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35화 (136/165)

135화

3년 전 사건에 대해 물어오는 민정훈.

하준은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기 시작했다.

3년 전, 제프 깁슨의 콘서트를 하루 앞둔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 하준의 꿈속으론 당시로선 꽤나 뜬금없게 느껴질 만한 어떠한 장면들이 나타났다.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한 공간에 둘러모여 저마다 약물을 투여하고 있는 모습.

처음엔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곧이어 나타나는 그들의 표정 변화들을 본 하준은 그 약물의 실체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마약.

그 행위 자체보다도 당시의 하준을 더 놀라게 했던 건 바로 그들의 정체.

당시 미국 생활 5년차에 접어든 하준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정체는 이미 국내에서도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고 있던 어느 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신생이나 다름없던 소속사의 주가를 단숨에 손가락에 꼽을 수준으로 끌어 올렸을 뿐 아니라,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자신들의 인지도를 떨치고 있던 그룹.

모두가 20대 초반의 아주 어린 나이인 것을 감안하면 무척이나 충격적일 수밖엔 없는 장면들이었기에 하준은 그것이 꿈인지, 미래 예지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바로 그다음 날 터진 한국에서의 한 보도 기사를 보기 전까진.

[이머스트리 엔터테인먼트 대표, 마약 투여 혐의로 검찰에 소환. 이후 관련 인물들까지 줄줄이 소환 예정. 파장 클 것으로 예상.]

해당 아이돌 그룹 소속사 대표의 마약 투여 혐의에 관한 기사.

그저 우연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지금껏 자신이 꾸었던 꿈들의 경험치를 무시할 수가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또 다른 꿈들이 하준에게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날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장면들이었다.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아이들 그룹 멤버 전원의 마약 투여 사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일이라 당시엔 검찰 내부에서도 꽤나 떠들썩한 분위기였거든요. 근데, 그 공급책이 경찰 서장 쪽이었을 줄이야. 참,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단 말이죠.”

소속사 대표뿐 아니라, 그 밑에 있는 2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마약을 공급해 온 인물들.

그들은 다름 아닌 경기도 한 관할 구역의 마약 수사 전담팀이었고, 그들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인물은 바로 그 관할 구역의 경찰 서장이었다.

물론 수사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저 한 소속사 전체의 마약 사건으로만 가닥을 잡아가는 상황이었다.

미래 정보를 통해 이 모든 걸 접한 하준이 민정훈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 전까진.

“사실 대표님이 저한테 처음 전화를 주셨을 땐 웬 정신 나간 사람이 술 취해서 전화라도 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말도 안 되는, 흡사 영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허무맹랑한 일들을 그 오밤중에 떠들어댈 순 없으니 말입니다.”

민정훈이 그때의 기분을 다시 떠올리는 듯 다소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곤 하준을 쳐다봤다.

“대표님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이름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듣고 나니까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잔 생각이 조금은 들더라고요. 참, 저도 이상했죠. 그것 또한 어디 믿을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허허.”

“그래도 제 얘길 믿어주셨는지 바로 행동에 옮기셨던데요.”

“예. 만약 대표님이 정말 그 ‘H’라는 인물이 맞다면, 그 먼 미국에서부터 아무 할 짓도 없이 그런 제보를 해오진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디 한번 속아보잔 마음으로 말씀해 주신 것들을 하나씩 알아보기 시작했죠.”

검거한 일당들로부터 압수한 마약들을 그 즉시 폐기 처분하는 마약 수사 전담팀.

하지만, 그들은 그것들 중 일부를 빼돌려 다시 브로커들에게 되파는 형태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 모든 지시와 지휘는 그들의 가장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경찰서장이 든든히 뒷배를 지키고 있었고.

하준이 민정훈에게 해당 사실을 제보하고 한 달 뒤,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져 버렸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저 정말 그때 한 달 내내 집에도 안 들어가고 그 일에만 완전히 매달렸습니다. 후, 가뜩이나 검경이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괜히 어설프게 들쑤셨다간 검찰 얼굴 전체에 먹칠하게 돼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이왕 들쑤시기 시작한 거 제대로 끝장을 보고야 말겠단 생각으로 온 신경을 다 쏟았었죠.”

앞에 놓인 냉수로 빠르게 목을 축이곤 민정훈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결과는 대표님이 제보해 주신 내용과 100% 일치했습니다. 애초에 마약 수사 전담팀 자체가 김국한 경찰서장 지휘 아래 꾸려진 팀이었고, 그간 취해온 부당 이익 액수만 무려 수십 억에 달하더군요. 만약 대포 통장과 브로커의 존재, 그것들을 알지 못했다면 그 사실을 알고도 그놈들을 잡아 넣을 방법이 없었을지도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대표님의 제보 덕분에 가능할 수 있던 일이었습니다.”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한 아이돌 그룹의 대형 사고.

연예계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 것은 물론, 해당 사건은 상상 이상의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게 됐다.

그도 그럴 게, 공권력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경찰이 사회의 악이라 할 수 있는 마약의 공급책이 돼버린 셈이었으니까.

해당 사건으로 인해 검찰은 대대적인 마약 수사를 펼치기 시작했고, 이후 한동안은 잠잠할 날이 없을 정도로 숱하게 많은 기사들이 연일 터져 나왔다.

