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31화 (132/165)

131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요? 이 기자님이?”

한 손엔 최윤섭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들고 구세희가 최 비서에게 물었다.

어느 한 술집 건물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 먼발치서 몰래 찍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최윤섭 그가 확실했다.

“그게 그들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야. 이슈를 이슈로 막는 것. 그래서 웬만한 언론사뿐만 아니라 방송사들까지도 손을 안 뻗치고 있는 곳이 없는 거지.”

“……어떻게…….”

이미 그들이 어떠한 존재들인지에 대해선 대략적으로나마 전해 들었던 구세희.

하지만 그들과 함께 공조하고 있는, 그리고 그들의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자신과도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인 최윤섭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기자님이 어떤 식으로 그 사람들을 돕고 있는 건데요? 조력자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걸 얘기하는 거예요, 최 비서님?”

심각하게 물어오는 구세희의 물음에 최 비서는 들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조금 전 얘기한 대로야. 이슈를 이슈로 막는 식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겐 그저 갑자기 터진 연예 이슈 같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모두 그들이 짜놓은 판 아래 놀아나는 일에 불과한 것이야. 그 이슈에 사람들이 열광할수록 그들이 덮고자 하는 일은 수면 아래로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을 테니까.”

최 비서가 구세희의 손에 들린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썬데이 미디어의 전신이 양진신문이라는 곳이었어. 당시만 하더라도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지는 아주 작은 신문사에 불과한 곳이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썬데이 미디어로 이름을 바꾸더니 오로지 연예 전문 매체로만 활동 폭을 좁히더라고. 그 뒤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기 시작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다 그들의 조력자 역할을 약속하고 받은 지원들이었던 거지.”

“그럼 이 최윤섭 기자는요? 이 기자는 언제부터 이 사람들을 위해 일해왔던 건데요?”

그간 최윤섭을 알고 지내온 세월 또한 결코 적지는 않았던 구세희.

만일 자신이 그를 알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그가 그런 일들을 해왔던 거라면, 자신 또한 그의 그런 일들을 도운 꼴이 될 수밖엔 없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이슈들을 그에게 숱하게 넘겨왔던 자신이었기에.

구세희의 물음에 최 비서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 기자가 투입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 기껏해야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 물론 앞으로 수년, 혹은 십수 년을 그들과 계속 함께해 가겠지만 말이야.”

“……말도 안 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사실에 구세희는 어떠한 말도 내뱉어지 못했다.

하준 모친의 죽음과 깊이 관련된 그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최윤섭과 손을 잡고 있었다니.

그것도 하준이 무척이나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 그를.

충격에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구세희를 바라보며 최 비서가 입을 열어왔다.

“세희야. 네가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들이야. 정재계뿐만 아니라, 그들과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각 분야마다 웬만큼은 다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이지. 서로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암묵적이고도 위험한 거래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인 거고.”

“…….”

“네 부탁이라 회장님은 모르게 너에게 전달은 했다만, 만약 너에게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나도 그땐 회장님께 알릴 수밖에 없어. 그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그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선 어떤 짓들까지 저지를 수 있는 인간들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최 비서의 얘기에 구세희가 천천히 입술을 떼왔다.

“20년 전 그 신인 여배우처럼 말이죠.”

“…….”

이미 모든 걸 다 안 뒤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온 구세희란 걸 알기에 최 비서는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최 비서님.”

“그래. 세희야.”

“하준이가 저한테, 또 아빠한테 어떤 존재인지 최 비서님은 잘 아시잖아요. 지난 20년이란 시간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오신 분이니까.”

“……그래. 잘 알지.”

“그런 하준이와 관련된 일이에요. 아빠는 하준이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제 생각은 전혀 달라요. 하준이를 위해서라면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관망하는 게 아니라, 다신 그 어떠한 짓도 벌이지 못하게 아예 뿌리채 뽑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2, 제3의 이수연이 생겨나지 않도록요.”

“……그렇지만 세희야.”

최 비서의 말을 끊고는 구세희가 들고 있던 사진을 테이블 위로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눈빛으로 최 비서를 바라봤다.

“아빠가 하지 못한 일, 아니, 애초에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 일들. 제가 반드시 하고 말 거예요. 그래서 하준이를 대신해 꼭 복수할 거고, 그 쓰레기 같은 존재들을 하준이 앞에 반드시 무릎 꿇게 하고 말 거예요. 제 모든 걸 다 걸어서라도.”

