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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58화 (59/219)

58화

소박한 일행은 지체없이 세자르를 향해 나아갔다.

내내 여행가는 기분으로 에이들러는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도 투정 하나 부리지 않았다.

의젓하기까지 한 그 모습에 카이엔도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러나 호위없이 움직이는 마차는 손쉽게 범죄자들의 타겟이 되곤 했다.

지키고 서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돌아가는 길에도 마주치게 된 도적단을 보고 카이엔은 혀를 찼다.

에이들러가 있어서 위급한 상황에 라스나 그리델라가 끼기 어려웠다.

“나가보겠습니다. 얌전히 계세요.”

두 사람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바이스는 밖으로 나갔다.

미리 나와있던 자네인과 에빌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나 참.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면 이리도 쉽게 도적을 만날 수 있는 걸까요? 얼른 끝내고 갑시다.”

“네.”

“노력할게요.”

에빌이 자신 없어하며 대답했다.

자네인과 바이스에 비하면 자신의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한 탓이었다.

기사 같은 차림을 한두 명에 딱 봐도 시종 같은 모습을 한 녀석 셋이서 검을 들자 마차를 노리고 앞을 막아선 도적들은 어이없어하며 껄껄 웃었다.

“저놈들 뭐하는 거야?”

“셋이서 덤빈댄다. 우리가 몇 명이지? 스물?”

“다 덤벼들어!”

쪽수를 믿고 도적들이 덤벼들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전투 가능한 인원은 총 셋 뿐이었다.

마차며 짐마차가 줄줄이 늘어서있어서 한 명이 하나를 지킨다고 해도 마차는 평면이 아니지 않는가.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내 인질로 삼는 것도 가능했다.

허나, 그런 도적들의 예상은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으헉!”

몰래 빙 돌아가 짐마차를 노리려던 도적의 발밑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니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모를 붉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짐마차의 위에 올라서서 그쪽으로 다가오는 도적들을 견제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기사가 한 명을 상대하게 하는 사이 마차로 다가갔던 놈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 순간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듬성듬성하게 뼈로 맞춰진 쥐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차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근처에 다가오는 놈들의 발목을 물어뜯는 해골 쥐를 보며 도적들은 기겁을 했다.

“이, 이건 뭐야!”

흑마법을 본 적이 없는 모양인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놈을 에빌이 달려들어 처리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도적은 쓰러졌다. 마차 안에 있던 프라우디에는 그가 몰래 풀어놓은 해골 쥐들의 눈으로 바깥의 상황을 살피며 마차에 다가오는 놈들의 발목을 물어뜯게 만들었다. 힘 조절을 한다는 게, 약하면 생채기 수준이고 강하게 하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세게 깨문게 되버렸다.

반면 카이엔은 에이들러가 바깥의 상황을 보지 못 하게 마차 창문을 죄다 커튼으로 가려놨다가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자 에이들러를 품에 안고 귀를 막아주었다.

아직 어린애가 보고 들을 만한 게 아니란 판단하에서였다.

위험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린 에이들러는 가만히 카이엔에게 안긴채 눈동자를 굴렸다.

그를 지키려는 듯, 귀를 막아주고 있는 형의 몸도 조금은 떨고 있었기에 가만히 팔을 뻗어 카이엔을 마주 안아주었다.

밖에서 피 냄새가 나자 라스는 앞발로 마차의 문을 툭툭 건드렸다. 그도 나가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카이엔이 허락해주지 않아서 나갈 수 없었다.

괜히 문을 열었다가 바깥에 있는 놈들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 곤란해지기도 했고.

“조용히 처리합시다. 안에 다 들리겠어요.”

빠르게 처리하고 돌아가자며 바이스는 거의 암살자 수준의 몸놀림으로 그에게 덤벼드는 도적의 단검을 피하며 가볍게 반 바퀴 돌더니 놈의 입을 손으로 막고 그대로 검으로 목을 그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더라도 소리가 나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자네인은 한숨을 쉬었다. 요컨대, 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처리하거나 입 자체를 틀어막아버리라는 뜻이었다.

