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잠시 뒤, 민정훈의 배려를 받아 취조실에 들어선 하준.
하준의 등장에 구명호는 당황보단 미묘한 웃음을 내비쳤다.
“세희한텐 알리지 말랬더니 오히려 너한테 연락을 해버린 모양이구나, 허허. 괜히 쓸데없는 걱정하게끔.”
하준은 말없이 구명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머릿속으론 이곳에 들어오기 전 민정훈이 했던 얘기가 계속 떠나질 않고 있었다.
‘자세한 건 조사를 더 진행해 봐야 알겠지만, 회장님께서 그들과 엮인 정황이 많이 보이긴 합니다. 물론 그래서 더 신빙성이 있긴 하지만 그건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실형의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뜻이니까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가 불가능한 얘기였다.
모친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들과 구명호가 대체 어떻게 엮여 있었다는 건지. 그리고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랬던 건지.
그의 사업상 영역까지 자세히 아는 건 아니어도 결코 불법적인 것과 손을 맞잡을 사람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이 아닌, 지난 20년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그의 인품과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검찰청 취조실에, 그것도 스스로 자신의 모든 범죄 혐의를 인정하겠다며 들어온 지금의 상황을 하준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구명호를 바라보며 하준이 물었다.
“여긴 왜 오신 거예요?”
“……흠.”
“아저씨가 그자들과 엮일 일이 뭐가 있단 건지 전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아요. 아니, 애초에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긴 아시는 거예요?”
감정을 섞어 물어오는 하준의 얘기에 구명호는 말없이 하준을 바라봤다.
그러곤 다른 말을 꺼내기보단 미안하단 말을 먼저 꺼내왔다.
“너에겐 미안하구나, 하준아. 지난 20년간 너와 정화를 위해 해왔다고 생각한 일들이 이젠 되레 너를 더 힘들게 만들어 버린 것 같구나.”
“…….”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부디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혹여나 오더라도 그땐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래왔던 게지.”
구명호가 꺼낸 말들의 의미를 하준은 곧바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럼 모친의 죽음에 관한 모든 전말을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까.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모친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까지도?
그럼 대체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에게 숨겨온 이유는.
복잡한 얼굴 표정의 하준을 바라보며 구명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어왔다.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너와 정화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었단다.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알지 못하게, 그리고 너 또한 그들의 존재를 영영 모른 채 살아가도록 말이야. 지난 20년간은 별 무리 없이 그렇게 돼가는 듯 싶었지.”
구명호가 자신의 앞에 놓인 일회용 종이컵을 입으로 옮겼다 떼곤 씁쓸하단 표정을 지어왔다.
“네가 네 엄마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결정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시 생각해도 묘한 일이라는 듯 구명호가 말했다.
“네가 처음 한국에 돌아와 그 얘길 꺼낼 때만 해도 그저 우연일 거라고만 생각했단다. 그냥 잠깐 그러다 말겠지, 세희한테 영향을 받아 호기심에 그러는 거겠지. 그런데, 이미 그 전부터 그 세계에 들어가 있단 걸 알고 나니 도무지 밤잠을 이룰 수가 없더구나.”
구명호는 그간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그 얘기들을 모두 다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네가 네 엄마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오기 시작한 게. 그때마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불안해졌었지. 네가 그 일을 하며 혹시라도 뭔가를 알아 버린 건 아닐까 하고.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가 않더구나.”
하준의 머릿속으론 지난날의 구명호가 떠올랐다.
자신이 모친에 대한 얘길 꺼낼 때마다 그가 보여왔던 반응들. 그리고 그때마다 느꼈던 알 수 없는 께름칙함.
구명호의 얘기들을 듣고 나자 이제야 그때의 것들이 조금씩 납득되기 시작했다.
그에게 더 듣고 싶은 것도, 묻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은 상황이지만 지금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기에 하준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우선 어떻게 된 건지부터 얘기해 주세요, 아저씨. 아저씨가 정말 그들과 엮였던 사실이 있는 건지, 민정훈 검사에게 제출했다는 그 자료들 속엔 대체 어떤 내용들이 있었던 건지.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한 문제에요.”
조급함이 느껴지는 하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구명호는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곤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뱉어왔다.
“너와 정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난 그들의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야만 했어.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혹여나 너와 정화에 대해 그 어떤 작은 거라도 알게 되진 않을지. 그러기 위해선 그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밖엔 없었지.”
