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불 꺼진 밤, 썬데이 미디어의 회의실.
자정이 넘어가는 그 시각, 최윤섭과 그의 상사 김창완은 무척이나 심각한 얼굴을 하고선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최윤섭이 답답하다는 듯 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부장. 부장은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니,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
“우리 기자예요, 기자. 언론인이라고요! 윤리 강령까지 다 깨가며 그런 짓을 해왔는데, 정말 한 치의 부끄러움도 못 느끼셨어요?”
최윤섭의 얘기에도 김창완은 줄곧 묵묵부답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왜 이렇게까지 격앙된 감정 상태인 건진 충분히 이해하는 상황.
다만, 그가 요구해 오는 것을 들어주기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윤섭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 일 하면서 온갖 치졸하고 더러운 짓이란 짓은 다 겪어보고, 심지어 제가 그런 짓을 해봤던 때도 있었는데요. 부장.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기레기, 기레기 하면서 수근 거리는 것도 다 알고, 아예 나를 기자 취급 안 하는 인간들도 있단 것도 다 알고 있었는데요! 그 모든 것들보다도 지난 수개월이 저한텐 더 지옥 같았어요.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요.”
“…….”
“저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짓은 절대 안 하고, 또 애초에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어요. 그냥 부장이 하라니까, 지금껏 나를 이 자리까지 키워주고 만들어준 부장이 하라니까, 그래서 군말 없이 한 거예요. 알아요?”
“윤섭아.”
“근데, 하루하루가 진짜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모르죠? 그놈들 만나러 가는 길엔 피우지도 못 하는 담배 한 갑씩 사서는 연신 피워댔고요, 그놈들 만나고 오는 길엔 성당 앞에서 무릎 꿇고 혼자 참회까지 했어요. 그놈들이 써달란 기사 써줄 땐 소주를 두 병씩 깠고! 그거 보도 나가고 나면 혼자서 한강 다리를 미친 듯 뛰었다고요!”
“…….”
“하아.”
그간 참아온 울분이 모두 터진 듯 최윤섭은 얼굴을 감싸 쥔 채 거친 숨을 내뱉어왔다.
가장 아끼는 후배이자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는 김창완의 마음도 무척이나 괴로울 수밖엔 없었다.
자신 또한 분명 그런 감정과 그런 순간들을 겪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땐 정말 모든 걸 다 놓고 싶은 생각이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었는데.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감정들이 최윤섭으로 인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윤섭아.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우리가 그놈들 재판장에 나가 증언이라도 해줬음 하는 거야?”
“우린 알잖아요. 그놈들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놈들인지, 그리고 그놈들이 우리한테 뭘 요구해 왔고 무엇 때문에 그런 걸 요구했었는지까지도요. 증거도, 신빙성도 차고 넘치기 때문에 우리 증언이면 그놈들한테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최윤섭의 얘기에 김창완도 진지하게 얘기했다.
“네 말대로 단순히 너랑 나 둘만 엮여서 그렇게 했던 일이면 당장에라도 증언대에 섰을 거야. 하지만 이건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 양진신문이 어쩌다 썬데이 미디어가 됐는지, 그리고 그 썬데이 미디어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전문 매체가 됐는지.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잖아, 윤섭아.”
최윤섭이 비소를 흘리며 김창완을 쳐다봤다.
“그럼 선배는 고작 일자리 하나 잃을까 봐 지금 망설이는 거였어요? 따박따박 월급 나올 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까 봐?”
“후우. 그런 얘기가 아니란 거 알잖아 윤섭아.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전문 매체가 그런 부정한 방법으로 이 자리까지 올랐다는 게 밝혀지면 언론사 전체가 흔들리게 될 거야. 이 일이 마치 전체의 일처럼 대중들에게 비춰질 거니까.”
이게 다가 아니라는 듯 김창완은 최윤섭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랑 난 그런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 고발자라는 인식까지 찍히게 되겠지. 그럼 당연히 앞으로 그 어떤 언론사와도 일할 수 없게 될 거고.”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오르며 예전보단 열정이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그 또한 기자라는 직업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할 수만 있다면 오랜 시간 기자라는 직업에 머물러 있고 싶었고.
하지만, 이번 일에 자신이 나서게 된다면 그 모든 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이제 나이가 찰 만큼 찬 자신과는 달리 미래가 창창한 최윤섭에겐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엔 없고.
그 또한 이 직업을 얼마나 순수하게 사랑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었기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김창완의 얘기엔 최윤섭도 곧바로 말을 뱉어오지 않았다.
뭔가를 깊이 고뇌하는 듯한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만 두고 있었다.
그러다 아까보단 많이 차분해진 어투로 말을 뱉어왔다.
“그런 건 지금 걱정하지 맙시다, 부장. 부장 말처럼 이 회사가 부정한 방법으로 이 자리에 오른 건 팩트고, 그걸 알고도 묵인하는 거야말로 진짜 기자로서 자격이 없는 거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기자 생활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의자 등받이로 등을 붙이며 최윤섭이 말을 덧붙여 왔다.
“그리고, 만에 하나 내부 고발자라고 아무데서도 안 써주면 까짓것 그냥 독립하면 되죠 뭐. 부장이랑 나랑 퇴직금 모아서 온라인 매체 하나 운영하면 되지 않겠어요? 거 뭐 돈도 별로 안 드는 것 같더만.”
