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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7화 (8/219)

-7화

연구실이 완성되어서인지 프라우디에는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이후에 찾아올 사냥과 토벌을 대비하려는 건지 시장에도 가지 않았고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는 모양이었다.

취미가 통한 건지 페이리가 이따금 프라우디에를 만나러 가는 모양이라 살짝 귀띔을 해줬다. 자네인은 프라우디에가 연구실에만 있으니 그 밖을 지키거나 안에서 같이 책을 읽는다고 했다.

이따금씩 훈련장에 모습을 비추긴 하지만 오래 있다가진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흠.”

토벌이 언제더라.

이번엔 그도 갈 테고 에빌을 데려가서 구경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프라우디에도 살아있는 몬스터를 직접 보고 싶어하니 갈 거고.

어쩐지 점점 인원이 늘어나는 것 같았다.

토벌, 이라고 해도 그는 뒤쪽에 있을 테니 직접적인 전투를 볼 일도 없을 테지만. 정확히는 군대가 이미 쓸고 지나간 터만을 지나갈 확률이 높았다. 프라우디에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손님을 앞에 서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만히 있던 카이엔이 앞에 놓인 책을 덮었다.

바이스가 교양공부랍시고 가져온 책은 너무나 지루해서 저절로 눈이 감길 정도였다. 그가 책을 덮는 소리에 꽃병의 꽃을 손보던 바이스가 고개를 돌렸다.

“다 읽으셨나요?”

“아니.”

“흠, 재미가 없으셨나봅니다.”

“네가 읽어보고 가져온 거야?”

“네. 그 정도 교양은 갖추고 계셔야 멋진 왕자님이 될 수 있답니다.”

“왕자님은 무슨…”

계속 말하기도 입 아프다며 카이엔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더 이상 그가 왕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 국왕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갔을 텐데 아무런 제지도 안 하는 건 그래도 쥐꼬리만한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그런 건지, 단순히 귀찮아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믿고 따라주는 건 좋았다. 그러나, 그가 지켜줄 수 없는 선 밖으로 나가는 것만은 두고볼 수 없었다.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있는 겁없는 시종인 바이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왕이 되고 싶으시면 말씀만 하세요. 전 물심양면으로 도울 테니.”

“필요없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제발 좀 조용히 살자. 난 더 이상 그쪽이랑 엮이고 싶지 않아.”

“그쪽에서 왕자님을 조용히 내버려 둘 리가 없죠. 사실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던 것도 다 제가 처신을 잘 해서 생긴 일인데.”

“그래, 다 네 덕이다.”

한숨 섞인 대답에도 바이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카이엔은 말없이 턱을 괴었다. 저 녀석 덕분에 일어나지 않은 일도 있겠지만, 일어난 일도 꽤 많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

카이엔은 영주성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지 않았다.

어렸을 땐 안전 문제로 인해서였고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그가 밖을 돌아다니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 봐 외출을 삼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 나가는 건 아니었다.

영주성의 공간은 한정적이었고 사트로누스는 커다란 만티코어였으니 가끔은 답답함을 느꼈으니까. 그때마다 카이엔은 사트로누스에게 목줄을 채우고 거리를 구경갔다.

사트로누스는 현명한 몬스터였기에 카이엔의 손에서 얌전히 산책만 했다.

처음에 남작이 산책을 권유했을 때 사트로누스의 목줄을 채우고 거리로 나갔을 때, 영지민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곁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과 너무나도 얌전한 사트로누스를 보고 금세 그 모습에 적응하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와중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걸어갔으니. 부끄러움은 오로지 카이엔의 몫이었다.

이젠 시간이 꽤 지났고 사트로누스 말고도 소금이를 데리고 함께 산책나가는 일도 종종 있었기에 그들은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오늘도 카이엔이 산책을 나가려고 서랍에서 사트로누스 용 목줄을 꺼내자 탁자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있던 소금이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찌-”

- 나가냐?

“응. 산책 좀 하려고.”

“찌익.”

- 나도!

“너도? 갈거야?”

소금이는 그 작은 머리를 열심히 끄덕였다.

한숨을 쉬며 카이엔은 탁자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소금이는 카이엔의 손바닥 위부터 시작해서 팔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안착했다.

물론 이 상태로 산책을 나가진 않을 것이다.

사트로누스가 있는 바깥에 나가면 소금이는 사트로누스의 머리 위에 올라탄 채로 거리 구경을 할 것이다.

