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27화 (128/165)

127화

“신호진 선배님이요? 헉…… 그분 그런 이미지로는 절대 안 보였는데…….”

칠리새우를 오물거리다 윤채경이 꺼낸 얘기들에 놀란 반응을 보여오는 은호.

윤채경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선배님은 무슨. 그런 자식은 선배라고 부를 것도 없어. 어차피 너네랑은 마주칠 일도 없겠지만, 혹여나 마주친다 해도 그냥 쌩까고 지나가. 인사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니까.”

촬영장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 듯, 윤채경은 연신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었다.

“슬아 너는 괜찮아? 따로 해꼬지 당하거나 그런 건 없었고?”

이준의 걱정이 담긴 물음에 이슬아가 짧게 고갤 끄덕였다.

“응. 그때 마침 대표님이 들어오셔서. 난 바로 나왔고.”

“후, 대표님 그 자식 그대로 냅둘 건 아니시죠? 이미 기자들도 다 알고 있다면서요. 대표님 다 친한 분들이시니까 그냥 확 터뜨려 버리라고 하세요. 다시는 이 바닥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끔!”

한창 김진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화기애애하던 분위기 속, 대뜸 윤채경과 김민정이 촬영장에서의 일을 꺼내왔다.

발단은 멤버들이 이슬아에게 촬영은 어떠냐고 물은 것에서부터 시작. 이슬아가 다소 어색한 반응을 보여오자, 두 사람이 갑자기 급발진을 해온 것이었다.

윤채경의 얘기에 김민정도 곧바로 거들었다.

“맞아요, 그런 인간들은 아주 씨를 말려 버려야 돼요. 지금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아직도 그딴 짓을 하는 건지. 휴우. 그것도 자기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신인들만 골라가지고는. 쓰레기도 그런 쓰레기가 없다니까요?”

대기실에서 하준과 신호진이 나누던 대화 내용들을 두 사람 모두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기실을 빠져나올 당시만 해도 이슬아밖에 없었던 터라 전혀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두 사람의 얘기에 하준은 탄산수를 한 모금 마시곤 답했다.

“그래 봐야 조만간일 거예요. 이미 증거 자료들은 넘쳐나고 기사 초안까지 다 작성해 둔 상태라고 하니까. 기사가 터지고 나면 다시 재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죠.”

“불가능은 무슨요. 이 바닥 인간들이 얼마나 철판이 두꺼운데. 1~2년 대충 자숙한 척하고는 어디 잡지사 같은 곳에 인터뷰 잡아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면서 이미지 쇄신하려고 할걸요? 안 봐도 훤해요, 훤해.”

윤채경의 얘기에 김진성도 꽤나 공감한다는 듯 입을 열어왔다.

“안타깝지만 그게 이 바닥의 현실이긴 하죠. 저도 20년간 연예계 생활 해오면서 그런 사례는 이미 숱하게 봐왔으니까. 뭐, 그건 마찬가지일거고요.”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는 얘기들이었기에 하준도 고갤 짧게 끄덕이곤 말했다.

“어차피 우리하고만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이면 되니까요. 그래서 감독님께도 말씀드려서 촬영 중단을 요청했던 거고.”

“아! 그건 어떻게 된 거예요? 감독님이 바로 오케이하셨어요?”

“그래도 대본까지 수정해가면서 특별 출연으로 나온 거라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것 같은데…….”

두 여배우에겐 무척이나 이례적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기에 내막이 궁금하다는 듯 하준을 빤히 쳐다봤다.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이시던데요. 이미 신호진 씨 소문에 대해선 알고 있어서 이번 출연이 별로 달갑진 않으셨다 하더라고요. 근데 제작사 쪽에서 부탁을 해온 일이라 어쩔 수 없어 수락할 수밖엔 없었다고. 얘길 듣고 난 뒤론 두 분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했고요.”

“역시! 우리 감독님이야. 이래서 내가 믿고 계속 같이 가는 거라니까? 후후.”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듯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윤채경을 바라본 뒤, 하준은 이슬아에게로 고갤 돌렸다.

