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라스는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지만 일단 애완 늑대인 척 돌아다니기로 했다.
사트로누스보다 훨씬 덩치가 작았기에 사트로누스는 카이엔에게 라스가 늑대 인간이라 인간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별 생각없이 라스를 대했다.
다른 사람들은 둘이 함께 있으면 덩치 차이가 심해서 귀엽다고 여기는 듯 했는데 사트로누스와 라스는 엄연히 종이 다르기에 언어가 안 통해서 할 말이 있으면 중간에서 카이엔이 통역을 해주곤 했다.
사트로누스는 늑대 모습인 라스가 인간 형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굉장히 신기하게 여겼는데 그런 사트로누스에게 ‘이종족’에 대해 설명을 하느라 카이엔은 진땀을 빼야만 했다.
- 단어의 뜻 자체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 이라는 거 잖아.
“응. 그렇지.”
- 그럼 몬스터와 이종족을 나누는 기준이 뭐지?
“아… 이게, 완전히 인간의 편의로 나눈 거라… 아마 언어가 통하거나 고유 언어가 있으면 이종족 취급하는 것 같아. 인간의 모습이거나 이족보행을 한다거나…”
- 그럼 페이리는? 그 녀석은 몬스터 취급받지 않나?
“으으으음… 미안.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묻지 말아줘.”
사트로누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애를 쓰는 카이엔이었지만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있던 라스가 카이엔을 위로하듯 앞발로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소금이는 사트로누스보다 작고 좋은 탈 것이 생겼다며 굉장히 좋아했다.
라스도 군말없이 소금이가 자기 머리 위며 등 위에 타는 것을 내버려뒀기에 소금이는 좀 더 원활하게 바깥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라스가 늑대인 척 하고 있어야하기에 이름표를 새긴 목걸이를 만들어서 걸어주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목줄을 채우고, 머리에 소금이를 얹은 채로 마을로 산책을 나가니 다들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특히 늑대를 발견해서 카이엔에게 데려온 마을 사람들은 늑대가 건강해졌다는 것에 반가워하면서 말은 안 통했다는 말에는 왠지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난 몬스터하고만 말이 통해.”
“네…”
“동물하고도 통하면 좋을 텐데.”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도축할 때 비명지르는 것도 해석될 거 아냐.”
“왕자님이 몬스터의 말만 알아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빠른 태세변환에도 카이엔은 별말하지 않았다.
마을 한 바퀴를 돌며 산책하는데 동네 꼬마들이 늑대를 신기해하며 그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 모습에 라스가 낮게 짖는 소리를 냈다. 카이엔의 방에서 실험한 결과, 그런 식으로 그르렁거려도 카이엔이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 아이들이 쫓아오네요.
“어어. 신기한 게 있으면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오더라. 걱정 마. 만지진 못 하게 할 테니깐.”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봐 카이엔은 라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척 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아이들은 사트로누스보다 덩치는 훨씬 작지만 멋지게 생긴 늑대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카이엔을 따라왔지만 먼저 말을 걸지는 못 했다.
왕자님을 귀찮게 굴면 안 된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수십 번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으니까.
늑대 혼자만 있었다면 무서웠겠지만 머리 위에 소금이를 태우고 있는 걸로 봐선 성격도 좋아보였다.
“만져보고 싶다…”
“왕자님한테 말 걸어봐.”
“네가 해!”
“아냐, 네가 해!”
라면서,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소리가 너무나도 잘 들렸다.
카이엔은 피식 웃었고 라스는 웃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한 번 허락하면 마을 애들이 싹 몰려올 테니까, 절대 못 만지게 할게.”
카이엔이 작게 속삭이자 라스는 화답하듯 으르릉하는 소리를 냈다.
머리 위에 탄 소금이가 찍찍댔다.
“찍, 찌익!”
- 머리 흔들지 마라, 나 떨어진다!
“소금이가 떨어질지 모르니까 머리 흔들지 말래. 소금아, 차라리 등에 타 등에.”
“찍.”
- 등에 타면 안 보여.
“에휴.”
고집이 완강한 소금이 탓에 카이엔은 짧은 한숨을 흘렸다.
덩치가 커서 소금이에겐 그 등이 들판만큼이나 넓은 사트로누스와는 달리 라스는 덩치가 작은 편이라 소금이가 마음껏 우다다 달릴 수 없었다.
작은 탈 것이 생긴 건 좋지만 행여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확률이 늘어나서 소금이는 라스의 머리털을 꼭 잡고 마을을 구경했다.
카이엔이 늑대에게 목줄을 걸고 산책을 하러 나왔기에,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빠른 시일 안에 마을 사람들은 왕자의 애완 동물에 늑대가 추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허나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바로, 늑대인 라스가 씻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씻겨야겠지?”
