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다음 날 아침, 카이엔은 박쥐가 눕혀두었던 상자에서 벗어나 마차 좌석에서 자는 걸 발견했다.
새벽에 박쥐가 물그릇에 엎어지면서 튄 물은 이미 증발되어서 사라졌지만 사과에 남은 이빨자국이 박쥐가 사과를 조금 먹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트로누스가 먹었을 리도 없고 먹었다고 해도 저렇게 작은 자국이 남았을 리가 없으니까.
상자 밖으로 나온 박쥐를 다시 상자에 넣어두고 카이엔은 마차에서 나왔다.
박쥐의 몸은 아직 따뜻해서 죽은 것 같진 않았다.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는 건 박쥐가 완전히 기운을 차린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프라우디에에게 박쥐 이야기를 해주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아직도 자고있는지 움직이진 않지만.”
“역시 야행성이라 그런가 봐요.”
박쥐는 다시 프라우디에에게 맡겨졌다.
크고 작은 몬스터들과의 전투 후, 프라우디에는 또 다른 연구재료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어스웜의 점액과 변종 파리지옥 몬스터의 소화액으로 대체 뭘 만들 수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프라우디에는 두 가지 다 가져온 빈 병에 집어넣었다. 다행히 빈 병이 녹는 일은 없었다.
해치운 몬스터와 발견한 몬스터, 정찰을 나간 기사들이 확인한 몬스터들의 이동경로 등을 서기 역할을 맡은 기사가 열심히 기록했고 카이엔에게도 그것을 보여줬다.
”저번엔 좀 더 많은 몬스터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사트로누스 덕인지 귀찮은 떨거지들은 도망친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서 다행이네. 솔직히 사트로누스를 데리고 다니면 생고기를 먹여야 하니 식량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잖아.”
그래서 코볼트를 잡은 날에도 고기를 따로 빼놨다가 사트로누스의 저녁밥으로 줬었다.
나온 고기가 적어서 원래 준비해온 고기에 곁들이는 정도였지만.
그렇게 짧은 탐색이 끝나고 다시 영주성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토벌의 경우엔 거의 한 달의 시간을 투자하지만 탐색은 주변의 안전만 확인하는 정도라서 시간이 훨씬 짧았다.
게다가 더 오래 있다가 돌아갔다간 영주성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작의 심장이 쪼그라들어버릴 테니, 기사들은 그것을 걱정해 더욱 귀환을 서둘렀다.
카이엔은 이틀은 더 지난 뒤 밤에 박쥐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전엔 날개로 몸을 감싸고 있어서 보지 못 했던 상처는 박쥐가 날개를 펼치자 확인할 수 있었다.
피딱지가 앉은 날개를 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프라우디에에게 부탁해서 받은 간단한 상처약을 발라주었다.
어떤 처치를 해야 할지 몰라 사실상 이게 최선이었다.
박쥐는 아무 말도 없이 카이엔을 빤히 쳐다보았고, 카이엔은 이 박쥐가 몬스터가 아니라 그냥 짐승임을 확신했다. 몬스터였다면 엄청나게 말을 많이 했을 테니까.
- 데리고 돌아갈 거야?
“응. 일단 나을 때까진 돌보려고.”
- 괜찮을 것 같긴 하다.
고작 작은 박쥐 한 마리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얌전히 있었던 것이 점수를 딴 건지 사트로누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탐색대는 일행에 박쥐 한 마리가 더 늘어난 채로 영주성에 돌아왔다.
야행성인 박쥐는 상자 안에서 자고 있었는데 박쥐를 배려해 카이엔이 검은 망토로 상자를 덮어서 빛을 가린 채 방까지 데려왔다.
방에 들어와서는 바깥에서 구해온 커다란 새장에 박쥐를 넣고 검은 천으로 덮어 빛을 차단했다. 이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였다.
“졸지에 애완동물이 늘어났군요.”
“안 키워. 다 나으면 날려 보낼 거야.”
“흠. 믿겠습니다.”
바이스의 말에 카이엔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도 사트로누스와 소금이, 릴리시아 뿐인데 이게 그렇게 타박을 받을만한 일인가?
부루퉁해진 그를 보고 바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평소보다 못생겨 보입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러십시오. 어차피 평소에도 말을 잘 안 하시잖아요.”
언제나처럼 한마디도 지지않는 바이스였다.
사건은 이틀 뒤에 일어났다.
