔이 언급되자 두 사람 다 고개를 푹 숙였다.

비셰는 낑낑거리면서 호수 밖으로 나왔다. 젖은 옷에 흙이 묻어 지저분해졌지만 그는 한숨을 쉴 뿐, 여기서 두 사람을 더 혼내지 않았다.

어쩌다가 싸운 건진 모르겠지만 이제 다 끝났으니까.

젖은 손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만질 수 없기에 비셰는 물이 뚝뚝 흐르는 옷을 짜내며 말했다.

“다치진 않았지?”

두 사람 다 고개를 끄덕였다.

새빨개진 얼굴로 비셰를 쳐다보지 못한 채 땅만 보고 있었다. 빨갛게 손톱자국이 남은 양 뺨은 보기만해도 아파보였다.

혀를 차며 비셰가 말했다.

“흉 지겠다.”

“미안…”

“죄송해요…”

“아냐. 나만 빠져서 다행이지. 둘 다 잘못한 건 알고 있지? 그럼 사과하고 끝내.”

그러나 사과 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지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난감하네.

사건이 벌어진 자초지종을 모르는지라 여기서 더 말을 얹을 수 없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한번 짜내고 비셰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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