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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23화 (24/219)

-23화

처음엔 의기소침했던 자네인이지만 점점 피로에 휩싸여 반쯤 정신을 놔버린 카이엔을 보고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여겼는지 점차 기운을 내며 에빌과 함께 카이엔을 챙겼다.

별다른 호위도 없이 움직이는 마차는 도적의 습격도 받긴 했지만 바이스와 자네인 만으로 도적떼 정도는 가뿐하게 해치웠다.

개중에는 현상금이 걸린 놈도 있었던 모양인데 바이스는 그런 돈을 받으러가기 귀찮다고 대충 도적이 머리를 베어서 땅에 묻어버렸다.

“난 도적보다 저 녀석이 더 무서워.”

“음… 나도 알 것 같아.”

도움이 안 된다고 에빌은 뒤에서 구경만 했다.

맞는 말이었기에 그는 군소리 없이 마차 옆에 서있기만 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마차 쪽을 노리고 뒤쪽에서 달려든 녀석은 그와 글라스가 함께 처리했다.

그렇게 별 위협도 되지 않는 습격을 넘기다보니 점점 목적지와 가까워졌다.

야영의 준비를 하던 중 바이스는 자네인에게 말을 걸었다.

“맞다. 자네인 님. 하나 요청할 게 있습니다.”

“네?”

“가르간트와 더스크라이즈의 국경 또한, 가르간트와 검은 숲을 갈라놓은 듯한 높은 벽이 있습니다. 그곳을 다스리는 귀족의 허락이 있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데 그때, 에빌라이 공작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는지요.”

“그런 것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밤에 연락을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자네인은 그날 밤, 바로 티아마티스에게 연락을 취했다.

종자인 그녀는 주인과 연락할 수단이 있었다. 일종의 텔레파시와 비슷했는데 바이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니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 이미 처리해놨다.

“아…”

- 그러니 너희가 더스크라이즈로 가는 것은 수월할 거야.

“감사…합니다.”

- 너도 생각을 잘 정리해라. …내가 그 동안 너를 너무 가둬 키웠구나. 잠깐 옆에 붙여놨다고 그렇게 넘어갈정도면.

책망하는 듯한 말투에 자네인은 고개를 숙였지만 티아마티스는 그 말만 하고 바로 연결을 끊어버렸다.

그래도 티아마티스가 중간에서 힘을 써준 덕분에 더스크라이즈의 땅을 밟는 건 수월해졌다.

남은 건… 거기까지 가는 동안 카이엔의 몸이 버텨줄지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게, 프라우디에보다 카이엔이 더 연약해보였다. 프라우디에는 수도에서 세자르까지 올 때 저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카이엔은 마차 안에 있으면 답답하다고 땅바닥에 모포 하나 깐 채로 바이스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본인은 그냥 누워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바이스가 땅바닥에 눕힐 수 없다며 자기 다리라도 베라고 고집을 부려서였다.

“으…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왕자님을 데리고 이곳저곳 돌아다녀 볼걸 그랬습니다.”

“그랬으면… 난 진작에 죽었어…”

“그 말도 맞군요. 어서 주무세요. 불침번은 글라스가 해줄 겁니다.”

“안심하고 주무세요, 왕자님!”

“찍찍!”

- 그래 인간아! 골골대지 마라. 불쌍하다.

소금이마저 카이엔에게 한 소리 했고 카이엔은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느꼈다.

갈 때도 이 모양인데 돌아올 땐 얼마나 힘들까.

그의 상념은 날이 추우니 마차에서 자라면서 바이스가 그를 흔들어 깨우는 걸로 끝났다.

에빌과 자네인, 바이스는 바깥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잤고 카이엔은 마차에서 자는 일이야, 이제 익숙해졌다.

소금이가 찍찍거리며 말을 붙이는 소리를 반쯤 흘려들으면서 카이엔은 잠을 청했다.

더스크라이즈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티아마티스… 에빌라이 공작이 힘 좀 썼는지 더스크라이즈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올레이스 백작은 선뜻 방벽의 통로를 열어주었다.

대표로 나선 자네인이 감사인사를 표하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카이엔은 숨죽이고 있다가 마차 문이 닫히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글라스가 간단한 환각 마법으로 카이엔의 모습을 가려놨었지만 그래도 긴장을 안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차는 국경을 넘어 더스크라이즈의 영토로 들어섰다.

울퉁불퉁한 길을 나아갈수록 숲은 더욱 울창해졌다. 몬스터의 냄새를 맡는건지 소금이는 연신 고개를 쳐들고 킁킁대고 있었다.

카이엔은 카이엔대로 몬스터들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이스에게 지시해 가능한 한 몬스터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다행히 이 근방에는 몬스터가 얼마 없는 건지 다수의 웅성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검은 숲과는 공기가 다르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왕자님은 어떠십니까?”

“검은 숲에 비하면 맑네.”

검은 숲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버티기 힘든 기운이 땅에서 뿜어져나왔다. 그에 비하면 더스크라이즈의 땅은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기운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서서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바이스는 마차를 몰았다. 도중에 몬스터라도 튀어나오면 말이 놀라 마차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고요한 숲속에 퍼졌지만 들짐승이나 몬스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크 엘프들은 깊숙한 곳에 사나보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저도 이곳에는 와본 적이 없습니다.”

자네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인간이 아닌 몸으로 꽤 오래 살아왔지만… 주로 티아마티스 님의 곁에 머물면서 친지나 기사의 역할을 했었거든요.”

“그렇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 별일 없을 거야.”

다크 엘프에 대해 잘 아는 게 없는 건 모두 똑같았다.

