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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31화 (32/219)

-31화

세자르 남작을 맞이하고 안내하고 돌아온 하인은 집사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집사는 주인은 에디트 남작에게 현관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에디트 남작은 펄쩍 뛸 정도로 놀랐다.

“아이고, 아이고! 왜 하필 내가 회의 주체일 때 이런 일이…”

그는 머리를 붙잡고 탄식을 흘렸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세자르 남작이 무슨 영문에서인지 쫓겨난 왕자를 데리고 회의에 참석했다.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데려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카이엔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시방석 위에 앉은 것처럼 답답했다.

만약에 그 왕자가, 더 이상은 어린애가 아닌 왕자가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상상만해도 난감했다.

물론 변명의 여지는 있었고 왕자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니었지만 양심의 가책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다른 귀족들이 깜짝 놀랄 걸 생각하니 그건 좀 재밌을 것 같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있을 사교파티였다.

나이가 있는 귀족들은 모두 카이엔에 대해. 그 비극을 겪은 왕자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젊은 놈들이 문제였다.

만약 거기서 어떤 귀족의 자식이 카이엔에게 시비라도 걸었다간…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쳤다.

현 국왕은 카이엔을 없는 사람 취급했지만 만약 그가 모욕이라도 당했다간 왕족에 대한 괘씸죄로 처벌할 게 뻔했다.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 속은 모르는 일이다. 작은 핑곗거리를 잡아서 뭘 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한참을 끙끙대던 에디트 남작은 즉시 집사에게 명령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왕자님이 우선이다! 그러니 필요하시다고 하는 게 있다면 빠르게 준비해주고 무슨 문제가 있을시 내게 말하도록.”

“네.”

집사는 에디트 남작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즉시 대답했다.

그 역시 오랫동안 남작의 곁에서 일했던지라, 쫓겨난 왕자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고 쫓겨났다고 해도 왕족은 왕족. 서투르게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디트 남작은 회의 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 끙끙거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다섯 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는 급하게 집사를 대동해 회의실로 향했다.

이미 와있던 몇 명이 눈치를 주었지만 다행히 세자르 남작과 왕자가 오지 않은지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오셨군요…”

“자네가 제일 먼저 와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네.”

“아직 안 온 사람도 있고.”

“그나저나 땀을 왜 이렇게 흘려? 어디 아픈가?”

“아닙니다. 허허허…”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다들 자식과 함께 이곳에 오긴 했지만 회의실에는 자식들을 떼어놓고 혼자만 들어왔다. 빈 좌석의 수를 세어보던 주엘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의자가 하나 더 있는데? 누가 오나?”

“으음… 오시면 알 겁니다.”

“그래?”

“그나저나 변경백 대리도 그렇고 세자르 남작도 그렇고 늦는구만.”

회의는 다섯시 이십분부터였다. 이제 막 오분이 지난 참이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인사를 했다. 나트폰트라 변경백의 대리인인 듯한 남자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아직 안 온 사람도 있으니…”

그 말에 변경백의 대리인은 숨을 고르며 빈 의자에 앉았다. 남은 의자는 두 명. 대체 누가 하나 더 마련된 의자에 앉는걸까 그들은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그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결되었다. 변경백의 대리인 남자가 의자에 앉기가 무섭게 또다시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늦게와서 죄송합니다. 왕자님, 이쪽에 앉으시지요.”

“어.”

“와,왕자님?!”

“카이엔 왕자님!”

세자르 남작이 입에 담은 ‘왕자’라는 말, 그리고 선왕과 닮은 외모에 검은 머리카락.

앉아있던 귀족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 모습에 카이엔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뭐? 왜? 앉아있지 않고 왜 일어서?”

“그, 그게…”

“참으로 잘 자라셨군요, 왕자님.”

“세자르 남작이 잘 보살펴준 덕분이지.”

“아닙니다.”

“아니긴 무슨… 내가 앉아야 다들 앉을 건가? 쓸데없이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카이엔이 빈 의자에 앉았다.

그 옆에 세자르 남작이 앉고 나서야 다른 귀족들도 느릿느릿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무릎 위에 올린 손이며 테이블에 가려진 다리는 쉴새없이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세자르 남작이 왕자를 데려온 건지 몰라 다들 불안해하고 있었다.

바보라도 알 수 있는 그 모습에 카이엔이 한숨을 쉬었다. 그것만으로도 다들 움찔 몸을 떨었다.

“너희, 나한테 죄 졌어?”