“네??”
“사트로누스도 내가 목욕시켜줬는걸. 너는 걔보다 작으니까 금방 끝나지 않을까?”
인간 모습을 보지 못 했기에 카이엔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목소리를 들어봐서는 남성인 모양이었고, 그냥 사트로누스 씻기듯이 씻기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라스는 크게 놀랐는지 당황해서 외쳤다.
“제가 혼자 하겠습니다!”
“씻을 때만 인간으로 변하게? 그것도 괜찮겠지만…”
“왕자님께 폐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긴, 네가 평범한 늑대고 아니고 늑대 인간인데 민망하긴 하겠다.”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입 꾹 다물고 계속 늑대인 척 하고 있는게 아니라 스스로 늑대 인간인 걸 밝힌 뒤였으니까. 씻겨준다는 게 어색할만도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라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인간 모습이 궁금하진 않으십니까?”
“아니. 이왕이면 쭉 늑대로 있어라.”
“찍! 찌직-”
- 인간아! 저놈이 뭐라고 하는 거냐?
“아무것도. 소금이 네가 신경쓸 건 아냐.”
소금이가 불만스러운 듯 찍찍거렸지만 카이엔은 무시했다. 소금이가 해주란 대로 다 해주면 안 그래도 버릇없는 녀석이, 더 기고만장해질 게 뻔했다.
적당히 소금이의 찍찍거리는 소리를 흘려들으면서 카이엔은 라스가 언제쯤 인간 모습을 하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
영주성에 전달되는 우편물에 섞여서, 자네인에게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받은 즉시 읽어보지 않고 저녁이 되어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그녀는 편지의 봉인을 뜯었다.
새겨진 인장은, 위장용 가짜였다.
무슨 내용일지 익히 짐작이 갔지만 자네인은 편지를 열었다.
소득이 없으면 돌아와라. 호위는 그만둬도 된다.
역시나, 짐작한 대로였다.
그녀가 보낸 보고서를 읽은 그 사람이 충분히 내릴만한 결정이었다.
애초부터 있을지도 모를 위험에 대비해 그것을 관찰하기 위해 곁에 보내진 것이었으니까.
허나 자네인은 입술을 깨물며 방 안의 촛불의 불을 붙여 편지를 불태웠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프라우디에가 걱정되었다.
‘내가 돌아간다면…’
프라우디에는 어떻게 될까.
왕자는 좋은 사람이니 프라우디에를 지켜줄테지만 독스 백작가는 그 아이를 버릴 것이다.
프라우디에는 백작의 친자가 아니었다. 그 집안과는 아예 연관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애를 데려다놓고서,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며 모른척하고 버리겠지.
쫓겨난 왕자의 곁에… 그 왕자가 스스로 잊혀지기를 원해 이곳에 묻혀지내는 것처럼 프라우디에, 그 아이도 그렇게 되게 하려고.
자네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아이를 혼자 버려두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그녀만큼은, 그 아이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을 실망시킬 수도 없었다.
괴로워하며 자네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복종은 무력함이었으며 불복종은 고통이었다.
프라우디에는 약한 아이였다. 겉도 속도, 연약하기 그지 없었다.
어렴풋이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의 존재를 바깥에 알리려고 하지 않는 백작과 그와 친해지고 싶어 해도 주변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여동생, 그를 눈에 보이는 것 취급조차 하지 않는 백작 부인, 명령을 내리면 따르긴 하지만 필사적으로 그를 외면하려고 하는 하인들.
그 안에서 살던 프라우디에에게 자네인, 그녀의 존재는 다른 이들보다 확고히 그 자리를 잡게 되었다.
외부에서 온 사람.
그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
항상 옆에 있어주는 사람.
그녀의 주인이 그것을 노리고 그녀를 프라우디에의 곁에 호위기사로서 붙여놓은 건지, 그 의중은 알 수 없지만 프라우디에에게 자네인의 존재가 커진 것처럼 자네인에게도 프라우디에의 존재가 상당히 큰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것은, 그녀의 주인조차 예상하지 못 한 것일 터였다.
외로운 아이 곁에 서게 된 기사 또한 그와 비슷한 고독을 느끼고 있었기에.
“…못 해.”
돌아갈 수 없다. 그 아이를 여기에 홀로 두고갈 수는 없었다.
주인이 내린 명령을 거부하겠다. 그녀가 의지를 굳힌 순간이었다.
- 돌아오지 못하겠다는 거냐?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자네인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가까스로 창틀을 붙잡고 선 그녀에게 날선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책망하며 혼내고 한탄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그녀에게 강한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 그새 정이라도 든 것이냐? 내가 말했을 텐데.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고. 내 너를 직접 옆에 붙여두고 지켜보려 했던 그 이유를 진정 이해하지 못 했던 것이더냐?
