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암흑천지였다.
그때와 같은 장소. 시간 또한 같을까? 묘한 기시감에 카이엔은 몸을 일으켰다.
소음 따윈 들리지 않았다. 라스와 그리델라가 소파에서 자면서 내는 숨소리만이 귀를 기울였을 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리였다.
검은 천을 걷어놓은 새장은 텅 비어있었다. 글라스는 밖에서 경비를 서고있을 터였다.
카이엔은 혹시라도 두 사람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왔다.
문득, 이 방 안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져서 그는 의자에 걸쳐놨던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방에서 나왔다.
어두운 복도는 스산하기 그지 없었다.
등불 따윈 없는지라 그는 조심스럽게 허공을 더듬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계단을 발견해 난간을 짚으며 하나씩 내려왔다.
1층 홀의 벽에는 촛대가 걸려있었기에 카이엔은 그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바깥 바람은 꽤 쌀쌀했다. 찬 공기를 마시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잠시 그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카이엔은 궁 옆의 마구간으로 향했다.
잘 자고 있던 말은 그가 다가오자 기척을 눈치채고 깨어나 작게 히힝, 하는 울음소리를 냈다. 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카이엔은 말을 밖으로 꺼냈다.
“좀 나가볼까…”
이상하게도, 경비를 서는 기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엔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를 막아서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그는 말 위에 올라탔다.
익숙하게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그는 말을 타고 리만테스 궁을 빠져나갔다.
가르간트의 왕성은 꽤 규모가 커서 성 안에 여러 개의 궁이 있었고 서쪽엔 작은 산까지 포함되었다.
어렸을 적에 자주 놀러갔던 곳이라 카이엔은 자연스럽게 산으로 향했다.
“응?”
산 입구의 나무에 말을 묶어두는 그에게 반딧불이 하나 날아왔다.
포르르 날아와 그를 구경하듯이 주변을 맴돌고 날아가버린 작은 반딧불을 보고 카이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계절에도 반딧불이 있는 건가, 싶었다.
나무가 빽빽한 곳이라 그런지 숨이 더 트이는 것만 같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게 무섭지도 않은 건지 카이엔은 발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대로 그는 길을 따라갔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반딧불을 만날 수 있었다. 희미한 빛에 카이엔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때 많이 왔었지.’
어느 날을 기점으로 발길을 끊었지만 그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하게 다치기라도 했던 걸까?
밝은 달빛이 그가 가야 할 길을 비춰주었고 카이엔은 느긋하게 밤 산책을 이어나갔다.
오래 있진 않을 거고 잠시 바람만 쐬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밤중에 왕실 소속의 산에 방문한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널찍한 바위 위에 앉은 채로 들릴 듯 말 듯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언뜻언뜻 윤곽을 드러냈다.
대리석 조각상이나 입고 있을 것만 같은 흰색 튜가를 걸친 남자는 춥지도 않은 건지 차디찬 바위 위에서 다리를 까딱이고 있었다.
“음?”
카이엔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건만 그는 정확히 카이엔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카이엔의 발밑을 비추었고, 그는 환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왔네 왔어. 드디어 왔네.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누구…”
“나 잊어버렸어? 서운하네.”
너스레를 떨며 남자는 바위에서 일어났다.
휘적휘적 팔을 저으며 가까이 다가온 그는 카이엔보다 키가 작아서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러더니 호들갑을 떨며 친한 척을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작던 애가 벌써 이 만큼 컸다니! 옛날엔 참 귀여웠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변해버린 거야?”
“뭐? 너 나 알아?”
“당연히 알지! 인간들 기억력이 나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서운하게 시리-”
퍽!
말을 잇지 못하고 그는 뒤통수를 얻어맞고 말았다.
난데없이 퍽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머리를 붙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자 카이엔은 깜짝 놀라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자리엔 그들 둘 밖에 없었는데, 어느새 한 명이 더 늘어나있었다.
흑발의, 꽤 키가 큰 미인이었다. 그래봤자 자신이 뒤통수를 후려친 남자와 체구가 비슷했지만, 여성치고는 키가 큰 편이었다.
붉은 입술을 비틀어 열며 그녀가 말했다.
“하여간 헛소리나 해대고… 정말, 이놈 취향이 어디 안 가는 구나.”
“…누구세요?”
그녀는 카이엔을 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상하게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은 두 사람을 보며 카이엔은 당황해서 물었다.
초면에 친한 척 하던 놈에 이어서 이번엔 또 뭐란 말인가? 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고 흑발의 여성이 물었다.
“힘이 필요한가?”
“허어?”
뜬금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카이엔이 황당해하자 그녀는 다시 한 번 말했다.
“힘 말이야.”
“아니, 나는 조용히 살고 싶은데. 왕위에도 관심없고.”
“듣던대로네. 하지만 조만간 힘이 필요해지는 날이 올테고, 그땐 나의 이름을 부르거라. 그것이 계약이니.”
“이름? 계약?”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이 돌아왔다.
