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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116화 (117/165)

116화

“아이고, 우리 딸이 평일 저녁에 집엘 다 오고. 허허, 이 애비가 혼자 쓸쓸해할까 봐 온 게야?”

집으로 들어온 구세희를 거실에서부터 반겨오는 구명호.

다소 낯빛이 어두운 구세희와는 달리 무척이나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저, 아줌마. 혹시 더 남은 일 있으세요?”

구세희는 인사 대신 입구에 서 있던 가사 도우미에게 물었고, 가사 도우미는 구명호를 잠깐 힐긋하곤 답했다.

“아, 아뇨. 회장님 챙겨 드시는 약만 달여 드리면 되긴 하는데. 혹시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구세희가 어깨에 걸치고 있던 핸드백을 내리며 말했다.

“아빠 약은 제가 달여드릴게요. 더 하실 일 없으면 오늘은 이만 퇴근하셔도 돼요.”

“아.”

구세희의 다소 갑작스러운 얘기에 가사 도우미가 구명호의 의사를 묻기 위해 고갤 돌렸다.

그러자 구명호가 옅게 웃어 보이곤 고갤 끄덕였다.

“그래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봐요. 우리 딸이 나한테만 긴히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아, 네. 그럼 오늘은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회장님.”

말을 내뱉곤 따로 마련된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가사 도우미.

잠시 후, 간단한 짐을 챙긴 구명호와 구세희에게 퇴근 인사를 전하곤 집을 빠져나갔다.

“저녁은 먹었고? 설마 이 시간까지 굶고 다닌 건 아니지?”

거실 소파에 앉는 구세희를 바라보며 구명호가 물었고, 구세희는 대답 대신 식탁 위에 올려진 흰색 아이스 박스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건 뭐야? 혹시 또 전복 사 온 거야?”

구세희의 시선이 닿은 곳으로 고갤 돌린 구명호는 허허 웃음소릴 내왔다.

“아, 하준이 미국에서 돌아왔다길래 챙겨놨지. 나보단 네가 자주 볼 테니까 네 편에 전해주려고. 허허, 이따 까먹지 말고 꼭 챙겨가. 알았지?”

“저거 어디서 사오는 거야? 지난번이랑 박스가 같은 것 같은데.”

구세희의 물음에 구명호는 별다른 의심없이 곧바로 답했다.

“부산에 따로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나면 사오는 게지. 아, 거기 전복이 아주 실하고 싱싱하거든. 너야 저런 건 쌓아놔도 안 먹는다지만 하준인 좋아하니까 간 김에 좋은 놈들로만 골라오는 게지. 가뜩이나 일도 많을 텐데, 잘 먹고 몸보신 잘 해야 하지 않겠어? 허허.”

“…….”

구명호의 입에서 내뱉어진 ‘부산’이란 단어에 구세희의 심장 박동수는 일순 빨라지기 시작했다.

줄곧 이어오던 자신의 불안한 생각들이 왠지 확신으로 바뀌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여전히 시선은 아이스 박스에 둔 채 구세희가 낮게 물었다.

“……부산은 무슨 일로 갔던 건데? 혹시 김 기사님이랑 최 비서님 없이 아빠 혼자만 다녀온 거야?”

그 어떠한 수행 인원도 없이 주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던 부친.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당시만 해도 그저 옆에 누군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가벼운 상상을 해본 게 다였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런 시간이 필요한 위치에 있다고도 생각했었고.

하지만, 그런 시간을 보내는 장소가 만약 부산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불안한 생각들이 모두 다 들어맞게 된다면.

그땐 결코 그 당시의 감정들처럼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이 될 것이었다.

구세희의 이번 물음에도 여전히 구명호는 온화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고, 순순히 인정하는 반응을 보여왔다.

“아, 이왕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히려고 가는 거, 부산 정도는 가줘야 하지 않겠어? 바닷가 근처에서 싱싱한 해산물도 좀 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가볍게 관광도 하고 말이야. 허허, 부산은 언제 가도 참 좋은 도시란 말이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던 구세희의 손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 오는 그의 말들이 왠지 잠시 후엔 너무나도 두렵게 느껴질 것만 같았기에.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곤 김이 모락 나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다대는 구명호.

구세희는 양손의 손가락들을 꽉 쥐곤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든 차분히 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가면서.

잠시 후, 구세희가 입술을 천천히 떼며 물었다.

“아빠. 혹시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긴 없어? 그동안 얘기하지 않…… 아니. 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던 그런 거. 혹시 없어?”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구세희의 얘기에 구명호는 작게 웃어 보였다.

그러곤 찻잔을 내려두곤 그런 게 어디 있겠냐는 식으로 말했다.

“아, 얼굴 안 보는 날에도 수시로 통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다 나누는데. 그런 게 뭐가 있겠어? 왜, 이 애비한테 뭐 듣고 싶은 얘기라도 있는 게야?”

“…….”

당연히 이런 유의 대답이 나올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 어떤 의도로 묻는 건지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어두운 표정으로 한동안 입을 닫고 있던 구세희가 힘겹게 말을 꺼내왔다.

“……나 아빠가 부산에 왜 가는 건지 다 알고 있어. 그리고, 그곳에서 어딜 가는 건지도.”