“그, 그것이…”

“아니잖아. 너희가 힘이 없다는 건 나도 안다. 대뜸 나 데려가겠다고 자원한 세자르 남작이 이상한 거였어.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인상 풀어라. 회의하러 온 거 아니었어? 나도 검은 숲엔 관심이 많아서 온 거니까 너희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말이나 좀 해봐라.”

라면서 카이엔은 척하고 팔짱을 꼈다.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태도에 북부 귀족들은 진땀을 흘렸다. 오늘 이 회의의 장소의 주체인 에디트 남작 역시 잔뜩 긴장한 채 회의를 이어나갔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자료를 모두에게 나눠주면서 최근 검은 숲 몬스터의 동향과 상태, 새롭게 등장한 몬스터의 유무와 사냥꾼과 용병, 토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이엔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조금 더듬었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카이엔도 흥미롭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회의실에 모인 귀족들은 모두 검은 숲이라는 미개척지를 고작 방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 위험한 곳을 소홀히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에디트 남작의 발표가 끝나자 반시계 방향으로 발표 순서가 돌아갔다. 시계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그 다음이 카이엔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 옆자리의 에피넬 백작은 다음 차례란 것이 긴장했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여겼는지 두어번 헛기침을 한 후 같은 발표를 시작했다.

이중에서 가장 긴장한 건 다름아닌 나트폰트라 변경백령의 대리인으로 온 그의 보좌관이었다.

평소에도 이런 자리에 심심찮게 불려나가긴 했지만 이곳에는 무려 왕자가 있었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며 그는 바짝 말라가는 목에 억지로 침을 삼켜넘겼다.

검은 숲은 굉장히 광활한 땅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었다.

세자르 영지 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인접해있는 영지의 수는 꽤 많았고 그로 인해 각 지역마다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달랐다.

깊숙한 곳까지 탐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너무 위험해서 아직까지 인간들은 그 너머로 나아가지 못했다.

카이엔은 아무 말없이 귀족들의 발표를 경청했다.

개중에 이전에 검은 숲에서 굉음이 들려서 서둘러 갔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땐 카이엔은 몸을 움찔거렸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다는 말에 안심했다.

티아마티스와 리치왕이 그렇게 싸워댔는데 아무 흔적이 없었다는 건 티아마티스가 정리를 잘 해놓고 갔다는 뜻이었다.

남작에게 처음 이 회의에 대해 들었을 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의 공격이나 그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으니까.

카이엔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듣고만 있자 귀족들도 안심했는지 하나둘 한숨을 돌렸다.

세자르 남작이 무슨 이유로 왕자를 데려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슬쩍 물어봐야지, 여기서 대놓고 질문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세자르 남작의 발표가 끝나자 회의실 안은 침묵에 휩싸였다.

“으음…”

“다들, 더 하실 말씀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보통 이런 회의를 할 때에는 각자의 영지에서 가장 소란스러웠던 사건이라든가 골칫거리인 용병이라든가 잘 팔리는 몬스터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텐데 카이엔이 앞에 있으니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의 말을 알아듣는 왕자의 앞에서 언제 어디서 어느 사냥꾼들이 몬스터 새끼를 잡아왔는데 이게 어땠더라~ 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눈치없는 일이었다.

점점 무거운 침묵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을 때, 세자르 남작이 입을 열었다.

“왕자님, 어떠십니까? 다들 제 본업에 충실하지 않습니까.”

“어. 그런 것 같네. 난 다른 영지는 가본 적이 없지만 다들 세자르와 비슷하겠지? 이종족 차별이라든가, 사람말 하는 몬스터 있으면 신기하다고 붙잡아서 어디 팔아넘기거나 그런 일은 없는거고?”

개중 찔리는 점이 있는 몇 명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카이엔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자기랑 다르게 생긴 녀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건 힘들겠지. 그래도 서로 잘 지내라. 싸우지 말고. 나야 뭐 예전부터 그런 애들이 곁에 많았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렇지 않을 테고. 세자르의 경우가 나로 인해 영지민들이 이상하게 적응해버렸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우리, 선은 넘지 말자.”

“네.”

“꼭 그러겠습니다.”

“대답만 잘 하지말고.”

자식뻘인 왕자의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분명히 권력 따윈 손에 쥐지 못한 왕자였지만 그들은 카이엔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귀족들을 앞에 두고 카이엔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할 이야기 있으면 더 해봐. 다른 지역 이야기를 듣는 건 꽤 재밌네.”

“그, 그럼…”

“이야기할만한 게…”

카이엔의 말에 회의는 각자의 영지 자랑하기, 특산물 영업,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로 바뀌었다.

