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쫓겨난 왕자는 검은 숲을 이웃으로 둔 영지에서 지내면서 미개척지의 토벌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날이 갈수록 애완 몬스터가 늘어나며 주변에 이종족 또한 늘었다.
다만, 그들 모두 왕자와 마찬가지로 갈 곳 잃은 신세라 별 위협은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내용이 보고의 전부였다.
카이엔은 꿍꿍이를 숨기고 있기는커녕 하루하루 빈둥대는 백수 생활을 하고있었다.
어느 날은 보석을 잔뜩 사는가 했는데 그 보석은 그곳에 사는 마녀의 손에 들어갔다.
연애 사업인가 싶었는데 그 마녀는 그 보석을 땅에 뿌렸고 몰려온 새들이 부리로 집어들고 날아가버렸다. 마녀는 새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용에 현 가르간트의 국왕이자 카이엔의 작은 아버지인 바르바스 이디에우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세자르 영지로 보내논 첩자란 놈들은 하나같이 월급 도둑이 아닐까. 수를 줄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다른 보고를 살펴도 내용은 비슷비슷했다.
그러나 그는 의심을 놓을 수 없었다.
전 국왕인 형님이 죽은 뒤, 너무나도 어린 조카를 대신해 그가 왕의 자리에 앉으면서 그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이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그에게 아이가 없었기에 냉큼 꺼낼 수 있었던 말이었다.
허나, 지금 그에겐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이나 있었다.
쌍둥이로 태어난 아들과 딸.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을 보지 않은 지도 꽤 됐지.’
과연 그 긴 시간동안 녀석은 어떻게 변했을까.
보고로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닌 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적당한 핑곗거리도 있겠다, 그는 카이엔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니 얼굴도 볼 겸 수도로 오라는 내용으로. 일찍 편지를 보내면 오기 싫어도 와야겠지. 무려 왕명이니 녀석도 거절할 수단 따윈 없을 터였다.
***
“왕자님, 편지입니다.”
“무슨 편지? 네가 태우지 않은 걸 봐선 뭐가 있나 보구나.”
항상 편지라든가 우편같은 게 오면 이런 게 이 만큼 왔다, 라고 보여주고 눈앞에서 벽난로에 집어넣거나 밖에서 모닥불의 땔감으로 써버리는 게 바이스였다.
그런 녀석이 편지가 왔다면서 건네니 카이엔은 슬그머니 불안감이 차올랐다.
발신인을 확인하자마자 벌레씹은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바이스가 입을 열었다.
“왕성에서 왔습니다.”
“그런 건 주기 전에 말하라고…”
“짐작하신 줄 알았습니다만.”
“알 게 뭐야.”
찌푸린 얼굴을 펴지 않고 카이엔은 봉투의 인장을 뜯었다.
내용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
담당 시종에게 옮겨 적게 한 많고 많은 탄신연의 초대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쫓아낸 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 그를 수도로 불러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다 보는 앞에서 죽이려 드려나? 생일을 맞이해서 화려하게 피를 보려고?
의심밖에 들지 않았다.
카이엔의 표정이 점점 썩어가자 바이스가 슬쩍 물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너라면 짐작가지 않아?”
“곧 탄신일이군요.”
“하아…”
“오라고 합니까?”
“어.”
“왕명이니 가야겠군요.”
“젠장. 가고 싶지 않은데…”
“안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뭔데?”
불안하지만 일단 카이엔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바이스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지금 당장 호수든 강이든 거기 빠져서 심하게 앓아누우시거나 낙마하거나 말발굽에 채여서 뼈가 부러지시면 됩니다.”
“너…”
“그 방법말곤 없습니다.”
“널 믿은 내가 미쳤지.”
“그러셨다면 왕자님은 진작에 광인이 되셨을 텐데요.”
“너 진짜…”
“가기 싫다고 한마디 적어서 보낼까요? 제가 대필하겠습니다.”
“너한테 맡겼다간 욕만 잔뜩 적어서 보낼 것 같다.”
“왕자님의 마음의 소리까지 적어서 보내겠습니다.”
“필요 없어.”