카이엔은 밤이 되면 박쥐를 넣은 새장을 덮어둔 검은 천을 걷어내고 새장 문을 열어주었다. 박쥐가 그의 손바닥 위에 올라오게 해서 탁자나 테이블에 내려놓으면 박쥐는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통 날지를 못 해서 박쥐가 영주성에 체류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하루는 카이엔이 새장 문을 잠그는 것을 잊어버려서 박쥐가 문 밖으로 나와 새장을 올려놓은 탁자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 하던 박쥐에게 소금이가 달려들었다.
“찍! 찍!”
찍찍거리는 소리를 내며 소금이는 짧은 팔다리를 휘둘렀고 분명히 몸집도 더 크고 이빨도 더 날카로울 박쥐는 소금이에게 맥없이 맞고만 있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이엔이 방으로 돌아왔고 그는 박쥐가 소금이한테 맞고있는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으아아악 소금아! 때리면 안 돼!”
“찍!”
- 이놈은 뭐냐! 에잇, 에잇!
“소금아! 괴롭히지 마!”
- 기분 나쁘게 생겼다.
“너 진짜… 에휴.”
불쌍한 박쥐는 소금이를 떼어놓고 나서도 벌벌 떨었다.
박쥐를 다시 새장 안에 넣고 단단히 문을 잠근 뒤 카이엔은 한숨을 쉬며 소금이를 보았다.
소금이가 호전적인 성격이란 건 익히 알고있었지만 난데없이 박쥐를 패다니! 아무리 소금이가 몬스터고 박쥐가 일반 짐승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길게 한숨을 쉬며 카이엔이 입을 열었다.
“소금아.”
- 뭐냐.
“네가 잘못했어. 알지? 다쳐서 못 나는 불쌍한 애인데 왜 때리고 그래?”
- 내가 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하하… 그래.”
넌 그런 녀석이었지.
사트로누스도 소금이가 초면에 덤벼댔던 걸 콧방귀를 뀌면서 무시해서 망정이지.
만약 사트로누스도 소금이와 말이 통했다면 상당히 머리가 아팠을 것이었다. 소금이에게 있어서 일인자는 오직 소금이 자신이었으니까.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카이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금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소금아.”
- 왜.
“너 한번만 더 박쥐 때리면 간식 안 줄 거야. 안 놀아주고 산책도 안 시켜줄 거야. 알겠어?”
- 알겠다. 이미 내가 강하다는 건 증명되었으니.
“허어…”
어디서 이런 햄스터 몬스터가 나왔을까. 설마 햄스터 몬스터는 다 소금이같은 성격인 걸까.
편견이 생길 것만 같아서 카이엔은 고개를 저었다.
그 사건 이후 박쥐는 소금이를 기피했고 카이엔이 새장 문을 열어서 바깥으로 꺼내주려고 해도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비행 연습은 계속 뒤로 미뤄졌다.
큰 새장을 주문해서 그 안에 들어가긴 하지만 그래도 답답할 텐데, 박쥐는 소금이에게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밖으로 꺼내주려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흠, 이러다간 계속 키우게 되겠군요.”
“그런 말 하지 마. 얘도 소금이 때문에 여길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을걸?”
박쥐의 먹이는 다진 날고기와 과일로 해결되었다.
애초에 그리 많은 양을 먹지도 않고 자는 시간만 길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건지, 박쥐의 습성 자체가 그런 건지 카이엔은 알 수가 없었다.
박쥐에 대한 책을 구해서 읽어봐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프라우디에에게 부탁하기엔… 이전에 연구실에서 봤던 말린 박쥐가 매달린 천장이 떠올라서 저절로 몸이 떨렸다.
검은 숲에서 돌아온 지 거의 한 달이 되어서야 박쥐는 다시 날 수 있게 되었다.
방 안을 잘 날아다니는 것을 확인한 카이엔은 창문을 열었다.
“자. 여기로 나가. 릴리시아에게 이미 말해뒀으니까 높이 날면 널 잡아먹지 않을 거야. 잘 가라.”
카이엔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박쥐는 몇 번 카이엔의 주변을 날다가 창 밖으로 나갔다.
박쥐가 나가자 카이엔은 다시 창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서 찍찍대는 소리가 들려서 등잔을 가져가니 소금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찍찍.”
- 그놈 갔냐?
“응. 갔어.”
- 언제 가나 했는데.
