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40화 (141/165)

140화

“이제 끝입니다. 7급 수사관 류민우 씨.”

하준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과 함께 그들 주변으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급격히 당황한 류민우는 곧바로 몸을 돌려 주변을 살폈고, 아니나 다를까, 경광등 불빛을 비추며 다가오는 수 대의 차량이 보이고 있었다.

“이런, 씨!”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바닥에 내던져 버리곤 급히 도망갈 태세를 갖추는 류민우.

하준은 그런 류민우에게 소용없을 거라며 경고했다.

“아예 밀항을 해 이 나라를 뜰 게 아니라면 쓸데없는 짓이 될 겁니다. 이미 류민우 씨에 대한 정보들은 충분히 확보가 돼 있는 상태니까요.”

하준의 얘기에 류민우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그의 말대로 아예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는 한, 영영 숨어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형량을 줄이고 싶다면 순순히 협조하시는 쪽이 나을 겁니다. 그럼 적어도 제너럴의 다른 인원들보다는 참작 사유가 될 수도 있을 테니.”

“…….”

7급 수사관으로서 수년간 일해온 류민우였기에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만약 지금 자신이 독 안에 든 쥐라면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는 게 최선의 선택일 수밖엔 없다.

단, 이들이 이미 완벽한 증거를 전부 확보했다는 전제하에.

어금니를 꽉 깨물곤 머릿속을 빠르게 굴려가던 류민우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류민우의 표정은 또 한 번 급격히 굳어질 수밖엔 없었다.

“류 수사관님을 이런 식으로 대면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부디 오해이길 바랬는데.”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민정훈의 두 눈엔 씁쓸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두 사람이기에 지금의 상황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류민우에게 다가오는 검찰 직원들을 잠시 멈춰 새우곤 민정훈이 말했다.

“지금 저 차를 타고 가는 그 순간부턴 더 이상 수사관으로서 대해 드릴 순 없을 겁니다. 물론 그 어떤 피의자들보다도 훨씬 더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될 수밖엔 없을 거고요. 그래서 지금 마지막으로 수사관님께 묻고자 합니다.”

민정훈은 하준을 잠시 시선을 옮겼다 거두곤 다시 입을 열었다.

“3년 전, 상당수의 수사 정보를 유출했던 것들을 포함해 저와 함께 일하는 동안 수사관으로선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한 것, 모두 인정하십니까?”

“…….”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배경엔 제너럴이라는 거대 비밀 조직이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하시나요?”

류민우가 구세희를 노릴 걸 이미 알고 있던 하준은 가장 먼저 민정훈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미 류민우뿐만 아니라 제너럴이라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서로가 공유하고 있던 터라 민정훈 또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대한민국 검사로서 더 이상 이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으니까.

민정훈의 연이은 질문에도 류민우는 입을 굳게 닫은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질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시선을 아래로 두는 것 외에는.

그가 어떤 대답이라도 해오길 기다리던 민정훈은 잠시간 침묵이 이어지자 먼저 입을 열어왔다.

“아직 공소 제기가 이뤄지진 않았습니다만, 범죄의 혐의가 뚜렷한 만큼 지금부턴 피의자의 신분으로 체포 및 수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류민우 씨, 저희와 함께 가주시죠.”

민정훈의 말이 끝마쳐짐과 동시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찰 직원들이 류민우를 연행해 가기 시작했다.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걸음을 옮겨 나가던 류민우는 검찰 차량에 올라 탈 때까지도 그 어떠한 말도 내뱉지 않은 채 침묵만을 유지했다.

차량의 문이 완전히 닫힌 걸 확인한 뒤 민정훈은 그제야 하준과 구세희를 바라봤다.

“정황도, 증거도 거의 확실하단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차라리 오해였으면 했는데.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참 씁쓸한 기분이네요.”

“앞으로 수사 진행 방향은 어떻게 잡아가실 예정이신가요?”

“글쎄요. 통화 기록, 통장 내역뿐만 아니라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하나씩 밝혀가야겠죠. 어떤 인간들이 더 얽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대체 어떤 극악무도한 짓들을 저질러 왔는지.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단순히 공무원 하나를 파면시키는 걸로 끝날 문제는 절대 아니니까요.”

“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구세희가 갑자기 중심을 잃으며 휘청거렸다.

하준은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아, 어. 아까 끌려갈 때 발목을 좀 삐끗했나 봐. 괜찮아.”

괜찮다는 구세희의 말에도 하준은 그녀의 몸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이번 일에 그녀를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던 하준의 마음과는 달리, 그녀의 강한 의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 수밖엔 없었던 것.

생각보다 더 위험했던 아까의 상황들이었기에 하준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턱 아래로 상처와 함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발목만 다친 게 아니네. 일단 병원부터 가자. 치료받고 집으로 데려다줄게.”

하준의 얘기에 자신의 목 부근을 손으로 만져보는 구세희.

