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프라우디에의 수련은 처음과 끝을 항상 명상으로 시작하고 마무리 지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영혼을 진정시키며 마력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라이프 베슬의 마력은 위험해서 자칫 잘못했다간 역류하거나 폭주하기 쉬운 탓이었다.
명상을 하면서 마력을 다루는 법을 몸에 익히고 습관화 시켜야 한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훈련 일지까지 쓰던 프라우디에는 매일매일 같은 훈련이 반복되니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훈련 일지를 정리하곤 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간단한 강령술을 하게 되어서 긴장되는 마음으로 연구실 한쪽 바닥에 분필로 마법진을 그리고 양초를 세워놓았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굴까 싶어 나가보니 카이엔이었다.
“너 요새 통 안 보인다길래.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 와봤어.”
“아… 마법을 배우느라 그랬어요.”
“많이 배웠어?”
“아직은 미숙해요.”
“하긴, 얼마 안 됐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래도 너무 연구실 안에만 틀어박혀있지 말고 쉬면서 해.”
“늘 저택에 틀어박혀있는 왕자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시군요.”
“너 진짜…”
옆에서 바이스가 초를 쳤다.
이젠 익숙한 광경이기에 프라우디에는 살포시 웃었다.
바이스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카이엔은 프라우디에가 웃자 멋쩍어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흑마법은 주로 어떤 걸 배우는 거야?”
“음, 꽤 종류가 많아요. 기본적인 원소 마법이랑 비슷하기도 한데 마력의 색이 좀 더 어둡고 불길한 기운을 풍기거든요.”
“난 잘 모르겠던데.”
그러고보니 글러티나가 그의 주변에 어둠의 종족이 많으니 건강을 잘 챙기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프라우디에를 봐도 그렇게 이상한 느낌이 들진 않았다. 엔베인도 마찬가지였다.
카이엔의 말에 프라우디에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바닥 위에 화아악, 하고 작은 불꽃이 하나 생겼다.
색만 검은색이지 완전한 불덩어리인 그것을 보고 카이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마법?”
“네. 가장 기본이라고 알고 있어요.”
“뜨겁긴 하네.”
살며시 손을 불꽃 근처에 가까이 가져다 대어보며 카이엔이 중얼거렸다.
“보통 흑마법사는 무덤 파고 시체를 연구한다던데, 너도 그런 게 필요하진 않아?”
“아직 전 약해서 기본기에 충실하려구요. 만약 그런 게 필요하다고 한다면 검은 숲으로 갈게요. 검은 숲에는 몬스터 뼈가 많이 묻혀있을 테니까요.”
“하긴, 그 말도 맞네. 위험하니까 갈 땐 꼭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고.”
“네. 그때 말씀드릴게요.”
활짝 웃으면서 프라우디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엔은 그가 걱정되어 찾아온 건지 이야기를 마치고 바로 돌아갔고 프라우디에는 서둘러 준비하던 마법진을 마저 완성시켰다.
다행히 촛불을 켜기 전에 카이엔이 와서 양초가 다 녹아없어지거나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붙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
연금술은 흑마법과 아예 연관이 없지 않았다.
연금술사가 만드는 골렘이나 흑마법사가 사용하는 괴물이나 비슷비슷하다는게 프라우디에의 결론이었다.
연금술에 흑마법을 접목시키면 훨씬 괴상하고 기상천외한걸 만들어낼수도 있었다.
리치왕이 알려주는 흑마법과 흑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일 텐데 그는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마치 어디선가 들은 남 이야기를 하듯 말을 꺼내곤 했다.
불러낸 악령을 가둬놓은 보석을 불빛에 비춰보면서 프라우디에가 물었다.
“이런 악령은 어디에 쓰나요?”
- 저주. 일부러 저주하기 위해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보내거나 그냥 길거리에 버려두지. 그럼 주워가는 녀석이 있을 거아냐. 욕심 부려서.
“그치만, 정말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주워갈 수도 있잖아요.”
- 흑마법사가 그딴 걸 고려할 리가 없지. 주워간 놈은 안에 든 악령의 저주를 받아서 죽고 악령은 그 영혼을 먹는다. 그렇게 성장해.
“저주를 안 받을 수는 없어요?”
- 줍자마자 팔아버린다면 괜찮겠지.
아, 그런 건가?
리치왕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프라우디에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삼아 만들어보긴 했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저주를 걸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싸구려 보석에 가둬놓은 거라 프라우디에는 망치로 보석을 내리쳤다.
가벼운 망치질 한 번에 조각난 보석에서 스르르 악령이 빠져나왔다.
자신을 가둬놓은 흑마법사에게 분노하며 달려들려고 한 악령이었지만 프라우디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악령을 움켜쥐었다.
형체가 없는 영혼이건만 프라우디에는 악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파스스, 마치 가루처럼 악령은 산산조각 났다.
