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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60화 (61/219)

60화

먼 길 떠나 왕성까지 갔다가 또다시 먼 길을 지나 세자르에 돌아왔다.

북부의 거친 바람이 반가워질 줄이야. 카이엔은 혀를 내둘렀다.

드디어 세자르에 도착했다는 것에 긴 여행에 지쳐있던 에이들러도 기뻐했다.

카이엔이 탄 마차가 세자르 영지 안으로 한 걸음 내딛었고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시가지를 지날 때였다. 별안간 거리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왕자님이 돌아오셨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왕자님-!”

“…허?”

마차 안까지 들려오는 소리에 카이엔이 황당해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왜들 저래?”

“왕자님과 남작님이 같이 탄신연에 참석했는데 남작님이 먼저 돌아오시지 않았습니까. 다들 걱정했던 모양입니다.”

“내 걱정을 왜 해?”

“다들 왕자님을 좋아하니까요.”

“그러냐…”

턱을 괸 채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박수 소리와 반갑게 맞이해주는 환영의 인사는 그들이 시가지를 벗어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영주성에 도착해서야 그 소리와 작별할 수 있었는데 영주성으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남작이 바로 문 앞까지 나와서 그를 맞이해주었다.

“왕자님!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밖에 있었던 건 아니지?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어… 그런데….”

그제야 세자르 남작은 카이엔 뒤에 에이들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걸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카이엔이 손을 저었다.

“다 설명해줄게. 일단 릴리시아부터 보러가야겠어. 에이들러, 내가 해준 이야기 잘 기억하고 있지?”

“응!”

“자, 가자. 아! 다른 애들이 사고친 건 없었어?”

“다들 조용히 잘 지냈습니다.”

“다행이네.”

그가 없는 사이에 다른 인간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진 않은 모양이었다.

카이엔은 에이들러를 데리고 릴리시아를 찾아갔다.

멀리서부터 그의 기척을 눈치챘던 건지 릴리시아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촉수를 살짝 내밀고 있다가 그가 가까이 오자 격한 환영의 인사를 보냈다.

카이엔이 혼자 왔다면 바로 촉수로 붙잡아서 어린아이가 곰인형을 꼭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끌어안았겠지만 옆에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기에 촉수는 카이엔을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릴리시아의 몸통을 쓰다듬으며 카이엔이 말했다.

“오랜만이야, 릴리시아. 그동안 잘 지냈어? 밥은 잘 먹었고?”

- 응. 아무 일 없었어. 나 잘 지냈어. 잘했지?

“그래, 잘했어. 사고친 애들은 없었지?”

- 나는 못 봤는데.

“그럼 됐어. 이쪽은 그러니까… 내 사촌동생. 얼굴 한 번 보라고 데려왔어.”

“어… 안녕?”

카이엔에게 수십번 릴리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집채만한 거대 말미잘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에이들러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저 촉수 하나가 그의 팔뚝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두꺼웠다. 우물쭈물하며 인사를 건넨 에이들러는 카이엔의 뒤로 숨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 음. 작은 인간.

릴리시아가 한마디 하고 그녀의 촉수 중 가장 가느다란 것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듯 흔들리는 촉수를 보고 에이들러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에이들러의 손이 촉수를 잡자 릴리시아는 약하게 악수를 하듯 촉수를 흔들었다.

- 들어봐도 돼?

“에이들러. 릴리시아가 널 들어봐도 되냐는데?”

“어… 약하게 라면야…”

“릴리시아, 약하게.”

- 응.

허락이 떨어지자 다른 촉수 한 가닥이 슬그머니 더해졌다.

에이들러의 몸통을 붙잡고 지상에서 1미터 정도로 가볍게 들어올린 릴리시아는 두어 번 정도 에이들러를 흔들어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자네인과 프라우디에의 경우엔 거의 10미터정도 공중으로 띄워놨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약했다.

다행히 무섭지 않았던 건지 에이들러는 땅바닥에 발이 닿자 카이엔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안 무서웠어?”

“처음엔 무서웠는데 괜찮았어요.”

“그럼 가자. 릴리시아, 내일 또 올게.”

- 응, 잘 가.

인사하듯 촉수가 흔들흔들거렸다. 에이들러도 릴리시아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다음 만나게 된 건 사트로누스였다.

카이엔의 냄새를 맡았을 텐데 무심한 척 정원에 엎드려있던 사트로누스는 카이엔의 발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몸을 일으켰다.

