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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57화 (58/219)

57화

날이 저문 뒤에야 마차는 움직이는 걸 멈췄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짧게 이십 분에서 삼십 분정도 말 그대로 가벼운 휴식과 볼일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식사 준비와 밤을 보내기 위한 준비를 위해 다들 마차에서 내려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불은 프라우디에가 마법으로 쉽게 피워줘서 문제없었다. 불쏘시개로 쓸 나무라도 주워와야 하나 고민하는 에빌에게 바이스가 말했다.

“에빌 씨는 짐마차에서 적당한 식재료를 가져와주세요. 아무거나 적당히.”

“그런 요구사항이 제일 어려운데요?”

웃으면서 에빌은 짐마차로 갔는데 작은 등불 하나를 들고 짐마차 안을 살피던 그는 깜짝 놀라서 급하게 밖으로 달려나왔다.

거대한 바퀴벌레라도 본 건가 싶어서 카이엔이 물었다.

“뭐야, 왜 그래? 벌레라도 들어왔어?”

“카,카이엔!”

“왜.”

“안에 사람이….”

“뭐?”

사람이? 사람이 왜 있어?

에빌의 말에 카이엔은 깜짝 놀라 짐마차로 달려갔다. 그에게 등불을 건네받아 카이엔은 짐마차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식재료가 든 상자며 자루, 옷가방 등 꽉 들어차있는 짐들 사이에 체구가 작은 소년 한 명이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자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에 카이엔은 인상을 찌푸렸다.

“허…”

얘가 왜 여기있어.

탄신연에서 한 번, 따로 찾아온 적이 있어서 한 번. 딱 두 번 얼굴을 봤었던 사촌동생이자 현 왕자인 에이들러가 짐들 사이에 끼어서 자고 있었다.

엄청 덜컹거렸을 텐데 용케 깨지도 않고 잘 자고 있는 모습에 카이엔은 뒷목을 잡았다.

왕자가 사라졌다. 아마 왕성에선 난리가 났을 거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카이엔은 일단 어린 사촌동생부터 깨우기로 했다.

“일어나. 그만 자고. 벌써 밤이다.”

“어…”

“깼어?”

“어… 으와!”

카이엔이 흔들어 깨우자 에이들러는 부스스 눈을 떴다.

그 아이는 들고있는 등불 때문에 얼굴에 묘하게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카이엔을 보고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카이엔은 에이들러의 손을 잡고 짐마차에서 나왔다.

꽉 붙잡긴 했지만 억지로 힘을 주어 끌어당기지 않는 손에 에이들러는 얌전히 붙잡혀서 짐마차 밖으로 나왔다.

짐마차에서 어린 소년이 나오자 다들 깜짝 놀랐다. 왕자의 얼굴을 아는 건 카이엔과 바이스, 에빌 뿐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왕자님, 무슨 일인가요?”

“어… 무슨 일이 생기긴 했는데… 일단 쉬면서 이야기하자.”

에빌이 짐마차에서 의자를 꺼내와서 카이엔은 그 위에 앉았다. 다른 의자를 하나 더 꺼내와 에이들러가 앉게 하고 카이엔이 어린 사촌동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너. 어쩌다가 짐마차에서 자고 있었던 거야? 누가 납치라도 했어?”

“아, 아니에요!”

“그럼?”

“그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에이들러는 카이엔의 눈치를 보았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피하면서 에이들러가 더듬거리며 목소리를 냈다.

“그… 레이지가, 저한테 결혼하기 싫다고 하소연했었고… 저는 동물들을 더 보고 싶어서 갔었는데, 형이 간다는 말을 들어서….”

“나 되게 급하게 짐 쌌는데 어떻게 안 거야?”

“그날 갈 것 같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요. 형이 사는 데에 가면, 어, 더 신기한 애들이 많나요?”

순진한 얼굴로 묻자 카이엔은 말문이 턱 막혔다.

누가 애한테 이런 말을 한 걸까. 진심으로 궁금해져서 그가 물었다.

“…그런 말은 누구한테 들은 거야?”

“에빌라이 공작님이요.”

티아마티스!

무슨 짓을 한 거냐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수도에 사는 드래곤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속으로 분을 삭히며 카이엔은 입술만 깨물었다. 그 작자가 한몫 거들어서 이 사태가 난 게 뻔했다.

그와 결혼 이야기가 나왔던 레이지는 어떻게든 그와 연관될만한 일을 피하고 싶어 하겠지만 에이들러는 달랐다.