바이스에게 맡겼다간 큰 문제가 생길 게 뻔했다.
아무리 그 혼자 끙끙거리며 생각해봤자 좋은 생각이 떠오를 리 없었다.
어차피 수도에는 남작도 함께 갈 테니 같이 이동하면 문제는 없을 테고, 가장 걱정되는 건 거기 도착한 후였다.
무려 십 년 만에 왕성의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가 이동한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다들 그의 행보를 주목하며 현 국왕과 어떻게 마주칠지를 궁금해하겠지.
그러나 그들의 관심과 기대와는 달리 그는 복수할 생각도 없고 왕위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부모님을 죽인건 현 국왕이 아니기에, 원한을 품은 적도 없었다.
“정 그러시면 모두의 의견을 모아보도록 합시다.”
“허?”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내일 점심, 다들 별채의 식당으로 불러모으죠.”
“또 이상한 일 벌이는 거 아니지?”
“절 믿어주십시오.”
“…그래.”
진지한 얼굴로 또 무슨 이상한 일을 벌일지는 모르겠지만 믿고 맏겨달라니, 속는 셈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날 점심.
카이엔은 식당 한쪽 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왕자님이 수도의 왕성에 안 가기 위한 작전 회의」라는 문구를 읽자마자 뒷목을 잡았다. 어쩐지 데자뷰가 있었다.
이번에도 글씨는 페이리가 써준 모양이었다.
다들 이미 자리를 잡았고 사트로누스에 소금이, 페이리에 루브는 유리 집째로 식당 테이블에 올라가있었다.
“왕자님! 왕성 가는 거야? 거기가 어디야?”
“어… 거기 사는 왕 생일이라 간다.”
슬로세이의 물음에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카이엔은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주모자인 바이스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더 속이 터졌다.
‘이 자식 자기 일 아니라고… 아니, 내 일이면 자기 일 맞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으면 이런 쓸모없는 회의 따위를 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상석에 그가 자리를 잡고 앉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한숨을 푹 쉬며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저기 적힌 대로. 가르간트 현 국왕의 생일이라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어. 현 국왕은 내 작은아버지고. 너희도 내 사정은 대충 알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저요!”
“그래, 슬로세이.”
“바다에 빠져서 감기에 걸린다!”
“이미 바이스한테 들었다. 절대 안 해.”
“칫.”
게다가 바다였다. 여기에 호수나 강은 있어도 바다는 없으니 택도 없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슬로세이의 의견이 기각당했다.
“꼭 가셔야 하는 건가요?”
“이 정도면 왕명이지. 그런데, 지난 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불렀다가 딱 내가 열아홉 살이 되니 부르는 것도 수상해.”
“확실히 그건 수상한데.”
“왕자님, 위험하신 거 아니에요?”
사방에서 걱정이 흘러나왔다.
정말 수상한 초대란 것에 의견이 더해지니 카이엔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일단, 난 정말로 왕위에 관심이 없어.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을거야. 어떻게든 내가 이대로 살고 싶다는 걸 알려야 하는데.”
“망나니 연기라도 하실래요? 관심 끊어지게 하는 덴 그게 최고던데.”
“어떻게?”
“술병째 들고 마시면서 여자 끼고 다니는 거요.”
비셰의 제안에 카이엔이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도 당연한 내용이었다.
한숨을 쉬며 카이엔이 말했다.
“같이 연기해줄 사람 없다.”
여기 있는 모두는 그와 한 배를 탄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연기를 해줄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비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어? 전 해줄 수 있는데요? 여성체로 변하면 되죠.”
“…가만히 있어라.”
“되게 간단한데요. 같이 일하던 애들 중 몇 명은 첩으로 들어가서 나중에 가문 재산을 통째로 들고 돌아오더라구요.”
“수완이 좋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요.”
“여성체로 변할 수 있어? 되게 예쁘겠다.”
“제가 또 무슨 모습이든 한 미모합니다.”
그리델라의 말에 비셰는 뿌듯해하며 대답했다.
