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28화 (129/165)

128화

세 시간 뒤, 숙소로 돌아온 .

윤채경의 집에서 한껏 싸온 출장 뷔페 음식들을 이준이 정리하는 동안, 멤버들은 거실 바닥에 앉아 멍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형들. 이거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 맞죠……? 그동안 우리한테 들어간 돈만 해도 보통이 아닐 텐데…….”

가장 먼저 운을 띄운 지호의 말에 은호가 낮게 고갤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동안 우리가 받은 것들만 해도 이미 대형 기획사들 저리 가라할 수준일 텐데. 이건 말이 안 돼도 너무 안 되는 거지.”

“못해도 수억,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들었을지도 몰라. 심지어 얼마 전엔 미국까지 다녀왔잖아, 우리. 그것도 왕복 다 일등석 좌석에 거기서 쓴 비용들까지 다 대표님이 지불하신 것 같던데.”

“하아…… 역시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이건.”

분명 수십 가지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기분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돌아온 멤버들.

웬일인지 숙소에 발을 디딘 이후론 줄곧 심각한 표정들만을 짓고 있었다.

침묵과 한숨만이 거실 내부에 공존하던 때, 하늘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 왔다.

“혹시 우리가 찍은 광고 수익들이 벌써 그걸 다 뛰어넘었던 걸까요……? 물론 아직 몇 개밖에 안 찍긴 했지만…….”

하늘이 꺼내온 얘기에 은호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갤 내저었다.

“그건 말도 안 되지. 고작 두 개 찍은 걸로 그 많은 비용이 다 충당됐을 리가. 우리 같은 신인그 룹한테 아무리 많이 준다 한들 적정선이라는 게 있을 텐데.”

“그쵸…… 저도 그것 말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도저히 모르겠다는 얼굴 표정으로 은호가 이준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서이준. 혹시 넌 뭐 아는 거 없어? 지혜 누나가 너한텐 따로 귀띔해 줬다거나 했던 건 없었고?”

마지막 음식을 집어넣은 뒤 이준이 냉장고 문을 닫으며 은호를 쳐다봤다.

“응. 나도 아까 처음 듣는 얘기였어. 적어도 첫 정산은 2~3년 뒤에나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우리끼리 맨날 얘기했었잖아. 놀란 건 나도 너희랑 마찬가지였지, 당연히.”

리더 이준마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나자, 멤버들은 더욱더 미궁에 빠진 듯한 모습들이었다.

“아니, 어떻게 해야 우리가 정산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숙소에, 앨범 제작비용에, 그간 활동하면서 대표님이 신경 써주신 것들 생각하면 도저히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 같은데. 하.”

은호뿐 아니라 멤버들이 이토록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

바로, 윤채경의 집에서 전해 들은 뜻밖의 소식 때문이었다.

‘실은, 대표님이 너희 첫 정산 해주라고 하셔서 지난주부터 내내 야근해 가면서 작업하고 있었어. 아마 데뷔 3개월도 안 돼서 정산받는 애들은 너희가 최초이자 마지막일걸? 호호, 축하한다?’

조만간 멤버들에게 첫 정산이 이뤄질 거라던 김지혜의 말.

그리고, 그 외에 어떠한 코멘트도 덧붙이지 않았던 하준.

비록 데뷔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멤버들이라고는 해도 이 바닥의 섭리가 어떤지에 대해선 충분히 알 만큼 아는 바였다.

아이돌 그룹 하나를 데뷔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드는지, 그리고 그걸 회수하는 데까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더군다나 자신들은 이제 막 데뷔해 광고 몇 개 찍은 것을 제외하곤 고작 음악방송 출연이 전부였는데.

그 음악방송마저도 자신들의 무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하준이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고 있었고.

그런데, 대체 어떻게 자신들이 벌써부터 정산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이것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설이긴 한데. 만약 저희가 정말 정산을 받는 게 사실이라면 가능한 경우의 수는 딱 한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소파에 앉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던 강준이 은호를 바라보며 입술을 떼 왔다.

“경우의 수? 그게 뭔데?”

“지금껏 들어간 돈은 일절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벌어들인 수익으로만 계산하는 거요. 데뷔하고 지금까지 저희가 낸 이익만 생각하고, 그 전에 투자된 비용들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거. 그래야만 이게 가능한 일이니까.”

강준의 얘기에 은호가 곧바로 말도 안 된다는 듯 입을 열어왔다.

“야…… 그게 말이 돼? 대표님이 무슨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어떻게 들어간 돈이 있는데 그걸 생각 안 하고 무작정 정산을 해주시겠냐.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알아요, 저도. 근데 그것 말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얘기니까.”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 전 강준의 말을 계속 곱씹게 됐다.

강준의 얘기처럼 그게 아니고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난 장비들까지도 대표님이 직접 다 사 주셨잖아. 그것도 개인 사비로 다. 내 방에 있는 것들 다 엄청 고가의 장비들인데.”

이준이 꺼낸 얘기에 대해선 이미 멤버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준의 개인 작업실 용도로 마련된 방을 가득 매우고 있는 장비들은 못해도 억이 넘어가는 수준의 그것들이었으니까.

연습생 신분이었던 이준의 능력으론 절대 꿈도 못 꿀 물건들이었고.

이준의 얘기에 옆에서 말없이 입술만 달싹이고 있던 하늘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왔다.

“실은…… 저도 대표님한테 엄청 큰 도움받은 게 있었어요. 정말 너무 커서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모를 만큼…….”

