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47화 (148/165)

147화

서울 지방 법원.

제너럴의 공판 날짜 당일인 오늘, 법원 앞으론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려 있었다.

그들 앞으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이 사건의 담당 검사 민정훈.

그의 등장과 함께 각종 방송사 및 언론사 기자들이 마이크를 내밀어왔다.

“오늘 큰 재판을 앞두고 있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피고인 중 한 사람이 검사님과 오랜 시간 한솥밥을 먹어온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정말 그동안 조금의 의심도 없으셨던 걸까요?”

“오늘 증인 중 한 명으로 영신 G&M의 구명호 회장이 출석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피고인들과는 정확히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 겁니까?”

“직접 공판까지 나서게 된 계기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숱한 플래시 세례와 함께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오는 취재진.

민정훈은 묵묵부답으로 그들 사이를 비집고 걸어갔다.

그러다 입구 문 앞에 다다르자, 걸음을 멈추곤 취재진들을 바라봤다.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은 공판 첫날입니다. 재판과 관련한 이야기는 선고가 내려진 뒤 따로 자리를 마련해 상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태도로 말을 내뱉은 민정훈의 시선이 잠시 먼 쪽을 향했다.

그곳엔 검은색 고급 세단 차량 여러 대가 도착해 있었고, 민정훈은 다시 취재진들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그 어떤 사건들보다도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라는 겁니다. 그리고 전 검찰의 이름과 제 개인의 명예를 모두 걸고 반드시 그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이 사건이 금방 묻히지 않도록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취재진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곤 민정훈은 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기다리고 있던 이묵한이 초조한 얼굴로 물어왔다.

“일단 검사님이 요청하신 대로 최대한 많은 기자들이 몰릴 수 있게 하긴 했는데요. 후우, 이거 정말 괜찮은 거겠죠? 이러다 재판 결과가 안 좋기라도 하면 기사며 여론이며 상황이 완전 악화될 수도 있을 텐데. 자꾸만 불안한 기분이 드네요.”

“그럴 일 없도록 해야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나 계장님이나 그대로 짐 싸야 하는 거니까. 어디 한번 목숨 걸고 해봅시다.”

민정훈이 옅게 웃어 보이자 이묵한도 심호흡을 고르곤 고갤 끄덕였다.

“예, 검사님. 재판은 402호 법정이에요. 시작은 20분 뒤고요.”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두 사람이 몸을 실었다.

4층을 누른 뒤, 민정훈이 이묵한에게 물었다.

“구 회장님은 도착하셨던가요?”

“아, 예. 5분 전에 법무부 차량 도착하는 거 확인했습니다. 지금 법정 뒤쪽에서 대기하고 계시고요.”

오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예정인 구명호.

이미 그 또한 여러 범죄 혐의들로 인해 구속 수감돼 있는 상태였다.

오늘의 공판, 그리고 그들의 선고 결과에 따라 담당 검사인 민정훈은 구명호의 형량을 최대한 낮출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의 자발적인 제보와 자수가 없었다면 그들에 대한 아주 작은 혐의조차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기에.

더욱이 지금처럼 구명호의 증언 외엔 이렇다 할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선 더더욱.

4층 도착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복도로 들어섰다.

402호 법정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이묵한이 다소 의아한 듯 물어왔다.

“근데요, 검사님. 증인은 많을수록 좋을 것 같은데 왜 그 연예부 기자들 증언은 거절하셨을까요? 지금은 한 명이라도 더 증언대에 서게 하는 게 우리한텐 유리할 것 같은데.”

이묵한의 물음에 민정훈은 담담한 어투로 답했다.

“물론 그렇긴 하죠. 근데 오늘 공판에선 아니에요. 오늘은 지금까지의 혐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판도를 바꿔야 하는데. 그럼 보다 더 임팩트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 뒤에 다음 공판에서 그 증언들이 나온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겠죠.”

“아, 그렇군요. 그럼 다음 공판을 위해서라도 그 증인들 증언은 미리 서면으로라도 받아놓는 게 낫겠네요. 재판하시는 동안 제가 따로 연락 취해놓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릴게요. 계장님.”

불과 12시간 전까지만 해도 오늘 있을 공판에 대한 생각으로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던 민정훈.

재판 진행 자체에 대한 걱정이 아닌, 이후에 있을 선고 결과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오늘 공판 때 명확한 증거와 혐의들을 입증시키지 못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너무나도 뻔한 상황이었기에.

더군다나 그들이 고용한 초대형 로펌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고.

하지만, 어젯밤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인해 그런 민정훈의 심리는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의 재판이, 그리고 그 증인의 등장으로 이 사건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기 때문에.

“저기 와 계시네요.”

402호 법정에 다다를 쯤, 이묵한이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법정 대기실에 서 있는 구세희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오셨네요.”

“그럼요. 중요한 재판이니까.”

짧게 말을 주고받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두 사람.

이묵한은 아까 전 얘기한 그것을 하러 가보겠다며 자릴 비켜 주었고, 민정훈은 눈에 띄게 야윈 구세희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오늘 회장님은 오랜만에 뵙는 거죠? 그동안 면회는 못 가셨다고 들었는데.”

