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상암동을 빠져나와 일산 방향으로 들어선 구세희의 차량.
그런 그녀의 차량을 뒤쫓고 있는 두 대 중 한 대의 뒷좌석엔 류민우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독단적인 행동을 취해온 적은 없었던 그.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사안의 심각성으로 인해 ‘그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알릴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그간 뒷주머니로 챙겨온 현조로부터의 돈이 결코 적지 않았기에, 만약 이번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양쪽 모두로부터 팽당하고 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지도 몰랐다.
앞서가던 구세희의 차량이 한 교회 앞 공터에 멈춰 선 건 그로부터 약 2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임시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듯한 그곳에 구세희가 차량을 주차하자 류민우 일행도 가까운 곳에 차를 정차.
은은한 불빛 아래 비치고 있는 운전석의 모습을 확인한 류민우는 곧바로 일행에게 지시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들 끝내자고. 지 죽을 자리를 아는지 마침 장소도 딱이네.”
밤 10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각. 게다가, 주변으로 그 어떠한 인적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고립된 이곳.
류민우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키기에 이보다 적합한 장소는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류민우의 지시에 차량 두 대에 있던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밖으로 빠져나와 구세희의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들의 양손엔 쇠파이프, 야구방망이 등의 각종 연장들이 들려 있었고, 구세희의 차량 주변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이, 아가씨. 잠깐 나와보지 그래?”
차량 앞을 가로막고선 야구 방망이로 앞좌석 유리를 툭툭 쳐대는 한 사내.
유독 운전석만 비추고 있는 불빛으로 인해 그녀의 얼굴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나오지? 괜히 이 비싼 차까지 폐차시키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나오지 않으면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거친 제스처들을 취해 보이는 여섯의 사내.
그래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자, 그들은 곧바로 앞유리를 거침없이 깨부수기 시작했다.
팍, 팍, 팍-!
몇십 초간 사정없이 휘두른 탓에 앞유리는 이미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상태가 돼버렸고, 그 사이로 보이는 구세희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겁에 질려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후우. 꼭 말로 하면 안 들어 처먹는다니까. 날도 추운데 짜증 나게시리.”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운전석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내. 그러곤 자신의 팔꿈치로 운전석 창문을 단번에 깨부쉈다.
“나와. 그쪽 면상을 직접 보고 싶다는 분이 계시니까.”
“아악!”
구세희의 멱살을 잡곤 차량 밖으로 강제로 끌고 나온 그가 뒤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자 그곳엔.
검은 가죽 재켓 차림의 류민우가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이야, 그렇게나 간 큰 짓거리를 하고도 묵묵부답이길래 어떻게 생겨 먹은 여자인가 했더니. 이거 생각보다 훨씬 미인인데?”
류민우의 말과 함께 사내가 구세희를 바닥에 강제로 무릎 꿇렸다. 류민우도 자세를 낮추곤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아니, 몇 번이고 정정 요청을 했으면 최소한 이렇다 할 답변이라도 해주는 게 예의 아닌가? 어디 구멍가게 수준도 안 되는 방송국 하나 들고 있으면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던 거야? 응?”
“…….”
구세희가 노려보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야, 깡다구 하나는 진짜 인정해 줘야겠구만? 보통 이런 상황이면 빌빌 기거나 눈물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전혀 그런 게 없단 말야?”
짓고 있던 웃음을 곧바로 지워 버리곤 그가 구세희를 노려봤다.
“근데, 지금부턴 태도에 있어서 신중해야 할 거야. 괜히 쓸데없는 객기부리다가 영영 집에 못 돌아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거든.”
그의 겁박이 담긴 말과 함께 연장을 든 사내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차가운 입김을 내뱉으며 류민우가 구세희에게 말했다.
“자, 날도 추우니까 깔끔하게 선택하는 걸로 끝내자고. 당신은 그냥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면 돼. 둘 중 내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오면 집으론 무사 귀환할 수 있을 거고. 어때, 대충 감이 오지?”
또 한 번 비열한 실소 뒤, 그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이틀 전 보도했던 현조그룹 관련 내용들. 그거 다 오보였고 제보 과정에서 검수도 없이 내보낸 거라고 정정해. 방송국뿐만 아니라 사장인 당신이 직접 사과문도 올리고 말이야. 뭐, 사장직에서 물러난다는 문구도 포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고.”
“…….”
“크게 어려운 일 아니잖아? 뭐 비난이야 있을 순 있겠지만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수그러들 거고. 당신이 사장직에 물러난다고 해서 실세가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보니까 지분도 다 혼자서 독식하는 구조더만. 그냥 바지사장 하나 앉혀놓고 계속 지금처럼 운영하라고. 어차피 크게 이름 있는 방송국도 아니었는데 조금 타격받는다고 뭐 회복 불능이야 되겠어? 사람들 금방 까먹는 거 알잖아?”
