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19화 (120/165)

119화

약 30분간 이어진 토크 후, FD의 슬레이트 치는 소리와 함께 주변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분주하게 바뀌었다.

배경 세트만 그대로 둔 채 중앙의 소품들을 모두 다 들어내곤, 그곳을 음악 장비들로 모두 채우기 시작했다.

스탠드 마이크와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중대형 크기의 스피커까지.

한 곡이 아닌 무려 4곡을 소화해야 할 김진성을 위해 제작진 측에서도 꽤 성의 있는 준비를 해온 듯싶었다.

“와…… 예능에서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완전 미니콘서트 같은 느낌인데요, 대표님?”

순식간에 바뀌어가는 세트장의 분위기에 은호가 감탄하는 얼굴 표정을 보여왔다.

하준은 그런 은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까딱해 보였다.

“그래? 음, 선배님의 예전 명성에 비하면 난 이것도 많이 모자란 느낌인데? 뭐 물론,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에 맞는 음향 장비를 갖춘다는 게 애초에 예능 제작 환경에선 무리일 순 있었겠지만.”

하준의 얘기에 옆에 있던 강준이 곧바로 동조해 왔다.

“맞아요, 형. 진성 선생님 예전 모습 생각하면 진짜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었는데!”

갑작스레 끼어든 강준의 얘기에 은호가 곧바로 반문했다.

“응?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그때 완전 꼬맹이었을 때 아냐?”

“전 이미 선생님 예전 콘서트 영상부터해서 너튜브에 있는 영상이란 영상은 다 찾아봤죠. 대표님이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자. 타. 공. 인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였다니까요. 형도 시간 내서 꼭 찾아봐요! 분명 저처럼 소름이 막 돋을 거니까.”

평소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강준임에도 지금의 모습만큼은 꽤나 큰 흥분을 보이고 있자 은호가 실소를 터뜨렸다.

“참나. 너랑 몇 년을 같이 지내오면서도 너 이런 모습은 완전 처음 보는 것 같다? 낯선데, 김강준?”

말은 이렇게 해도 은호 또한 곧바로 수긍하는 모양새를 보여왔다.

강준이 김진성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또 얼마나 우상처럼 생각하는지는 멤버들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건 하준도 마찬가지였고.

그 누구보다 눈빛을 강하게 빛내고 있는 강준을 잠시 바라보다 하준은 옅은 미소와 함께 세트장 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곳엔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김진성이 보이고 있었고, 주변으론 얼추 세팅이 마무리돼 가는듯한 모습이었다.

“자, 그럼 김진성 씨 준비 다 되시면 말씀 주세요! 바로 슬레이트 치고 녹화 재개할게요!”

연출 PD의 외침과 함께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뜨는 김진성.

그러곤 숨을 느리고도 길게 내뱉으며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들어가시죠.”

* * *

“술기운이 차올라 숨이 쉬어지질 않아요. 오늘도 난 그댈 기다리며 매일 이렇게 울어요.”

연달아 세 곡을 소화하곤 그의 마지막 정규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슬픈 혼잣말>을 열창하고 있는 김진성.

온전히 그에게만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점점 웅장해 가는 피아노 선율 소리와 함께 그의 감정도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끊었던 담밸 다시 물었죠, 그대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서 워어어어. 내게 다시 돌아와 줄 수는 없~ 나~ 요~”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떼곤 일순 고요해져 버린 분위기 속 끝없는 고음을 내뱉어가는 김진성.

그와 동시에 현장에 있던 모든 인원들은 일제히 소리 없는 경악을 내비쳤다.

이미 앞선 세 곡을 감상할 때도 비슷한 유의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이번 곡에선 그것의 몇 배는 더 되는 듯한 리액션들이었다.

“흑흑…….”

지켜보던 여성 스태프들 사이에선 작은 울음소리들도 간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몇몇 이들 또한 소리만 내고 있지 않을 뿐 뺨 위론 이미 눈물들을 흘리고 있었다.

“남보다도 더 못한 사이라 해도 이렇게 난 기다려요. 오늘도 이 자리에서.”

마지막 가사를 내뱉곤 피아노 건반 소리와 함께 슬픈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 짓는 그.