“네가 안 괴롭혔으면 좀 더 일찍 갔을 거야.”
그 말에 소금이는 딴청을 피우며 고개를 돌렸다.
하여간.
피식 웃곤 카이엔은 빈 새장을 쳐다보았다.
“소금아.”
- 왜?
“너 말썽 피우면 새장에 넣어버릴 거니까 앞으론 사고치지 마. 알겠지?”
- 윽!
새장에 들어가기 싫은지 소금이가 소리를 지르더니만 쪼르르 제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카이엔은 등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바이스가 박쥐에 대해 물어보면 이제 잘 날 수 있게 되어서 풀어줬다고 말해줄 것이다.
바이스가 예상한 대로 박쥐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애완동물로 키우는 일은 없어졌음을 똑똑히 일러주기도 할 테고.
***
아침부터 카이엔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아침식사까진 좋았다. 그런데 오전에 갑자기 바이스가 다같이 모여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해서 갔더니만 남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빌린 회의실 벽에 '카이엔 왕자님 왕 안 되기 작전'이라는 글씨가 써진 큼지막한 천이 붙어있었다.
저 글씨체는 분명히 페이리의 것이었다.
그가 의자에 앉자 곧 종이며 펜,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더니만 에빌이 들어오고 뒤이어 페이리가 소금이와 사트로누스를 데리고 같이 들어왔다.
소금이는 긴 테이블 위에 앉게 되었고 페이리는 의자에 앉을 수 없어서 의자를 뒤로 빼놓고 근처에 자리잡고 앉았다. 사트로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빌은 뭐가 뭔지 몰라 의아한 얼굴이었는데 바이스가 문을 닫더니만 두 번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죠.”
“너 무슨 생각으로 다 모이라고 한거야?”
“그야 당연히 이 이유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바이스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식으로 벽에 매달아놓은 천을 가리켰다.
카이엔의 얼굴이 더 험악해졌고 에빌은 ‘어? 어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카이엔과 벽에 매달린 천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왕자님이 올해로 열아홉 살이 되셨습니다. 허나 현 국왕은 옛날에 한 약속 따윈 지키지 않을 사람이니 어떻게든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고요. 현 상황에 가장 중요한 건 왕자님이 왕이 될 생각이 없다는 걸 알리는 것입니다.”
“지금도 잘 하고 있는 거 아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더 아무것도 안 해야합니다.”
“뭐야 그게.”
어이가 없어서 카이엔이 대꾸했지만 바이스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모이게 했습니다. 왕자님도 답답한 점이 있었을 텐데요?”
“으음…”
그 말도 맞긴 했다.
뜬금없이 에빌이 찾아온 것도 모자라서 백작가 장남인 프라우디에게 연구를 한다는 명목으로 식객으로 머물게 되었으니까.
그게 입소문을 타서 다른 녀석들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그를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일부러 바람을 집어넣으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 몇 명의 귀족들이 그러했듯이.
그는 정말로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아… 그래서 뭘 어쩌잔거야? 이렇게 불러놓고.”
“지금 모인 분들이 저희 세력의 전부입니다. 그걸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요.”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소금이는… 좀 빼면 안 돼? 얘가 무슨 힘이 있다고.”
“소금이도 작은 몸을 이용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겁니다. 게다가 박쥐도 패는데 인간이라고 못 패겠습니까?”
“푸흡!”
그 말에 에빌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지만 바이스의 얼굴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물론 소금이가 사람을 때려봤자 간지러울 뿐이란 걸 알고있는 카이엔은 한숨만 푹푹 쉬었다.
이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페이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바이스와 카이엔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바이스가 글씨를 좀 써주라고 하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런 일이었을 줄이야.
그녀의 생각으론, 바이스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허나 예전부터 바이스는 카이엔의 안전에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기에,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탈했다.
“물론 왕자님이 어딜 가시든지 저는 왕자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따뜻한 얼굴을 하고 말해봤자 미친 소리처럼 들리거든?!”
“왕자님이 지옥에 가신다면 저도 지옥으로 갈 거-”
“너 혼자 가!”
지옥에 갈 확률이 높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아니라 바이스였다.
멀쩡한 얼굴로 오늘도 헛소리를 하는 바이스를 보며 카이엔은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사트로누스는 인간들끼리 헛소리하는 걸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아예 드러누워 자고있었다.
