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글라스에게 그리델라의 방문 소식을 들은 뒤, 카이엔은 하루하루 그녀를 기다렸다.
대놓고 낮에 찾아오진 않을 테니 밤에 올 것이라 여겨 릴리시아에게 혹시 누가 밤에 침입해도 함부로 잡아먹지 말라고 단단히 언급했다.
릴리시아는 의아해했지만 카이엔이 계속 설명하니 알겠다면서 촉수를 흔들었다.
에디트 남작령에서 돌아온 지 5일째.
한밤중에 카이엔의 방 창문이 스르르 열리고 그 안을 통해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들어온 침입자였지만, 방에 미리 잠복해있던 자가 바로 달려들어 그 자를 제압했다.
“우왓!”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면서 그리델라는 바닥에 넘어졌다. 그런 그녀를 붙잡은 건 페이리였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거미의 모습을 한 아라크네인 페이리를 보고 그리델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자님! 왔어요!”
“어… 시끄러워서 깼어…”
자다 깬 카이엔은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손가락으로 빗어넘기면서 몸을 일으켰다.
카이엔이 일어나자 페이리는 그리델라를 붙잡고 있던 팔을 풀었다.
계속 잡혀있었다면 '날 속이다니!' 라는 말을 내뱉으려던 그리델라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치마를 탁탁 털면서 카이엔을 쳐다봤다.
“사정은 들었지?”
“어.”
“당신이 날 도와줄 수 있어?”
“경매장에 대해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정보는 없었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시간이 없어. 그새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상등품이라며 손대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르지만 위험한 건 마찬가지야.”
꽉 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카이엔이 손짓하자 페이리가 주변의 촛불에 불을 붙여주었다.
할 일을 마친 그녀는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카이엔의 방에서 나왔고 남은 건 카이엔과 그리델라 둘뿐이었다.
글라스의 말 하나만을 믿고 여기까지 온 그리델라를 쳐다보며 카이엔이 말했다.
“널 도와주긴할거야. 하지만 아직은 일러.”
“그치만-”
“너도 방법이 없는건 똑같잖아. 다행히 그 비밀 경매장에 귀족이나 부자만이 출입할 수 있다면 내 주변인들이 도움이 될 거야. 다들 귀족이니 이름쯤은 빌려써도 되겠지. 어차피 정체 드러내길 꺼려할 테니까 가명을 쓸 테고.”
요컨대, 소개장이라든가 귀족임을 알리는 증거만 있다면 된다는 말이다.
명의를 빌려쓰는 것에 대해선 동의가 필요하니 날이 밝으면 에빌과 프라우디에에게 말을 꺼내봐야 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그리델라를 그의 방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카이엔이 방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밖에 페이리 있을 테니까, 오늘은 걔 방에서 자고 아침에 보자. 페이리가 안내해줄 거야.”
“어… 당신, 나 믿어?”
“믿어야지. 바보도 아니고… 인간들 피해다니는 마녀가 대놓고 괴도랍시고 모습을 드러낼 정도잖아. 그만큼 너한테는 중요한 친구 아니야?”
“맞아… 고마워. 아침에 보자.”
“나갈 때 촛불이나 꺼줘.”
“그거야 간단하지.”
그리델라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촛불의 불이 훅 꺼졌다.
파티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모든 불을 껐을지 몰랐다.
카이엔은 다시 침대에 누웠고 그리델라는 카이엔이 아무렇지도 않게 눕는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세상에 마녀를 앞에 두고 저렇게 평온한 자세를 취하는 왕자라니.
카이엔의 말대로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페이리는 그리델라를 보자 바로 인사를 했다.
“아깐 무작정 덮쳐서 미안해요. 일단 제압하고자 해서…”
“아냐. 따지고 보면 밤에 창문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두 사람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함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아침이 될 때까진 시간이 있으니, 먼 곳까지 날아온 그리델라에게도 휴식이 필요한 참이었다.
카이엔과의 대화는 점심 무렵에서야 이루어졌다.
글라스가 응접실로 올 것을 전달했고 그리델라는 그를 따라가서 카이엔을 만나게 되었다.