현 모습도 굉장한 미남이었으니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허나 망나니 제안은 기각되었고 카이엔은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회의랍시고 이렇게 잔뜩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수도의 왕성에 간다는 말에 다른 이들의 흥미만 끈 셈이 되었다.
사트로누스야 예전에 가본 적이 있어서 하품만 하면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확 사트로누스 데려가버려?’
먼데까지 오게 한 복수를 할 겸 사트로누스를 데리고 갈까 싶었지만 카이엔은 곧 포기했다.
저 덩치 큰 녀석을 데리고 가는데에도 힘이 들뿐더러 괜히 다른 이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트로누스와 말이 통해 주변의 인간들보다 사트로누스를 더욱 신뢰하지만 다른 인간들에겐 그저 거대한 만티코어일뿐이었으니까.
불참할만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서 다들 시무룩해졌다. 그렇다고 카이엔의 팔이나 다리 한군데를 분질러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최근 흑마법을 공부하면서 역병이나 전염병에 대해 배우고 있는 프라우디에였지만 차마 카이엔에게 전염병 걸리고 드러눕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성적인 호문쿨루스였으니까.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프라우디에와 마찬가지로 엔베인 역시 멍한 얼굴로 정면의 벽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더스크라이즈 출신이라 왕명이라는 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탄신연에 참석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 다음 안건은 누가 함께 갈 것이냐였다.
“일단 호위로는 에빌이 따라가고 시종으로는 바이스. 혹시 같이 가고 싶은 사람 있어? 눈에 안 띄게 데려갈 수 있다면 같이 갈 수 있는데.”
“엥… 난 안되겠다.”
빠르게 슬로세이가 포기했다.
사트로누스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기에 논외였고 엔베인또한 다크 엘프라는 상당히 눈에 띄는 종족이었으므로 가고 싶어도 따라갈 수 없었다.
변신을 할 수 있는 라스와 글라스가 카이엔의 호위를 위해 함께 가기로 했고 그리델라도 눈을 빛내며 손을 들었다.
“나도! 나도 갈래!”
“너도?”
“응. 나 변신 마법도 할 줄 알아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리델라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뭉게구름을 퍼뜨렸다.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크림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나타났고 야옹, 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그리델라는 뿌듯해하며 가슴을 내밀었다.
코와 손, 발의 털만 양말을 신은 듯 까만털이었는데 카이엔이 고양이가 된 그리델라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고양이로도 변할 수 있어?”
“물론! 왕자님은 어떤 고양이가 좋아? 검은 고양이? 얼룩이? 치즈?”
“상관없으니까 네 맘대로 해.”
“난 이 고양이가 제일 귀엽더라.”
자기 취향의 고양이로 변한 모양이었다.
의자에서 방방 뛰다가 그리델라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변신 능력을 입증한 그녀 역시 이번 수도행에 함께하기로 결정되었다.
소금이도 찍찍대면서 어필했지만 소금이는 너무 작아서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게다가 햄스터는 쥐과였다. 누가 쥐라고 착각해서 소금이를 죽여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각자 동물로 변해서 따라간다는 말에 바이스가 흘리듯 한마디 했다.
“동물 농장이군요.”
“으음…”
“부정할 수 없네요.”
“그치만 늑대랑 고양이랑 박쥐 뿐인데!”
“루브는 계속 자나보다.”
“그러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루브는 쿨쿨 잠만 잘 잤다.
이틀 전에 닭 한 마리를 먹고는 소화도 할 겸 열심히 꿈나라를 탐험하는 모양이었다.
루브와 말이 통하는 건 그 뿐이었지만 두고가도 루브가 깨있으면 누군가는 밥을 줄 테니 그냥 두고가기로 했다. 루브는 아직 사회화가 덜 되서 많은 사람들 앞에 보여주기가 꺼려졌다.
남작에게도 동행인을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기에 카이엔은 마차 하나에 이 인원이 다 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프라우디에에게 물었다.
“프라우디에, 넌 어때?”
“저요?”
“응. 독스 백작도 참석할 테니까. 가족과 만나지 않아도 되겠어?”
“으음… 별로 만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저도 같이 가도 되는 거라면, 왕자님과 함께 가고 싶어요. 잔느도 같이요.”
