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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159화 (160/165)

159화

30분 뒤.

현장에 도착한 수 대의 구급차들로 인해 도로는 완전히 통제 상태가 돼 있었다.

부서져 버린 가드레일 아래로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구급 요원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고, 그들 주변으론 검은색 미니밴 한 대가 처참히 전복돼 있는 상황.

그리고, 스키드 마크로 여기저기 엉망이 돼 버린 도로 위에서 그 참혹한 현장을 구세희가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고객님의 사정으로 통화가 연결되지 않아…….”

벌써 수십 번째 누르고 있는 하준의 전화번호.

그러나 눈물로 엉망이 돼버린 구세희의 절박한 마음과는 달리 하준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려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제발…… 제발 좀 받아, 유하준.”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 맞은편엔 누군가의 명함이 들려 있었고, 구세희는 재차 통화를 연결시키며 그곳에 적힌 이름 세 글자에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대표 이사 유하준]

자신이 서 있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들려왔던 엄청난 굉음들.

놀란 마음에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다가가 본 구세희는 순간 충격에 휩싸일 수밖엔 없었다.

가드레일을 뚫고 절벽 아래에 전복돼 있는 해당 차량은 불과 몇 분 전 자신을 빠르게 지나갔던 그 검은색 미니밴이었고, 자신을 지나치던 그 순간 혹시나 하준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찰나에 스쳐갔던 생각이었을 뿐.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여기며 구세희는 곧바로 999에 연락해 사고 현장의 구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간 현장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는데.

갑자기 카메라를 든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대뜸 명함 하나를 건네 왔다.

그와 함께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을 같이 전해왔다.

“저 사고 차량 안에 있는 남자, 당신을 만나러 여기까지 온 거였어요. 마치 무슨 일이 생길 걸 알고 있다는 듯 내내 다급해 보였는데…….”

그가 건넨 명함은 다름 아닌 하준의 명함.

그 순간 구세희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수밖엔 없었다.

설마 했던 자신의 생각이 현실이 돼 버린 것은 물론,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말 때문에.

‘제발, 제발 나오지 마.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나오지 마, 제발. 제발…….’

차량 문을 뜯어내고 운전석에 있던 사고자를 조심스럽게 밖으로 빼내고 있는 구급 요원들.

구세희는 부디 그 남자의 말이 모두 거짓이길, 저들의 손에 이끌려 나오는 이가 부디 한국인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며 낭떠러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눈앞에 드러난 광경으로 인해 그 생각들은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야 말았다.

“하아…….”

구급용 접이식 들것에 실려 리프트 줄에 이송되고 있는 남자.

그가 하준이란 걸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자 구세희는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제발 아니길 바랐던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져 버린 지금, 구세희는 충격에 눈물조차 흐르지 않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옆으로 한 여자가 다가왔다.

이 모든 사태의 전말을 파악한 뒤, 구세희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임조하였다.

* * *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대표님이…….”

“대표님한테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거죠? 수술 잘 끝내시고 저희랑 같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죠? 그쵸……?”

하준의 수술이 진행 중인 수술실 앞.

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멤버들과 세련은 곧바로 병원을 찾았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듣고 난 뒤엔 모두가 절망적인 모습들이 되어 있었다.

넋을 놓아 버린 구세희의 옆으로 세련이 다가와 두 손을 꽉 맞잡았다.

“걱정 마. 하준이 수술 잘돼서 꼭 다시 일어날 거니까. 처음 발견됐을 때도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며.”

“…….”

모든 게 자기 탓이라 여기고 있을 구세희는 표정에 어떠한 미동도 없는 상태.

지금 그녀가 어떤 심정일지 세련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너 유하준 몰라? 걔가 여태껏 우리한테 언제 한번 약한 모습 보인 적 있었어? 난 걔를 십수 년 봐오면서도 아프다고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게 금방 퇴원할 거니까 얼른 수술 잘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자. 응?”

세련의 얘기에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던 구세희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흐르기 시작했다.

세련의 말처럼 지금껏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하준.

분명 살아온 삶이 자신보다도 더 힘들고 외로웠을 텐데도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의젓한 모습만을 보여왔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자신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시시콜콜 다 하준에게 떠들어대며 그때의 감정들을 모두 다 털어내 버렸었는데.

자신이 그랬던 그 수많은 날들 중 분명 하준이 힘들었던 날도 있었을 것.

때론 슬프고 또 때론 외롭고 힘든 마음들로.

그런 순간마저도 하준은 티 한번 내지 않고 자신의 기분에 다 맞춰줬던 걸 텐데.

이런 생각들이 차오르자 구세희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흑흑…… 흑흑.”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구세희에게 건넨 세련은 수술실 문을 바라봤다.

도착하자마자 하준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불행 중 다행으로 의식을 완전 잃은 상태는 아니라고.

