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21화 (122/165)

121화

“아이고, 유 대표님! 이거 나름 일찍 온다고 서둘렀는데. 아무래도 제가 쫌 늦은 모양입니다? 하하. 오래 기다리셨어요?”

여의도 증권가 내 위치한 한 작은 카페.

입구 문을 열고 들어온 최윤섭이 창가 쪽에 앉은 하준을 발견하곤 반가운 표정을 지어왔다.

그런데, 그런 그를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하준은 일순 움직임을 멈춰 세울 수밖엔 없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시야가 갑자기 뒤집어지기 시작, 자신을 향해 내뱉어오는 반가운 톤의 목소리가 뭉개지며 눈앞으로 어떠한 장면들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 이번 기사도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최 기자님. 덕분에 우리 VIP도 한시름 놓게 됐다고 여간 기뻐하시는 게 아닙니다. 이거 따로 답례까지 전해주시던데요?”

뒤집혔던 시야가 밝아지며, 어느 한 룸 안의 전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석에 앉은 남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옆에 있던 또 다른 사내가 최윤섭의 앞으로 작은 박스 하나를 건넸다.

“자칫하면 우리 VIP 정치 인생도 여기서 아주 끝장날 뻔했던 사안이라 이런 소박한 게 답례가 될진 모르겠습니다만. 뭐, 그래도 가벼운 성의 표시 정도로만 생각하고 편하게 받아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그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최윤섭은 조심스럽게 박스 포장을 벗겨냈고, 곧이어 조명 빛에 반짝이는 아주 고가의 시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너무…….”

“하하, 왜요. 고생하신 거에 비해 너무 볼품없는 선물인가요? 음, 그래도 국내에선 몇 개밖에 없는 나름 희소한 물건이긴 한데요. 하하.”

“…….”

정확히 어느 시점인진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의 최윤섭은 왠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소 놀란 반응을 보이는 듯싶던 그는 이내 그것을 집어 올리더니 자신의 손목으로 옮겨갔다.

“그럼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께도 말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물론이죠. 비단 이번 일뿐만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쭉 서로 공생해야 하는 관계들인데. 물론 그래야죠.”

족히 수억은 될 법한 고가의 시계를 차고도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최윤섭.

마치 이런 상황에 무척이나 익숙한 듯한 모습이었다.

“자, 일단 한잔 받으시고요 최 기자님.”

상석에 앉은 남자가 건넨 술을 받아드는 최윤섭.

그의 주변으론 상석의 남자를 제외하고도 다섯의 사내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검은색 양복 차림의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고.

“크흡. 최 기자님. 우리와 양진신문, 아니, 썬데이 미디어가 함께 손 잡아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고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는지 아마 최 기자님은 잘 모르실 겁니다, 그렇죠? 크흐.”

“아, 예.”

“물론 우리와 공생 관계에 있는 게 썬데이 미디어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20년 동안 우리도, 썬데이 미디어도 서로 잘 윈윈해왔다고 볼 수 있겠네요. 뭣보다, 양진신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잖습니까? 하하.”

지금의 대화만으로는 정확히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파악할 순 없었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만큼은 결코 동등한 관계처럼 보이고 있지 않았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 10년, 20년, 아니, 우리 ‘제너럴’이 계속 존재하는 한 썬데이 미디어도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 전문 매체라는 타이틀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을 겁니다. 그 자리는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는 자리니까요.”

어딘가 모를 비열한 웃음을 흘리곤 그가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러곤 그것을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기곤 다시 최윤섭을 바라봤다.

“크흡. 물론 썬데이 미디어를 대표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최 기자님 또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까진 제가 보장해 드려야겠지요. 앞으로도 우리 ‘제너럴’을 위해 쭉 애써주실 분이니까요? 하하.”

“……아, 예.”

“최 기자님.”

잔을 내려놓은 그가 최윤섭을 불러왔다.

그러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눈빛을 보내며 위압감 가득한 어투로 말을 뱉어왔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행여나 독단적인 마음을 품게 되시는 순간이 오게 된다면. 그땐, 아주 곤란한 상황이 펼쳐지고 말 겁니다. 최 기자님뿐만 아니라, 최 기자님이 몸담고 있는 썬데이 미디어 또한요.”

“…….”

그가 다시 한번 양주병을 집어 들고는 최윤섭과 자신의 잔을 각각 채우며 말을 이었다.

“흠, 그게 한 20년 정도 됐죠, 아마? 제너럴이 생긴 이래 그런 경우가 딱 한 번 있긴 했었습니다. 그때 한 신인 여배우가 우리의 존재를 알고선 일을 굉장히 크게 만들려고 하더군요. 여기저기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부터 해서, 방송국 시사 프로에까지 뭐 고발 비슷한 제보를 해가면서요. 하하, 참 순진하기 짝이 없었던 거죠.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 알고, 그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조금도 알아볼 생각은 안 했으니까요.”

