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왕자는 조용히 살고싶다
-프롤로그
고요한 밤이었다.
달빛 한 점 보이지 않는 까만 하늘에 세상 온 천지가 검게 물들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잠에 빠진 것만 같았다.
그때 세계는 마치 뚜껑이 덮인 관 속만큼이나 적적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눈 떠 있는 자는 밤을 벗 삼아 살아가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경비를 서는 자들뿐이었을 터였다. 그래야만 했다.
두꺼운 커튼으로 모든 창문이 꽁꽁 싸매여있었다.
작은 몸 하나만을 누이기엔 너무나도 큰 침대 위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자그마한 굴곡이 있었다.
몸을 웅크린 채 잠든 소년에겐 깜깜한 밤의 어둠이 드리워져있었다.
사방이 막혀있으므로 비단 밤이 선사하는 어둠만이 존재하는건 아닐터였다.
빛조차 소년의 잠을 깨우지 못하게 철저히 닫힌 창문이며 굳게 닫힌 문.
싸늘한 방 안에 오직 온기를 가진 건 여덟살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소년 뿐이었다.
그런 공간에, 작은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결코 작은 소리가 아니었지만 건물 벽을 타고 넘어 복도를 지나 문틈을 타 저절로 줄어든 소리였다.
들릴 듯 말 듯한. 귓가에서 벌레가 윙윙대는 소리보다 훨씬 부드러운 소음이었음에도 소년은 흠칫 몸을 떨며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더듬어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등잔이나 촛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그가 불을 켤 수 있을 리 없었다.
가만히 몸을 일으킨 채 소년은 침대 위에 정좌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이 가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의 울음소리인 것만 같았다.
누군가 울고 있었다.
“그르르릉….”
상념은, 곧 깨졌다.
짐승이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육중한 무게를 가진 무언가가 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이 들썩였다.
쿵!
쿵!
쿵!
소리가 몇 번을 더 이어졌다. 이음새가 헐거워진 건지 몇 번의 굉음 끝에 문이 떨어져나갔다.
열린 문 틈으로 바깥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짐승의 냄새와 피 냄새가 함께 섞여들어왔다.
아직 공기가 쌀쌀한데도, 함께 들어온 그것은 뜨뜻하면서도 습했다.
그것은, 네 발 짐승의 모습이었다.
공격을 당한 건지 찔린 상처며 화살이 꽂힌 부분에서 피가 줄줄 새고있었다.
죽지 않은 눈빛이 침대 위의 소년을 향했다. 또 다시, 그것이 울부짖었다.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소년은 손을 뻗었다.
***
“젠장, 대체 어디서 그런 괴물이 들어와서는…!”
“회의 때 보일 실험이니 뭐니 하는 용도로 들여왔다나 봐. 제대로 무력화시켰다고 하더만, 틀린 모양이고.”
“제발, 제발 시체라도 남아있어야 할 텐데…!”
보고가 꽤나 늦었고 덕분에 출동시간 또한 늦어지고 말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왕성에 몬스터 한 마리가 ‘생포’되어왔다.
그놈이 하필이면 오밤중에 탈출을 했고 하필이면, ‘왕세자’의 궁쪽으로 향했단다.
바보가 아닌 이상 무슨 음모가 있을 게 뻔하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다만 그 사실을 입 밖에 낼 정도로 무모하고 용기있는 자는 그들 중에 없었다.
기사들은 검과 방패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저, 그들이 발견하게 될 작고 어린 왕세자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마저도 헛된 소망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변종 만티코어의 후각이 다른 짐승보다 뒤떨어질 리가 없다.
인간의 살 냄새를 놓칠 리가 없었다.
왕세자 궁에 도착하니 엉망이 되어 널부러진 병사들이며 기사들의 시체는 하나같이 처참했다.
앞발질 한 번에 모가지가 꺾여버린 사람이며, 발톱에 내장까지 꿰인 듯이 반쯤 뱃속이 비어있는 자들도 있었다.
무장한 스무명의 기사들 중 네 명이 각자 입구와 출구를 막기로 하고 나머지 열여섯이 왕세자궁의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와 계단에는 마찬가지로 습격당한 이들의 시신이 있었다.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자를 지혈하고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자들을 바깥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일행에서 다시 세 명이 줄어들었다.
열셋이 된 일행이 마른 침을 삼키며 계단을 올라갔다.
어린 왕세자의 방은, 3층에 있었다.
뻥 뚫린 문을 보고 그들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 안에서 나는 피 냄새에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켜야만 했다.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마지막 희망을 품은 채 그들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방에선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약간 열린 커튼의 틈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마저도 방 안을 확인하는 데에는 한참 모자랐다.
들고있던 등불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어린 아이가 눕기에는 과할 정도로 넓은 침대 위에, 보랏빛 털을 가진 변종 만티코어가 몸을 만 채 누워있었다.
두 앞발을 포개어놓고 머리 아래에 둔 채. 그것은 몸을 구부리고 그 안에 무언가를 품고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아직 어린 왕세자가 그곳에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두렵거나 겁먹은 기색도 없이.
소년은, 마치 가까운 사람의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거대한 만티코어의 등을 베고 누워 잠든 채였다.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고 움직이지 못했다.
자칫 잘못해서 저 괴물의 잠을 깨웠다간 놈이 바로 어린 왕세자의 작은 머리를 집어삼켜버릴까 봐.
자고 있는 것 같은 놈이 어느 순간 갑자기 깨어나서 품 안의 작은 아이를 해칠까 봐. 그들은 겨우 문턱을 넘어선 지점에 서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모두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살아있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