콘서트가 아닌 녹화 현장이라는 걸 모두가 인지하고 있음에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일제히 박수소리들이 마구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몇몇은 그제야 참았던 눈물들을 일순 쏟아내는 모습들을 보여왔고.

“크흑…… 제가 태어나서 본 무대 중에 진짜 최고였어요. 선생님 완전 짱이에요, 짱. 크흑…….”

물론, 그건 멤버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

하준은 전혀 인기척도 못 느끼고 있던 새, 지호의 얼굴은 어느덧 붉게 물들었고 감탄에 마지않는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호보다 더한 얼굴빛을 내비치고 있는 인물.

바로, 강준이었다.

“야, 야. 너 괜찮아? 무슨 누가 보면 네가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인 줄 알겠다……? 무슨 눈물 콧물을 이렇게나…….”

김진성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잠시 어두워졌던 세트장의 조명이 다시 밝아졌고, 그제야 지호보다 더 엉망이 된 강준의 얼굴이 완연히 드러났다. 그리고, 멤버들 모두 일순 당황한 기색을 보일 수밖엔 없었다.

“혀, 형. 괜찮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 얼굴은 좀 아닌 것 같은데…….”

자신도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상태에서 자신보다 더 엉망이 된 강준의 얼굴을 보자 지호가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곤 당장에 어떻게라도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는지 급하게 휴지를 찾아왔다.

“그래도 아이돌인데 이런 얼굴은 안 되죠, 형……! 이 콧물 이거 다…… 으으.”

강준은 지호가 건넨 휴지를 말없이 받고선 얼굴을 급하게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몰입했던 감정에서만큼은 쉽사리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후우…… 진짜 선생님 최고다, 그치. 내 인생 최고의 무대였어. 이런 선생님 밑에서 우리가 음악을 배우고 있다니.”

감정을 식히려는 듯 길게 숨을 내뱉곤 강준이 입을 열어왔다.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강준의 그런 모습에 모두가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다들 그 말엔 격하게 동의하는 말들을 꺼내왔다.

“그러니까요.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노래들이 하나같이 다 주옥 같지 않아요? 하, 가사들이 진짜.”

“그치? 이래서 다들 온라인 탑골공원에 그렇게나 열광했나 싶더라니까! 옛날 노래들이 이렇게나 좋을 줄이야. 하, 나 진짜 내내 감정 이입 돼서 죽는 줄 알았다 진짜.”

“당연히 그렇겠죠. 형은 항상 차이는 입장에만 있어봤으니까 더더욱.”

“……뭐? 너 뭐라고 했냐 김지호. 이게 진짜.”

멤버들의 감탄뿐 아니라, 모두가 잠시 진행을 멈추고 있던 녹화 현장은 다시 세트 수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담당 PD 박승준이 하준에게로 다가왔다.

“하하, 이것 참…… 유 대표님, 설마 이런 그림까지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던 건 아니죠? 지금 대표님 표정 보니까 이런 반응이 나올 걸 꼭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여서 말입니다.”

감탄인 듯 허탈함인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하준에게 물어오는 그.

하준은 질문을 질문으로 상쇄했다.

“생각하시던 그림대로 나온 것 같나요? 다른 것보단 우선 PD님이 만족하셨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하준의 얘기에 박승준이 굳이 말해서 뭐하냐는 듯 답했다.

“아 굳이 입 아프게 제 입으로 직접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이미 현장 스태프들의 반응이 모든 걸 다 말해주는데요. 허…… 참. 사실 녹화 전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한 부분이 있긴 했는데, 이렇게 되고 나니 제가 괜한 쓸데없는 생각을 했나 싶네요. 섭외 안 했으면 아주 후회했겠다 싶다니까요? 하하.”

박승준은 세트장 쪽으로 시선을 고정 시킨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처음에 대표님이 찾아왔을 때만 해도 섭외 관련 얘긴 줄 알고 아주 반가워했었죠. 이거 오랜만에 시청률 한번 팍 튀어오르겠구나 싶어서요. 근데, 뜬금없이 김진성 씨 얘길 꺼내시길래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우리 프로그램 콘셉트랑 매칭이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김진성 씨가 대표님 회사 소속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요. 하하, 참.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때 만약 거절했다면 이런 엄청난 감동도 못 느끼고 얼마나 후회를 했겠습니까, 제가. 안 그래요? 그렇다고 대표님이 저희 프로만 고집하셨을 것도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되고 나니 제가 오히려 대표님한테 절이라도 해야겠다싶다니까요? 하하.”