잠시 말을 멈춘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포도송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꼭지 가장 끝부분에 달린 포도알 하나를 제외하곤 모조리 다 털어내 버린 뒤 최윤섭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 기자님. 그 여배우가 결국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최윤섭의 반문에, 그가 마지막 포도 알을 지탱하고 있던 꼭지를 통째로 꺾어 버리곤 비소를 흘렸다.

“탁. 이렇게 한순간에 꺾여 버리고 말았죠. 그 어떠한 저항도 몸부림도 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마감하면서 말입니다. 크흐.”

“…….”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 가득한 그의 말들에 최윤섭은 일순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그는 테이블 위로 포도송이를 가볍게 털어 버리곤 다시 최윤섭을 바라봤다.

“그간 저희와 이 프라이빗한 모임을 가져오면서 아마 최 기자님도 충분히 파악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지요. 그렇죠?”

줄곧 부드러운 톤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가 내뱉는 문장들만큼은 그 어떠한 겁박, 협박들보다도 위험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떠한 대꾸의 말도 하지 못한 채 최윤섭은 굳어버린 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하고 있었고, 그는 다시 온화한 미소를 회복했다.

“아아, 그런 표정 지으실 것 없습니다 최 기자님, 하하. 그냥 전 이런 사례도 있었다는 걸 말씀드린 것뿐이지, 최 기자님께 어떠한 해를 가한다거나 그런 뜻의 얘긴 전혀 아니었으니까요.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전혀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요. 하하하.”

“……아, 예.”

그는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듯 남은 다섯의 사내들에게 술잔을 채울 것을 지시했고, 곧이어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자,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인만큼 비즈니스 얘긴 잠시 접어두고 오롯이 친목적으로만 놀다 가보자고. 다들 괜찮지?”

“아이,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들어오기 전에 미리 최고 에이스들로만 대기시켜 놓으라고 전달해 뒀는걸요? 아, 우리도 가끔 이런 날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오케이! 자, 다 같이 짠 하고 시작해보자고.”

“짠!”

일제히 잔을 다 털어 버리곤 검은 양복의 상의를 벗기 시작하는 사내들.

저마다 기분 좋은 웃음들을 띠우곤 게스트를 맞이할 준비들을 시작했다.

오로지 최윤섭만이 경직된 얼굴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분주한 분위기 속, 최윤섭이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상석의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저…… 그 신인 여배우 말입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혹시 그 여배우가 누군지 저도 알 수 있을까요?”

셔츠 맨 윗단추를 풀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들고 있던 그가 최윤섭의 물음에 오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그 여배우요? 하하, 왜요. 혹시 최 기자님도 잘 아는 배우일까 봐요?”

“아, 그렇다기보단…… 혹시 유명한 배우였다면 저도 미리 알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혹여나 향후에 재조명하게 될 일이 없게 하려면.”

낮게 답해오는 최윤섭의 얘기에 그는 꽤나 확신에 찬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주 잠깐의 빛도 보지 못하고 영영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그러곤 채워져 있는 자신의 잔을 입으로 옮기며 그가 짧게 덧붙였다.

“음, 뭐 그래도 정 궁금하다고 하시면 이름 정돈 말씀드릴 순 있겠네요.”

“…….”

“최 기자님. 20년 전 활동했던 ■■■라는 여배우를…….”

그런데 그 순간, 그가 내뱉어온 누군가의 이름이 갑자기 묵음으로 바뀌어 버리더니, 이내 눈앞의 장면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

그와 동시에, 하준의 귓바퀴로 들뜬 최윤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대표님. 이왕 이렇게 만난 거 우리 자릴 좀 옮겨서 맛있는 저녁이라도 먹는 거 어떨까요? 아직 저녁 식사 전이시죠?”

어느새 자신의 앞에 앉은 최윤섭은 조금 전 보았던 장면에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고, 하준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하게 뒤엉켜 있을 수밖엔 없었다.

“…….”

대체 조금 전 장면에 나타난 그들, 그들은 누구였던 걸까. 그리고, 왜 최윤섭은 그들과 함께 있었던 거고.

다른 무엇보다, 상석의 남자와 최윤섭이 주고받는 대화들은 결코 가볍지도, 평범하지도 않는 유의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정체에 대해 조금의 추측도 되질 않고 있었고.

게다가.

‘그 어떠한 저항도 몸부림도 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마감하면서 말입니다.’

분명 그가 내뱉은 모든 말들이 위험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얘기들이었음에도, 하준의 머릿속으론 그 문장들이 계속 박혀 떠나질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언급한 신인 여배우가 20년 전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그 말 때문이었을지도.

그것과 닮은 사람을 하준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표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지신 것 같은데.”

‘제너럴’.

최윤섭과 정기적으로 프라이빗한 만남을 가져왔다는 그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자신이 본 장면들이 분명한 미래의 모습들이라면, 최윤섭은 지금도 그들과의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상황인 걸까.

“흠, 혹시 어디 아프시거나 한 거면 오늘 나누기로 한 대화는 다음번으로 미루시죠, 대표님.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우선이니까요.”

하준은 거두고 있던 시선을 들어 올려 근심 어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최윤섭을 마주했다.

그러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한 눈빛을 하고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 기자님. 혹시 ‘제너럴’이라고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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