방 안에는 카이엔뿐만이 아니라 파티장에 함께 있었던 시종과 바깥에 있었던 기사, 그리고 모르는 얼굴이 두 명 더 있었다.
카이엔이 빈자리를 권하자 그리델라는 소파에 앉았다. 그녀가 앉자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또 이상한 일에 휘말려버린 것 같긴 한데. 일이 생겼어.”
“무슨 일인가요?”
프라우디에가 동그란 눈으로 카이엔을 바라보며 물었다.
북부 모임에 다녀온 카이엔은 묘하게 지쳐보였는데 이것 때문에 그런 건가, 궁금해졌다.
똘망똘망한 얼굴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프라우디에를 한 번 쳐다보고 카이엔은 그리델라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밀 경매장이란 말에 프라우디에는 깜짝 놀랐지만 자네인은 들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 티아마티스 님께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과거 그런 장소에 이따금씩 하위 개체의 독룡들이 올라와 회수하셨다고 하셨어요.”
“아… 많이 만드셨었나보네.”
“오래전에 심심해서 밭에 씨를 뿌리듯이 아무 데나 피를 흘려서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할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오래 산 드래곤이 심심풀이로 저지른 일에 대한 건 듣고 싶지 않아서 카이엔은 손을 저었다.
“아무튼,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데 귀족만 들어갈 수 있나봐. 그런 의미에서 에빌.”
“응?”
“네 이름 좀 팔자.”
“너무해!”
“그런 데에 가려면 숨겨진 길같은 게 있지 않나요? 암구호라든가.”
“추천장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제가 찾아낸 바에 따르면 입장은 당사자와 시종 한 명만 동행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제 수완으로 어떻게, 입장권은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라이오트 백작가와 독스 백작가를 팔면 될까요?”
“판다니까 되게 어감이 이상한데요…”
“저도 티아마티스 님께 위조 신분을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자네인도 거들었다. 아마 납치된 인어가 신경쓰인 모양이다.
잘 모르는 타인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에 그리델라는 살짝 얼이 빠졌다.
지금까지 워낙 이기적인 인간을 많이 봐서일까. 저들이 이상해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글라스가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실은 인간이 적어서…”
“엥?”
“나중에 알게될 거예요.”
에빌과 카이엔이 한 팀이 되고 프라우디에의 옆에 바이스가 붙기로 했다. 자네인은 위조 신분을 얻어내고 나면 시종 역으로 그리델라가 함께하기로 결정되었다.
보통 그런 경매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서 아직 시작까진 시간이 꽤 남아있었고 바이스가 초대장을 획득하는 즉시 떠나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카이엔을 에빌과 함께 하게 하는 것에 바이스는 굉장히 불안해하면서 몇 번이고 에빌에게 카이엔의 안전이 중요하다며 신신당부했다.
물론 경매장에서 어떻게 사고를 칠지 계획을 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냥 다 부수면 안 되나?”
마음같아선 그런 곳 따윈 폭파시키고 싶은 카이엔이었지만 인어 같은 이종족이 많다면 그들도 폭발에 휘말려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높아서 그 건은 무산되었다.
몰래 인어만 빼내는 방법도 있었다. 경매중엔 많은 이들이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 테니 도망치는 게 쉽지 않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가장 안전한 건 그들이 경매에 참여해서 그리델라의 인어친구를 구출해내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자금이 넉넉치 않았다.
수십 개의 안건이 떠오르고 무산되는 와중에 초대장이 도착했고 일행은 각자 마차에 나눠타서 목적지인 남부지역으로 향했다.
남부의 데네브라 자작령에 속한 곳에 경매장이 위치해있었다. 세자르에선 꽤 멀었지만 더스크라이즈보단 가까웠으므로 카이엔의 멀미도 이전보단 약했다.
아마, 그 경매장은 데네브라 자작보다 높은 귀족이 실질적인 지배자일거라며 바이스가 알려줬는데 가르간트에 귀족이 발에 채이는 돌멩이만큼 많다면서 카이엔이 한숨을 쉬자 바이스는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았다.
“많긴하죠. 하지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장 고귀한 분은 왕자님이시니까요.”
“너한테나 고귀하겠지.”