꽤나 진심이었는지 다소 흥분된 투로 길게 말을 꺼내온 그가 쪽을 잠시 힐긋 하곤 작게 덧붙였다.

“이렇게 녹화도 성황리에 잘 끝낸 마당에 다음번엔 출연도 어떻게 한번 추진해 봐주실 수 있으시겠죠? 네?”

MBS의 간판 예능 프로라 할 수 있는 <스마일 쌔러데이>의 연출자인 그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여오자, 하준도 웃음을 짓곤 고갤 끄덕였다.

“그럼요. 이번 출연도 흔쾌히 수락해주셨으니 다음 정규 앨범 홍보차 돌 땐 저도 일 순위로 염두에 두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때도 잘 부탁드리고요.”

“아이고, 하하! 당연한 말씀을. 그럼 그때까지 전 프로그램 망하지 않게 잘 이끌어가고 있겠습니다? 하하.”

두 사람의 훈훈한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어느덧 세트장은 다시 이전으로 복귀해 있었고, 이제 마무리 토크만 남은 상황이었다.

슬레이트를 든 FD가 세트장 중앙으로 걸음을 옮겨갔고, 박승준도 녹화 재개 사인을 보내기 위해 메가폰을 집었다.

그런데, 그때. 박승준과 하준이 서 있던 자리 쪽으로 메인 작가가 다급히 다가오더니 꽤나 심각한 얼굴을 하고선 박승준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피, 피디님. 얼른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밖에서 난리가 난 것 같은데…….”

“난리? 무슨 난리?”

메인 작가의 얘기에 눈동자를 살짝 키우곤 박승준이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그러곤 화면을 천천히 스크롤해 가는 그의 얼굴 표정 또한 조금 전 메인작가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게 변해갔다.

“……하, 이게 무슨. 이거 진짜야? 팩트 체크 제대로 하고 내보낸 기사 맞냐고.”

“그거까진 저도 아직…… 근데 썬데이 미디어 자체가 워낙 영향력이 큰 곳이다 보니까 아예 없는 얘길 썼을 것 같지는 않은데…….”

썬데이 미디어.

무척이나 익숙할 수밖에 없는 그 이름에 하준은 곧바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기사길래 그러시는 거죠? 혹시 프로그램과 관련된 건가요?”

순탄한 걸 넘어서 매우 흡족할 만한 녹화 분위기였던 탓에 하준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엔 없었다.

썬데이 미디어란 이름 그 자체보다도, 만약 해당 매체에서 프로그램과 관련한 안 좋은 기사를 내보냈다면 하준에게도 분명 타격이 올 수밖엔 없을 것이기에.

오늘만 오매불망 기다렸을 김진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하준의 물음에 박승준은 고갤 내저었다.

“아뇨. 저희 프로그램이랑은 상관없는 거긴 한데. 그렇다고 또 아예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거라…….”

메인 작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보태왔다.

“그게…… MBS 사장님에 관련한 기사 내용이에요. 근데 이게 너무 안 좋은 얘기들만 모여 있다 보니까 혹시나 저희한테도 타격이 올까 싶어…….”

“잠시만 봐도 될까요?”

하준은 양해를 구하곤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가장 상단에 떠 있는 헤드라인 문구부터 무척이나 자극적으로 써놓은 기사.

스크롤을 내리며 빠르게 내용을 훑어가던 하준은 왜 이 두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사의 마지막 줄까지 모두 확인한 하준의 표정이 급격히 심각하게 바뀌어 버린 건 바로 그때였다.

마지막 줄 바로 아래 적혀 있는 해당 기사 작성자의 이름을 확인한 것과 같은 타이밍.

“…….”

그 누구보다 하준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비즈니스적으로도 공생을 이어가고 있는 그.

바로 그 기사의 작성자는, 최윤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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