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밝은 조명에 눈이 부셨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했다.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러워서 슬로세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잘 되지 않아서 팔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간들 중에 이종족을 잡아가 노예로 판다는 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나 바다까지 올 일은 없을 거라며 자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놀았다. 그렇게 그리델라를 만났고 밖으로 나오는 게 더욱 즐거워졌다.
작은 바위섬 위에 올라 머리를 빗거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이 인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한번 손을 흔들어주고 물 속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아쉬워하며 탄식을 흘렸다.
여느때와 다를 것 없이 그녀는 자주 가는 바위의 위에 올라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려고 했었다.
‘엄마아…’
잡혀오면서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지만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수조 안으로 들어가며 진주가 되어 바닥에 가라앉았다. 옆에서 더욱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줄 수 있을 리 없다. 구하러 올 수 있을 리도 없다.
두렵기만 한 미래에 슬로세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의 틈에 다른 소음이 더해졌다.
더더욱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어…?”
아까와는 다른 소리. 비명인 것만 같았다.
슬로세이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밝았던 주변이 안개에 감싸여있었다.
의아해하는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수조를 흔들었다.
“슬로세이!”
“그, 그리-”
슬로세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냅다 그녀를 안아든 그리델라는 바로 빗자루 위에 올라탔고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시원하게 구멍이 뚫렸다.
커다란 구멍을 통해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공기가 통할 텐데 안개는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묻기도 전에 그리델라는 슬로세이를 안고 구멍을 통해 밖으로 탈출했다.
크고 작은,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경매장 안을 가득 채웠다.
인어가 모습을 드러낸 즉시, 사회자의 온갖 미사여구가 붙은 소개문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프라우디에가 손가락을 튕겼다.
곳곳에 뿌려놨던 연막탄이 일제히 점화되어 연기를 뿜어댔다.
프라우디에는 경매장 안에 들어오자마자 그에게 배정된 좌석이 위쪽에 속한다는 이점을 이용해 콩알만큼이나 작은 연막탄을 곳곳에 뿌려두었다.
사람들의 발에 채이면서 퍼졌을 그것에서 일제히 연기가 흘러나왔다.
마치 짙은 안개가 깔린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프라우디에의 눈은 안개를 뚫고 그 너머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델라가 무사히 무대에 접근한 것을 확인하고 그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천장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렸다.
무사히 그리델라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프라우디에는 손을 움직였다.
마력을 감지하는 마도구가 존재했지만 프라우디에는 섬세하게 마력을 조종했다. 다른 마법과는 다른, 흑마법만의 특징으로 인해 좀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머릿속에서 리치왕이 지시하는 소리가 쉬지않고 이어졌다.
- 그래. 그런 식으로 조종하는 거다. 역시 실전이 좋군.
“으음…”
“프라우디에 님, 괜찮으십니까?”
“네. 왕자님은 잘 빠져나가셨는지 모르겠네요.”
“잘 나가셨을 겁니다.”
안개에 휩싸인 아랫층과는 달리 윗층은 그리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몇 번의 폭발이 이어졌고 그제야 프라우디에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희도 이제 나가요.”
“네.”
프라우디에는 몸을 축 늘어뜨렸고 바이스가 그를 부축했다.
‘폭발에 기절한 주인과 그를 부축하는 시종’을 연기하기 위함이었다.
대낮까진 아닌 해가 저물지 않은 시간. 뜬금없이 극장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이기에 좋았다. 누가 신고라도 한다면 금상첨화였다.
바깥을 지키던 경매장 관련인들은 안에서 벌어진 사고에 도망쳐나오는 사람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다들 한가락 하는 귀족이니 섣불리 길을 막아설 수 없었던 것이다. 우르르 입구로 빠져나온 사람들은 다들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뒤에는 어색해하면서 서로 제 갈길로 갔다.
가면 속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뻔했다.
그 사이에 끼어있던 카이엔과 에빌은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비틀거리면서 걸어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꼴이라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온 길이 기억나지 않아서 대충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누군가가 옷을 휙 잡아당겼다. 그리델라였다.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근처의 빈 건물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에휴, 둘 다 뭐하고 있었던 거야?”