촬영장에서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의 분위기가 다소 어색한 탓인지 온전히 즐기지만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디션 준비는 잘돼가? 이제 이틀 정도 남은 것 같은데.”

하준의 물음에 이슬아가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곤 답했다.

“아, 네! 채경 언니랑 민정 언니가 조언도 많이 해주고 하셔서 그거 참고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오디션 전에 직접 현장 경험을 해보는 게 엄청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오디션 당일에 감독님 앞에서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바로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윤채경이 다소 의아하다는 듯 하준에게 물어왔다.

“근데요 대표님. 왜 하필 장준명 감독 작품이에요? 그 감독님 주연 배우도 웬만하면 다 오디션 통해서 뽑을 정도로 엄청 깐깐하고 눈 높은 사람인데. 슬아 첫 오디션으로 보기엔 너무 무게감이 높은 게 아닐까 싶은데.”

윤채경의 얘기에 한참 식사에 집중하고 있던 멤버들이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이쪽을 쳐다봤다.

“헉, 그 감독님 막 칸에도 다녀오시고 그러는 분 아니에요? 기사로 엄청 자주 접했던 것 같은데.”

“슬아 너 그 감독님 작품에 오디션 보는 거였어? 컥, 대박.”

“와…… 슬아 누나 그럼 이제 칸 가고 그러는 거예요? 막 화려한 드레스 입고? 오오오!”

멤버들의 오버 액션에 이슬아는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고, 하준은 윤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히려 그 점이 더 유리하게 작용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기나 인맥, 기타 외적인 요소들은 다 배제하고 오로지 연기와 배역에 적합한지만 본다는 뜻일 테니까. 할리우드 시스템처럼요.”

미국의 캐스팅 시스템에 대해선 일전에 하준에게 들었던 터라 윤채경은 곧바로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다소 걱정된다는 듯 이슬아를 바라봤다.

“흐음, 뭐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워낙 그분 속을 알 수가 없다고들 하니까. 같이 작품 해본 사람들 얘기 들어봐도 촬영장에선 거의 사적인 얘긴 안 하신다더라고요? 오로지 작품에 대한 것 외엔 아무것도 관심 없어 하시는 분이라면서. 그 얘기 듣고 나니까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의 슬아한텐 좀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다소 우려 섞인 말을 꺼내온 윤채경은 이내 곧바로 표정을 달리해왔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표님이 결정한 거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슬아! 넌 아무런 생각 말고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해, 결과랑은 상관없이 무조건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알겠지?”

“네, 언니. 저도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임하고 있어요. 이게 다 나중엔 분명 밑거름이 될 거니까.”

“그럼, 그럼. 아주 좋은 생각이야.”

쉴 틈 없이 떠든 탓인지, 윤채경은 다시 음식들을 접시에 담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 또한 가벼운 대화들을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다.

지금껏 대부분에 있어서 미래 예지에 의존해 왔던 하준.

하지만 이번 이슬아의 일만큼은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결정들이었다.

오늘 그녀가 신호진에게 겪은 일들은 앞으로도 또 얼마든 반복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녀가 윤채경과 같은 위치, 혹은 그만한 경험이 쌓일 때까진 부조리한 일들을 수도 없이 겪게 될 수밖엔 없을 것이다.

비단 이 바닥뿐만 아니라 그건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강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약자를 휘두르려 하는 것.

더군다나 당분간 이슬아는 자신의 그늘 아래 있다는 것도 숨긴 채 활동할 것이기에 더더욱 표적이 될 수밖엔 없을 터였다.

그만큼 충분히 예쁘고, 매력적이고. 또, 가진 재능 또한 결코 적지는 않았으니까.

윤채경이 얘기한 대로 결코 쉽지는 않을 오디션이었지만, 그라면 어쩌면 이슬아의 그런 원석 같은 모습을 발견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추천한 것이었다.

다른 어떠한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배역과 연기력, 그 두 가지만 보는 감독이 바로 장준명 그였으니까.

“후우, 너무 배부르다. 한입만 더 먹었다간 먹은 거 그대로 다 토해낼지도 모르겠어.”