대형 트럭에 밀려 가드레일을 뚫고 낭떠러지까지 떨어진 위험천만했던 사고에 비하면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차량이 떨어진 장소가 나무들 사이가 아닌 바위틈이었다면 결코 장담할 수 없었을 터.

그렇기에 지금의 수술 또한 그리 심각한 유의 것은 아니었고, 자신이 건넨 위로의 말처럼 머지않아 깨어나 회복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지금의 구세희에겐 조금도 와 닿지 않을 터.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갔다 벌어진 사고였으니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었다.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리며 세련이 구세희에게 말했다.

“일단 하준이 어머니한텐 아직 연락 안 드렸어. 깨어나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이런 소식 들으면 혹시나 크게 충격받으실까 봐. 나중에 하준이 깨어나면 그때 상태 보고 네가 직접 말씀드리거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세련의 얘기에 구세희는 눈물을 닦으며 고갤 낮게 끄덕였다.

그때, 잠시 자릴 비웠던 임조하가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침 VIP 병실이 하나 남았다고 해서 예약해 두고 왔어요. 수술 끝나는 대로 거기로 옮겨 치료받으시면 돼요.”

눈물로 엉망이 돼버린 구세희를 바라보는 임조하의 얼굴 또한 복합적인 감정으로 얽혀 있는 상태였다.

구세희와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이 모든 사태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라고 여길 수밖엔 없는 상황.

애초에 자신이 구세희를 불러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그녀를 만나고자 했던 자신의 목적 또한 모든 전말을 알고 난 지금에 와선 너무나도 부질없는 그것에 가까운 짓이었고.

“임조하 씨랑 같이 있던 그 한국 여자분, 그분 때문이라고 했어요.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걸 알고 있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트럭을 멈춰 세우려고 하더라고요.”

파파라치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만약 그가 트럭을 멈춰 세우지 않았다면, 혹은 커브길 중앙에 멈춰 질주하는 트럭을 막고 있지 않았다면.

이 사고의 당사자는 바로 자신과 구세희가 됐을 거니까.

그가 어떻게 미리 사고를 알고 그곳에 차를 멈춰 세우고 있었는진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임조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가 구세희를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꼭 지키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

지금의 임조하에겐 오로지 그것만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구세희 씨.”

구세희를 내려다보며 임조하가 그녀를 불렀다.

촉촉이 젖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구세희에게 담담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오늘 제가 했던 모든 얘기들은 다 잊어주세요. 아무래도 제가 큰 실수를 했던 것 같네요.”

체념과 승복이 담긴 표정과 함께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제가 들어갈 틈이란 건 조금도 없었던 건데.”

* * *

“수술은 잘 끝났으니까 마취 풀리고 나면 곧 깨어나실 겁니다. 당분간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인 만큼 입원하면서 치료와 회복에 전념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과 함께 의료진이 병실을 빠져나갔고, 그제야 일행들도 내내 졸이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하준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는 상태.

여태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에 멤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없을까요? 이렇게 그냥 지켜만 보는 게 더 괴로운 것 같은데…….”

“대표님 깨시면 드실 음식 같은 거라도 사 올까요? 아, 수술 후에 바로 외부 음식은 안 되려나…….”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 있는 하준을 보고 있자니 모두가 여간 초조한 게 아닌 모양들이었다.

세련이 옅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심각한 수술도 아니었고 그것도 잘 끝났다고 하니까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너네 대표님이 어떤 분인데. 금방 털고 일어나실 거야.”

“……그래도.”

“정 그러면 나랑 같이 나가서 마실 거나 좀 사 오자. 이따 깨고 나면 바로 물부터 찾을 건데 미리 채워두는 게 좋지.”

“아, 네! 좋아요!”

세련이 겉옷을 챙기며 구세희에게 말했다.

“금방 갔다 올 테니까 하준이 좀 보고 있어. 혹시나 그사이에 깨면 바로 연락 주고.”

“응. 다녀와.”

세련과 멤버들이 병실을 빠져나가고 구세희는 하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하준의 얼굴을 편하게 바라본지도.

언제부턴가 계속 피하거나 잠깐씩 눈만 마주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었는데.

더군다나 최근엔 하준에 대한 마음들이 점점 이상해져 더더욱 마주하기가 어렵게만 느껴졌고.

‘이렇게 생겼었구나.’

20년을 넘게 봐온 얼굴인데도 오늘따라 더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사이 생김새가 급격히 변화한 것도 아닐 텐데.

변한 건 자신의 마음이란 걸 구세희는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을 아래로만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부디 무사히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있던 구세희의 손등을 무언가가 포개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에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준의 힘없는 손이 자신의 위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렸던 하준의 뜬 눈을 마주하고 나자 구세희의 두 뺨 위론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유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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