일행인 것을 들키지 않게 그들은 시간의 차이를 두고 두 개의 마차를 이용해 데네브라 자작령에 들어왔다. 비밀 경매장과 거리가 있는 한 여관에 마차를 내려놓고 방을 잡아 바깥에서 합류했다.
경매장으로 가는 길이 따로 있었기에 몸을 가리는 넉넉한 사이즈의 망토와 가면으로 얼굴을 감추고 건물 사이의 길을 지나갔다.
바이스의 정보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하며 카이엔은 그 뒤를 따라갔다.
안에 들어가게 되면 떨어져서 움직여야겠지만 그와 에빌의 전투력을 배려해 바이스는 그들에겐 아무것도 하지말고 구경만 하라고 했다.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 가다보니 커다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엔, 연극을 한다는군요.”
바이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극장으로 위장했지만 주기적으로 비밀 경매장으로 쓰는 건물이란 말이었다.
입구에는 가면을 쓴 남자 두 명이 문을 지키듯이 서있었다. 보고있으라면서, 바이스가 프라우디에와 함께 먼저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초대장을 내미니 그 정도로 신원확인이 된 건지 바로 통과시켜주었다.
앞서나간 두 사람이 무사히 안으로 들어가니 그 다음에는 카이엔과 에빌이, 마지막으로 자네인과 그리델라가 초대장을 제시한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꽤나 평범한 구조였다.
애초에 평소에는 극장으로 쓰던 곳이라 연극이며 공연을 하던 곳이었다. 이런곳을 경매장으로 쓸 생각을 하는 놈이 특이한 거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안내원인 듯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초대장을 확인하고, 그들은 손님들을 경매장으로 안내했다.
무슨 기준으로 좌석을 나눠놓은건진 모르겠지만 바이스가 조치를 잘 해놨던 건지 다닥다닥 붙은 일반석이 아니라 커튼으로 막아놓은 개인 좌석으로 안내되었다.
대놓고 나서는 건 바이스와 자네인, 그리델라가 할 일이라 카이엔과 에빌은 경매를 잘 지켜보기로 했다.
프라우디에가 연금술로 만들어낸 물약과 위력이 약한 폭약, 그리델라의 마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기에 카이엔이 나설만한 일은 없었다.
온김에 여기서 무엇을 경매하는지, 이런데에 관심가질 사람은 없는지 정도를 파악하기로 하고 카이엔은 정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만, 비밀 경매장이기에 곳곳에 마법을 감지하는 마도구가 즐비해있었다. 자네인의 옆에 서있던 그리델라가 그것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마녀에겐 안 통해. 인간 마법사와는 마력구조가 조금 다르거든.”
“다행이네.”
프라우디에의 물약은 연금술로 만든 거라 마법이 아니니 들킬 일은 없었다.
꽤 허술하게 생긴 공간이었지만 미리 내부 지도를 입수한 바이스는 지하에 거대한 공간이 숨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카이엔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어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미 몇 가지 처리를 해놓기도 했었고. 카이엔은 꿈에도 모를 테지만.
‘애초에 인어 하나 빼내는 거라고 해도 위험해.’
게다가 카이엔이 직접 오기까지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좋지만 인어같은 이종족은 상당히 비싼 값에 거래가 되니 카이엔의 금고가 텅 빌 가능성이 높았다.
또다시 괜한 일에 휩싸여버린 카이엔의 신세에 헛웃음만 났다. 옆에 있던 프라우디에가 걱정스런 눈으로 그런 바이스를 보며 물었다.
“정말 제 옆에 있어도 되시는 거예요? 왕자님이 걱정되는데…”
“제가 여기있는 게 낫습니다. 프라우디에 님은 집중해주세요.”
“네.”
아직 경매가 시작되기 전이다.
그들이 행동을 개시하는 건 인어가 모습을 드러낸 후였다.
얼마 동안 기다렸을까. 좌석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런 데에 온다는 걸 숨길 거면 애초에 오질 말든가. 카이엔은 유심히 아래쪽의 좌석을 살폈지만 다들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사회자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평소엔 배우를 비추던 조명들은 모두 사회자와 무대를 향해 빛을 쏟아냈다.