조금도 생각을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최윤섭의 모습에 김창완은 옅게 한숨을 내뱉었다.
잠시 풀어졌던 표정을 다시 진지하게 바꾸고선 최윤섭이 말을 이어왔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그놈들을 못 잡을 것 같아서 그래요. 이제 곧 그놈들 재판 날짜라는데 현재로썬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더라고요. 그놈들하고 엮여서 줄줄이 잡혀온 인간들이 계속 발뺌하면서 그런 존재는 모른다고 하니까. 아마 벌써 판사 라인도 사뒀을 거고 온갖 곳에 손은 다 뻗어놨을 거예요. 이대로 가다간 진짜 다 망하는 거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증언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어? 어차피 우리도 증언일 뿐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들이 사주한 대로 기사 써준 걸로는 형량에 크게 반영되기도 힘들 거야.”
김창완의 얘기에 최윤섭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미 자신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 증언이 결코 그들의 처벌 수위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할 거라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최윤섭은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선 그 어떤 작은 거라도 모조리 다 끄집어내야 했으니까.
고갤 들어 올리고선 최윤섭이 김창완을 바라봤다.
“그래도 해보는 데까진 해봐야죠. 남은 인생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선.”
그 어떤 때보다도 정중하고 간절한 음성으로 최윤섭은 김창완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꼭 부탁드립니다, 부장.”
* * *
서울중앙지검 민정훈 검사실.
발 디딜 틈도 없이 쌓여 있는 수많은 자료들 속에서 유혜림 실무관과 이묵한 계장, 그리고 민정훈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휴. 이제 내일이 공판 날짜인데 큰일이네요. 두 달 동안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고 수사해 왔는데 정작 제일 큰 몸통에 대한 혐의는 부족한 상황이니.”
답답함이 가득 섞인 유혜림의 얘기에 이묵한도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그러게 말이야. 애초에 그놈들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이건 뭐 피라미 새끼들만 잡아넣게 생겼으니까. 후우, 답답하구만, 답답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공판 날짜.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류민우를 제외하곤 다른 다섯에 대해선 아예 구속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분명 구명호가 제출한 자료들이 그들의 범죄 가담 혐의에 대한 소명을 해줄 만한 근거들이었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와 버렸다.
그들과 엮인 인물들을 줄줄이 소환하고 수사를 진행했음에도 정작 그들의 존재에 대해선 모두가 하나같이 모르쇠로만 일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선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밝혀진 범죄 혐의들론 단기, 혹은 집행유예들로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만일 자신들과 엮여 있는 그들에 대한 수사가 박차를 가하게 되면 그땐 상황의 심각성이 달라지기 때문.
자신들만 입을 꾹 닫고 있는다면 그들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고, 그럼 큰 불상사 없이 이 사태 또한 수습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현재의 수사 진행 상황으론 그들의 그런 생각이 크게 빗나가지 않고 있었고.
초췌해진 얼굴로 아무런 말도 꺼내질 않고 있는 민정훈을 바라보며 이묵한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검사님. 내일 공판에 정말 직접 나가실 생각이세요?”
보통 수사 검사와 공판 검사는 나뉘게 된다.
지금껏 민정훈이 수사했던 모든 피고인의 재판 또한 공판 검사가 따로 배정돼 있었고.
하지만, 제너럴이라는 그들 6인에 대한 재판만큼은 민정훈이 직접 맡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이묵한이 재차 물어온 것이었고.
민정훈이 낮게 고갤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래야죠. 내일을 위해 지금껏 이 짓들을 해온 거니까.”
“아시겠지만 저쪽에서 대광이랑 현문을 고용했어요. 그 두 곳 다 최광호 판사랑은 아주 각별한 선배들이 모여 있는 로펌이고요. 업계 1위인 리인을 놔두고 그 두 곳을 고용했다는 건 의도가 너무 뻔히 보입니다, 검사님.”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민정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 라인은 애초에 되지도 않을 걸 알기에 판사 라인으로 눈을 돌린 그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또 어떤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을지 알기에 민정훈의 심기는 더욱더 불편할 수밖엔 없었다.
그때,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민정훈의 휴대폰이 진동을 일기 시작했다.
액정 화면 위로 뜬 발신자를 확인하곤 민정훈은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네, 접니다. 잘 지내고 계신 거죠?”
조금 전과는 일순 바뀌어 버린 민정훈의 태도에 이묵한과 유혜림의 표정은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대체 누구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통화를 이어가던 민정훈의 얼굴이 또 한 번 급격히 바뀌었다.
마치 못 들을 얘기라도 들은 사람처럼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저, 정말 그게 사실입니까? 정말로…….”
말을 잇지 못한 채 눈과 입을 크게 벌리는 민정훈.
조금 전의 놀람과는 어쩐지 결이 많이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 네 알겠습니다. 내일이 당장 재판이라 받아들여 줄진 모르겠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봐야죠. 네, 알겠습니다! 결과 나오는 대로 바로 말씀드릴게요.”
통화를 끊고는 긴 한숨을 내뱉는 민정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그의 얼굴은 흥분이 가득 묻어나 보였다.
잠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민정훈은 이묵한과 유혜림에게 말했다.
“내일 추가 증인 신청 가능한지 당장 알아봐 주세요. 안 되면 제가 직접 판사실로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