- 그래. 덤비는 놈은 그렇게 처리하면 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
- 악령은 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제가 불러다놓고 쓸모가 없으니 처리하는 건 너무 미안해요.”
- 그대로 풀어놓으면 저택 사람들한테 폐다.
다시 돌려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불려온 악령이 돌아가려고 할 리 없다.
영계는 무의 공간, 아무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악령이 있을 리 없었다.
사방이 안개로 휩싸인 것만 같은 영계에 있던 영혼이 인간계로 오면 수많은 자극들이 그들을 반기고 침체된 정신은 그 빛을 거부할 수 없다, 라고 리치왕이 말했다.
마치 그곳에 가본 사람마냥.
“영혼이란 건 뭘까요. 저는 호문쿨루스인데, 저 말고 다른 호문쿨루스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요?”
- 내가 살았던 시절에도 너같은 호문쿨루스는 없었어. 아마 라이프 베슬로 인해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느낄 수 있는 걸 테지. 라이프 베슬에 담긴 게 바로 영혼이니.
“그럼 저 말고 다른 호문쿨루스는 영혼이 있을까요?”
- 어려운 문제구나.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영혼과 그것의 영속성, 자아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한 영혼에서 파생된 두 개의 자아와 비슷하면서도 이중인격 같은 것이 아니기에 어려운 문제이지만 서슴없이 제 생각을 이야기했다.
한참동안 대화를 주고받던 중 프라우디에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제가 잘못 느낀 거 아니죠?”
- 나도 느꼈다. 일단 나가봐!
리치왕의 말에 확신을 얻은 프라우디에는 급하게 연구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그들은 수많은 망령의 기운을 느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망령의 대규모 이동이라니. 누군가가 조종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많은 숫자가 떼를 지어서 움직일 리 없었다.
해질 무렵. 땅거미가 지는 와중이었다.
프라우디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지는 모습은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프라우디에의 눈에는 그 하늘을 회색으로 메울 정도로 많은 수의 악령이 보였다.
흑마법을 선택해 인위적으로 영안을 틔운 그의 눈동자에만 비치는 광경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들은 땅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오직 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어, 어쩌죠?”
- 쫓아가볼 필요는 있지만… 저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 게다가 넌 아직 약하다. 싸워서 못 이길 수도 있어.
안에 든 자가 아무리 리치왕이라고 해도 프라우디에는 흑마법사로 따지면 아직 햇병아리 수준이었다.
이 위험에 머리를 들이밀어도 되는 건가. 그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허나 이대로 가만히 놔둘 수만은 없어서 프라우디에는 카이엔을 찾아갔다. 서재에서 독서를 하고 있던 카이엔은 프라우디에가 찾아왔다는 말에 책을 덮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일단 들여보내줘.”
바이스가 문을 열어주자 프라우디에가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달려온 건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데다가 숨을 헐떡이느라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카이엔은 아무 말 없이 프라우디에가 입을 여는 걸 기다렸다. 곧 호흡을 가다듬은 프라우디에가 자신도 모르게 달려온지라 산발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말했다.
“왕자님, 그… 급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
“망령들이 떼로 몰려가는 걸 목격했어요. 일반적인 게 아니라, 꼭 누군가가 망령을 불러모으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게 가능해?”
- 가능하다고 전해라.
“그렇다고 전해주래요.”
리치왕이군. 카이엔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프라우디에가 흑마법을 배우면서 영혼을 보는 눈이 생겼기에 망령따위를 발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서재에 있던 그는 아무런 기운도 느끼지 못 했으니까.
망령의 대규모 이동이라. 카이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위험, 하겠지?”
“아마…도요?”
프라우디에의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없었다.
“하늘이 까맣게 보일 정도로 많은 숫자가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걸 보고 걱정이 되어서요…”
“그 정도면 걱정할만도 하다. 쫓아가볼 거야?”
“추적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날 수 있는 사람이 있던가…”
카이엔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자네인이 드래곤으로 변하는 건 무리일 테고 글라스가 프라우디에를 들고 나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다 생각한 끝에 카이엔이 바이스에게 말했다.
“그리델라 데려와. 당장.”
“네.”
마녀인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종종 저택 근처를 날아다니곤 했으니 충분히 뒤에 프라우디에를 태운 채 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리델라는 빗자루를 가지고 서재까지 와서 설명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돈 나한테 맡겨! 급한 거면 얼른 가자.”
“감사합니다…!”
“뭘. 나도 드디어 ‘밥값’한다 이거야!”
“넌 저번에 생활비 냈었잖아.”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럼 왕자님, 다녀올게!”
“어. 너무 멀리가진 말고 가르간트 국경 넘어가지도 말고. 거기 넘어가면 제국인데 거기 일은 그쪽에서 처리하겠지.”
“뭐야 그게.”
“국경 넘어가면 골치아프니까.”
“알았어-”
활짝 웃으며 그리델라는 프라우디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프라우디에를 뒤에 태운 그녀는 단단히 붙잡으라고 경고를 하자마자 바로 몸을 띄웠다.
