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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155화 (156/165)

155화

예고도 없이 찾아온 뜻밖의 손님.

잠시 뒤 1705호 객실 내엔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고, 오직 임조하만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태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그녀가 아쉽다는 어투를 꺼내왔다.

“흠, H 혼자 쓰는 방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 모여 있을 줄은 몰랐네요.”

바로 옆에 있던 은호가 재빨리 해명을 해왔다.

“아! 여긴 대표님 혼자 쓰시는 객실 맞아요. 저흰 같이 밥 먹으려고 잠깐 모인 거고요.”

짧게 고갤 주억거리는 임조하에게 노세련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왔다.

“혹시 하준이랑 정말 저녁 먹으려고 오신 거예요? 단둘이서?”

노세련의 물음에 시선들이 일제히 임조하에게 달라붙었고, 임조하는 당연하다는 듯 당당한 어투로 답했다.

“그럼요. 이번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이 호텔에 묵기로 한 것도 다 H 때문인데.”

이번엔 임조하가 일행들을 훑으며 물어왔다.

“다들 H랑 꽤 가까운 사이들인 것 같은데. 혹시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아, 네. 어떤……?”

“H한테 숨겨둔 애인이 있다거나 뭐 아는 게 있을까요? 찾아봐도 공식적으론 아무것도 없는 것 같던데.”

“아.”

임조하의 꽤 직설적인 물음에 서로가 조심스럽게 눈들을 마주쳤다.

하준을 찾아온 이유가 단순히 친목을 위해서가 아니란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이었다.

멤버들은 자신들이 답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기에 눈치만 살피고 있었고, 노세련이 구세희를 잠시 힐긋하곤 되물었다.

“근데 그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혹시 하준이한테 무슨 마음이라도.”

“훗, 그거야 뻔한 이유 아니겠어요? 이날만을 위해서 몇 년을 기다려 온 건데.”

뜻 모를 말과 함께 미소를 띄우곤 임조하가 상관없다는 듯 말을 보태왔다.

“뭐, 애인이 있건 없건 사실 상관은 없어요. 어차피 결국엔 내 남자가 되고 말 거니까.”

“…….”

홍콩 최고의 스타가 내비치는 엄청난 자신감.

‘내 남자’라는 말에 모두가 일순 멍한 표정이 되었고, 구세희 또한 얼굴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 구세희의 얼굴을 확인하곤 노세련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음음! 근데 이걸 어떡하죠? H한텐 이미 결혼까지 약속한 여자가 있는데. 아마 늦어도 올해 안으론 식까지 치르지 않을까 싶어요.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식이 되겠죠?”

노세련의 폭탄 발언에 멤버들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멤버들의 입장에선 충격, 아니, 너무나도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구세희 또한 당황한 기색으로 노세련을 바라봤고, 임조하는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며 물었다.

“그래요? 그게 누군데요?”

“있어요. 엄~ 청 예쁘고 엄~ 청 몸매도 좋은! 딱 하준이가 어릴 적부터 꿈꿔온 그런 이상형 같은 여자죠!”

노세련이 계속 이상한 얘기만 꺼내오자 구세희가 그녀의 팔을 툭툭 치며 낮게 속삭여왔다.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야. 그러다 거짓말인 거 들통나면 어쩌려고.”

“넌 그냥 가만있어. 그거야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멤버들과 구세희의 반응을 살피던 임조하가 대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들 반응을 보니까 전혀 모르는 표정들인 것 같은데. H 입으로 직접 들어야 저도 신뢰가 갈 것 같네요.”

결혼이 약속된 여자가 있다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임조하의 반응.

노세련은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게 한국어로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가 홍콩 스타면 스타지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야? 참나.”

그때, 객실 입구 쪽에서 작게 카드키 찍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잠시 뒤 일행의 시야 앞으로 하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 대표님.”

멤버들의 당황하는 표정 사이로 임조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준을 마주했다.

그러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선글라스를 들어 올렸다.

“딱 7시에 맞춰서 왔네요? 그럼 바로 갈까요? 저녁 식사하러.”

* * *

잠시 후, 홍콩의 한 고급 레스토랑.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다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하고 있었다.

저녁 피크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테이블의 좌석이 비워져 있는 것은 물론,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주방에선 셰프들이 분주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준이 홀 내부를 훑고 있자 임조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식사하기 불편할까 봐 통째로 빌렸어요. 괜히 첫 만남부터 이런저런 스캔들 나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임조하가 이름 있는 여배우라는 것 외엔 하준도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는 않았다.

다만 아까 호텔에서의 세련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기사로 실릴 정도라고.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파파라치들 때문이고.

아마 이런 행동도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준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질문을 질문으로 상쇄했다.

“저를 만나러 일부러 호텔까지 오신 거라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먼저 알 수 있을까요?”

아까 전 객실을 빠져나올 때 황급히 하준을 붙잡아온 노세련.

그러곤 낮은 목소리로 당부의 말을 꺼내왔다.