남매가 사이좋게 리만테스 궁에 찾아왔을 때도 에이들러는 고양이와 늑대를 보며 좋아했으니까.

어린애가 악의 없이 한 행동에 크게 혼을 낼 수도 없어서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다시 돌아가야 하나…”

“아뇨. 북부로 갑시다.”

“뭐?”

“이제와서 수도로 돌아간다고 해도 납치범으로 몰릴 테니까요. 몰랐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어차피 이 작은 왕자님도 북부를 구경하고 싶어 하니까요.”

바이스의 말에 에이들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생 처음으로 저지른 일탈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카이엔의 팔을 붙잡으며 에이들러가 말했다.

“같이 가고 싶어요! 제가 없어졌다는 것도 모를걸요?”

“모를 리가 없잖아.”

“레이지가 적당히 머리카락을 자르고 저인 척 하고 있기로 했어요.”

“허…”

남매가 둘이서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긴 건가?

그걸 또 받아준 레이지도 대단했다.

본인이 가기 싫다는데 억지로 돌려보낼 수도 없어서 카이엔은 하는 수 없이 에이들러를 데리고 세자르로 가기로 정했다.

덕분에 주변의 안전 관리에 더욱 힘을 써야 했으며 그리델라와 라스, 글라스는 계속 애완동물인 척하고 있어야겠지만.

가만히 에이들러를 바라보고 있던 바이스는 별안간 그 아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카이엔 왕자님과도 사촌이지만 저와도 마찬가지군요. 에이들러 왕자님, 전 페르세이지 바이올로스라고 합니다.”

“에?”

“뭐?”

“바이스 씨?”

난데없이 본명을 꺼내든 바이스 때문에 다들 깜짝 놀라 외쳤다.

바이올로스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는 에빌은 물론이고 프라우디에와 자네인도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었기에 눈이 동그래졌다. 카이엔은 손으로 얼굴을 덮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바이스는, 그에게 사실을 고백했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제 정체를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 같았다.

페르세이지란 이름에 에이들러가 얼떨떨해하며 입을 열었다.

“어… 그 사람, 병약해서 집안에만 있다던데.”

“거짓말입니다. 실은 어렸을 때 아버지인 후작님과 의견 차이로 반쯤 가출했거든요. 바깥에 알리기 창피하니까 절 병자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어어…”

“카이엔 님과 사촌 형제이신 것처럼 저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들러 왕자님의 외삼촌의 아들이죠.”

“와아!”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촌 형이 한 명 더 등장했다는 것에 에이들러는 신기해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바이스는 한마디 더했다.

“뭐, 의절했지만요.”

“의절?”

“네. 가문을 박차고 뛰어나온 자유로운 몸이죠.”

“애한테 거짓말하지 마.”

보다못한 카이엔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바이스는 맞는 말 아니냐며 웃었다.

이제와서 숨길 것도 없다며 바이스가 말했다.

“이름도 새로 지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저를 바이스라고 부르죠.”

“우와. 가출한 곳은 좋아요?”

“전 만족하고 있습니다. 세자르엔 카이엔 왕자님이 기르는 다른 몬스터들도 많으니까 재밌을 거예요.”

“와아아- 역시 나 형 따라오길 잘한 것 같아!”

더 신기한 애들이 많다는 말에 에이들러가 눈을 빛냈다.

아직 어린 왕자의 기대치를 저렇게 높여놨다가 실망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카이엔이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바이스는 깔끔하게 그것을 무시했다.

에이들러는 카이엔을 부담없이 형이라고 부르면서 따랐는데 똑같이 사촌 형인 바이스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명은 친가 쪽 사촌이고 다른 한 명은 외가쪽 사촌이었으니까.

고민 끝에 에이들러가 묻자 바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일반 시종 대하듯 대하세요. 페르세이지 바이올로스를 그만두고 바이스 크라이머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의지만 있으면 못 할 게 없답니다.”

“그렇구나!”

“애한테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마.”

“그렇게 따지면 제가 가르치고 기른 왕자님은 이미 이상해진 지 오래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너-”

“그만 떠들고 저녁식사 준비 하겠습니다.”

카이엔의 말을 자르고 바이스는 홱 뒤돌아섰다.

에빌이 짐마차에서 에이들러를 발견해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덕분에 시간이 많이 늦어지고 말았다.