김지혜가 접시와 포크를 식탁 위로 올려두곤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렸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라는 듯 하나둘 식사 종료 의사를 밝혀왔고, 윤채경은 커피 머신 쪽으로 김민정과 걸음을 옮겨 나갔다.

“저, 채경 누나. 혹시 이 음식들 남으면 다시 그분들이 가지고 가고 그런 거예요……?”

아직 식사를 덜 끝마친 상태의 은호가 윤채경에게 물었고, 윤채경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풉, 그럴 리가아. 저걸 가지고 가서 어디에 쓴다고. 못 먹으면 버리면 되니까 굳이 억지로 먹을 필욘 없어. 억지로 먹다 체하면 그게 더 큰일이다? 알지?”

지호가 은호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는 듯 곧바로 입을 열어왔다.

“아뇨, 아뇨! 은호 형 말은 이거 남으면 우리가 싸 가도 되냐는 얘기였어요. 이 맛있는 걸 이만큼이나 남기는 건 너무 말이 안 돼서.”

“그럼, 그럼. 누나, 이거 안 드시면 저희가 남은 거 다 숙소에 가져가도 돼요? 헤헤, 가서 마저 먹고 남은 건 내일 또 먹게요!”

은호와 지호가 꺼낸 얘기였지만, 윤채경을 바라보며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의 얼굴은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표정들이었다.

심지어 리더 이준마저도.

그 모습들에 윤채경은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선 얕게 탄식을 내뱉었다.

“……하, 참 나. 누가 보면 너희 아직 데뷔도 못한 연습생 애들인 줄 알겠다? 그것도 회사에서 지원이라곤 일도 안 해줘서 매일 배 굶고 다니는 애들처럼?”

그러곤 하준에게 시선을 옮겨 물었다.

“대표님, 얘네 혹시 이제 막 다이어트 끝나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식욕들이 왕성한 건가?”

윤채경의 물음에 하준이 옅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럴 리가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들이라 지금껏 다이어트 같은 건 시도해 본 적도 없어요. 심지어 주마다 먹는 광고도 꾸준히 찍고 있는걸요.”

“……미쳤다, 미쳤어.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간절한 눈빛들을 보내오고 있는 거야? 내가 안 된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들을 하고선? 어휴.”

이보다 더 같을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다섯 개의 얼굴을 보며 다른 이들도 웃음을 짓고 있었고, 윤채경은 마지못해 고갤 끄덕였다.

“휴, 그래. 그렇게들 해. 맘 같아선 새 음식들로 얼마든 사 주고 싶지만, 지금 너네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닐 거니까. 대신 적당히 먹어야 된다? 괜히 오버해서 먹다가 탈나면 너희 스케줄도 완전 다 꼬이는 거라구. 그럼 대표님 손해도 이만저만 아닌 거 알지?”

“에이, 그럼요! 저흰 아무리 먹어도 탈 안 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헤헤.”

“그래도 적당히 먹을게요, 누나! 감사합니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는 듯 다시 음식들을 접시 위로 담아내는 멤버들.

대체 저 많은 음식들이 어디로 가는 건지 신기할 정도의 식사량에 모두가 빤히 멤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김지혜가 하준에게 낮게 말을 건네 왔다.

“아 참, 대표님. 요청하신 일은 오늘 다 마무리 지었어요. 지호랑 하늘인 지호 부모님이랑 하늘이 할머님께 따로 연락드려서 동의도 다 구했구요. 말씀 주시면 바로 처리하도록 할게요.”

“응, 고생했어. 처리는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출근하면 바로 해줘.”

“넵! 대표님.”

조용한 목소리로 대활 나눈 두 사람이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이들에게 또한 모두 들릴 수밖엔 없었다.

자신들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지호와 하늘이가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물어왔다.

“저희 부모님이요? 혹시 무슨 일 생긴 거예요, 지혜 누나……?”

“아까 할머니랑 통화할 땐 아무런 말씀 없으셨는데.”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고 있기에 다소 긴장의 눈빛을 보내오고 있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포함한 멤버들을 바라보며 김지혜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표님이 너희한테 엄~ 청 엄청 큰 선물을 준비하셨거든. 정말이지 말도 안 될 만큼!”

그러곤 그녀의 시선이 하준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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