류민우가 내뱉은 말들에 구세희가 고개를 들어 올리곤 그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난 있는 사실을 그대로 내보낸 것뿐인데. 사과를 하든 비난을 받든 다 그쪽들이 해야 할 일 아냐?”
조금도 기죽지 않고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 류민우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곤 손을 털며 낮췄던 몸을 일으켰다.
“휴. 내가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은 아닌데 말이지. 대화가 안 통할 땐 이것만큼 특효약이 없더라고. 참, 아이러니하단 말야. 그치?”
그가 옆에 있던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가 쇠파이프를 류민우에게 건넸다.
쇠파이프의 끝부분으로 구세희의 턱을 들어 올리며 류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만약 이번에도 조금 전하고 같은 대답이 튀어나온다면 그땐 후회해도 소용없을 거야. 그러니까 목숨이 달린 문제라 생각하고 신중히 대답하라고.”
쥐고 있는 쇠파이프에 힘을 더욱 세게 가하며 그가 물었다.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정정보도와 사과문. 그리고 사장직 퇴임까지. 제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구세희 사장님?”
차가운 쇳덩이가 자신의 목 끝을 겨누고 있는 상황.
가하는 힘이 그대로 전해지는 탓에 구세희는 제대로 된 호흡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구세희가 그를 노려보며 말을 내뱉었다.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결국 니들 무덤 파는 짓이 될 테니까.”
“아나, 이 X년이.”
구세희의 대답에 옆에 있던 사내가 욕짓거리와 함께 그녀에게 다가갔고, 류민우는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그러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으며 그가 직접 행동을 취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난 분명 기회를 줬고 당신은 그걸 걷어찬 거야. 말했지,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을 거라고. 당신이 얼마나 겁대가리 없는 짓을 했는지 내가 지금부터 제대로 체감하게 해주지.”
외투를 벗어 던지곤 팔을 걷어붙치는 류민우. 그러곤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구세희에게 내려치려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앙-!
여섯 명의 사내들과 류민우의 시야 앞으로 한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강한 불빛을 비춰왔고, 해당 차량은 곧바로 액셀을 밟으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질주해 오기 시작했다.
“어, 어, 어!!!”
그대로 가만히 서 있다간 해당 차량에 분명 치일 게 뻔한 상황.
여섯 명의 사내들은 들고 있던 연장까지 던져 버리곤 황급히 몸을 피신시켰다.
류민우 또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마주하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 하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에도 간신히 눈을 뜨며 운전석에 있는 이의 정체를 확인하려 애썼다.
무엇보다, 앞 유리가 산산조각 난 상태의 해당 차량은 바로 구세희가 타고 온 차량이었기 때문에.
끼이이이익-!
여섯의 사내들이 이미 먼발치로 흩어진 상태에서 해당 차량이 류민우와 구세희의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곤 엉망이 된 운전석의 문이 열리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당신은. 처음부터 둘이 같이 있었던 거야……?”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존재의 등장에 류민우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그는 곧바로 구세희에게 다가와 그녀의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차 안으로 그녀를 이동시킨 뒤 다시 류민우의 앞에 섰다.
“지금까지 한 행동들만으로도 당신에게 죗값을 물리는 덴 충분할 겁니다. 보시다시피 이 안에 고스란히 다 찍힌 상태라.”
하준이 자신의 바로 뒤쪽에 있는 블랙박스를 가리켰고, 류민우도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근데, 이걸로 끝을 낼 순 없을 것 같네요. 그동안 당신이 한 짓들을 생각하면 고작 미행, 납치, 폭행 등만으로 끝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아서.”
“……뭐야 넌. 저년 보디가드라도 되는 건가?”
하준은 류민우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를 한번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많이 다급하긴 했던 모양이네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위험까지 감수하고서도 이렇게 직접 움직인 걸 보면. 궁금하네요, 현조로부터 내쳐지는 게 두려운 건지, 아님 그간 현조에서 받은 것들이 그들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운 건지. 그 제너럴이란 존재들 말입니다.”
하준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들에 류민우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 버렸다.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제너럴’이란 단어뿐 아니라,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들에 대해 너무나도 정확히 꿰뚫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흩어졌던 여섯의 사내들이 다시 연장을 챙겨 하준에게 거칠게 다가오자, 류민우가 잠시 그들을 멈춰 세우곤 하준을 쳐다봤다.
“당신 뭐야. 뭐 하는 사람인데 그 단어를 알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순간. 류민우의 기억 속으로 바로 며칠 전 커피숍에서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이 초면이 아니란 걸 곧바로 깨달았다.
“잠깐…… 당신 그때 검사님이랑 같이 있던.”
눈동자까지 키우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류민우에게 하준은 차가운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이제 끝입니다. 7급 수사관 류민우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