어두워진 최 비서의 얼굴을 일별하곤 구세희가 테이블 위로 깔린 여러 장의 사진들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이 사람들, 자기들을 제너럴이라고 부르는 이 남자들에 대한 정보들. 저한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전달해 주세요. 아빠랑 최 비서님이 지난 20년 동안 수집해 온 모든 것들 전부 다요.”

말을 마친 구세희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메시지창을 띄워 누군가의 번호를 불러오곤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최 기자님, 저예요. 시간 괜찮으시면 지금 좀 뵀으면 하는데. 확인하시는 대로 바로 연락 부탁드릴게요.]

* * *

“하아, 하아…….”

운전석에 앉은 하준의 입밖으로 거친 숨이 연신 내뱉어졌다.

이마 위론 땀방울까지 맺힌 하준은 조금 전 나타난 갑작스러운 현상에 조금도 진정이 되질 않고 있었다.

‘대체 방금 그건…….’

역시나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구세희를 만나기 위해 직접 NTV로 향하려던 하준.

그런데, 운전석에 앉음과 동시에 일순 잠식돼 버린 시야 속으로 어떠한 장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하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장면들이었다.

‘설마 이것도 미래 예지인가?’

만약 조금 전 나타난 장면들이 늘 그렇듯 미래의 정보 중 하나라면, 하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막아야만 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끔찍했던 장면들은 그동안의 미래 예지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분명 세희한테 무슨 일이…….’

끔찍한 장면 속 서서히 숨소리를 잃어가던 구세희의 모습뿐 아니라,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의 얼굴까지.

비열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이미 하준에게도 낯이 익은 얼굴이었고, 동시에 아까 전 나타난 미래 예지 속 그의 통화 내용이 떠오를 수밖엔 없었다.

‘그 NTV 사장 년에 대해서도 캐내봐. 뭘 믿고 그렇게 설쳐대는 건지, 어디 구린 구석은 없는지. 만약 협박이 안 통하면 아예 두 발로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생각이니까.’

그리 멀지 않는 시간차를 두고선 나타난 두 개의 미래 예지.

두 장면 모두 그와 구세희가 포함된 장면들이었고, 그것의 내용들 또한 지금껏 나타났던 미래 예지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두 번째 미래 예지에선 그녀가 숨을 잃어가고 있었기에 더더욱.

“…….”

대체 왜 구세희가 그들의 타깃이 된 건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반드시 일어나게 될 미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들을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는 거고.

곧바로 시동을 켠 하준은 액셀을 거칠게 밟아가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최근 통화 목록 가장 맨 위에 위치해 있는 구세희의 번호를 눌렀다.

-지금은 고객님의 사정으로 수신이 연결되지 않아…….

이번에도 역시나 연결되지 않는 전화.

그녀가 정확히 어떠한 일을 꾸미고 있는 건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자신과 관련한 일일 것이라는 거다.

그렇기에 줄곧 자신의 연락을 피하고 있는 걸 테고.

대체 무슨 일이기에.

부우우우웅-

빵-! 빵-!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온 하준은 주변에서 울려대는 다른 차량들의 클랙슨 소리도 모두 무시한 채, 거칠게 도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 하준의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있는 건 오로지 한 사람, 바로 구세희.

그녀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그리고 그녀는 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의 연락을 피하고 있는 건지.

지금의 하준으로선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기에 마음이 더더욱 조급해질 수밖엔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 미래가 바로 코앞까지 닥쳐온 상황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 * *

“아니…… 이걸 구 사장님이 왜…….”

자신의 앞에 놓인 여러 장의 사진들을 모두 확인한 최윤섭은 무척이나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갑작스레 자신을 보자 한 그녀가 일언반구도 없이 곧바로 해당 사진들을 자신에게 내밀었기 때문.

“역시 바로 알아보시네요. 그 사진 속 사람들이 누군지.”

“……아니, 그러니까…….”

부정하고 싶어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사진 속 그들과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도 선명히 찍혀 있었으니까.

게다가.

“최 기자님이 그 사람들과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사람들을 위해 최 기자님이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두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한텐 굳이 부정하실 필요도 없고요.”

지금껏 봐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그녀.

그런 구세희의 모습은 이미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있다는 모양새였기에 더더욱.

“최 기자님께 실망했다느니 그런 얘길 하려고 보자고 한 건 아니에요. 지금 저한텐 그런 감정 따윈 조금도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그녀에게 느껴지고 있는 분위기는 둘째로 치더라도, 해당 사진들을 자신에게 직접 건네왔다는 건 분명 뭔가의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불렀다는 것.

최윤섭 또한 긴장된 마음에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곤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구세희가 최윤섭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요. 최 기자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 앞으론 저를 위해서 해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