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토벌 시기가 정해졌다. 물론, 정했다고 바로 싸우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조사할 시간이 필요했다.
카이엔은 탐색대와 함께 검은 숲에 들어가기로 했고 프라우디에도 가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조사단을 꾸리게 되니 이번엔 그 수가 꽤 많아졌다.
호위 병력을 더 붙이려고 하는 남작을 보며 카이엔이 한숨을 쉬고는 그를 제지했다.
“어차피 위험한 일은 없을 거 아냐. 사트로누스도 데려갈 거고 나한테는 바이스가, 프라우디에에겐 자네인이 붙어있을 거고.”
“카이엔, 나는?!”
“아 맞다. 너도 있었지?”
“너무해!”
소외된 에빌이 옆에서 우는 소리를 냈지만 카이엔은 깔끔하게 소꿉친구를 무시했다.
문제 없을 것이라고 연신 말하는 카이엔을 보던 남작은 이마를 짚었다.
무슨 몬스터가 얼마나 있을지 알 수 없는 방벽 너머로 카이엔을 보내는 게 위험하지 않을 리가. 하지만 남작은 결국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탐색대가 출발하는 날까지 안절부절못하던 남작은 당일에 일행을 떠나보내면서도 카이엔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바뀌는 일은 없었다.
“참, 걱정도 많다니까.”
“왕자님의 안전은 중요하니까요.”
“크릉.”
- 무슨 일이 있어도 다들 너를 지킬 텐데.
“모두는 아닐지도 모르니까.”
사트로누스의 말에 대답하면서 카이엔은 길게 자란 사트로누스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카이엔이 직접 검은 숲을 눈으로 보고 싶어 했기에, 그는 말을 탔고 사트로누스가 그 속도에 맞춰서 걷거나 달리기로 했다.
프라우디에는 승마에 능숙하지 않아서 마차에 태웠고 호위인 자네인도 프라우디에 옆에 얌전히 앉혀놓았다.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해 앞쪽은 전투며 상황파악에 능한 기사들이 자리했고 카이엔은 마차 옆에서 바이스, 에빌과 함께 말을 타고 가기로 했다.
기껏해야 오고 가는 것을 포함해 일주일 정도 될 것이고 대형 몬스터의 흔적이나 어느 무리가 이동한 흔적을 발견하면 일행을 나누어서 추적을 하기로 이미 정한 뒤였다.
그렇게,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탐색대가 방벽을 넘어 검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숲은 가르간트와 아이칸트라 제국의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땅을 칭하는 이름이었다.
수많은 몬스터들의 서식지인 그곳으로부터 땅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은 거대하고 높은 벽을 세웠다.
그래서 그곳을 검은 숲이라고 불렀다.
나무도 땅도 방벽 밖과 그리 다를 점은 없었지만, 저 깊숙한 곳은 여전히 인간이 알 수 없는 미개척지였으니까.
몬스터의 이동경로를 확인하고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세력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그간 정리해놓은 자료가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도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일어났다.
부디 이번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탐색대에 속한 모두가 바랐다.
이번엔 카이엔 말고 다른 외부 손님도 함께 하는 조사였으니까.
프라우디에가 연금술사란 말을 다들 듣긴 했지만 지금까지 프라우디에가 뭔가를 만드는 모습도 본 적이 없을뿐더러 겉만 봐선 힘 없고 약한 어린애였으니, 그들이 걱정하는 게 옳았다.
방벽 근처까지 다가오는 몬스터는 거의 없었기에 탐색대는 키 작은 풀들을 밟아가며 길을 나아갔다.
자주 가는 길이 따로 있기에 중간중간 지도를 확인하면서 천천히 이동했다.
마차 창문을 열고 프라우디에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카이엔에게 물었다.
“저는 언제 내릴 수 있어요?”
“아마 쉴 때쯤?”
“에…”
“안전한 거 확인하고 내려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왕자님은 마차 안 타세요?”
“사트로누스가 날 제대로 호위하려면 마차 안 보단 밖이 나아.”
“으르릉.”
카이엔의 말에 화답하듯 사트로누스가 짖는 소리를 냈다.
말에 타고 움직이고 있는 중이라 카이엔은 팔을 뻗어 사트로누스를 쓰다듬을 수 없었다.
사트로누스는 상급, 까진 아니어도 나름대로 강한 축에 속하는 몬스터인지라 약한 것들은 사트로누스가 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이상 일행에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 것이었다.
프라우디에에겐 미안하지만 다 이유가 있어서 동행을 허락한 거였다. 남작은 그래도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기사들도 검은 숲에서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데에는 도가 튼지라 전투에도 능했다. 그리고 카이엔에게도 능력이 하나 있지 않은가.