“길이 기억 안 나서.”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도 여기로 오는 거야?”
“응. 자네인은 주변 좀 둘러보고 오겠다면서 갔고 당신 시종이랑 꼬맹이는 아직.”
“꼬맹이…”
물론 프라우디에가 키도 작고 체격도 작긴 하지만 작은 걸로 따지면 그리델라의 친구인 인어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델라가 입고 있던 망토를 걸친 인어는 카이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머리카락은 정말로 선명한 물색이었으며 눈동자는 청녹색, 인간은 귀가 달려있을 위치에 지느러미같은 게 붙어있었다.
“…왕자야?”
“응? 어… 그런데 왜?”
“신기하다. 인간 왕자.”
배시시 웃으면서 슬로세이는 그리델라의 뒤로 숨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웃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카이엔도 살짝 웃어보였다.
이십분쯤 지나자 자네인이 돌아왔고 그리델라가 몸을 일으켰다.
“슬로세이는 이거. 변신 물약.”
“엥?”
“일단 먹어.”
“뭐야 그게.”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슬로세이는 그리델라가 내민 물약을 먹었다. 그러자 물빛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갈색이 되었고 귀의 지느러미가 모습을 감췄다.
완전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 된 것이다. 다리역시 인간처럼 두 다리가 있었는데 자네인이 슬로세이를 업으며 말했다.
“나갑시다. 바이스 씨와 프라우디에는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응.”
아무래도 바이스는 그와 에빌을 뺀 나머지에게만 작전을 알려준 모양이다.
괜히 왔나 싶어서 카이엔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오려고 하지 않았다면 바이스도 오지 않았을 테니, 역시 그가 온게 정답이었다는 결론을 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그리델라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나머지는 그 뒤를 따라갔다.
마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와 마차를 몰고 이동한 다음에야 바이스, 프라우디에와 만날 수 있었다.
“오셨군요.”
“많이 기다렸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기껏해야 반나절 정도 떨어져있었지만 바이스는 카이엔의 손을 꼭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걱정도 태산인 시종을 보며 카이엔은 빨리 가자며 그 손을 떼어냈다.
냉정한 반응에도 바이스는 아랑곳하지않고 미소를 지었다.
“어서 돌아갑시다. 오늘은 밤새 마차를 몰아야겠군요.”
마차는 바이스와 에빌이 하나씩 맡아서 몰기로 했다.
바이스가 모는 마차에 카이엔과 프라우디에, 자네인이 함께 탔고 에빌이 모는 마차에 그리델라와 슬로세이가 타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끼면 어색할 테니 함께 있으란 배려였다.
물약의 효과가 사라져 다시 인어의 모습으로 돌아온 슬로세이는 가만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물 밖에서 인어는 인간처럼 두 다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걸 모르기에 인간들은 인어인 그녀를 수조에 집어넣었던 거였다.
자고 있으면 새벽에 잠시 멈춰서 쉬었다 가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슬로세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만큼, 오늘 있었던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이게 그녀가 꿈을 꾸고있는 건가 의심될 정도로.
‘아니지.’
이건 현실이었다. 슬로세이는 마차 좌석에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그리델라를 보았다. 많이 지친 모양인지 그녀는 이미 잠들어있었다.
“고마워.”
입을 열어 슬로세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고마워, 그리델라.”
나 때문에.
뒷말을 삼키고 슬로세이도 마차 좌석에 길게 누웠다.
덜컹거리는 게 많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밤이 깊으면 잠시 멈출 거라고 했으니까. 그때 쯤이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들이 통성명을 한 건 다음 날이 되어서였다.
카이엔은 슬로세이가 멀쩡히 인간같은 다리를 가지고 있는 걸 보고 순간 그의 두 눈을 의심했지만 이어진 설명에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에 대해 잘 모르니 오해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카이엔이 물었다.