아무래도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같으니 최대한 예의만 지키고 빨리 돌아오라고.

왜 그 말을 내뱉으면서 계속 구세희 쪽을 곁눈질로 가리켰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준도 이 시간을 오래 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의 예의만 갖출 생각이었으니까.

하준의 물음에 임조하가 묘한 미소를 띄웠다.

“오래전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으니까요. 그쪽이 안 왔다면 아마 내가 직접 한국으로 갔을 거예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하준이 쳐다만 보고 있자, 임조하가 질문을 건네왔다.

“혹시 임성보라는 배우 기억해요?”

임성보.

꽤나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분명 하준이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었다.

“네,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몇 번 일면식이 있기도 했고요.”

“그분이 저희 아빠예요. 한때 배우로 활동하다 지금은 은퇴하신.”

“……아.”

임조하의 부모 모두 연예계 쪽에 종사했다곤 들었지만 임성보가 그녀의 부친이었을 줄은 몰랐다.

하준이 그를 만났던 건 고작 몇 번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아주 잠깐 인사만 주고받은 정도였으니까.

물론 임조하에 대해선 따로 찾아본 바도 전혀 없었고.

하준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녀가 다소 의외의 얘기들을 꺼내왔다.

“아빠가 촬영 중에 눈을 다치신 적이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시력에도 큰 손상이 있었죠. 그것 때문인지 그 뒤로 어느 작품에서도 써주질 않더라고요. 액션 배우가 액션을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그렇게 아빠는 제대로 된 은퇴작도 찍어보지 못하고 강제로 배우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밖엔 없었죠. 그렇게 간절히 사랑하고 원했던 일이었는데.”

잠시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듯싶던 그녀가 곧이어 톤의 분위기를 바꿔왔다.

“그런데, 몇 년 뒤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요.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데 아빠를 캐스팅하고 싶다고, 오디션을 한번 볼 수 있겠냐는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것도 감독이 직접 전화까지 해선.”

“…….”

“물론 주연급의 배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오디션에 붙는 바람에 아빠는 그토록 원하던 작품 활동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 작품 덕분에 몇 년간 더 활동을 이어가다 아빠의 의지로 은퇴까지도 할 수 있게 됐고요.”

부친에게 있었던 일련의 스토리를 꺼내온 그녀가 다시 하준의 두 눈을 마주하며 옅게 웃어 보였다.

“그때 그 작품의 주연이 바로 안토니 스미스예요. 당신이 직접 발굴하고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낸.”

처음 그녀에게서 임성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하준은 안토니를 떠올릴 수밖엔 없었다.

안토니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바로 그와 함께했던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녀가 갑자기 이 얘길 왜 꺼내오는 건지에 대해선 정확한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벌써 5년은 더 지난 일이기도 했고.

그런 하준의 의아함과는 달리 그녀는 꽤나 진지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에게 다시 꿈을 찾아준 게 너무 고마워서 제가 감독님을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전혀 뜻밖의 얘길 하시더라고요. 그 캐스팅에 임성보 배우를 처음 추천한 건 자기가 아니라 ‘H’라고, 그래서 오디션 제안을 해본 거라고.”

“…….”

“그때부터였어요. 내가 언젠간 당신을 꼭 만나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게.”

처음 마주했을 때와는 달리 줄곧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하준은 뭐라 답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녀가 꺼내온 감동적이고 극적인 스토리와는 달리, 자신이 그를 추천했던 건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이유 때문이었기에.

당시 동양의 배우를 찾고 있단 얘길 들었고, 안토니의 부족한 연기력을 메우기 위해선 연륜 있는 배우가 있어야겠단 생각이었다.

그러다 떠오른 게, 바로 어릴 적 영화에서 접했던 임성보라는 배우였고.

즉, 그에게 어떤 스토리가 있었는지 전혀 아는 바 없이 제안을 해본 것뿐이었다는 거다.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다 감독의 몫이었던 거고.

말이 없는 하준을 어딘가 묘한 눈빛으로 지긋이 바라보던 임조하.

그러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톤으로 하준에게 물어왔다.

“아까 호텔에서 사람들 말로는 공개되지 않은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하던데. 뭐, 올해 안에 결혼을 생각 중이라는 얘기도 했던 것 같고. 그거 다 사실이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자신이 잠깐 자릴 비운 사이에 대체 무슨 얘기들이 오갔던 건지.

하준은 짧게 고갤 내저었다.

“아뇨.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진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후자는 더더욱 아니고요.”

“훗. 어쩐지 반응들이 이상하다 싶더니. 역시 한국 사람들도 루머 만들어내는 건 여기랑 똑같나 보네요.”

하준의 답변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듯 그녀의 얼굴이 대번 밝아졌다.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그녀가 앞에 놓인 물잔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눈은 계속 하준에게 향한 채 한 모금을 넘기곤 하준의 이름을 불러왔다.

“H, 아니, 유하준 씨.”

“네, 말씀하시죠.”

“나랑 연애할래요? 이왕이면 결혼을 전제로 아주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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