몬스터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
그래서 근처에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작은 혼잣말이나 중얼거림마저 그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 시간정도 이동한 끝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드디어 마차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프라우디에는 몸이 찌뿌둥했는지 나오자마자 기지개부터 켰다.
“으음, 검은 숲의 공기도 바깥과는 크게 다르지 않네요?”
“아, 그래? 압박감이 느껴진단 사람도 있던데.”
“정말요?”
“응. 그냥 단순히 긴장해서였던 걸지도 모르겠네.”
“땅의 색깔도 그렇게 짙은 편도 아니고… 마력도, 으음.”
프라우디에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라우디에가 계속 고민하게 내버려두고 카이엔은 사트로누스에게 다가갔다.
모처럼 오게 된 넓은 공간이었다.
사트로누스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좀 달리다가 올래?”
“크헝.”
- 네가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바이스도 있고 미덥진 않지만 에빌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카이엔…!”
옆에서 에빌이 마음에 상처를 입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봤지만 카이엔은 냉담했다.
무릎을 굽혀 사트로누스와 시선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니 사트로누스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서 카이엔의 뺨에 코 끝을 비볐다.
- 난 괜찮다.
“답답할 거 아냐.”
-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몬스터들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짖는 소리를 낼 때도 있지만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범위 내에서 소리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땐 꼭, 텔레파시라도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카이엔은 사트로누스의 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항상 미안해.”
기사들은 몇 명씩 조를 짜서 근방을 순찰하고 돌아왔다.
그들이 돌아오고 나서 탐색대는 다시 이동했다.
이전에 탐색했던 곳 위주로 한 번 더 확인하면서 순찰 다녀온 조가 무언가 발견한 것이 있으면 추가하는 식이었다.
토벌 땐 여기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방향을 잡고 공격을 감행하는 식이었다.
남작의 걱정이 무색하게 탐색대의 하루는 평탄하게 흘러갔다.
이동할 땐 말을 타고왔던 카이엔은 그의 몫으로 비워둔 마차가 하나 있었기에 그 안에서 자게 되었다.
사트로누스도 함께 마차로 들어갔고 바깥은 바이스와 에빌이 지키게 되었다.
기사단에서 불침번을 정했지만 바이스는 에빌을 따로 불러서 시간을 나눠서 마차를 지키자고 제안했다.
“음, 역시 아직 카이엔이 많이 위험한가 봐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확률은 낮겠지만… 만약이란 것이 있으니까요.”
“바이스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물론 카이엔은 밖에서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넓은 마차 바닥에 깔린 담요를 만져보다가 사트로누스가 자리를 잡고 눕자 가만히 그 등 위에 몸을 뉘였다.
이러고 있을 땐 꼭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사트로누스는 그때랑 덩치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비해 그는 쑥쑥 자라서 벌써 어른이 되었지만.
“…잘자.”
- 그래.
카이엔이 잠든 뒤에도 사트로누스는 멀쩡히 눈을 뜨고 있었다.
잠을 자긴 자되, 옅은 잠을 끊어서 자면서 밤을 보냈다.
그가 돌보는 아이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커졌지만 아직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지켜야 할 아이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
탐색 이틀째. 코볼트 무리와 마주쳤지만 짧은 전투 끝에 무찌를 수 있었다.
사트로누스가 울부짖는 소리를 내면서 코볼트 무리에게 달려들어 중앙부터 전열을 찢어놓았고 기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코볼트들을 처리했다.
다 처리한 뒤엔 프라우디에가 쪼르르 앞으로 달려나와 엉망이 된 코볼트 시신 속에서 연금술에 쓸만한 재료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피가 흩뿌려진 대지에 누워있는 코볼트들의 모습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목이 잘려있는 놈은 기본이고 육신이 두 동강 나서 내장을 뽐내는 녀석들도 많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프라우디에는 장갑을 끼고 코볼트의 머리통을 들어 입을 벌리더만 가방에서 꺼낸 니퍼로 코볼트의 이빨을 뽑았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은 경악했다.
프라우디에는 뽑아낸 송곳니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어디에 써야할지 감이 안 잡혀요.”
“일단 몇 개 가져가봐. 모아놓으면 쓸 데가 있겠지.”
“그렇겠죠?”
카이엔이 말하자 프라우디에는 환한 얼굴로 다른 코볼트의 시체에서도 이빨을 뽑고 손톱이며 가죽을 채취했다.
혼자 하기엔 양이 많았기에 다른 기사 몇 명이 나서서 도와주자 금방 모을 수 있었다.
남은 시체는 땅을 파서 묻은 뒤 탐색대는 다시 이동했다.