가만히 남은 도적의 수를 가늠하다가 자네인은 가장 많은 놈들이 몰려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휘두른 검이 긴 곡선을 그리면서 단숨에 세 명의 목을 베었다.

가볍게 한 번 휘두르는 걸로 피를 털어낸 그녀는 다음 타겟을 정하고 방향을 바꾸었다.

에빌의 경우엔 그가 도적과 대치하고 있으면 경계를 하며 서있던 글라스가 급소를 맞춰 절명시키는 걸로 가급적 조용히 싸우려고 애를 썼다.

“아아… 다음엔 이런 일 없으면 좋겠는데.”

소리조차 내지않고 싸우라는건 너무하지않는가.

에빌이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도적들을 살폈다.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놈들은 자신들이 노리던 타겟의 실력이 생각한 것보다 뛰어나자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도망칠 길을 노리고 있었다.

허나 그걸 보고만 있을 바이스가 아니었다. 그가 손짓하자 자네인이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그 순간, 마차 근처를 지키고 서있었던 해골 쥐들이 빠르게 남은 놈들에게 달려들어 발목을 물어뜯었다.

희안한 점은, 물린 놈들은 억하는 짧고도 낮은 비명만을 지른채 그대로 뻣뻣히 굳어버렸다.

“엥? 쟤들 왜 저러는거죠?”

“마비독입니다. 프라우디에가 최근 공부하고 있거든요. 질병을 옮길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른 곳으로 퍼질 염려가 있으니 간단한 독과 저주를 쓰기로 했습니다.”

“참 편리하죠.”

이제 죽이는 것만 남았다며 성큼성큼 다가간 바이스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마비되어서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도적들의 머리를 모조리 베어버렸다.

미관상 보기 좋지 않아 뒤처리를 하고 가는게 낫겠지만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그는 미련없이 뒤돌아섰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야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던 마부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이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뭘요. 남작님을 따라갔으면 고생도 하지 않았을텐데 괜히 죄송하군요.”

“아닙니다. 왕자님 가시는 길인데 이정도는 할 수 있죠.”

영주성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에 강심장이 됐다며 마부는 너스레를 떨었다.

남은 놈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핀 뒤 바이스도 마차에 올랐다.

마차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카이엔은 에이들러를 안고있던 팔을 풀었고 사이좋게 붙어있는 두 사람을 보고 바이스가 피식 웃었다.

“무서우셨습니까?”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니까. 애가 듣긴 안 좋지.”

“그렇긴하죠.”

무심코 시선을 아래로 내렸던 카이엔은 바이스의 신발에 살짝 피가 튄 것을 보았다.

한두 방울 정도여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들만도 했다. 가만히 카이엔은 고개를 돌렸고 바이스는 마차에 타고나서야 손수건으로 신발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프라우디에 님이 굉장한 활약을 하셨습니다.”

“그랬어?”

“네. 나중에 물어보시면 기뻐하실지도 몰라요.”

“마법 공부를 잘 하고있나보네.”

정확히 프라우디에가 어느 경지에 올랐는지는 모르는 카이엔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스가 거짓말을 할리는 없으니 프라우디에가 전투에서 꽤 도움이 됐다는건 사실인 것 같았다.

다행히 도적단과 한번 마주친 것 말고는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전에는 카이엔의 수도행을 들키지 않으려고 마을을 의도적으로 피한 일행이었지만 에이들러가 끼어있는 귀환길에선 일부러 마을을 거치기로 했다.

마차 타고 가면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너무 길어지면 질리고 피곤하고 마차 멀미를 하게 된다.

카이엔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에이들러에게 다른 마을을 구경시켜주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오래 있지도 않을거고 잠깐 구경을 하는 것 정돈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그가 거리를 걷게된다면 호위를 할 다른 이들이 따라붙어야했으므로 모두에게 미리 동의를 받아야했다.

가까운 마을에 도착하자 바이스가 먼저 내려서 에이들러가 갈아입을만한 적당한 옷을 사왔다. 귀족들이야 알지도 모르는 왕자의 얼굴을 다른 이들이 알리가 없기에, 카이엔은 일행이 여관 방을 잡자 바로 에이들러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왔다.