줄곧 평온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을 거두지 않고 있던 구명호는 이번 구세희의 얘기엔 미묘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구명호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구세희가 곧바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솔직히 얘기해 줘.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숨김없이 모두 다.”

힘겹게 말을 꺼내곤 고갤 들어 구명호를 바라보는 구세희.

그런 그녀의 눈빛이 평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구명호 또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희야 그게 무슨 소리…….”

“그 병원엔 누가 있는 건데? 대체 그 이정화라는 그…… 하아. 그 사람은 누군 건데?”

부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이름의 존재만큼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며 구세희는 질문을 던졌고, 구명호는 그녀의 입에서 꺼내진 그 이름에 표정의 급격한 변화를 숨기지 못했다.

“너…… 네가 그걸 어떻게.”

“대체 무슨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거야? 일반 환자들은 입원도 못한다는 그런 병원에 대체 누가 있길래 아빠가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가는 건데. 어?”

자신의 대답을 계속해서 재촉해 오는 딸의 어투엔 어딘가 모를 원망감이 가득 묻어 나보였다.

그런 구세희를 바라보는 구명호는 굳은 얼굴로 선뜻 대답을 뱉지 못하고 있었고, 곧이어 구세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어왔다.

“설마…… 그 이정화라는 분이 내가 아는 그분은 아닌 거지. 그렇지, 아빠? 제발, 제발 아니라고 해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간절히 부탁해오는 딸, 구세희. 구명호는 한쪽 손을 뻗어 구세희의 손을 잡았다.

“세희야, 이 애비 말 좀…….”

“……진짜구나.”

하지만, 자신의 손을 곧바로 뿌리치며 구세희는 표정을 달리했고, 그와 동시에 두 뺨 위론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진짜였어. 진짜 아줌마가…….”

설마 했던 자신의 추측과 생각들이 모두 들어맞았단 확신이 들기 시작하자, 구세희는 겨우 붙들고 있던 마음이 한 순간에 모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대체……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황망한 표정으로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는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구명호는 어떠한 변명의 말을 내뱉는 대신 질문을 건네왔다.

“세희야. 이거 하준이도 알고 있는 게야? 설마, 하준이한테까지 얘기한 건 아니지?”

구명호의 물음에 두 뺨을 손으로 훔치며 구세희가 답했다.

“아니, 몰라. 아빠 입으로 직접 듣기 전까진 나도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붉어질 대로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덮으며, 구세희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비밀을 지금껏 숨겨온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빤데. 내가 어떻게 이 얘길 걔한테 전해…… 걔는, 걔는…… 하.”

머릿속으로 하준의 얼굴이 떠오름과 동시에 구세희는 그 어떠한 말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직면한 이 현실이 부디 꿈이길, 제발 현실이 아니길. 그리고,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이 극심한 고통들이 모두 다 가짜이길. 그렇게 간절히 빌고 또 빌 뿐이었다.

그렇게 수분 동안 거실 내론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고, 두 부녀 모두 서로 조금은 다른 얼굴을 한 채 시선을 떨구고만 있었다.

그러다 구세희가 말라 버린 얼굴을 들어 올리고선 구명호에게 물어왔다.

“정말 아줌마가 살아 있는 거야……? 그 병원에 있다는 이정화라는 사람이 정말 하준이 엄마가 맞는 거야?”

“…….”

“그럼 대체 왜 안 나타났단 건데? 지난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왜 죽은 사람처럼 하고선 단 한 번을 나타나지 않았던 건데, 어? 그리고 아빠는 왜 여태껏 그걸 숨겨왔던 거고……!”

아무리 이해하려 애써도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실들에 구세희의 원망 섞인 언성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아빠는 알잖아…… 하준이가, 걔가 얼마나 힘들어하며 살았는지. 그 긴 시간동안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했는지…… 근데 대체 왜…….”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고갤 떨구고 마는 구세희.

그런 구세희를 바라보며 줄곧 침묵을 지키던 구명호가 낮게 말을 뱉어왔다.

“말해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

구명호의 말에 구세희가 고갤 들어 올리며 곧바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니……?”

“말 그대로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지. 이미 20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

이미 엉망이 돼 버린 얼굴로 부친을 바라보고 있는 구세희는 좀처럼 말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

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그 문자의 내용은 분명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했는데.

복잡한 머릿속을 헤치던 구세희의 기억 속에 순간 가사 도우미가 자신에게 전해주었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아빠.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말고. 아줌마가 원래 배우로 활동했고, 돌아가신 것도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라던데. 그거 다 사실이야?”

원망 어린 표정으로 구세희는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대체 왜? 그 어린 하준일 놔두고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하셨던 건데? 아빠는 뭐라도 알고 있을 거 아냐. 대체 아줌마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전부 다.”

“…….”

자신의 대답을 채근해 오는 구세희의 얘기에 구명호는 입을 다문 채 어금니를 깨물었다.

마치 어떠한 나쁜 기억을 상기시키는 듯한 얼굴 표정을 한 채로.

구세희는 구명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구명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뱉어온 건.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정화가 그렇게 됐던 건 스스로 선택해서가 아니었어. ‘그들’이 정활 그렇게 만들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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