그러곤 살짝 웃어 보였다.

“흉기에 찔린 것도 아닌데 무슨 병원까지 가. 그냥 살짝 긁힌 것뿐인데.”

말을 내뱉곤 구세희가 자신의 뒤쪽에 있는 차량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폐차 직전이 돼 버린 차를 타고 어떻게 병원을 가. 가는 동안 보이는 경찰차마다 잠시 세우라고 몇 번은 따라오겠는데.”

“…….”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차량 상태가 말이 아니다.

폐차 직전이란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하준이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때, 민정훈이 다소 우려스럽다는 듯 말을 꺼내왔다.

“음, 혹시 자택 외에 따로 머무실 곳은 없을까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혼자 계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의 의미를 묻는 구세희의 눈빛에 민정훈이 곧바로 덧붙였다.

“이번 일은 단순히 한 사람의 범죄 행위로만 그칠 만한 문제는 아니라서요. 류민우가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아마 그쪽에서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럼 가장 위험에 노출될 사람은…….”

“……저겠네요.”

자신의 말을 대신 맺어오는 구세희에게 민정훈은 낮게 고갤 끄덕였고, 구세희도 동의한다는 듯하준을 바라봤다.

“나 집으로 갔다가 다시 세련 언니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검사님 말 대로 당분간은 거기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 그렇게 하자.”

민정훈의 얘기처럼 류민우의 체포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그들 또한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해 올 것이다.

단순히 류민우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 혹여나 이번 일로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될 지도 모르기에.

물론 구세희에게까지 그들의 손이 뻗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야만 하는 상황인 건 분명했다.

그들은 어떠한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하준과 구세희에게 필히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곤 민정훈이 서서히 멀어져갔고, 하준과 구세희 또한 차량에 올라탔다.

“그래도 시동은 걸리네.”

엉망이 돼버린 외관과는 달리 무사히 들려오는 외제차 특유의 엔진음에 하준이 가볍게 말을 꺼냈다.

구세희가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

“하아…… 나쁜 놈들. 뽑은 지 1년도 안 된 거라 아직 할부도 어마어마하게 남아 있는데. 이걸 이렇게나 무자비하게 박살 내다니.”

“일단 집으로 가서 상처 치료부터 하자. 내일 병원도 가보고.”

공터를 빠져나가는 검찰 차량들을 뒤따라 하준도 액셀을 서서히 밟아나갔다.

그러는 동안 조수석에 앉은 구세희는 조심스럽게 하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직 그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후우. 내 이럴 줄 알았어. 좀 있으면 온갖 커뮤니티에 다 올라오겠네.”

구세희의 집에 거의 다다를 쯤, 신호를 받고 있던 두 사람의 차량으로 주변 시선들이 일제히 쏠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억대의 고급 외제 차량이 본래의 모델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유리와 옆유리는 물론, 선루프와 본네트까지. 어디 하나 멀쩡한 구석이 없는 구세희의 차량이었기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양쪽 사이드미러는 무사하다는 것 정도.

휴대폰 카메라로 마구 찍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에 구세희는 얼굴을 가렸고, 하준은 그닥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액셀을 밟아갔다.

“저, 하준아.”

집 근처의 골목길로 접어들 쯤, 구세희가 낮은 목소리로 하준을 불러왔다.

하준이 시선을 옮겨 눈을 바라보자, 구세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최 기자님한텐 내가 먼저 부탁한 일이야. 혹시라도 네가 다르게 오해할까 봐.”

“음. 넌 이 일에 왜 나서기로 했던 건데?”

“……그게.”

하준의 물음에 구세희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 일을 포함해 제너럴이라는 존재들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리려고 했던 구세희.

하지만 갑작스러운 하준의 등장에 그 계획은 어긋나 버렸고 더 이상은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게 돼버렸다.

게다가, 하준 또한 이미 그들의 존재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고 있는 듯 보였고.

최윤섭이 터놓은 얘기에 의하면 자신보다 먼저 그들에 대해 파헤치려 했다고 했으니.

대체 하준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떤 이유로 그들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걸까.

분명한 건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아직까지 하준은 모르고 있을 거라는 거였다.

그들과 모친 간에 있었던 일들을 알게 된다면 결코 지금처럼 차분한 태도를 보이진 못할 테니까.

무엇보다, 지금 모친의 상태를 고려하면 더더욱.

하준의 질문 뒤 차 안으론 꽤 긴 침묵이 흘렀고, 구세희 또한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가고 있었다.

지금 당장 모든 걸 하준에게 얘기해줄 순 없겠지만, 그래도 단 한 가지만큼은 꼭 알려줘야겠단 마음이었다.

다른 그 무엇보다, 그 존재들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려야겠단 생각만큼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기에.

때마침 구세희의 집 앞에 차량이 멈춰 섰고, 하준도 주차를 마치곤 구세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결심을 끝마친 구세희는 하준의 두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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