세자르 내에선 자주 돌아다녔지만 다른 마을에서 대놓고 돌아다닌 적은 그도 처음이었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괜찮을거라며 에이들러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바이스가 가깝게 붙어서 함께 걸었다. 나머지 일행은 여관에서 쉬기로 했다.

고양이인 그리델라는 그렇다쳐도 늑대인 라스는 괜찮다고 수십번 언급한 끝에 여관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지만 그 외엔 문제가 없었다.

“와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를 걷게될줄 몰랐던지라 에이들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책에서나 나와서 읽어볼 수 있었던 길거리를 직접 보게 되니 굉장히 신기했다.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도, 일행인 듯 함께 걸으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시장 바닥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다가 퍼덕거리며 날아오르는 비둘기도 모두 신기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 에이들러가 다른 이들과 부딪치지 않게하려고 카이엔은 어린 사촌동생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왕성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분수를 보고도 에이들러는 즐거워했다.

“…이쪽으로 오길 잘했네.”

“지체할 시간은 없습니다.”

“알아.”

마을이 나올 때마다 머물다가 갈 생각은 없었다. 이번엔 마침, 적당한 지점에 마을이 있었기에 하루 묵었다 가기로 정한 것 뿐이었다.

산책하듯 나와 거리며 시장을 구경하고 세 사람은 여관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노점상에서 파는 간식거리에 에이들러가 그쪽을 쳐다보자 하나 사서 손에 쥐어주었다. 곧 저녁 먹을 시간이라 딱 하나만 사줬는데 혼자 먹기는 미안했는지 에이들러는 카이엔에게 자기가 들고있는 닭꼬치를 내밀었다.

“너 많이 먹어.”

“그래도…”

에이들러가 울상을 짓자 카이엔은 하는 수 없이 살짝 허리를 숙이고 에이들러의 손에 쥐어진 닭꼬치를 한 입 베어물었다.

“됐지? 이제 가자.”

“응!”

그제야 에이들러의 얼굴이 환해졌다.

자금사정도 있어서 세자르로 돌아가는 중에 많은 지출을 하지 않을 계획을 세운 카이엔이었는데 여관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오니 에이들러가 깜빡한게 있었다며 그에게 가죽 주머니를 하나 내밀었다.

“여행 하는데엔 돈이 필요하고, 책에서 보면 꼭 집에서 보물들을 챙겨오더라구요.”

“…그래서 너도 챙겨온거야?”

“네. 그치만 이거 다 제거니까 괜찮아요.”

작은 가죽 주머니 안에는 보석이 가득했다.

잘그락 소리를 내고있는 보석을 보고 카이엔은 한숨을 푹 쉬었다.

“바이스.”

“네.”

“내가 보석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이렇게 주머니에 한데 뭉쳐놓으면 흠집 나는거지?”

“그렇죠.”

“그, 그런거예요? 어쩌지…”

“살펴보고 더 상하지 않게끔 상자를 하나 마련하겠습니다.”

돈 대신 쓰려고 가져온 보석에 흠집이 난다면 그대로 가치가 떨어져버린다.

울상을 짓는 에이들러를 힐끗 보고 바이스는 바로 보석 감정을 시작했다.

작은 반지의 경우는 케이스 째로 들고와서 상관없었지만 가공된 브로치와 장식의 경우엔 미세하게 흠이 있었다.

이정돈 쓰다보면 생길 수도 있는거라 전체적인 손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전해주고 나서야 에이들러는 안심했다며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걸로는 얼마나 살 수 있어요?”

“뭘?”

“여행에 쓸 돈이요.”

“글쎄다. 이런건 팔려야 돈이 되는거니까.”

“참고로 시골로 갈수록 팔기가 어렵답니다. 비용을 지불할 돈이 없기도 하고 보는 눈이 없거나 사기를 치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엑…”

“네 보석 쓸 일은 없을테니 잘 가지고있어. 잃어버리지말고.“

“네…”

어쩐지 시무룩해진 에이들러를 보며 바이스는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건 못 팝니다. 팔았다가 위치가 추적이 되면 그것도 곤란하니까요.”

“우리가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추적까지야…”

“이왕이면 조심하는게 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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