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단독> 강도철 MBS 사장, 예능 국장 시절 각종 추문 등장. 피해자들 법적 공방 예고.’
[강도철 MBS 사장에 대한 각종 추문들이 대거 쏟아지고 있다. 1992년 <놀랍구만, 놀라워요>로 첫 입봉을 시작한 강도철 사장은 ‘예능 국장 출신 사장’이란 이례적인 타이틀을 내세워 지난해 사장직에 앉은 인물. 사장 임명 과정에서 또한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선임되는 등, 실무를 직접 겪으며 올라온 성골 출신이란 점에서 MBS의 미래에 대한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예능 국장 시절의 더러운 추문들과 각종 피해자들이 속출하기 시작,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기도 전에 벌써부터 큰 파장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제보된 피해 건수만 십수건. 피해 내용 대부분이 각각 다르다는 점, 그리고 당시의 상황 및 시점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부분은 추후 법적 공방으로까지 번질 시 높은 신빙성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박 및 금품 갈취, 성추행 및 잠자리 요구, 그 외 욕설과 폭행 등. 대부분이 그의 지위를 이용한 피해 내용이라는 점 또한 이번 일이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임을 증명해 주며, 이번 사건이 비단 강도철 사장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MBS 측에선 아직까지 어떠한 입장문도 내놓지 않고 있으며…….]
하준의 시선이 기사의 맨 하단부에 서 좀처럼 거둬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박승준과 메인 작가의 심각한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 지금 기사 접하고 다들 난리에요. 만약 이게 진짜로 판명이라도 나면 사장님뿐만 아니라 MBS 전체에도 엄청난 피해가 될 거라고요. 더군다나 예능 국장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까 우리한텐 더…….”
“더 큰 비난이 올 수밖엔 없겠지. 마치 이게 예능국 전체의 관행인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는 거고. 특히 나 같은 예능 피디한텐 더더욱 그럴 거고. 후우…….”
박승준이 내뱉어오는 깊은 한숨 사이로 메인 작가가 하준의 손에 들린 휴대폰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이거 진짜 다 사실일까요……? 썬데이 미디어도 그렇지만 이 기사 작성자도 꽤 이름 있는 기자님이잖아요. 최근에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터졌다 하면 다 이 기자님이 쓴 기사들이던데…… 그것도 죄다 ‘단독’이란 타이틀까지 달고선.”
메인 작가의 얘기에 박승준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듯 고갤 짧게 끄덕여 왔다.
“유명하지. 그 최 기자라는 사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추측성 기사만 써대는 통에 우리 사이에선 기레기로 통하던 사람이었는데. 최근엔 완전 달라진 것 같더라고. 김 작가가 얘기한 대로 몇 개월 내에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다 그 사람이 보도한 것들이잖아. 그것도 결국엔 다 사실인 걸로 밝혀져셔 파장도 엄청 컸던 것들이고.”
“그렇죠. 그래서 이번 일이 더 불안한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기자님이 쓴 기사라…….”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불안한 시선을 좀처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메인 작가, 그리고 기사를 접하기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낯빛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박승준.
그런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하준 또한 두 사람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이번 일이 모두 다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MBS 전체의 이미지 실추뿐 아니라, 지금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스마일 쌔러데이>의 녹화분 또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엔 없기에.
두 사람이 얘기한 대로 이번 사건이 예능국 전체에 대한 비난의 화살로 이어질 수도 있을뿐더러, 최악의 상황엔 MBS 예능 프로 전체에 대한 시청자들의 보이콧 움직임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 언론 고시 준비할 때부터 오로지 MBS만 목표로 해오면서도 이런 일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방송국의 사장 자리에 있는 사람을 연예부 기자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저격해 오다니. 이게 진실이건 아니건 간에 그 기자 보통 사람은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드네…… 이걸 컨펌해 준 그쪽 데스크도 대단하고 말야.”
사상 유례없는 사태에 박승준은 허탈한 표정과 함께 조금은 다른 관점의 말을 내뱉어왔다. 그와 동시에 하준의 머릿속으로도 최윤섭에 대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조금 전 두 사람이 얘기했던 대로, 최근 연예계의 대형 사건 사고만 터졌다 하면 대부분이 최윤섭이 보도한 기사들.
그것도 매번 ‘단독’ 타이틀까지 내걸고선.
그가 터뜨린 사건 사고의 대부분은 며칠이 안 가 모두 진실로 판명이 났고, 가벼운 스캔들 유의 기사들은 아니었던 터라 연예계에 미치는 파장 또한 결코 적지는 않았다.
그로 인해 하준이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붙어 있던 기레기라는 별명은 이미 옛말이 돼버린 것은 물론, 어느새 그의 명성과 이름은 이 바닥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 시점은 그가 김민정에 관한 기사를 내보낸 이후부터였고.