“사트로누스.”

- 왔냐. 옆은 또 뭐야?

“내 사촌.”

“크릉.”

그 말에 사트로누스가 이를 드러냈다.

카이엔을 죽이려든 게 누군지 알고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카이엔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린애야. 그때의 나처럼.”

-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음, 가출? 너희에게 관심이 많더라. 소개해주려고 왔지. 에이들러, 얘가 사트로누스야.”

“와, 와아…”

거대한 변종 만티코어를 보고 에이들러는 입을 크게 벌렸다.

저 덩치면 정말로 사람 쯤은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사촌 형인 카이엔이 어렸을 적부터 그의 곁을 지켰던 만티코어를 보고 에이들러는 겁을 먹기보단 감탄했다.

변종이라 몬스터라기보단 덩치 큰 짐승처럼 보인 덕분이었다. 일반적인 만티코어는 굉장히 괴물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트로누스는 기본적으로 사자의 형상을 띠었다.

카이엔은 손을 뻗어 사트로누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난 괜찮아. 멀쩡히 돌아왔잖아.”

“그르릉.”

- 난 모른다. 네가 알아서 잘 해라.

“당연하지.”

피식 웃고 카이엔은 사트로누스에게서 손을 뗐다. 머리를 쓰다듬은 것 뿐인데 금세 보라색 털이 소매에 묻었다.

정원에서 두 몬스터와 만난 카이엔은 에이들러를 바이스에게 맡겨두고 남작을 만나러갔다.

뜬금없이 에이들러가 함께 온 탓에 아마 두통이 왔을거다.

역시나 남작을 만나러가니 그는 허허 웃었다. 허탈해하는 것 같았다.

“왕자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왕실에 서신 하나 보내고 싶어. 그 녀석이 따라와서 북부를 구경시켜줄 테니 왕성에서 사람이 올 때쯤엔 아마 얌전히 따라갈 것 같다고.”

“그렇게 보내면 될까요?”

“으음… 아니. 내 이름으로 보낼게. 그게 낫겠다.”

“그렇군요. 왕자님이 건강히 돌아오셔서 저는 그게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걱정 안 해도 돼. 바이스도 있었고 라스랑 그리델라, 글라스까지 동물로 변신한 상태로 따라갔잖아.”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 말도 맞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카이엔은 에이들러에 대한 건 자신이 관리하겠다며 남작에게 말하고 복도로 나왔다.

일단 방은… 그가 쓰는 곳 바로 옆에 마련해줄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주는건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그리델라와 라스는 당분간 늑대와 고양이 신세군. 글라스도.’

다른 몬스터들에 비하면 박쥐는 심심한 친구라 에이들러가 관심을 보이지 않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라스도 당분간은 박쥐로 지내게 하기로 했다.

몇 달동안 밤낮 바뀐 생활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을 테니 당분간 휴식을 취하게 할겸 글러티나에게 맡겨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왕성으로 보낼 편지가 가는데에도 시간이 꽤 걸릴 테고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는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을 생각하면 서신을 즉시 보내는 게 이로웠다.

실은 왕성에서도 이미 눈치채고 있을 테니 서신만 도착한다면 바로 사람을 보낼 확률이 높았다.

‘몰랐다면 바보인 거고.’

그쪽에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손을 놓고 있었을 거다.

다시 에이들러를 찾아가 그의 방 옆에 있는 방에서 쉬고 있으라고 하고 카이엔은 즉시 왕성으로 보낼 서신을 작성했다. 바이스에게 바로 보낼 것을 요구하고 카이엔은 겉옷만 벗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많이 피곤하십니까?”

“어… 조금.”

“쉬십시오. 아직 저녁도 되지 않았지만요.”

“쉬어도 되는 거 맞지?”

“네.”

“쉬지 말라는 것 같은데.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카이엔은 몸을 일으켰다.

그가 옷을 벗는 것을 도와주며 바이스가 말했다.

“에이들러 왕자님껜 다른 시종을 붙여놨습니다. 여기서 오래 일한,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요. 이미 지시는 내려뒀습니다.”

“그래.”

“왕자님은 우선 씻으시죠. 옆에 왕자님이 두 분이나 있으니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넌 맘대로 불러도 되잖아.”

“그건 ‘페르세이지 바이올로스’고요. 전 바이스입니다.”