안그래도 조촐한 일행이 초라한 저녁식사가 더욱 빈곤해져선 안된다며 바이스는 에빌에게 가져와야 할 것을 알려주었고 프라우디에가 모닥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물을 끓이기로 했다.

덩그러니 의자에 앉아있게 된 카이엔과 에이들러는 나머지 일행이 저녁 식사 준비와 천막 치는 것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멀뚱히 보고만 있게 되었다.

“도와줄 일이 없을까요?”

“우리가 나서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야. 나한텐 아무것도 안 시키려고 하거든.”

“그렇구나… 심심했겠다.”

“얘네가 있잖아.”

카이엔이 손짓하자 마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라스와 그리델라가 천천히 다가왔다.

사뿐사뿐 걸어 온 그리델라가 발치에서 야옹, 하고 울음소리를 내자 카이엔이 두 손을 뻗어 고양이 그리델라를 들어올려 그의 무릎 위에 올렸다.

“고양이랑 늑대. 실은 새장 안에 박쥐도 있어.”

“와, 정말요?”

“어. 박쥐는 야행성이라 지금쯤이면 일어났을 테니까 보고싶으면 말해. 나중에 보여줄게.”

“한 번 보고 싶어요.”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투정 하지 않고 잘 먹으면 보여주겠다며 약속까지 했다.

안 간다면서 떼를 쓰던 녀석이 밥이 맛이 없고 여행길이 힘드니 돌아가겠다고 반대로 떼를 쓰기라도 하면 낭패였으니까.

그렇게 되면 꼼짝없이 수도로 다시 갈 수 밖에 없고 납치범으로 오해받아 그대로 목이 뎅겅, 잘릴 수도 있었다.

‘이건 너무 나간 건가.’

왕성과 관련된 일이라면 의심부터 하게 되버렸다.

바이스의 지시대로 저녁 식사는 최대한 간단하게 하기로 정했다.

아직 신선한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어서 끓인 스튜와 빵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에이들러는 놀랍게도 편식을 하지 않았다.

그저 책에서 봤던, 여행자들이 많이 먹는 음식 아니냐면서 재밌어했다.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게 어색할 텐데 단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식사를 마쳤다.

“…우리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물론이죠.”

“금방 들키진 않을 거예요. 레이지가 저인 척 지낼거고 자기 방 문은 걸어 잠그고 고집부리는 중이라고 연기할 거거든요.”

해맑은 에이들러의 얼굴을 보니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저 나이 때 어땠더라? 그때 한창 우울증에 걸릴락 말락 한 상태라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남매가 함께 머리를 써서 짜낸 계획이니 따라주는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왕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카이엔은 그만 쉬러 가고 싶다며 마차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에이들러와 몇마디 대화를 더 나눈 바이스가 조용히 카이엔을 따라오며 소곤거렸다.

“왕자님, 절대 결혼은 안됩니다. 아무래도 바이올로스의 피가 공주 쪽에 흐르는 것 같아요.”

“내가 미쳤냐 결혼하게?”

“바이올로스 후작가 사람들은 다들 머리가 돌아버렸거든요.”

“…네가 그 집안 장남이잖아.”

스스로도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건가.

카이엔이 뚱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바이스는 알고만 있으라면서 뒤돌아섰다.

밤바람이 차가워서 다른 이들은 노숙을 해도 카이엔과 에이들러는 마차 안에서 자기로 했다. 여분으로 챙겨온 이불과 베개를 내려놓고 잠자리를 마련해주니 에이들러는 얼른 마차 좌석에 길게 몸을 누였다.

반대편에 카이엔이 눕고 바닥에는 늑대와 고양이가 몸을 말고 자게 되었는데 힐끗 옆을 돌아보며 에이들러가 물었다.

“북부는 멀어요?”

“어. 멀어. 도중에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안 된다. 호위 병력이 너무 부족해서,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위험할 수도 있거든.”

“그런 것 같아요.”

그의 사촌. 명확한 왕족.

그러나 카이엔은 함께 온 남작을 먼저 보내고 나서 제 일행만 데리고 왕궁에 머물다가 돌아가게 되었고 호위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기사가 단 둘. 그리고 마차와 짐마차를 끌 마부들, 시종 한 명. 그리고 손님 한 명.

전투를 할 수 있는 인원은 기사 둘 정도인데 마차는 세 대였다.

왕성 내에서 자신이 돌아다닐 때도 호위 기사가 따라붙었고 바깥에 나갈 일이 있으면 수십 명의 기사며 병사들이 따라붙었는데. 그것에 비하면 카이엔의 일행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멋대로 따라와서 죄송해요.”