코볼트 말고 다른 몬스터와도 마주쳤지만 그들은 탐색대를 보자마자 도망쳐서 굳이 그 뒤를 쫓지는 않았다. 몬스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카이엔은 몬스터들이 도망치면서 내뱉은 한 마디를 들었기에 추적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프라우디에는 검은 숲에 들어오면 많은 몬스터들과 만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주칠 일이 적어서 적잖이 실망했다.
“그래도 위험한 일이 생기는 걸 바랄 수는 없으니까요. 그쵸 잔느?”
“안전한 게 좋아.”
“으음, 역시 토벌에도 따라가고 싶어요.”
토벌은 몬스터가 안 보이면 찾아서라도 사냥할 테니까.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프라우디에는 카이엔의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사트로누스는 카이엔의 옆을 나란히 걷고 있었다.
아무리 몬스터와 말이 통한다고 해도, 사트로누스의 경우는 굉장히 특이했다.
소금이야 멋대로 한다고 해도 워낙 작으니 카이엔이 제지할 수 있지만 사트로누스의 경우엔 소금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근본이 위험한 몬스터였으니까.
과거 어린 왕자가 겪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그도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백작님은 왜 나를 여기로 보냈을까?’
단순히 연구를 위해서?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연구 따윈 본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그는 그곳에 있었으니까.
바깥으로 나와 자유를 얻은 것은 좋았지만 왠지, 꼬리를 자르려고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프라우디에의 고민은 바깥에서 카이엔이 내지른 외마디 비명으로 인해 단숨에 뚝 끊겼다.
“으왁!”
난데없이 카이엔이 비명을 지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당사자인 카이엔은 하늘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져 자신의 머리를 치자 놀라서 소리를 지른 것이었는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바닥을 보니 사트로누스가 하늘에서 떨어진 걸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물고있었다.
거무죽죽한 가죽같은 것이었는데…
“…박쥐?”
대낮에 박쥐가?
카이엔은 얼떨떨해서 사트로누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 위에 사트로누스가 조심스럽게 박쥐를 올려놓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걸로 봐선 죽은 건가, 싶었는데 약간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다친 건지 날다가 힘이 빠져서 추락한 건지.
가만히 박쥐를 보다가 카이엔이 바이스를 불렀다.
“바이스. 이 녀석 담아둘만한 데 있어?”
“가방에라도 넣어둘까요?”
“상자 같은 건?”
“아, 왕자님. 저한테 빈 상자가 있어요.”
“부탁할게, 프라우디에.”
프라우디에가 얼른 대답하자 카이엔은 프라우디에에게 박쥐를 내밀었다.
마차 밖으로 양손을 뻗어서 박쥐를 건네받은 프라우디에는 가지고 온 상자 안에 손수건을 깔고 박쥐를 내려놓았다.
상자를 닫으면 숨을 못 쉴 테니 그대로 뚜껑을 열어둔 채로 마차 좌석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 다친 데가 있는지는 마차가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걸 멈춘 뒤에나 자세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왕자님, 머리는 괜찮으세요?”
“응? 어… 그냥 좀 놀란 것 뿐이야. 다친 덴 없어.”
“다행이에요. 깜짝 놀랐거든요.”
“큼…”
그제야 소리를 질렀던 게 떠올라서 카이엔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져서 머리에 부딪혔는데!
다행히 박쥐가 높이 날던 상태가 아니라, 비실비실하면서 저공비행을 했던 모양인지 부딪친 머리가 많이 아프진 않았다.
일행은 휴식시간이 되어 움직이는 걸 멈추었다. 카이엔이 말에서 내려오자마자 바이스가 달려와서 그의 머리부터 확인했다.
아무 말도 없이 냅다 머리통을 붙잡으니 카이엔은 속절없이 바이스에게 휘둘리고 말았다.
“악! 너 뭐하는 거야?!”
“머리부터 봅시다. 흠, 다행히 멀쩡하시군요. 왕자님 머리가 단단한 건지 박쥐가 연약한 건지.”
“너…”
“안 다치셨으면 됐습니다. 보통 머리에 높은 데서 떨어진 것을 맞으면 죽을 수도 있거든요. 상처도 없으니 안심입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정말 카이엔이 다쳤는지 여부만 확인할 생각이었던 건지 바이스는 쌩하니 가버렸고 그의 옆에는 에빌만이 남았다.
“어… 너 괜찮냐?”
“괜찮지만 괜찮지 않다.”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에빌에게 카이엔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바이스가 가고나서 다가온 건 프라우디에였다. 나무 상자에 담은 박쥐를 보여주기에 카이엔이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보여? 다친 걸까?”