자네인이 위축될 일이 아니기에 카이엔은 가만히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찍찍대는 소리에 새장을 열어 소금이를 꺼내주니 소금이는 쪼르르 그의 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 숲!

“응. 숲이야.”

- 가보고 싶다.

“안 돼. 위험해.”

- 위험한 냄새는 안 나는데.

“숨어있을지도 모르잖아.”

나가고 싶어하는 소금이를 진정시키며 카이엔은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더스크라이즈는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이 땅의 이름이었다.

몬스터들의 서식지며 다크엘프가 사는 땅의 이름. 다크 엘프의 ‘나라’는 없었다. 마을은 존재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그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고 다크 엘프들도 자신들의 나라의 이름을 ‘더스크라이즈’라고 칭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선 오랜 전설 같은 게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 땅이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계기는 과거 이곳이 불모지였기에,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기에 황혼이 떠오른다는 뜻으로 붙였다고 한다.

먼 옛날엔 그랬다는 뜻이고, 지금의 더스크라이즈는 울창한 숲을 품은 땅이 되었다. 개발을 하고 무분별하게 벌목을 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이곳과 인접한 올레이스 백작의 영지에서 몰래 이 땅으로 들어와 벌목을 시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크 엘프들은 그들이 사는 곳에 근접해오지 않는 이상 인간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그들 또한 다크 엘프들의 허락을 받고 이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니까.

그들은 그저, 사이에 있는 문을 관리하는 자에게 허가를 받고 들어왔다. 다크 엘프들 입장에선 침입자라고 다짜고짜 활부터 쏘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존재였다.

“도움을 어떻게 받으면 좋을까…”

“어? 너 생각해놓은 거 없어?”

“몰라. 솔직히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해야지. 못 도와준다고 하면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라도 찾아보는 수 밖에.”

“도움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프라우디에가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말야… 그렇게 가슴 뚜껑이 열린 채 오래 두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

“페이리가 일단 겉이라도 붙여보자고 붕대로 돌돌 말아준다더라. 나한테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어.”

“효과가 있을까…”

“있으면 좋겠어.”

카이엔이 한숨을 푹 쉬었다.

더스크라이즈의 다크 엘프들은 흑마법을 쓰지 않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기에 죽음의 기운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땅에 정말 짙은 죽음의 기운이 흐르고 있다면 인간인 그들 또한 영향을 받고 이상증상을 일으킬텐데 몸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고 바이스가 마차를 멈췄다. 소금이를 어깨에 태운 채로 카이엔은 마차 밖으로 나왔다.

숲의 공기는 상쾌했다. 소금이 역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찍!”

- 몬스터 냄새는 안 난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더스크라이즈의 엘프들도 주기적으로 몬스터 사냥을 하는 걸까?

마차를 타고 이동한 지 두 시간정도 지났는데 그들은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발견하지 못 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검은 숲만큼은 아니지만 더스크라이즈 역시 몬스터로 흉흉한 땅일텐데.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는지 조심스럽게 글라스가 말했다.

“왕자님. 제가 한 번 근처를 둘러보고 와도 좋을까요? 아무래도 영 이상합니다.”

“그렇지? 더 깊숙이 들어갔다가 위험해지면 큰일이기도 하고… 너도 너무 멀리가진 마.”

“네. 다녀오겠습니다.”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글라스는 근처의 나무 옆으로 갔다. 발을 두어 번 구르더니만 그는 엄청난 점프력으로 뛰어올라 나뭇가지를 가볍게 밟으면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대낮에 박쥐로 변해 날아다니는 건 눈에 띈다고 판단한 건지 그는 가지가 부스럭거리는 아주 작은 소리만을 흔적으로 남기며 나무가지와 가지 사이를 날듯이 뛰어 움직였다.

그 모습에 카이엔이 감탄사를 흘리자 바이스가 말했다.

“왕자님도 좀 쉬십시오.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 가만히 계시고요.”

“내가 애냐…”

“소금이가 졸라도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됩니다.”

“알아.”

퉁명스럽게 카이엔이 대꾸했다.

글라스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간 걸 봐선, 한 시간 이내로 돌아올 것 같았다.

다크 엘프를 발견해서 돌아오든 위험해보이는 몬스터를 확인하고 오든, 그들은 이 더스크라이즈라는 곳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어떤 정보라도 감지덕지였다.

자네인은 숲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살펴보았다. 잎을 확인하고 나무의 몸통을 그어보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기에 카이엔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바이스가 마차에서 꺼내온 의자 위에 앉아서 소금이의 찍찍거림을 들으면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저만치에서부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글라스가 돌아온 건가,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옆에 서있던 바이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글라스 씨가 아닙니다.”

“응?”

“다섯 명 정도… 일행이군요.”

“이곳에? 다크 엘프인가?”

“몇 명은 갑옷을 입은 것 같습니다만.”

도대체 바이스는 청력이 얼마나 좋은 건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는 사람이 갑옷을 입었다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황당해하며 카이엔이 물었다.

“너 사람 맞지?”

“인간 맞습니다. 아무튼… 그대로 둬도 될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하실 런지요?”

“그냥 여기 있을게.”

바이스는 카이엔에게 마차로 들어갈 것인지를 물었고 카이엔은 손사래를 쳤다.

마차 안은 너무 답답했고 더스크라이즈에서 다른 인간을 만난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강도나 산적 같은 거면 바이스가 금방 처리할 테니 무섭지도 않았다.

그 사이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자네인과 에빌도 카이엔의 앞으로 걸어와 섰다.

풀숲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이스가 말한 대로 다섯 명의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앞을 가리고 서있는 에빌과 자네인의 틈 사이로 그 사람들의 의복을 엿본 카이엔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사제잖아?! 사제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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