그 말을 시작으로 구명호는 그간 자신이 해왔던 모든 일들을 꺼내 오기 시작했다.
지난 20년간 그들이 구성한 비밀 모임에 몸 담고 있었던 것, 그곳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지원했던 것.
그리고 그들이 저질러 온 모든 범죄 행위들을 줄곧 묵인해 왔던 것.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했다.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조치임과 동시에, 또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하준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대체 그렇게까지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고작 자신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무엇보다, 그들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면서도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 하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구명호가 입을 열어왔다.
“지금의 너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난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단다. 지난 20년간 그놈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단 걸 더 확신할 수 있게 됐거든.”
“…….”
“결코 개인의 힘으론 이길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어. 그들이 끼치고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고려하면 고작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행위밖엔 되지 않을 게 뻔히 보였으니까. 그래서 더욱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엔 없었던 게지.”
“그래서 아저씨가 택한 방법이 이거였어요? 본인 인생이 다 망가지는 걸 감수하고 그들과 같이 침몰하는 거요?”
하준의 격앙된 어투에 구명호는 말없이 하준의 눈을 바라봤고, 하준은 짙은 숨을 섞어 말을 이었다.
“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면 얼마든 더 나은 방법들이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게 아니라, 보다 더 현실적인 방법들이 있었을 거라고요.”
“말했지 않니. 하준이 너뿐 아니라 정화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고.”
줄곧 자신과 모친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구명호의 모습은 하준을 더욱 답답하게만 만들고 있었다.
“이제 이 세상에 있지도 않는 사람을 어떻게, 왜 지킨다는 거예요. 그들이 이제 엄마에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참고 있던 감정을 결국 터뜨리고 마는 하준.
구명호 또한 그 순간만큼은 표정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두 사람의 상반된 분위기 사이로 노크 소리와 함께 민정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회장님, 대표님. 곧 마무리를 지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민정훈의 얘기에 구명호는 옅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5분만 더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꼭 해야 할 얘기가 아직 남아 있어서.”
민정훈은 하준의 표정을 잠시 살피곤 낮게 고갤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5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회장님.”
취조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구명호 시선이 다시 하준에게로 옮겨졌다.
그러곤 낮게 하준을 불러왔다.
“하준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듣거라. 이제부턴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 하는 일이야. 네 엄마 정화를 지켜내는 것.”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하준을 향해 구명호는 그 긴 시간 오롯이 감당하고 있던 비밀을 털어놨다.
“네 엄마 정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단다. 어느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는 곳에서.”
“……그게 무슨.”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얘기에 하준은 순간 일시정지의 상태가 돼 버렸다.
마치 둔탁한 무언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엄청난 충격이 전해지고 있었다.
20년 전 죽었던 엄마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니.
대체 이게 무슨.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엄마가 어떻게…….”
그런데, 그 순간.
하준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어떠한 사실 하나가 스쳐 갔다.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엄마의 납골당을 찾지 않았던 구명호.
성인이 되기 전까진 매번 최 비서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던 하준이었다.
설마 그럼 정말로.
“너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준아. 하지만 정화의 상태를 생각하면 차라리 모른 채 살아가는 게 어쩌면 더 나은 게 아닐까 싶었어. 적어도 그들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진.”
“…….”
그대로 온몸에 힘이 풀려 버린 하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연이어 전해온 충격적인 소식들은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모친이 살아 있단 건 지금껏 단 한순간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기에.
그런데, 그때였다.
또 한 번 하준의 뇌리를 스쳐 가는 무언가가 있었고, 하준은 그것을 떠올림과 동시에 곧바로 구명호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요? 또 어떤 상태로 있으시고요.”
하준의 물음에 구명호는 결심을 내린 듯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자신의 앞에 놓인 펜을 들어 메모지에 뭔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하준은 일전의 미래 예지를 떠올렸다.
노이즈 속 병실에 누워 있던 한 중년의 여자.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때, 구명호가 뭔가가 적힌 메모지를 건네왔다.
“네 엄마가 있는 곳이야. 이제부턴 나를 대신해 네가 그 옆을 지키길 바란다.”
그 말과 함께 구명호는 진심어린 사과의 말을 덧붙여 왔다.
“그동안 저지른 내 과오를 부디 용서하길 바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