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건너편 편의점 앞에 앉아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있는 한 남자.
그를 발견하자마자 하준은 지체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부디 그의 목에 걸린 카메라가 자신의 추측과 맞아떨어지기를 바라며 하준은 곧바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임조하 씨 보셨습니까?”
하준의 물음에 남자가 눈을 치켜뜨며 위를 올려다봤다.
정상적인 반응이라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질문을 되받아와야 하는 상황.
그러나, 그는 먹던 샌드위치를 바닥에 내팽개치곤 곧바로 도망칠 태세를 갖추었다.
하준은 그의 팔을 강하게 붙잡곤 몸을 돌려 세우며 말했다.
“신고하려는 거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지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 무슨.”
“임조하 씨.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남자의 반응을 보니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7년간 미국에서 활동해 온 하준은 파파라치들의 유형과 그들의 행태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는 바.
만약 이 남자가 파파라치가 맞다면 어제부터 줄곧 이곳에서 상주하고 있었을 거고, 그럼 임조하가 언제, 어디로 갔는지 또한 분명 상세히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파파라치들은 결코 단독으로만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하준의 물음에 그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었다.
지금껏 이 일을 해오며 자신에게 다가와 누군가의 행방을 묻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그렇기에 뭐라 답해야 할지 쉽사리 떠오르지가 않고 있던 것이었다.
강하게 붙잡고 있던 그의 팔을 놓으며, 하준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러곤 가지고 있던 달러 뭉치를 통째로 집어선 그에게 건넸다.
“임조하 씨를 찾고 나면 이 돈의 두 배를 더 드리겠습니다. 일행분이 있다면 그분의 몫까지도 챙겨드리도록 하죠.”
하준이 내민 달러 뭉치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 일순 바뀌었다.
눈앞에 있는 금액만 하더라도 자신이 몇 달간 찍어 보낸 사진값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
게다가 일이 끝나면 여기에 두 배를 더 준다니.
잠시 복잡했던 머릿속이 일순 깔끔하게 비워지는 기분이었다.
“으흠. 그나저나 임조하 씨는 왜 찾는 거죠?”
잽싸게 달러 뭉치를 낚아채며 그가 하준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임조하 씨가 아니라 임조하 씨와 함께 있는 여성분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걸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라.”
“아, 그 예쁘장하게 생긴 한국 여자분?”
역시나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반응에 하준의 얼굴도 한층 더 진지해졌다.
그가 달러 뭉치를 주머니 속으로 쏙 집어넣곤 하준을 올려다봤다.
“뭐, 돈 때문에 내가 이러는 건 아니고 그쪽이 하도 다급해 보이니까 나도 도우려는 겁니다. 알죠? 나중에 가서 폴리스에 신고하느니 어쩌느니 하면 곤란합니다. 예?”
말을 내뱉곤 그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하준에게 말했다.
“지금쯤 꽤 멀리 갔을 거니까 바로 차로 따라붙죠.”
* * *
역시나 하준의 예상대로였다.
호텔 앞 파파라치는 또 다른 누군가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임조하의 뒤를 밟고 있던 상황.
그를 조수석에 태운 하준은 빠르게 도로 위를 밟아나가고 있었다.
“어, 웨이.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지? 거기 그대로 있는 거지?”
하준이 액셀을 밟는 동안 조수석에 그는 임조하 쪽의 일행에게 동선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오케이. 지금 가고 있으니까 자리 비우지 말고 계속 확인하고 있어. 절대 한눈팔면 안 되니까 화장실도 가지 말고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상대방에게 신신당부를 하곤 그가 통화를 종료했다.
“아침 7시쯤이었어요. 그 한국 여자가 호텔에서 나온 게. 임조하는 그 전에 로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요. 회사 차 말고 임조하 개인 차량으로 온 걸 보고는 좀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었죠.”
“…….”
대체 언제 연락을 주고받았던 걸까.
이렇게나 이른 시간부터 만나기로 했다는 건 최소 한쪽이 어젯밤에 연락을 취했다는 건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일단 지금은 외곽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 중이라네요.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니까 아마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은 더 머물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거기까진 얼마나 걸리죠?”
“20~30분이면 가요. 혹시나 자리 옮기게 되면 바로 연락 달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서두를 거 없어요. 절대 놓치는 일은 없을 거니까.”
다행히 동선을 파악한 덕분에 한시름은 놓을 수 있게 됐다.
두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건 아직 무사하다는 뜻이기도 했고.
파파라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운전을 이어가는 동안, 하준은 구세희에게서 보았던 그 끔찍한 사고를 떠올렸다.
중앙선을 침범한 거대 덤프 트럭에 치인 뒤 그대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곤 아래로 떨어져 버린 임조하와 구세희의 차량.
추월조차 할 수 없는 왕복 2차선 도로였기에 그 어떠한 손도 써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차량이 떨어진 곳이 산 중턱에 위치한 낭떠러지였다는 것.
하준의 의식은 자연스레 세 번째 미래 예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임조하는 빠르게 구조가 되지만 구세희는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세련의 울먹거리는 목소리.
어떻게 추락됐기에 그런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제부턴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끔찍한 일들이 애초에 벌어지지 않도록,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야 말 거니까.
“어, 저기 보이네요. 저기 저 흰색 건물에 있는 레스토랑이에요.”
약 20분간 차를 몰고 온 뒤, 드디어 두 사람이 있다는 레스토랑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곽에 떨어져 있는 다소 한산한 분위기의 주차장에 들어서자, 그곳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하준의 차량 쪽으로 시선을 보내왔다.