마약 공급책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은 물론이거니와 정재계 인사들의 자제, 그리고 유명 배우와 가수 및 지망생들의 마약 투여 혐의에 대한 것들이었고,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사실로 판명이 나게 됐다.

민정훈이 옅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휴. 그때 매일 정신없이 수사하고 또 많은 사람들의 죄를 입증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더 많은 거물급 인사들의 이름이 나왔음에도 정작 그 사람들의 죄는 입증시키지 못했거든요. 그 인간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여전히 그짓을 반복하고 있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하준의 물음에 그가 실소를 내뱉으며 답했다.

“정보가 미리 새어 나간 거겠죠. 그게 우리 검찰 내부이든, 아니면 또 다른 어딘가로부터든. 뭐, 워낙 대대적인 수사였다 보니 그 인간들도 온갖 빠져나갈 궁리를 찾았던 거죠.”

“음. 정보 제공자에 대해선 따로 찾아볼 생각은 안 하셨던 거고요.”

“당시엔 그럴 경황도 없을 정도로 바빴으니까요. 의심하다 보면 끝도 없을 거고, 그 인간들이 아니더라도 당시엔 잡아 넣을 피의자들이 넘쳐났던 시기니까. 그저 지금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론 아쉬움이 남는다, 뭐 그런 얘기였습니다. 하하.”

하준을 향해 웃음 소릴 짧게 내보이곤, 그가 말을 이어왔다.

“그 일로 일개 신입 검사에 불과했던 저는 연일 매스컴을 탔고, 몇 달 뒤엔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호출까지 받게 됐었죠. 당시 제 경력이나 상황을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거든요. 검찰 역사상 손에 꼽을 만큼 이례적으로요.”

말을 내뱉은 그가 이내 오묘한 얼굴 표정과 함께 하준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러곤 처음의 그 질문을 다시 꺼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내 궁금했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어주신 대표님은 대체 그 엄청난 일들의 전말을 어떻게 다 알고 계셨던 건지. 그리고, 왜 그 수많은 검사들 중에 저를 선택하셨던 건지. 아무리 이유를 찾아보고 또 추리를 해보려 해도 당최 이해가 되질 않더라고요. 그것도 낮과 밤의 시간이 전혀 다른 곳에 계실 분이 말입니다.”

진지함이 꽤나 묻어 있는 민정훈의 질문에 하준은 대답 대신 자신의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그가 건네온 두 가지의 질문에 어떠한 답을 해주는 게 좋을지 잠시 생각했다.

“음.”

왜 그때 자신에게 그런 미래 예지가 나타났던 건진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그의 말처럼 낮과 밤의 시간이 전혀 다른 한국에서의 사건이었기에 더더욱.

게다가 그 일 이후 지금까지, 해당 사건들과 관련한 그 어떠한 일도 자신에겐 일어나질 않고 있었고.

지금껏 아무런 인과성 없인 나타난 적이 없었던 미래 예지는 오직 그때의 일만이 유일한 것이었다.

같은 표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민정훈을 바라보며 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사님. 그때 제가 검사님께 그 얘길 전하면서 한 가지 당부드렸던 말 혹시 기억하시나요?”

하준이 묻자, 민정훈은 눈동자를 살짝씩 굴려가며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러곤 입을 반쯤 벌리며 고갤 낮게 끄덕였다.

“아, 예. 출처에 대해선 반드시 지켜줬으면 한다는.”

“네. 아직 그게 저한텐 유효한 거라서요.”

민정훈을 향해 짧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하준이 말을 이었다.

“검사님을 선택했던 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습니다. 해당 경찰서와 같은 지역에 있는 검사 중 가장 신입인 검사님을 찾은 것뿐이었죠.”

“음, 그 큰일을 제보하는 데 왜 굳이 신입 검사여야 했을까요?”

“글쎄요. 그 시기가 가장 패기 넘치고 겁이 없을 시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그랬던 것 같아서.”

하준의 얘기에 민정훈이 다소 황당하다는 듯 눈동자를 키워왔다.

“예? 고작 그런 이유이셨다고요? 허, 참.”

민정훈의 반응에 하준은 그저 옅은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조금 전의 말은 그저 지어낸 얘기에 불과했고, 자신이 보았던 미래 예지를 그대로 따른 것뿐이란 말은 할 수 없었으니까.

민정훈도 거기에 대해선 더 캐물어오지 않았고, 하준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왼쪽 손목을 잠시 들어 올렸다.

그때.

“검사님.”

한 낯선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민정훈을 불러왔다.

하준이 고개를 들자 공무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한 남자가 민정훈의 옆쪽으로 서 있었다.

“아, 수사관님! 식사하고 오시는 길이에요?”

“네. 검사님은 식사하셨어요?”

“네, 뭐. 보다시피 간단히 커피로. 하하. 어제 반차 쓰셨던데, 혹시 무슨 일 있으시거나 한 건 아니시죠?”

“아, 네. 그냥 개인적인 일이 좀 있어서. 아침에 출근해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회의 들어가고 안 계시더라고요.”

“에이, 뭐 본인 휴가 본인이 쓴다는데 굳이 저한테 따로 보고하실 건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쓰시면 됩니다, 편하게. 하하.”

“감사합니다, 검사님.”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하준의 표정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도 급격히 굳어 있었다.

수사관이라 불리는 그의 얼굴은, 하준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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