“주…”
- 한심한 것.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자네인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가 실망하는 이유를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이 한심하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변명조차 입에 담지 않는 자네인을 향해 작게 혀차는 소리가 향했다.
- 정체를 밝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 옆에서 관찰하는 걸로 알아낼 수 없다면 그 몸을 직접 헤집어서 찾아내는 수 밖에.
- 자네인.
- 소년을 처리해라.
죽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허나, 죽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질끈 감은 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떨리는 건 속눈썹뿐만이 아니었다. 자네인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창틀을 붙잡은 손에 힘으로 인해 창틀이 우드득 소리를 내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네인은 있는 힘껏 명령에 저항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애초에 그녀의 육신 자체는 주인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거역할 수 없었다.
프라우디에를 찾아라.
찾아서, 그 심장을 확인해라.
흐린 눈이 문을 향했다. 자네인은 살짝 몸을 비틀며 문 밖으로 나왔다.
이 시각에 프라우디에가 하는 일은 뻔했다.
그 아이는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잘 알지도 못 하는 천문학 책을 들고나와서 별자리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아마 오늘도, 찬바람을 맞으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별을 보고 있을 터였다.
곁을 지키면서 본 것이 있었다.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몰랐지만 그 아이가 말해줘서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담요를 덮은 채 풀밭에 앉아서 별을 보고있는 프라우디에가 그곳에 있었다.
책 보는 것은 포기했는지 천문학 책은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은 채 목이 아프지도 않은지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가 있었다.
중요한 건 심장을 확인하는 것, 그 뿐.
스릉.
작고 스산한 소리를 내며 검집에서 검이 뽑혔다. 자네인은 기척을 죽이고 프라우디에를 향해 다가갔다. 프라우디에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 했다.
뽑아든 검이 그 아이를 향해 내리그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네인 씨-!”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기다란 끈이 그녀의 검과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언가 날아온 충격에 자네인은 크게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그녀를 덮친 건 상반신은 인간이었지만 하반신은 거미의 모습을 한 아라크네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페이리가 외쳤다.
“가, 갑자기 뭘 하려고 하신거예요?!”
“으…”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페이리가 자네인을 바라보며 외쳤다.
다락방에서 빠져나와 바이스가 부탁했던 정찰을 하기 위해 지붕이며 저택의 벽면을 활보하던 페이리가 자네인의 이상한 움직임을 발견하고 달려든 것이었다.
손에 묻은 거미줄을 털어내며 자네인은 페이리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페이리가 두 팔로는 자네인의 어깨를 붙잡고 여섯 개의 다리로는 그녀의 몸을 꽉 누르고 있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프라우디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잔느…? 무슨 일 있어요?”
담요를 두른 프라우디에가 두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거미줄 투성이가 된 검과 자네인을 제압하듯 붙잡고 있는 페이리의 모습. 프라우디에는 순진하긴 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자네인은 프라우디에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놀람과 당황스러움 역시 엿보였지만 가장 크게 자리잡은 것은, 슬픔과 달관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아…”
“가만히 있으세요. 이,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는 왕자님… 아니, 바이스 씨를 불러서-”
허나 페이리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무리없이 붙잡고 있던 자네인이 강한 힘으로 페이리를 밀어냈다. 이전에도 저항하긴 했지만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 자네인이 페이리를 밀치는 힘은 처음의 두 배가 넘었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페이리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신체 구조상 페이리는 뒤로 넘어지게 되면 일어서는 게 쉽지 않았다.
여섯 개의 다리를 허우적대면서 페이리는 필사적으로 자네인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그녀를 밀친 자네인은 프라우디에에게 검을 휘두르는 대신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들더니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그 뒷모습을 확인하고 페이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릴리시아아아아!”
그녀와 알라우네인 릴리시아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허나, 릴리시아 역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자주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의 목소리 정도는 알고 있었다.
페이리의 외침에 꾸벅꾸벅 졸던 릴리시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마침 그녀의 행동반경 안에 누군가 있었고 그 누군가는 바깥으로 나가려고, 도망치려고 했다.
쉬이익!
빠른 속도로 촉수들이 그쪽을 향해 뻗어나갔다.
손님으로 인식한 객체였지만 페이리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일단 붙잡고 봐야겠다고 판단한 상태였다.
그러나 릴리시아의 촉수들은 자네인에게 닿을 수 없었다. 빠른 검격이 촉수들을 잘라냈고 자네인은 인간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몸놀림으로 영주성의 벽을 넘어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끼아아아아-!”
촉수가 잘린 알라우네의 비명이, 영주성의 모든 사람에게 정원에서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