“저기 나와 있네요.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저 친구한테 가서 상황 좀 파악하고 올 테니까.”
조수석에서 내린 남자가 일행에게로 다가갔고, 하준은 그사이 공터의 주차장을 훑어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어떤 게 임조하 차지?’
넓은 주차장에 주차되어진 차량은 고작 네 대뿐.
그마저도 연식이 오래되거나 7인승 이상의 승합차들만이 주차돼 있었다.
분명 임조하의 개인 차량으로 이곳까지 왔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저 차량들은 임조하의 개인 차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저, 저기…… 이거 문제가 좀 생겨 버린 것 같은데요.”
조수석의 문이 열리며 남자가 곤란한 얼굴빛을 내비쳐 왔다.
하준이 쳐다보자 그가 입술을 깨물곤 말했다.
“저 친구가 그새를 못 참고 깜빡 졸아 버린 모양이에요. 그사이에 두 사람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고…… 하아, 내가 그렇게 정신 차리고 챙겨보라고 했는데…….”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얘기였지만 하준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됐다고 하던가요? 두 사람이 여기서 출발한 지.”
“아주 잠깐 사이에 사라진 거라 한 5분도 안 됐을 거라고 했어요. 여기서 나가는 도로도 한쪽 방향밖엔 없으니까…….”
“우선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하는 걸로 하죠.”
하준은 그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곤 곧바로 다시 액셀을 밟아나갔다.
이곳을 떠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도 있을 만한 거리.
이곳을 빠져나가는 도로 또한 일방향밖엔 없는 상황이었기에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우우우웅-!
왕복 2차선밖에 되지 않는 좁은 도로.
중앙선을 침범하고 역주행까지 해가며 도로 위를 질주하는 동안 하준의 심장은 미친 듯 요동치고 있었다.
바로 지금 자신이 달리고 있는 이 도로가 미래 예지에서 보았던 그곳과 거의 흡사한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도로 양쪽에 설치된 가드레일 아래론 나무와 바위들이 즐비한, 그야말로 낭떠러지 그 자체이기도 했고.
‘제발. 조금만 더.’
제발 이 길이 계속되어지길.
이 좁은 도로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가길.
부디 자신의 시야 앞으로 임조하의 차량이 들어와 주길.
간절하다 못해 절박한 마음으로 하준은 위험천만한 레이싱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빵-!
빵빵-!
하준의 차량과 같은 방향의 도로 먼발치에서 고급 스포츠카 한 대가 정차돼 있었고, 뒤쪽을 따르고 있는 차량 한 대가 클랙슨을 울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목격한 순간, 하준의 심장박동 수는 더욱 세차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갓길에 정차된 차량 밖으론 임조하와 구세희가 나와 있었고, 임조하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다시 운전석으로 몸을 싣고 있던 상황.
그제야 하준은 왜 구세희만이 현장에서 바로 발견되지 못했던 건지 짐작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또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보았던 그 끔찍한 사고가 잠시 뒤 일어날 거라는 뜻이었고.
우우우웅-!
우우우웅-!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반대편 도로로 차선을 변경하곤 미친 듯 액셀을 밟아나가는 하준.
만약 저 두 사람의 차량에 문제가 생긴 거고, 그래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의 하준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먼저 앞질러 가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덤프트럭을 멈춰 세우는 것.
방법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자신이 보았던 그 끔찍한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이기에.
“어……?”
정차된 차량 밖으로 나와 있던 구세희는 자신의 옆을 빠르게 스쳐 가는 검은색 미니밴을 보곤 눈동자를 키웠다.
의 현지 활동을 위해 하준이 렌트했던 차량과 어딘가 모르게 비슷해 보이는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임조하의 차량을 지나친 뒤 곧바로 나온 커브 길에 접어든 하준.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 도로에서 거대한 덤프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은 충분한 거리가 있는 상태였기에 하준은 지체하지 않고 비상 깜빡이와 동시에 상향등을 켜곤 클랙슨을 마구 울려대기 시작했다.
빵-! 빵빵-!
빵빵빵-!
운전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지금 하준이 보내온 신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터.
다행히 다가오는 덤프트럭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것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춰 세워진 건 하준의 차량과 거의 동일 선상까지 다가온 시점이었다.
“하아.”
미친 듯 울려대던 클랙슨 위로 하준의 머리가 떨궈졌다.
그와 동시에 깊은 곳에서부터 긴 한숨이 내뱉어졌다.
만약 끝까지 트럭이 멈추지 않는다면 자신의 차량으로 그 앞을 막을 생각까지 했었는데.
정말, 정말 다행이었다.
“후우.”
임조하와 구세희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하준은 머리를 들어 올리곤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그런 하준의 시야 앞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빠아아앙-!
분명 트럭을 멈춰 세움으로써 완전히 상황이 종료된 줄 알았던 하준의 앞으로 또 하나의 덤프트럭이 다가오기 시작.
운전수는 속력이 멈춰지지 않는다는 듯 하준을 향해 클랙슨을 마구 울려대고 있었다.
그러나 왕복 2차선 도로가 모두 점령된 현 시점에서 하준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전무한 상태.
빠른 속도로 질주해 오는 트럭이 하준의 차량을 덮치기까진 불과 몇 초도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
그리고 잠시 뒤.
산 중턱에 위치한 좁은 도로 위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가드레일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