소금이를 어깨에 태우고 정원으로 나가니 그들을 발견한 사트로누스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릉.”

- 뭐야.

“아, 소금이도 같이 나간대.”

그 말에 사트로누스는 고개를 홱 돌렸다.

같이 가기 싫다는 뜻이었지만 카이엔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서 사트로누스에게 목줄을 채웠다.

물론 목줄을 채워도 사트로누스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나가기라도 한다면 카이엔에겐 붙잡을 힘이 없었다. 목줄을 채운 뒤 사트로누스의 머리에 소금이를 올려놓았다.

소금이는 기분이 좋은지 찍찍거리면서 사트로누스의 털을 휘적거렸다.

“찍!”

- 가자!

“그래, 천천히 나가자.”

사트로누스는 불만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가기 싫다면서 버티진 않았다.

카이엔이 목줄을 잡고 사트로누스의 머리 위에 자리잡은 소금이를 주시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저택의 입구에 도착하자 미리 나와있던 바이스와 에빌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조촐하기 그지없는 호위였다.

“와, 이게 이 동네 명물인 산책하는 만티코어구나.”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여기 막 왔을 때. 주점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지.”

“하….”

“재밌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다니. 너도 참.”

“시끄러워.”

에빌의 말에 카이엔은 창피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다들 이야깃거리로 삼는 건지, 원.

여기 사는 사람들은 질리도록 봤을 광경이었을 텐데.

소금이가 머리 위에서 신나게 찍찍대는 소리를 내도 사트로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바깥 바람을 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고 가끔씩은 카이엔이 다른 인간들과 마주치는 일도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있는 탓이었다.

카이엔은 자신이 사트로누스를 산책시킨다고 생각하고, 사트로누스는 자기가 카이엔을 산책시킨다고 생각하는 기묘한 순간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그들을 발견한 건 주변에서 신나게 놀고있던 어린아이들이었다. 나뭇가지를 들고 칼싸움을 하던 아이들이 카이엔을 발견하자 와,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왕자님!”

“왕자님이다!”

“하아…”

애들한테까지 짜증내고 싶지 않았는지 카이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봤으면서도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

“왕자님!”

“놀러오셨어요?”

“산책이다.”

“와, 소금이다!”

“귀엽다!”

“왕자님, 소금이는 언제 커져요?”

“얘는 이게 다 큰거야.”

“에에-”

아이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카이엔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모습에 에빌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바이스는 미소를 지으며 에빌에게 소곤거렸다.

“하도 많이 마주치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아아… 상상도 못 한 일이라서요.”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카이엔은 왕자. 왕족이었다.

그런 사람이 흙먼지 뒤집어쓰고 놀고있는 평민 어린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에빌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바이스의 말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카이엔의 등장을 반가워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소금이와 사트로누스에게도 손을 흔드는 걸로 봐선 익히 아는 사이인 모양인데 멀리서 인사만 할 뿐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카이엔을 사트로누스의 목줄을 약하게 두 번 잡아당겼다. 그 신호에 사트로누스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어… 시끌벅적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네?”

“사트로누스는 얌전해도 몬스터니까. 가까이 오면 안 된다고 계속 말했어. 학습의 효과지.”

“그래도 어딜 가든 개구쟁이 녀석들은 있기 마련인데.”

“객기 부려봤자 한 입 거리인데.”

“헉…”

맞는 말이었다.

에빌은 마른 침을 삼켰고 카이엔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제야 농담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에빌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진짜 놀랐잖아!”

“맞는 말이긴 하잖아. 기르는 개조차도 불시의 상황에 제어 못하는 게 개주인인데 몬스터는 더 하지. 사트로누스는 현명하고 말도 통하는 녀석이지만 굳이 위험한 일이 생기도록 할 필요는 없지.”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걷게 되니 주변에 보이는 민가며 가게의 숫자가 늘어났다.

활발히 움직이던 주민들은 산책하러 온 카이엔과 목줄이 잡힌 사트로누스를 보곤 이내 고개를 돌려 제 할 일에 몰두했다.

왕자님이 산책 나오는 일은 옛날부터 있었으므로, 이미 적응을 한 것이었다.

개중 몇몇 사람은 그들에게 반갑게 말을 걸기도 했다.

“왕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애들한테 줄 간식거리 어떠십니까? 이번에 괜찮은 고기가 들어왔는데.”

“여기 씨앗류도 있습니다요!”

“와… 인기 많네, 카이엔.”

“시끄러.”