“너도 대표님한테? 어떤 도움?”

일제히 쏠려온 멤버들의 시선 사이로, 하늘은 일전에 있었던 하준과의 일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왔다.

오로지 하준과 자신만 알고 있던, 그리고 당시의 멤버들은 전혀 모르고 있던 그 얘기들을.

“허…… 지, 진짜야? 대표님이 할머니 치료비용에 이사 갈 집까지 구해주셨다고?…… 하, 어떻게 그런 일이.”

“아니, 할머니가 언제 그러셨었는데? 너 왜 우리한텐 왜 그런 얘기 안 했었어?”

“할머니 지금은 괜찮으신 거야?”

조금도 모르고 있었던 다소 충격적인 얘기들에 멤버들은 일제히 질문들을 쏟아냈고, 하늘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짧게 고갤 끄덕였다.

“할머님은 이제 괜찮으세요. 그때 대표님이 VIP 병실로 잡아주셨어서 푹 쉬시면서 치료 잘 받고 퇴원하셨거든요.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에선 할머니도 넘어지거나 하실 일은 절대 없는 구조라. 그래서 저도 안심하고 활동에만 더 전념할 수 있었던 거구요.”

“하, 이건 이준이 장비 때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데……?”

하늘의 할머니가 완쾌됐다는 소식에 안도함과 동시에, 멤버들은 하준과 하늘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꽤나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해당 사실을 알고 난 뒤엔 더더욱 자신들의 정산이 터무니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혼자 부엌에 서 있던 이준의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자를 확인한 이준은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엄마. 이제 숙소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거실에 있던 멤버들의 휴대폰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어, 엄마. 이 시간엔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네, 아빠. 안 그래도 전화드리려고 했었는데. 엄마 옆에 계세요?”

하늘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일제히 통화를 이어갔고, 전화를 걸어온 곳은 하나같이 다 그들의 부모님으로부터였다.

“네……? 지, 지금 이 시간에요? 지금 시간이…….”

“뭐……? 어, 얼마나 들어왔길래 그러는 거야……?”

“……지금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아빠? 정말 회사에서 들어온 거 맞아요……?”

그런데, 각자의 자리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멤버들의 반응이 웬일인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모두가 눈과 입을 한껏 벌리고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고.

‘왜 저런 반응들이지……?’

홀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하늘의 입장에선 무척이나 의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

더군다나 같은 타이밍에 걸려온 부모님으로부터의 전화를 받고 난 뒤의 반응이었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엔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울리지 않고 있던 하늘의 휴대폰마저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액정화면 위로 떠 있는 할머니란 세 글자에 하늘은 곧바로 수신을 연결했다.

“네, 할머니!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아이고, 하늘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뭐 한 게 있다고 벌써부터 이런 큰돈을 보내주는 것이야! 이 집 해준 걸로 네가 받을 거 미리 다 땡겨 받은 거 아니었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숨도 쉬지 않고 내뱉어오는 할머니의 얘기들에 하늘은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아 곧바로 되물었다.

“저, 할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큰돈을 보내줬다니…… 누가, 어디서요?”

-아이고, 어디긴 어디여. 너 다니는 회사지! 조금 전 어떤 아가씨한테 연락이 왔는데 하늘이 너 가수 된 걸로 돈 번 거라고, 계좌로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 하더라고. 그래서 명숙이한테 확인 좀 해보라고 했더니 액수가 커도 너무 크니께 내가 지금 이러는 거 아니냐. 아이고, 하늘아 이거 잘못 보냈다고 얼른 그 아가씨한테 얘기 좀 해줘라 네가! 아, 얼른.

“아니…… 아, 일단 제가 확인 좀 해볼게요, 할머니. 다시 전화드릴게요.”

전화를 끊고는 다소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멤버들을 바라본 하늘.

역시나 그들 모두 통화를 종료하고는 하늘과 비슷한 반응들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멤버들이 있는 단톡방의 알림 소리가 연달아 울리기 시작. 내용을 확인하자 김지혜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회식 끝나고 회사에 들를 일이 있어서 대표님께 말씀드리고 바로 정산 처리했어. 지호랑 하늘인 부모님이랑 할머님께 따로 전화드려서 설명했으니까 아마 지금쯤 확인 다 하셨을 거야. 첫 정산 축하한다, ! 앞으로 더 대박 나서 다음 정산 땐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하자, 알겠지? 그동안 고생했어! 푹 쉬고 월욜에 봐.]

“…….”

멍하니 거실에 선 채로 김지혜의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는 멤버들.

멍한 얼굴들 사이로 지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어왔다.

“혀, 형들도 정산 때문에 온 전화였어요?”

지호가 묻자 은호가 한숨을 섞어 답했다.

“어. 금액이 너무 크게 들어온 거 아니냐고. 하, 듣고 심장 멎어 버리는 줄 알았네. 내가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달라서.”

계약서에 명시된 정산 관련한 내용들을 모르지 않기에 분명 모두가 같은 금액을 정산받았을 터.

그렇기에 모두가 똑같은 얼굴 표정과 반응들을 보여올 수밖엔 없었다.

심지어 그 대상에 자신은 포함돼 있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던 하늘마저도.

제자리에 선 채 여전히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있는 멤버들 사이로 꽤나 긴 침묵이 흘렀고,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다 맏형 은호가 이준을 쳐다보며 낮게 물어왔다.

“대체 대표님은 무슨 생각이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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