여긴 왕성 안에 있는 산인데 이 사람들은 침입자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카이엔은 상황파악을 하느라 애를 썼고 그 사이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남자는 제 머리를 문지르면서 울상을 짓다가 한 대 더 얻어맞았다.
옆의 남자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토가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여성은 카이엔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개가 늦었군. 나는 지고한 신을 모시는 지하의 가장 높은 존재 중 한 명, 앙그라 마이뉴라고 한다.”
“아리만이라도 불러도 돼. 난 그냥 애정을 담아서 루 씨, 라고 호칭 붙여서 불러주면 돼.”
“이놈의 헛소리는 무시하거라. 루 씨는 무슨, 루키푸게라고 불러라.”
솔직히 둘 다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이름을 듣긴 했지만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 카이엔은 자기가 꿈을 꾸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뺨을 잡아당기려고 하니 루키푸게가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하듯 흔들었다. 옆에서 앙그라 마이뉴도 한 손을 올려 거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까 잘 부탁한다-”
“응? 뭘 부탁한다는 거…”
순간 눈앞의 흐릿해졌다.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아서 카이엔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는 산 속이 아니라 산 아래에 있었고 말까지 타고 있었다.
꿈이라도 꾼 건가 싶어서 그제야 카이엔은 뺨이며 팔을 꼬집어볼 수 있었다. 아픈 걸로 봐선 지금은 꿈이 아닌 게 분명했다.
말을 타다가 졸다니, 큰일이 날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는 리만테스 궁으로 돌아갔다.
십년만에 돌아온 왕성이었지만 운 좋게도 카이엔은 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몰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카이엔이었지만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바이스에 딱 걸리고 말았다.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들켜 카이엔의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왕자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밤이라서, 자다가 깨서 그런게 절대로 아니었다.
‘화…났나…?’
화가 날만도 했다. 어딜 가려면 누구를 깨워서 동행시키거나 어딜 간다고 말을 했어야 했다.
이곳은 세자르도 아니었고 그의 적이 어디에 얼마나 숨어있을지 모르는 위험한 장소였으니 바이스가 걱정하는 게 당연했다.
움찔거리며 카이엔은 말에서 내렸다.
”…미안.”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마구간에 말이 없는 걸 보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었는데… 무사하시다면 됐습니다.”
“내가 방에서 나간 줄은 어떻게 알았어?”
“글라스 씨가 와서 알려주셨습니다.”
“아.”
다른 이들의 눈은 피했지만 글라스의 눈마저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글라스는 그가 밖으로 나간 걸 알고 뒤쫓아서 막아서기보단 놀라서 바이스에게 알린 모양이고.
“잠깐 산책 좀 다녀왔어.”
“산책을 두 번 다녀오셨다간 제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군요.”
“응?”
“왕자님께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어…”
“오늘이 바로 탄신연 당일입니다. 저녁의 연회에만 참석하실 테니 푹 쉬고 계십시오.”
“밤늦게 깨워서 미안해.”
“제가 당신을 위해 일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바이스는 카이엔을 방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카이엔이 방 안에 들어가니 그의 부재를 뒤늦게 알아차렸던 라스가 방 안에서 빙빙 맴돌다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왕자님!”
“쉿. 그리델라 깨겠다.”
“어딜 가셨던 겁니까?”
“잠시 바람 좀 쐬러. 너도 깼어?”
“모습이 보이지 않아 놀랐습니다.”
“너도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피곤했을 텐데 얼른 자.”
“제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깊이 잠들 수도 있는 거지. 괜찮아.”
라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카이엔은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가 뜬금없이 외출을 하는 바람에 다들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해도 왜 밤중에 말까지 타고 산으로 간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십 년만에 온 왕성을 집이라고 생각해버린 건지. 그래서 어렸을 적에 갔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간 건지.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야. 괴상한 꿈도 꾸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지. 대리석 조각상이나 입고 있을 법한 옷들이었다.
그를 굉장히 잘 알고 있던 것 같은 남자와 뜬금없이 힘이 필요하냐고 묻던 여자. 곰곰히 그들의 이름을 떠올려보다가 카이엔은 잠들었다.
***
탄신연 당일. 카이엔은 저녁의 축하 파티에만 참석할 계획이었기에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허나 침대며 소파 위에 드러누워있다고 해서 그가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파티가 다가올수록 그는 가슴이 저절로 무거워졌다.
그가 이곳에 왔다는 걸 알아차린 귀족들도 있고 파티에서 그를 알아보는 귀족들도 많을 것이다. 거기서 얼마나, 어떻게 시간을 때워야 할지. 카이엔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양탄자 위를 우다다 달리다가 신나게 커튼을 쥐어뜯던 그리델라가 폴짝 뛰어왔다.
“왕자님, 왜 그래? 체했어?”
“아냐. 그냥… 가기 싫어서.”
“에이, 여기까지 왔으니까 가야지. 맛있는 거 많이 먹고와~”
“체하겠다.”
“킥킥.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작은 앞발을 뻗어 옆으로 돌아누운 카이엔의 이마를 툭툭 치며 그리델라가 웃었다.
“왕자님은 잘 할 수 있어. 난 왕자님을 믿어.”