두둥실 떠오른 빗자루에 탄 두 사람은 그대로 하늘을 날아갔다.
더이상 망령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프라우디에가 방향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델라는 좀 더 속도를 붙였다.
하늘을 나는 새들과 부딪치지 않으려다보니 이리저리 방향이 꺾이고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등 곡예가 따로 없었다.
땅에 떨어지면 즉사였기에 프라우디에는 눈을 질끈 감고 그리델라의 허리를 붙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으아악…”
“이대로 쭉 나아가기만 하면 돼?”
“네…!”
게슴츠레 눈을 뜬 프라우디에가 외쳤다.
그리델라가 어찌나 거칠게 빗자루를 모는지, 곧 망령 무리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델라의 눈에는 망령이 보이지 않기에 프라우디에는 망령 무리를 발견하고 속도를 낮출 것을 부탁했다.
앞서다가 저 무리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으음, 진짜 안 보이네. 난 모르겠어.”
“저한테만 보이나봐요…”
“보통 그런 망령들이 몰려있으면 거대한 마이너스 에너지가 발생해서 이상현상을 보여야 할 텐데 말야. 이것도 누군가 막고있는 거려나?”
망령 무리를 놓칠 수 없기에 그리델라는 뒤에서 프라우디에가 말하는 대로 빗자루의 속도를 낮추고 높이는 걸 반복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하긴 했지만 하늘을 메울 정도로 많은 망령이라니 차라리 그녀의 눈에 안 보이는 게 낫겠다 싶었다.
망령들은 자신들의 뒤를 누가 따라오는지도 모르고 일직선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서 시야를 확보하는 게 어려웠다.
그리델라는 마법으로 반딧불 같은 미약한 광원을 띄웠다. 주변을 두둥실 날아다니는 빛을 힐끗 보고 프라우디에는 정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은 어둠을 뚫고 정확히 망령을 주시했다.
그런데 한참을 날아가던 도중 그리델라가 입을 열었다.
“곧 국경이야.”
“네?”
“아이칸트라 제국으로 넘어가게 돼. 저기 앞이, 바로 나트폰트라 변경백령이야.”
공중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첨탑이 보였다.
프라우디에는 입술을 깨물었다. 망령들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법을 써서 막기엔, 망령의 숫자가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뛰어들 수도 없었다.
카이엔의 경고 또한 생각났다.
국경을 넘어가면 골치가 아프다.
카이엔의 입장상 가르간트 내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 적은데 외국에서 문제가 터지면 손을 쓸 수 없기에 그런 말을 했을 거다.
망령들의 무리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프라우디에는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요.”
“응. 봐, 저 앞이 국경이야.”
그리델라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높은 성벽과 경비를 서는 병사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프라우디에는 마법으로 그들의 모습을 가렸다. 발견된다면 골치아플 게 뻔했기에 그리델라도 광원을 거두었다.
“우리 되게 멀리 왔다. 그치?”
“그러게요. 제국은… 괜찮겠죠?”
“가르간트보다 세니까 괜찮을 거야! 거기 사는 사제며 마법사가 얼마나 많은데.”
소득없이 두 사람은 세자르로 돌아왔다. 저녁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이었는데 별채 앞을 서성거리던 사람들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자네인은 프라우디에가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고 슬로세이는 어딜 갔냐면서 주먹쥔 손으로 그리델라를 마구 때렸다. 어깨에 대충 외투를 걸친 채 서있던 카이엔은 돌아온 두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국경을 넘어가길래, 포기했어요.”
“그래 잘했어. 제국 일은 걔네가 알아서 하겠지.”
“혹시 제국과 사이가 나쁘신가요?”
“아니. 모르는 놈들인데.”
카이엔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 모습에 그리델라는 너무한다면서 웃음을 터뜨렸지만 카이엔은 굳건했다.
“내 할 일만 잘 하고 살면 되는 거야. 그쪽 방향엔 아이칸트라 말고 사막도 있으니까 사막으로 “몰려가는 걸 수도 있지. 그쪽 놈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운다니까.”
“그럴까요?”
“힘들 테니까 얼른 밥이나 먹고 자.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면 그때 제대로 캐보는 걸로 하자.”
네.”
“잘 가, 왕자님- 기다려줘서 고마워.”
“걱정돼서 서있던 거야.”
카이엔이 몸을 돌려 걸어가자 얌전히 뒤에 서있던 바이스역시 살짝 고개 숙여 다른 이들에게 인사하고 그 뒤를 따라갔다.
별채와 충분히 멀어진 다음에야 바이스는 카이엔을 향해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제국에서 일이 터지면 난 아무것도 못해. 프라우디에보다 능력있는 자들은 얼마든지 있을테니 잘 해결하겠지.”
“흠. 알겠습니다.”
“그래도 금방 돌아와서 다행이야. 밤 새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계속 서있게 두지 않았을 겁니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