에빌의 감탄에 카이엔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쏟아지는 시선에는 이제 익숙해졌기에 카이엔은 목줄을 쥔 손에 힘을 주고 고개를 돌려 주변 상가들을 확인했다.

사트로누스는 그의 걸음에 맞춰서 걷는 속도를 조절해줬기에 편했지만 문제는 소금이었다.

“찌이-”

들리는 소리는 작은 찌, 소리 뿐이었지만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범위에서 내는 소리는 더 많았다.

그 결과, 다른 이들의 귀에는 '찌이' 정도의 말소리가 카이엔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 저기! 저쪽으로 가보자!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여긴 언제 봐도 인간이 참 많다!

“어, 그래… 간식 사줘?”

“찍.”

- 간식? 줄거냐?

“어. 먹고 싶다고 하면 사줘야지. 많이는 안 사주지만.”

소금이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고민하는 것 자체가 간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뜻이기에 카이엔이 조용히 바이스에게 말했다.

“소금이 먹일 간식 조금만 사다 놔.”

“네.”

“사트로누스 넌?”

“으릉.”

- 필요 없다. 좀 더 걷다 돌아가자.

“그래. 넌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사트로누스가 달릴만한 넓은 평지가 이곳에는 없었다.

기껏해야 검은 숲의 방벽 안쪽으로 들어가거나 마차를 타고 마을과 시가지 밖을 빠져나오는 수 밖에 없었는데, 양쪽 다 위험도가 높았다.

결국 드넓은 대지를 달려야 하는 만티코어는 카이엔의 곁을 지키면서 한번씩 하는 산책 정도가 가장 넓은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이 되어버렸다

.

마을을 한 바퀴 빙 도니 거리에서 놀고있던 아이들이 그들을 발견할 때마다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인사를 건넸다.

표정을 보아하니, 카이엔이 사트로누스를 만지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고있는 것 같았다. 물론 카이엔은 인사에만 화답해줬다.

사트로누스는 느리게 걸으면서 중간중간 하품을 했고 그럴 때마다 소금이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트로누스의 털을 꼭 잡고있어야만 했다.

“찌이이!”

- 하품 좀 그만해라! 나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물론 소금이의 저 비명을 사트로누스가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카이엔도 통역해주지 않아서 소금이는 열심히 혼자서 궁시렁거렸다.

짧은 산책 후 사트로누스는 바로 정원의 제 구역에서 저녁밥을 받았고 소금이는 바이스가 사다준 씨앗이 간식통에 담기자 계속 그 주변을 맴돌았다.

누군가 열어줘야만 꺼내먹을 수 있는 구조였고 뚜껑은 소금이 혼자 힘으로 들기엔 너무 무거운 탓이었다.

“무슨 씨앗이랬지?”

“말린 호박씨 입니다.”

“두 개 쯤 꺼내주면 되려나?”

나무로 만든 간식 통의 뚜껑을 열고 카이엔이 호박씨를 두 알 꺼내 소금이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바로 소금이는 튼튼한 앞니로 호박씨의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일단 한쪽 면을 둥글게 물어뜯고, 그 다음에 반대편의 껍질을 뜯어내니 그 안에서 녹색의 씨앗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엔이 점점 부풀어오르는 소금이의 뺨을 보고있으니 바이스가 말했다.

“왕자님도 식사하실 시간이 다 됐습니다만.”

“방에서 먹을래.”

“가져오겠습니다.”

바이스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가니, 카이엔은 소금이가 있는 탁자로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소금이에게도 저녁밥을 줄 시간이라 씨앗이며 곡식가루를 으깨어 반죽하고 말린 덩어리 몇 개를 꺼내 옆에 내려놓았다.

뱃속이 아닌 뺨의 주머니만을 가득 채우는 것 같은 소금이를 보고있으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른 먹지, 뭘 그리 저장해놓고 있는거야?”

- 나중에 먹을 거다.

먹는 중이라 찍, 하는 소리는 못 내고 소금이는 카이엔에게만 해석되어 들릴법한 소리를 냈다.

소금이가 저녁식사를 거의 다 해결할 때 쯤이 되어서야 바이스는 저녁 식사를 가지고 돌아왔다. 테이블이 점점 채워지자 카이엔은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디저트로 준비된 구운 사과 샐러드를 보고 카이엔이 물었다.

“소금이한테 사과 줘도 되려나?”

“버터가 들어가서 안 됩니다.”

“음, 그럼 다음에 생과일이나 조금 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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