“마차만 따로 준비하면 되겠네. 그렇게 하자.”
남은 사람들은 영주성을 지키게 되었다. 다만 그 인원이 엔베인, 슬로세이, 비셰, 글러티나였다.
엔베인과 글러티나는 전투능력이 있지만 나머지 둘은 비실비실해서 여기 두고 가도 될까 걱정이 되었다.
평소엔 그리델라가 슬로세이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리델라가 수도로 따라가버리면 슬로세이는 다른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같이 놀자며 귀찮게 굴 것이다. 저 중 가장 만만한 게 비셰니까 아마 비셰가 타겟이 되지 않을까.
요즘에도 밑재료 손질만 하고있는 비셰를 힐끗 쳐다보니 수도에는 영 관심이 없어보였다. 제국에서 온 녀석이니 그럴만도 했다.
“결국 가시게 되는군요.”
“응.”
“눈에는 확 띄겠죠. 그곳에 있는 모두, 당신을 십 년이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보게 되는 걸 테니까요.”
“애완동물도 잔뜩 데려가고.”
“몬스터 말을 알아듣는다는 말에 의문을 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몬스터를 데려갈 수는 없으니 난감하네요.”
정확히는 이종족을 동물로 속여서 데려가는 거지만.
어차피 거기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그에게 쓸모있을 리 없으니 카이엔은 대충 넘기기로 했다.
말 그대로 참석해서 얼굴만 비추고 올 생각이었다.
남작에게 초대장과 동행인에 대해 전달하니 그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역시, 카이엔의 수도행에 불안한 모양이었다.
십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에.
그리고, 현 왕이 이전에 내세웠던 명분이 있었기에.
그는 카이엔이 왕위에 욕심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더욱 심란했다.
“아무 일 없다면 좋으련만…”
“그래서 다들 따라간다고 한 거야. 프라우디에와 자네인은 따로 마차를 탈 거지만 성에서 묵을 땐 내 근처에 있게끔 할 거고.”
“독스 백작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부자사이가 그리 좋지 않나 봐.”
“그렇군요.”
남작은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았다. 카이엔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알겠다며 입을 열었다.
“준비하겠습니다. 저는 수도에 따로 관리하고 있는 타운 하우스가 있어서 그곳에 묵을 생각인데, 왕자님은 역시 왕성으로 들어가시는 거겠죠?”
“일단 도착했다고 직접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할 것 같아.”
“그곳이 불편하시면 저한테 오셔도 됩니다. 방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자기가 부른 거니까 방 정돈 내어주겠지.”
쫓아내려고 하면 먼 길 와서 피곤해서 못 나가겠다고 드러누우면 그만이었다.
탄신일에 맞춰서 도착하려면 서둘러 짐을 챙겨야 했기에 카이엔은 모든 일을 바이스에게 맡긴 상태였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어서 남작에게 슬쩍 물었다.
“나도 선물을 가져가야 하나?”
“으음… 그렇군요. 빈손으로 가는건…”
“다른 녀석들한테 물어봐도 좋은 대답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조언을 구하진 않았거든. 바이스 녀석이라면 화려하게 폭죽 쏴서 외딴 건물 하나 태워 버리자고 할 것 같고.”
“허허…”
“정말 그럴 것 같아서 함부로 말도 못하겠어. 으, 일단 가기로 했으니 갈 건데 나 때문에 신경쓸 일이 늘어났네. 미안해.”
“아닙니다. 왕자님이 잘 지내신다면, 전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마치고 카이엔은 방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남작은 선물로 뭘 준비해가는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다는 걸 떠올렸다.
어차피 그는 빈손으로 갈 테니 상관없으려나.
그놈도 양심이 있다면 그에게서 선물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 당당하게 몸만 가기로 결정한 카이엔은 찍찍거리는 소금이를 무시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십년만에 가는 수도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을까?
사트로누스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진 왕세자궁은 공사를 했을까, 그게 아니면 없애버렸을까.
다시는 갈 일이 없다고 생각한 곳에 가게 되니 마음이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