“아무래도 많이 굶은 것 같아요. 제 추측이긴 하지만요.”
“박쥐는 뭘 먹지?”
“벌레 아닐까요?”
“여기서 벌레를 구할 순 없는데… 일단 이것저것 줄 테니까 잘 먹는 거 있으면 말해줘. 더 챙겨줄게.”
“네.”
구조한 박쥐를 돌보기로 하고 카이엔은 기사 한 명에게 다가가서 약간의 물과 과일, 빵, 고기를 조금 받아왔다.
박쥐가 깨면 먹이기로 하고 박쥐를 데리고 있는건 마차에 있는 프라우디에가 해주기로 했다. 카이엔은 말을 타고 이동하니 위치가 많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모닥불을 피우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며 쉴 준비를 했다. 프라우디에가 한쪽에서 쪼그려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카이엔이 가까이 가서 물었다.
“프라우디에? 뭐하고 있어?”
“아, 지렁이라도 잡아보려고요. 먹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지렁이? 있어?”
“아뇨. 없어요.”
가져온 작은 삽으로 땅을 쿡쿡 찌르고 파본 흔적이 뚜렷했다.
아직 박쥐는 깨어나지 않았다면서 프라우디에는 카이엔에게 박쥐가 든 상자를 건넸다.
“만약 이 박쥐가 일반 박쥐가 아니라 박쥐 '몬스터'라면 왕자님 옆에 있는 게 더 좋을 거예요.”
“그 말도 맞네. 일반 박쥐면 좋겠다.”
몬스터면 말이야 통하겠지만 상황이 더 복잡하게 흘러갈 수도 있으니까.
푸념하는 그를 보며 프라우디에는 밝게 웃었다. 검은 숲을 이동하는 게 힘들지 않은 건지 계속 표정이 밝았다.
“힘들지 않아? 마차타는 것도 지루할 텐데.”
“본가에서 세자르까지 오는데도 엄청 오래 걸렸는걸요. 이 정도쯤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몬스터가 많이 나오거나 신경써야 할 게 많은 강행군이면 기사들도 돌아오고 나선 앓아눕곤 하니까.”
“저는 편하게 마차만 타고있는걸요. 전투가 있어도 잔느가 나서줄 테고요.”
“하긴.”
“박쥐가 빨리 깨어나면 좋겠어요.”
그 말을 남기고 프라우디에는 마차로 돌아갔다.
카이엔이 박쥐가 든 상자를 가지고 오자 에빌이 박쥐를 힐끗 보더니만 물었다.
“아직 안 깼네?”
“그런가 봐.”
“지쳤나 보다.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땅에 박쥐라니. 분명 비행형 몬스터도 있다고 했지?”
“이쪽에는 없지만 제국과 가까운 쪽엔 상당수 있다고 들었어.”
“이야, 그쪽에서 도망쳐 온 건지도 모르겠다.”
근거없는 추측이었지만 에빌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박쥐는 야행성이니까 밤에 깰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물이라도 두는 게 낫겠어.”
“아, 그래야겠다.”
어차피 그는 마차 안에서 사트로누스와 잘 테고 상자는 좌석에 올려놓을 테니까, 물 그릇과 먹을 것을 조금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녁식사 후 카이엔은 물이 담긴 작은 그릇과 사과 하나, 빵 한 조각, 육포 한 조각을 박쥐를 넣은 상자 근처에 두고 잤다.
그걸 본 사트로누스가 뭐하냐는 눈으로 쳐다봐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했다.
“설마… 아침에 눈 떴는데 죽어있는 건 아니겠지?”
- 재수없는 소리말고 잠이나 자라.
“응… 알았어.”
사트로누스의 꾸중에 카이엔은 고개를 푹 숙였다.
검은 숲의 바람은 차가웠지만 사트로누스의 옆에서 자니 체온이 전달되어 좀 더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자정을 넘어 새벽, 상자 안의 박쥐가 조금씩 움직였다.
부스스 몸을 일으킨 박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버둥거리며 상자에서 나왔다.
덕분에 가까이 있던 물그릇에 얼굴을 처박곤 깜짝 놀라 펄쩍 뛰었고, 곧 그것이 물이 든 그릇이란 걸 알아차리곤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다.
날개를 몇 번 퍼덕이는 것도 잠시, 박쥐는 천천히 사과 쪽으로 이동했다.
사과에 작은 이빨 자국이 몇 개 남았다.
“…….”
작게 끼잉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박쥐는 그 자리에 철퍼덕 엎어졌다.
그 모습을, 사트로누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카이엔을 깨울까 하다가 박쥐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말해줘도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