작은 목소리에 카이엔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다음부턴 허락은 받고 나와. 네가 없어진 걸 알면 다들 걱정할 테니까.”

왕자가 없어졌다.

과연, 왕은 어떻게 반응할까.

‘따지고보면 왕비가 바이스의 고모군. 그렇다면 이녀석이 내 옆에서 시종 노릇을 하고 있단 걸 알고 있으려나?’

그럼 별로 걱정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허나 바이스의 인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걱정할법도 했다.

카이엔은 자기 전에 에이들러에게 박쥐로 변신한 글라스를 한 번 보여주고 여긴 너무 좁다는 핑계를 대고 글라스가 있는 새장을 프라우디에에게 넘겼다.

마차 밖으로 나와서야 글라스는 파닥거리며 새장에서 나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몸이 찌뿌둥한지 기지개를 쭉 켜며 그가 말했다.

“그럼 전 이제 다른 분들과 있으면 될까요?”

“네. 저 마차에 어린 왕자가 끼었으니까 글라스 씨가 불편해할 것 같다면서요.”

“확실히 그렇네요. 그런데 바이스 씨도 참… 그런 식으로 자기 정체를 말할 줄이야.”

“알고 계셨어요?”

“몰랐어요. 평범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예상하긴 했는데 정말이지… 알 수가 없는 분이네요.”

“다 들립니다. 글라스 씨는, 오늘 밤도 보초를 서실 건가요?”

“네. 다들 주무세요.”

“이럴 줄 알았으면 왕실에서 호위 병력이라도 좀 뜯어낼 걸 그랬군요. 왕자님 가시는 길이 이렇게 초라해서야 원.”

바이스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카이엔은 올 때만큼이나 조용한 귀환을 택했다. 덕분에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자네인이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하고 에빌도 제 역할을 해낼 테고 싸울 일이 있다면 그도 나설 테지만 이왕이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왕성에서 쫓아올 자들도 걱정이고. 에이들러 왕자가 이쪽의 뒤통수를 칠 정도로 영악해 보이진 않지만…’

고모인 왕비를 닮은 건 공주쪽이 확실했지만 왕자쪽도 완전히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카이엔과 한 마차에 두긴 했지만 그리델라와 라스가 있으니 맡겨두기로 하고 바이스는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기로 했다.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어린 왕자의 등장에 그리델라와 라스는 맘 편히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몸조심에 극도로 신경쓰는 그들과는 달리 에이들러는 바깥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마차는 평범하고 잠자리도 좋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열 살이 될 때 까지 왕성의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까 애가 가출을 하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원래 어린아이일수록 활동성이 많고 호기심도 많으니까. 물론, 그는 그 나이 때 심각한 상황의 연속이라 몸을 사렸었지만 에이들러는 평범하게 잘 살아왔으니 지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가는 것에 들뜰만 했다.

마차를 타고 움직일 땐 고양이인 그리델라가 놀아주었고 휴식이나 식사를 위해 마차가 멈췄을 땐 프라우디에가 에이들러와 놀아주었다.

나이는 카이엔과 비슷했지만 워낙 어려보이는지라 에이들러와 어울리고 있어도 위화감이 적었다.

키는 프라우디에가 에이들러보다 훨씬 컸지만 카이엔에 비하면 둘 다 어린애나 마찬가지여서 그 두 사람 사이에 카이엔이 끼어있는 모습을 보고 바이스가 한숨을 쉬었다.

“저 사이에 있으니 왕자님이 겉늙어보여서 큰일입니다.”

“으음… 카이엔은 열아홉이고 저기 왕자님은 열 살이잖아요. 프라우디에야 어쩔 수 없고요.”

“안타깝군요. 제 양육방식이 잘못 되었던 걸까요.”

“도대체 바이스 씨는 카이엔을 어떻게 키우고 싶었던 거 예요?”

“왕자님이 원하시는 대로.”

“숨만 쉬면서요?”

“네.”

“잘 키운 것 같은데요.”

키도 크고 체격도 저정도면 적당했다. 만성 운동부족인 것 같긴 하지만 카이엔이 무예에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에빌의 대답에 바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이엔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키워보는 건 난생 처음 하는 일이라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다들 저렇게 대답해주니 그가 잘못하진 않은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이제와서 이번에는 잘 키울 테니 어린애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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