금방 목욕물을 준비하겠다며 바이스는 카이엔이 입고있던 망토며 외투 등을 정리해 한쪽에 내려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과연 빠르게 욕조에 물을 채운 바이스는 카이엔이 씻는 걸 도왔다. 도운다, 라고 해도 더운 물을 부어주고 몸을 닦아주는 정도였다.

긴 머리가 물에 닿아 퍼졌다. 머리까지 함께 감겨줄 요량으로 바이스는 카이엔의 머리에 따뜻한 물을 부었다.

“…으.”

“많이 졸리십니까?”

“조금.”

“식사만 하고 쉬시죠. 아마 에이들러 왕자님 쪽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열아홉이신 왕자님의 체력이 열 살 어린아이와 같다는 건 조금 슬프군요.”

“오히려 반대 아냐? 어린애들은 힘이 넘치잖아.”

“하하. 그 말도 맞네요.”

카이엔은 살짝 고개를 숙였고 바이스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카이엔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뽀얀 거품이 몽실몽실 늘어나면서 욕조의 물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거품이 눈에 들어가지않게 눈을 감은 채로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넌 정말 괜찮은 거야?”

“뭐가요?”

“의절한 거.”

“당연히 괜찮습니다.”

“네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면 얻는게 많았을 텐데.”

“지금도 많습니다. 당신의 하나뿐인 시종 아닙니까.”

“헛소리하지말고.”

뒤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카락을 문지르고 두피를 마사지하던 손가락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더운 물이 부어졌다. 카이엔은 눈을 더 꼭 감았다. 몇 번이고 물을 부으니 욕조의 물이 넘쳐 바닥으로 흘렀다.

“페르세이지 바이올로스였다면.”

더운 물을 만져서 따뜻해진 손가락이 카이엔의 목에 닿았다.

“이대로 당신을 없애버렸을 겁니다.”

“…왜?”

“이유는 없습니다. 있다면, 그냥? 없애고 싶어서?”

“나한테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답니다.”

“잘 모르겠는데.”

“제 안목을 믿어주세요.”

아직도 욕조 위에 두둥실 떠다니는 거품들이 카이엔의 몸에 묻어있었다. 욕조로 나온 몸에 다시 더운 물을 끼얹고 나서 카이엔은 목욕 가운을 걸쳤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대충 매만지고 그가 말했다.

“저녁은, 방에서 먹고 싶은데.”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남작님은 서운해하시겠네요.”

“피곤해서 그래.”

대충 먹고 잘 생각이었지만 카이엔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게 싫었던 건지 에이들러가 바로 옆에 있는 카이엔의 방문을 두드렸다. 잘 씻고 나온건지 평소보다 보송보송해보이는 곱슬머리를 한 채였다.

피곤해보이는 카이엔의 얼굴에 쭈뼛거리면서 에이들러가 말했다.

“그… 하루만 같이 있으면 안 될까요?”

“응? 아… 괜찮아. 적응이 안 되긴 하겠지. 하지만 내 방에는 몬스터들이 있는데?”

“네?”

“여기.”

카이엔의 손끝을 따라 에이들러의 시선이 움직였다.

한쪽 탁자 위에 있는 수조 안의 뱀과 다른 쪽 선반 위에 있는 햄스터였다.

뱀은 자고 있는지 미동도 없었고 햄스터 쪽은 카이엔의 손끝이 자신에게 향하자 열심히 찍찍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

“물진 않아. 하지만 괜찮을까 싶어서.”

“괜찮아요.”

“그럼 저녁식사는 두 분 것을 준비해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줘.”

저녁식사를 하기 전 카이엔은 에이들러에게 간단하게 소금이와 루브를 소개해주었다.

소금이는 찍찍거리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였고 카이엔은 간략하게 한 마디로 소금이를 소개했다.

“소금이야. 햄스터 몬스터. 겉은 귀엽지만 속은 난폭하고 고집쟁이니까 나 없을 때 가까이 가지마. 물지도 몰라.”

“저, 정말요?”

“응. 그리고 쟤는 루브고 독사야. 평소엔 자고 있어서 위험할 일이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가까이 가지말고 멀리서 구경만해.”

에이들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뱀이랑 햄스터를 같이 둬도 돼요?”

“괜찮아. 소금이가 이겨.”

“와…”

“그만큼 난폭하다는 거야.”

“찍찍!”

그에 호응하듯 소금이가 외쳤다.

그러나, 겉만 봐서는 인형처럼 귀엽고 깜찍한 햄스터 몬스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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