“안 믿어도 되는데.”
“내가 왕자님 말고 누굴 믿을 수 있겠어.”
“친구들 많잖아. 걔네 믿어.”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리델라는 웃기만 했다. 고양이 얼굴로 저렇게 웃으니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했다.
고양이 모습의 그리델라의 앞발이 이번에는 지그시 카이엔의 뺨을 눌렀다.
“괜찮을거야. 에빌이랑 바이스 씨도 같이 간다면서.”
“으음…”
“무슨 일 생기면 불러. 바로 달려갈게!”
고양이와 늑대와 박쥐가 말이지.
피식 웃으며 카이엔은 손을 뻗어 그리델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해봤자 나만 손해지.”
“그렇지! 간김에 왕자님이 왕 자리에 관심없다는 티도 팍팍 내고! 망나니 설정도 난 되게 좋은 것 같던데?”
“난 그거 싫어.”
카이엔이 표정을 굳히자 그리델라는 까르르 웃더니만 다시 커튼을 향해 달려갔다.
모습만 고양이로 변한 게 아니라 습성까지 고양이를 닮게 되버렸는지, 여기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사방의 가구에 손톱자국을 내놓는 그리델라였다.
파티에 참석할 시간이 다가오자 바이스는 준비해온 옷을 내밀었다. 돈 좀 썼는지 평소 입던 것보다 훨씬 화려한 모습에 카이엔은 이마를 짚었다.
“이건 또 뭐야?”
“당연히 왕자님이 입으실 옷입니다. 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당신을 무시할 수 없고 오히려 경외하게끔 신경썼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입에 담는 네가 난 참 신기해.”
“감사합니다.”
전혀 칭찬이 아니었지만 바이스는 웃는 얼굴로 대답하고 카이엔이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었다.
그의 검은색 머리카락에 맞춘 건지 온통 시꺼멓고 붉은색의 겉옷이며 망토를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허나 이제와서 거부하긴 늦었다. 바이스가 무슨 옷을 챙기는지 미리 알아두지 않은 그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너 어떻게 알고 이런 옷을 준비한 거야? 그때부터 준비했다고 해도 촉박했을 텐데.”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거든요. 올해 혹은 내년, 그때쯤에 왕성에서 왕자님을 부르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초부터 미리 준비했죠.”
“너 진짜…”
“왕자님이 성장할 것을 상정해서 오차를 좀 뒀는데 잘 맞아서 다행이군요. 그리고 저번에 보여드린 공책에 주문 제작한 옷에 대한 내용도 적어뒀습니다만. 대충 보셨군요?”
그 말에 카이엔은 할 말을 잃었다.
바이스가 알아서 잘 했을 거라고 여기고 찬찬히 살피지 않은 그의 잘못이었다.
셔츠 위에 조끼를 걸치고 살짝 조여묶은 크라바트에는 루비 브로치를 부착했다.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긴 코트를 걸치고 카이엔은 코트에 부착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노란 걸 보면 금으로 만든 것 같은데 도금일지 순금일지 궁금해졌지만 바이스에게 물어보기가 조금 두려웠다.
옷을 겹겹으로 껴입고 망토까지 걸치니 은근히 무거웠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바이스는 추가적인 장식과 함께 카이엔의 머리손질을 시작했다.
높게 하나로 묶은 머리에 붉은 보석으로 꾸민 머리장식을 연결했다.
뒤통수를 볼 수 없는 카이엔은 바이스가 뭘 하든지 그냥 내버려두었다.
다 꾸미고 나서야 카이엔은 전신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스가 준비해온 부츠의 굽으로 인해 평소보다 키가 조금 더 커보였다.
“하.”
그 작았던 애가 이렇게나 컸다.
그땐 보잘것 없을 정도로 나약하고 어렸던 아이가 십 년동안 이렇게나 성장했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선왕을 떠올리며 감탄할 테고 누군가는 선왕을 너무나도 닮은 그의 자식을 보고 두려워할 것이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무어라 말을 해야할까.
거울에 손을 짚은 카이엔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보고 바이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왕자님이 옷 갈아입으실 때 다른 분들을 내보내지 않았군요.”
“…응?”
“그리델라 님은 다 보셨겠군요.”
“어??”
그 말에 카이엔은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글라스야 새장 안에서 쿨쿨 자고있으니 모르겠지만 라스와 그리델라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라스는 얼른 고개를 저었지만 그리델라는 모르는 척 앞발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옆에서 바이스가 한 마디 더 거들었다.
“기껏해야 속옷차림이니 문제는 덜하겠지만요.”
“너 진짜…!”
“괜찮아 왕자님! 남한테 보여서 창피할만한 부분은 없더라!”
“하아…”
카이엔은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벌린 입에선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라스가 앞발로 그리델라를 툭툭 건드렸지만 그리델라는 모르는 척 야옹, 하는 소리만 냈다.
심란한 카이엔의 심정을 일부러 모르는 척 하면서 바이스는 망토에 붙은 고양이 털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밖에 나가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 털이 너무 많이 날리는군요.”
…라면서, 그는 카이엔을 밖으로 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