“네. 얼마 뒤면 아버지 재판도 있으니까 거기에 대한 준비들을 하느라요. 아버지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금으로썬 두 사람 사이의 온도차가 이럴 수밖엔 없었다.

물론 구명호가 자발적으로 민정훈을 찾아간 것이긴 해도 어디까지나 검사와 피고인 가족 간의 관계.

자신의 아버지 구명호에 대한 수사는 물론이고 얼마 뒤에 있을 재판에선 그에게 구형까지 내려야 할 민정훈이었다.

그렇기에 마냥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만은 없는 지금이었고.

민정훈 또한 그것을 알기에 더 다른 얘기들을 꺼내오진 않았다.

짧게 목례를 하곤 법정으로 발길을 옮기는 민정훈.

그때, 구세희가 낮게 민정훈을 불러왔다.

“검사님.”

“네.”

“……저희 아버지 잘 부탁드릴게요.”

그 짧은 말 한마디를 내뱉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민정훈에겐 느껴지고 있었다.

잠시 뒤 일어날 일에 대해선 조금도 모르고 있을 구세희를 바라보며 민정훈은 옅게 웃어 보였다.

“오늘 재판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 * *

“증인, 자리에 앉기 전 앞에 있는 증인 선서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공판이 시작되고 15분 뒤.

수용복 차림의 구명호가 법정 안으로 들어왔다.

판사의 요청에 따라 구명호가 증인 선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본 증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네, 앉아주세요.”

구명호가 증인석에 앉자, 민정훈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본 증인은 이 사건을 검찰에 최초로 제보한 제보자입니다.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이 사건을 제보함으로써 본인 또한 처벌을 면하기 힘들다는 걸 분명 알았을 텐데. 그럼에도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제보를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었죠?”

“처음부터 그럴 목적을 가지고 피고인들과의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간 오로지 이 순간만을 기다리면서요.”

구명호의 얘기에 피고 측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증인은 지금 위증을 하고 있습니다. 검찰 쪽 증거 자료에도 나와 있듯 피고와 증인 간의 관계는 2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맺어온 것이 아닙니다. 증거 자료를 확인하시면 단번에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민정훈도 지지 않고 곧바로 맞대응했다.

“증인의 신문이 모두 끝나고 나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판사님. 신문 계속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우선 더 들어보도록 하죠.”

판사의 기각에 피고 쪽 변호인이 다시 자리에 앉았고, 민정훈은 신문을 이어갔다.

“우선 왜 20년이란 숫자를 언급한 건지는 조금 있다 다시 묻기로 하고요. 보다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왜 증인은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거죠? 증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했을 때 누가 봐도 득보단 실이 훨씬 많게 보이는데요.”

오래전 기억을 상기시키는 듯 구명호는 다소 참담한 어투로 답을 해왔다.

“제게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앗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뒤로 단 하루도 괴롭지 않은 날이 없었고, 전 제 모든 걸 다 걸어서라도 그들을 파멸시켜야겠단 생각뿐이었습니다.”

구명호를 내려다보며 민정훈은 좀 더 자세한 서술을 요구했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20년 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제 오랜 친구이자 동료의 집에 들렀는데 그곳엔 그녀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더군요. 자해한 흔적과 함께 그 옆으론 유서까지 남긴 채. 하지만 전 알았습니다. 그녀가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분명 누군가가 그녀를 죽음에 내몬 뒤 모든 걸 은폐하고 조작하려 한다는 사실을요. 그때부터였습니다. 그자들을 쫓기 시작한 게.”

“그럼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조금 전 얘기한 ‘그자’들은 여기 있는 이 피고들을 말하는 걸까요?”

구명호가 피고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피고 측 변호인이 또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나 이의를 제기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증인은 지금 전혀 근거 없는 얘기들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즉각 중지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인정합니다. 증인, 확실한 증거나 그를 입증할 수 있는 증언만 해주길 바랍니다.”

판사의 기각에도 불구하고 민정훈은 조금도 기색이 변하지 않은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증인, 피고석에 앉아 있는 여섯 명의 피고 보이시나요?”

“예.”

“증인의 증언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저 여섯 명의 이름을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차례대로 읊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민정훈의 요청에 피고석을 바라보는 구명호.

그러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이름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강기욱, 이재한, 박용민, 김경수, 김영만, 류민우.”

민정훈은 만족한다는 듯 고갤 주억거렸다.

“좋습니다. 피고들이 어떤 순서로 앉을지 사전에 전혀 몰랐음에도 아주 정확히 나열하시네요. 그럼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민정훈은 피고 6인의 얼굴을 빠르게 훑으며 구명호에게 물었다.

“아까 전 얘기한, 증인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그자, 혹은 그자들. 저 중 누구입니까?”

“이의 있습니다! 원고는 지금 전혀 근거 없는 사실들을 유도신문과 추궁으로 이끌어 내려 하고 있습니다! 당장 제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격앙된 톤으로 내뱉어 오는 피고 측 변호인의 얘기에 민정훈 또한 일순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러곤 구명호를 일별한 채 판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단호한 어투로 외쳤다.

“재판장님! 이 사건의 결정적인 증인이 지금 재판장 앞에 와 있습니다! 증인 신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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