물론 지금의 하준에게 이러한 사실들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당장에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질 않고 있다는 것.
김민정 때처럼 애초에 보도된 내용 자체가 사실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면 그를 만나 어떠한 협상이라도 해볼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을뿐더러, 만약 모두 사실이란 걸 알게 된다면 그에게 어떠한 협상의 얘기도 꺼내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와는 비즈니스 관계 이상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이건 그의 직업적 본분이자 고유의 영역이었기에.
게다가, 사안 자체도 자신의 요청으로 인해 덮을 수 있을 만한 크기는 결코 아니었고.
“…….”
자신들 못지않게 꽤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하준의 모습에 박승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왔다.
“일단 보도 내용이 확실한 건지 아닌지 아직은 모르는 거니까 벌써부터 너무 걱정은 마세요, 대표님. 저도 빨리 알아보고 방안을 생각해 볼 테니까.”
메인 작가도 곧바로 말을 보태왔다.
“그래도 명색에 MBS 간판 프론데. 다른 프로그램들은 몰라도 저흰 그렇게 쉽게 타격받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오늘 녹화 분량도 문제없이 잘 내보낼 수 있을 거고요. 저희 피디님이 어떤 분이신데요, 너무 걱정 마시고 저희만 믿고 계세요, 대표님.”
두 사람의 얘기에 하준도 고갤 들어 올리곤 말했다.
“네, 아무쪼록 좋은 결과물로 나올 수 있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오늘자 기사에 대해선 따로 한번 알아보도록 할게요.”
말을 마친 하준은 두 사람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곤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그러곤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의 이름을 찾았다.
당장에 그를 만나 어떤 얘길 나눠야 할진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를 만나 얘길 나눠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게 비단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일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 * *
같은 시각, 모두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빠져나간 때, 박용태는 홀로 모니터 앞에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모니터 화면 위론 오전에 터져 나온 MBS 사장 관련한 기사가 떠있었고, 박용태는 벌써 30분째 해당 화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최윤섭과 썩 좋은 사이라 말할 순 없어도 분명 대학 시절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돈독한 동기 사이였다.
그렇기에 그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또 어떤 성향의 소유자인지 정도는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고.
그런데, 그런 그가 대체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놈 성격에 이런 기사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보낼 리가 없는데. 그것도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단순히 그가 이슈거리를 만들었다거나, 특종 기사를 내보낸 것에 대한 질투 따위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건 그를 잘 아는 한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의문을 품고 있는 것.
이번 기사뿐 아니라 최근 몇 달간 그의 행보를 누구보다 유심히 지켜봐온 그였기에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밖엔 없던 것이었다.
‘게다가, 타이밍도 우연치고는 너무 기묘하단 말이지. 어떻게 딱 그런 시기에만 그런 기사들을 내보내는 건지…….’
게다가 박용태의 이런 마음에 강한 불씨를 지피고 있는 또 다른 한 가지.
바로 그가 기사를 내보내는 시점들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예부로 옮겨온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지만, 사회부에 대한 관심 또한 여전한 상태의 박용태.
매일 업데이트되는 연예란의 기사들뿐 아니라 사회면의 이슈들 또한 꼼꼼히 체크하고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었다.
그런데, 매번 최윤섭의 기사가 터져 나오는 시점은 공교롭게도 사회부의 어떠한 이슈가 발생한 것과 거의 같은 타이밍이었고, 우연치고는 그것의 빈도수가 꽤나 높은 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내에서만큼은 거의 백 퍼센트 일치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
대기업 회장 아들의 마약 사건, 3선 의원의 불법 뇌물 혐의, 모 은행장의 성추행 사건까지.
분명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해당 사건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연예계 대형 사건 사고들로 인해 그 기세가 일순 꺾여 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회면에서 모두 내려가는 동일한 수순들을 밟아나갔다.
그리고, 지난 몇 개월간 지켜봐온 이 똑같은 현상들의 중심엔 바로 최윤섭이 있었고.
‘둘 중 하나야. 최윤섭 그놈이 180도 변해 버린 거든, 아니면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있든.’
기자의 촉을 넘어 인간 최윤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확신할 수 있는 그것.
왜인진 모르겠지만 차라리 후자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앞서는 가운데, 박용태는 천천히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절대 사람은 한순간에 변하지 않아. 분명 그놈 지금 뭐가 있는 거야.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진 모르겠지만.”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낮게 혼잣말을 내뱉어온 박용태.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누군가의 번호를 입력하곤 빠르게 메시지를 치기 시작했다.
[최윤섭이, 따로 얼굴 좀 보자. 아주 급한 일이니까 보는 대로 바로 연락주고. 기다리고 있으마.]
* *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하준과 최윤섭은 여의도 모 증권가 앞 작은 카페에서 만남을 가졌다.
먼저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던 하준은 입구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마주한 순간, 일순 시야가 뒤집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