“넌 인어니까 집에 돌아가야 하잖아. 집이 어디야?”
“갈레투아. 그쪽 바다로 가면 돼.”
슬로세이를 대신해 그리델라가 대답했다.
가르간트에서 바다와 맞닿아있는 영지는 두 곳 뿐이었기에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 거기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깜깜했지만 그리델라와 슬로세이 둘만 보내는 건 너무 위험했다.
다들 같은 생각인지 카이엔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카이엔은 또다시 계획에도 없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북부 회의에 참석하고 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더스크라이즈에 돌아온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또다시 밖으로 나돌아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카이엔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갈레투아로 가는 도중에 쓸데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더스크라이즈로 가는 길엔 심심치않게 도적이나 산적놈들과 마주쳤었는데 이번엔 이상할 정도로 평탄하게 지나갔다.
쾌적한 여행에 카이엔의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
무사히 갈레투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바다로 향했다.
바다까지 가서 작별인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머뭇거리던 슬로세이가 카이엔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 같이 가줄래? 보고해야 해서…”
“보고?”
“무사히 돌아왔다고… 인간인 네 도움을 받았다고.”
“허어?”
“꼭 왕자님이 가야 하는 겁니까?”
“얼굴을 알아야 은혜를 갚지.”
슬로세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꼭 은혜를 갚을 거라며 열정에 불타는 그녀를 보고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나 수영 못해.”
“내가 도와줄게. 그리구 그리델라도 같이 갈 거야. 내 친구니까.”
“경매장 사회자가 말했던 것처럼 머리카락이라도 두르게 하려고?”
“다른 거 있어.”
“왕자님 혼자만 보낼 수 없습니다. 위험해요.”
바이스가 재빨리 반대했다.
위험한 바닷속으로 카이엔 혼자만 보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슬로세이와 그리델라가 함께 가지만 역시 위험하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모습은 익숙했기에 카이엔이 바이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얼른 다녀올게.”
“하지만-”
“괜찮다잖아. 그리고 나에 대해 아니까 쉽게 해칠 리도 없을 테고.”
바이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끝까지 카이엔의 뜻에 반대할 수는 없었다.
외투와 재킷 등을 벗고 간단한 셔츠에 바지 차림을 한 채로 카이엔은 바닷가에 섰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바다를 보는 게 난생처음이었다.
강에서도 수영해본 적이 없는데 바다는 훨씬 높은 난관이었다. 긴장해 마른침을 삼키는 그에게 슬로세이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카이엔은 한 걸음 한 걸음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모래의 촉감도 차가운 바닷물도 너무 긴장한 탓에 그 감각이 훨씬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그의 가슴께까지 물이 차오를 깊이가 되자 슬로세이는 물에 완전히 잠겼어야 할 텐데 얼굴만 동동 떠있었다. 아무래도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 모양이었다.
잡고 있는 카이엔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녀가 말했다.
“자, 이제 잠수해. 머리까지 완전히 들어가.”
“뭣…”
“괜찮으니까!”
“으으…”
괜히 들어왔나.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델라는 도와줄 생각이 없는지 좀 더 깊은 물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슬로세이의 재촉에 카이엔은 무릎을 굽히고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꼭 잡고있는 손을 잡아끌면서 슬로세이가 그를 더욱 깊은 물 속으로 끌고갔다.
있는힘껏 숨을 참았지만 곧 한계가 다가왔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카이엔의 코와 입에서 공기방울이 새어나왔다.
거의 한계가 다가오는데 물 속에서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걸까.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것만 같아 카이엔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고 그나마 남아있던 공기들도 모조리 빠져나갔다.
스윽.
무언가가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입을 막는 감촉이 느껴졌지만 곧 떨어졌고 슬로세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 떠도 돼.”
그 목소리에 카이엔은 눈을 떴다.
슬로세이의 긴 머리카락은 바닷속에서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지 방실방실 웃고 있는 모습에 카이엔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슨… 어?”
“숨, 쉬어지지?”
“신기하네. 이럴거면 다른 녀석들도 데려왔으면 좋잖아.”