소금이는 소금이대로 찍찍대면서 간식에 눈독을 들여서 페이리가 열심히 제지했고 에빌은… 그와 바이스가 대화하는 꼴을 보고 옆에서 웃겨 죽으려 했다.
이딴 게 세력일 리가. 골목대장을 따라다니는 동네 꼬마 무리가 그들보다 훨씬 탄탄할 거다.
적어도 걔네는 대장의 지시에 따르기라도 하지 이쪽은…
“후우… 말하기도 지친다.”
“어쨌든 왕자님이 무해하다는 걸 알릴 필요가 있어요. 뭐, 그쪽에선 왕자님이 망나니든 아니든 제거하려고 하겠지만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합니다. 왕자님이 어렸을 때도 득달같이 죽이려고 들었으니, 성인이 된 지금은 오죽하겠습니까?”
“으음, 그거 증거는 없잖아… 괜히 입 잘못 놀렸다가는 큰일나요.”
조심스럽게 에빌이 바이스에게 말했다.
카이엔에게 일어났던 사건의 대부분은 주동자가 밝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지어졌다.
심지어 만티코어인 사트로누스가 탈출해서 왕세자궁을 지키던 기사며 하인을 죽인 것도. 감옥을 잘 지키지 못한 간수와 보초를 서던 기사들의 잘못으로 돌아갔다.
가장 의심스러운 건 현 국왕이자 카이엔의 작은 아버지였지만 증거가 모자랐고 그 증거를 찾기엔, 그들은 너무나도 약했다.
“그 말도 맞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 겁니다.”
“으음… 그렇네요. 카이엔 너 어떡할래?”
“몰라… 여기서 죽치고 있을 거야. 사트로누스랑 소금이랑 릴리시아, 페이리. 다 데리고 살 거야.”
“왕자님…”
자신의 이름이 끼어있자 페이리는 감동한 모양이었다.
낮잠 자는 사트로누스와 찍찍대면서 간식달라고 투정부리는 소금이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에 카이엔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페이리는 그가 가족으로 받아들인 몬스터 중 가장 이성적이었고 말이 통했으며 상냥한 성품을 지녔으니까.
그러나 그 감동도 오래 가지 못 했다. 바이스가 안건이랍시고 꺼내든 게 죄다 이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왕자님이 완전히 의심상에서 벗어나려면 사고 하나 쳐야하는데 이중에 무슨 사고가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그 사고 목록이라고 적어놓은게 가관이었다.
1. 망나니 되기
2. 방화
3. 몬스터 사육사
4. 검은 숲에서 집 짓고 살기
5. 화끈하게 왕성에 테러하고 망명하기
뒤로 갈수록 어쩐지 이상했다. 목록을 계속 읽다보니 바이스가 그에게 바라는 게 최종적으론 망나니가 되기인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걸로도 모자라 바이스가 말했다.
“그게 아니면 차라리 깔끔하게 현 국왕의 목을 베고 피의 숙청 끝에 왕자님이 왕이 되시는 방법도-”
“왕 안 되기 작전이라며!?”
“안 통하는군요.”
“너 진짜 원하는 게 뭐야…”
“왕자님이 원하시는 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미치겠네… 네가 가만히 있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제가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왕자님 목숨을 노릴 때 누가 나섭니까? 장담하는데, 에빌 씨는 절대 도움이 못 됩니다.”
“난 또 왜?!”
가만히 있던 에빌이 공격당해 비틀거리며 테이블에 엎드렸다.
결국 회의 분위기는 초토화되고 말았고 멀쩡한 건 바이스와 소금이 뿐이었다.
맞은 편 자리에 앉아있기에 팔을 뻗어서 카이엔을 위로해 줄 수 없는 페이리는 안절부절못하면서 카이엔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카이엔… 너 시종 잘못 뽑은 거 아냐?”
“나도 후회 중인데 이제와서 못 바꿔…”
이제와서 다른 이에게 시중 드는 걸 맡긴다고 하면 바이스가 그 시종을 죽일 것이다.
바이스는 그렇게 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카이엔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흠, 그럼 회의가 진행되질 않는군요. 그럼 이쯤에서 마칠까요? 왕자님은… 늘상 하던 대로 하시면 될 겁니다. 저도 하던 대로 하죠.”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많이 불안해.”
“걱정 마세요. 왕자님께 해가 될 일이라면 미리 말하고 하겠습니다.”
“그냥 안 하면 안 돼?”
“해야만 하니까 하는 겁니다.”
역시나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