그 화려한 불빛을 정통으로 맞으면서 사회자가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자,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바람잡이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귀한 보석, 골동품이 줄지어 경매장의 무대 위로 나타났다.
처음엔 단순한 물건들을 내보내고 귀하고 수상한 물건들은 후반에야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에 관심이 없는 카이엔은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 인어는 언제 나오려나?”
“아마 늦게 나오지 않을까? 비밀 경매답게 수상한 물건들도 팔겠지만 불법적인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테니.”
“지루하네.”
무대에선 한창 사회자가 금서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금지된 마법, 연금술, 영생, 악마라는 단어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관심이 없는 카이엔은 하품을 하면서 사람들이 손을 드는 모습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리치왕은 리치니까 흑마법을 쓸 텐데, 저런 데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 시각 프라우디에는 무대 위에 나타난 책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좌석 옆의 오페라 글래스까지 이용해 관찰하던 프라우디에는 곧 손에 든 것을 내려놓았다.
“저에게는 필요없어요.”
“그런가요?”
“리치왕도, 필요없대요.”
- 그런거 없어도 내가 잘 가르칠 수 있다.
프라우디에는 리치왕의 말에 살포시 웃으면서 가격이 적힌 팻말을 쉴 새 없이 드는 아래쪽 좌석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왜 저 책을 원하는 걸까? 저들 중에 흑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서라 불리는 서적을 원한다는 건 괴짜거나 수집욕구가 대단한 부류일 터. 미묘한 표정으로 프라우디에는 좌석에 몸을 기댔다.
혼자 앉아있으려니 바이스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바이스는 신경쓰지 말라고만 말했다.
금서 다음엔 저주받은 물건이 나타났다. 정말 저주가 걸려있다며 프라우디에가 놀라자 바이스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프라우디에 님의 흑마법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으음… 여기엔 강한 마법사가 없어서, 그래도 소란을 피울 정도는 돼요.”
“다행이군요. 작전의 중심은 프라우디에 님이시니까요.”
이런 곳에 흑마법사가 나타나면 다들 피해는 입을지언정 자신들의 부정이 밝혀질까 두려워 신고조차 제대로 못하리라.
다른 이들에겐 연금술로 만든 물약을 쓴다고만 했지만 바이스는 흑마법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이용하는 게 나았다.
경매에 오르는 물건은 이제 몬스터로 넘어갔다. 거대 몬스터의 가죽과 이빨, 발톱, 박제… 박제가 나타나자 카이엔은 인상을 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살아있는 몬스터가 없다는 점이었다.
드래곤의 비늘이라는 게 나타나자 자네인은 한숨을 쉬었다.
“이 지상에 남은 드래곤은 오로지 티아마티스 님 뿐입니다. 저건 가짜군요.”
“와, 드래곤! 나 드래곤 본 적 없는데.”
“독룡의 가죽도 아닌 것을… 사기군요.”
자네인은 살짝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은 드래곤이란 말에 환호하고 있으니. 티아마티스가 봤다면 괘씸하다면서 싸그리 밟아죽여도 시원찮을 것들이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가 다가왔다.
사회자는 두 시간도 넘게 떠들어댔지만 아직도 멀쩡한 목으로 외쳤다.
“자, 그럼 이번의 특별 상품을 소개합니다! 저 먼 바다 속, 인어의 전설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무려 인어, 그것도 박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어입니다! 인어의 머리카락으로 옷감을 짜면 아무리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물에 뜰 수 있고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되며 인어의 피는 불로불사의 영약이라고도 불리죠. 저희가 이번에 정말로, 귀한 상품을 준비했습니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카이엔은 긴장한 채 살짝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사회자의 손짓과 함께 무대 위로 거대한 수조가 손잡이 달린 짐차에 실려나왔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틀림없는 인어였다.
물빛의 곱슬머리를 가진 인어는 수조에 담긴 채 밧줄로 손이 묶여있었다. 자신에게 향한 수많은 시선에 몸을 벌벌 떨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보고 카이엔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델라가 친구라고 해서, 그는 그 친구가 그리델라와 마찬가지로 성인인 인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수조 안에 들어있는 인어는 너무나도 어린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