“많이 못 쓰는 거야!”
단호하게 대답하며 슬로세이는 카이엔의 팔을 한번 꼭 끌어안더니만 다시 손을 잡았다.
“이쪽이야.”
“그리델라는?”
“여기. 난 오래 못 버티니까 얼른 다녀오자.”
“응!”
숨을 쉴 수 있으니 바다속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물 속에서 눈을 떴음에도 눈이 따갑지 않았고 슬로세이가 앞에서 잡아당기고 있어서 헤엄치는 데에도 무리가 없었다.
슬로세이는 깊은 바닷속으로 그와 그리델라를 안내했다. 바닷속의 해초와 물고기, 불가사리, 조개 등.
바닷속을 보는 건 난생처음이라 카이엔은 슬로세이에게 이끌려가면서 주변을 구경했다.
개중에 책으로만 봤던 말미잘을 발견하고 그는 정말 놀랐다. 정말로, 릴리시아와 똑같이 생겼다!
‘본래 알라우네는 그렇게 안 생겼는데.’
릴리시아는 왜 육지 몬스터면서 해양 생물인 말미잘을 닮았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때 슬로세이가 헤엄치는 것을 멈추더니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나 왔어-! 엄마, 아빠아-!”
“엥?”
그렇게 외치곤 슬로세이는 카이엔의 손을 더 꽉 붙잡더니 아까보다 빠른 속도로 헤엄을 치는 게 아닌가.
그 속도에 카이엔은 깜짝 놀랐다. 이 작은 체구의 인어가 이렇게 빨리 헤엄을 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어의 왕국은 바닷속에 존재했다. 거대한 조개껍데기와 돌, 산호로 만들어진 궁전은 인간의 궁전과 다를 것 없이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은 슬로세이가 인간 두 명을 데리고 온 걸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도 날카로운 조개 창을 거두었다.
헤엄을 쳐서 쉽게 안으로 들어온 슬로세이는 카이엔을 중앙홀과 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음, 음! 괜찮아! 괜찮을 거야!”
“뭐가…”
슬슬 불안해져서 카이엔이 물었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바이스가 많이 걱정할 텐데, 벌써 두 시간은 넘게 헤엄친 것 같았다.
바닷속 구경을 하는 건 재밌었지만 인어의 궁전이라니. 여기서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 표정에 슬로세이는 괜찮다며 카이엔의 양손을 붙잡고 붕붕 흔들었다.
“나만 믿어!”
“못 믿겠는데…”
“괜찮아!”
자기만 믿으라며 가슴을 탕탕 치곤 슬로세이는 옥좌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그 안에 있던 모든 인어는 갑자기 문을 열리자 놀란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당당하게 들어온 슬로세이와는 달리 그녀에게 손이 붙잡혀서 반쯤 끌려오다시피 하는 카이엔, 마찬가지로 성까지 온건 처음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리델라가 순서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중앙의 옥좌에 앉아있던 인어왕이 떨어뜨린 삼지창이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슬로세이!”
“아빠, 나 왔어!”
“너, 말도 없이 어딜 다녀온 거야! 걱정했잖아!”
왕이여도 딸을 둔 아버지여서인지 말투에 위엄이 없었다.
신하들이 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않고 그는 헤엄쳐서 슬로세이의 바로 앞까지 왔다. 어디 다친데는 없는지 요모조모 살피던 그는 귀여운 딸이 외간남자를 붙잡고 있는 걸 보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지느러미도 없고 옷도 입었고, 두 다리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리델라도 뒤에 있었지만 인어왕은 ‘인간 남자’인 카이엔에게만 시선을 집중했다. 그 눈빛에 카이엔은 곧 자기몸에 불이라도 붙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담감을 느꼈다.
분위기를 깬 건 슬로세이였다. 그녀는 아버지인 인어왕의 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아빠, 그거 아냐, 정신차려.”
“이, 인정 못한다…”
“응?”
“결혼같은 건 인정 못한다고-!”
카이엔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