다들 한번씩 세자르 남작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야속하게도 세자르 남작은 모처럼 다른 일에 흥미를 보이는 카이엔을 굉장히 기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귀족들이 회의실 안에서 회의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담당 시종과 집사, 호위 기사들은 모두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단순히 회의를 할 뿐이라 위험한 일도 없고 언제 부를지 몰라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들 모두 나이가 있는지라 그중에서 가장 어린 건 역시 에빌이었다.

뻘쭘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말없이 반듯한 자세로 옆에 서있던 바이스가 에빌에게 소곤거렸다.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혼자 계셔도 괜찮겠죠?”

“네? 어디 가시게요?”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말입니다. 회의하고 나오시면 목도 마를 테니 간단한 간식이라도 준비할까 합니다. 늦지 않게 돌아올 테니 안심하세요.”

“어… 다녀오세요.”

바이스를 막을 수 없는 에빌은 잘 가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자리를 이탈하는 그를 붙잡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도를 빠져나온 바이스는 저택 밖으로 나갔다. 세자르와는 다른 공기에 그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에빌에게 한 말과는 달리 그는 주방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저택 벽을 빙 둘러서 걸어갔다. 뒷문쪽을 향해 걸어가던 그는 몇 걸음 가지않고 발을 멈췄다.

부스럭거리는 풀 밟는 소리가 들렸다. 들킨 것을 알아차린 누군가가 말했다.

“정말로 시종을 하고 계시는군요.”

“하하, 무슨 용무죠?”

뒤를 돌아보며 바이스가 물었다.

입은 웃고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런 바이스의 모습에도 그를 쫓아온 남자는 주머니에서 가만히 쪽지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

“당신이 신경쓸 일은 아닙니다만.”

냉정히 대꾸하고 바이스는 쪽지를 받자마자 찢어버렸다.

그 찢긴 조각을 버리지않고 다시 남자에게 돌려준 뒤 바이스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남자는 바이스를 붙잡지 않았고 바이스는 몇 번 헤멘 끝에 영주성의 주방에 도착했다.

와본적이 없는 곳이라 길을 잘 모른 탓이었다.

요리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방을 빌린 그는 그곳에 있던 재료로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만들었다. 식기와 바구니도 빌려서 그 안에 채워넣고 다시 회의실로 가니 다행히 아직 회의는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잠시 기다리니 문이 열리고 진이 빠진 듯한 귀족들이 차례로 걸어나왔다.

“으음… 다들 되게 피곤해 보이네. 회의가 힘들었나 보다.”

“왕자님.”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과자를 좀 구워왔는데 방에 가시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너 여기 안 있고 딴데 다녀온 거야?”

바이스의 말에 카이엔은 기가 찼지만 과자를 먹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세자르 남작에게도 과자를 좀 챙겨주고 카이엔은 방으로 들어갔다. 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건 꽤 재밌었다.

그런 그에게 바이스가 접시에 담은 과자를 내밀었고 카이엔이 하나를 집어들어 입에 넣으며 물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주방 빌려달라고 했을 거 아냐.”

“제 옷차림을 보고 대충 아시더군요.”

“엥?\?”

“처음 보는 얼굴이니 누군가의 시종이라고 여겼겠죠. 당분이 모자란 귀족의 시종요.”

“하여간 말은 잘해…”

아몬드를 넣어 구운 쿠키는 오독하는 소리를 내며 입 안에서 부스러졌다.

시간도 없었을 텐데 이런 걸 용케도 준비해온 바이스에게 감탄하며 카이엔은 과자를 먹었다. 바이스가 못하는 게 뭔지에 대해 궁금해졌지만 곧 한 가지가 떠올랐다. 윗사람에게 예의 차리는걸 못하는 게 분명했다.

바이스는 그뿐만이 아니라 세자르 남작한테도 그렇게 깍듯이 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분명 그럴 거라며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냐.”

“그보다 내일은 사교 파티군요. 누구보다 멋지게 꾸며드리겠습니다.”

“필요없어.”

“파티장엔 시종도 동행할 수 있으니 염려마십시오.”

“그럼 에빌은?”

“호위 기사는 바깥에서 대기합니다.”

“어차피 할일도 없을 테니 방에서 쉬어도 되겠네.”

“무슨 말이야 카이엔… 나도 거기 있어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자가 호위 기사를 두고다니면 되겠어?”

“뭐 어때.”

심드렁하게 카이엔이 대꾸했다.

아몬드를 안고 있는 곰돌이 모양을 한 쿠키를 집어서 입에 넣고 카이엔이 한마디 했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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