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07화 (108/165)

107화

미국에서의 남은 2주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로버트 펄론 쇼의 파급효과는 멤버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고, 생방송이 나간 직후 그들의 바람대로 란 이름은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

그들의 국적, 이름과 얼굴, 그들의 무대 위의 모습들. 그리고, 그들이 지금에 오기까지의 모든 스토리들까지.

미국 내에선 단연 최고이자 압도적인 화제성을 가지고 있는 토크쇼라는 걸 감안하면 어쩌면 이미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그곳에 출연했던 인물들만 보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게스트 섭외를 진행하는진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물론, 쇼의 진행자인 로버트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기에 애초에 가능했던 일이긴 했다.

한국에서도 이제 막 데뷔한, 미국에선 전혀 인지도도 없는 케이팝 그룹이 그런 엄청난 토크쇼에 출연한다는 건 너무나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에.

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은 결과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큰일조로 작용했다.

출연자가 한국 국적이라는 것, 그들이 케이팝을 다루는 그룹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껏 나온 출연자들과는 아예 결부터가 다르다는 점까지.

의구심과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시청자들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흥미로움으로 바뀌어갔고, 방송 말미에 보여주었던 멤버들의 ‘로즈’ 무대에선 앞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엔 팬심이란 하나의 마음으로 안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점층적인 변화뿐 아니라 방송 말미까지 시청자들을 붙들어놓을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

그건 바로, 미지의 스타 메이커 ‘H’, 즉 하준의 등장이 그 어떠한 것들보다도 가장 큰 영향으로 작용했다.

엔터 시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접해봤을 ‘H’라는 닉네임.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나타난 그의 등장은 TV 앞 시청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단숨에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익히 알려져 있던 그의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처음 접하게 된 그의 외모는 자신들이 알고 있던 동양의 그 어떤 스타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와 같은 앵글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누가 스타인지, 누가 매니저인지 도무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방송이 나간 직후, 의 유일한 스케줄이었던 안토니 콘서트의 게스트 공연.

일정상 단 두 번의 공연 무대가 전부였지만, 멤버들이 그곳에서 느낀 감정들만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잊힐 수가 없는 그런 강렬한 느낌들이었다.

미국에 온 지 단 이틀 만에 섰던 첫 무대와는 첫 등장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 것은 물론.

국내 음방 무대에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뜨거운 공연장의 열기까지.

수만 명의 관객이 꽉 들어찬 그곳에서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들과 함께, 자신들을 향해 끊임없는 환호를 보내오는 그때의 그 모습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강렬한 기억들로 남아 있었다.

“은호 형! 비행기 저어어어 앞쪽에 기장님이랑 부기장님이 타고 있는 거 알아요?”

나란히 옆자리 앉은 은호와 지호. 조금 전 승무원에게 받은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지호가 은호에게 대뜸 물어왔다.

비행기 탑승 경험이 많지 않은 지호가 이번엔 또 무슨 얘길 꺼내려고 하는 건가 싶어 은호가 헤드폰을 목에 걸곤 답했다.

“응, 알지. 근데 그건 왜? 너 또 무슨 헛소릴 하려고.”

“에이, 제가 언제 또 헛소리를 했다고! 형형, 그러면 제가 퀴즈 하나 낼 테니까 한번 맞혀볼래요? 맞추면 제가 형 소원 하나 들어줄게요!”

소원이란 말에 은호는 그렇지 않아도 지호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싶었던 일이 있던 터라 곧장 몸을 돌려왔다.

“소원? 너 내가 맞히면 정말 내 소원 들어줄 거야? 진짜로?”

“에이, 속고만 사셨나! 그렇다니까요. 대신 제가 맞히면 형이 내 소원 들어주기!”

“오케이. 나 맞추면 진짜 바로 빌 거니까 얼른 문제 내봐.”

반드시 맞혀버리고 말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은호는 지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고, 지호는 그런 은호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죽었다 깨어나는 한이 있어도, 절대 맞추지 못할 거라는 듯이.

“형. 우리가 아까 먹었던 기내식 있죠? 형은 비빔밥 먹고, 저는 스테이크 먹었던 거! 그럼 쩌어어어 앞에 있는 기장님이랑 부기장님은 같은 걸 먹었을까~요 아님 우리처럼 각각 다른 걸 먹었을까~ 요~”

말에 음표라도 달린 듯, 연신 싱글벙글 웃어대며 말을 엿가락처럼 늘려대는 지호.

마치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중, 오직 자신만이 그것의 정답을 알고 있을 거란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지호의 신이 난 반응에도 불구하고 은호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지호를 지긋이 바라보다 곧 입을 열어왔다.

“당연히 다른 걸 드셨겠지. 두 사람은 같은 음식을 먹으면 안 되니까.”

“……헐.”

문제를 낸 지 고작 몇 초도 되지 않아 곧바로 튀어나온 대답에 지호는 일순 표정이 멍해져 버렸다.

그러고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말까지 더듬어가며 은호에게 재차 질문을 던져왔다.

“왜, 왜 안 되게요? 왜 두 사람이 같은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진 알아요?”

“왜긴. 혹시라도 음식이 상해서 둘 다 탈나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되니까 그런 거지. 이건 너무 기본적인 상식 아니니, 지호야? 응?”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세상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호의 모습에 지호는 말 그대로 황망한 상태가 돼 버렸다.

결코 모를 거라 생각했던 그가 너무나도 쉽게 정답을 내뱉어왔기 때문에. 게다가, ‘상식’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좀처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지호를 바라보며 은호는 자신의 소원을 꺼내왔다.

“지호야. 형 소원은 네가 이제 부디 고이 잠들었으면 하는 거야. 너 지금 7시간째 잠도 안 자고 계속 혼자 떠들어대고 있는 거 알지? 것도 끊임없이 아주 주야장천. 나 아주 그냥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니까 제발 이제 그만 떠들고 좀 자자, 응? 알겠지? 형 소원이다?”

“말도 안 돼…… 그런 소원이 어디 있어요. 잠이 안 오는 걸 어떡하라고. 다른 곳도 아니고 비행기에서 자는 게 말이 돼요? 이렇게 신비하면서도 신기한 것들을 앞에 두고?!”

퍼스트 클래스, 즉 자신의 일등석 좌석 주변을 양팔까지 다 써가며 가리키는 지호의 얘기에 은호가 자신이 쓰고 있던 안대를 지호의 얼굴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눈이 아닌 입 위를 덮으며 달려 있는 고무줄을 뒤로 강하게 팽창시켰다.

“나는 줄기차게 떠들어대는 네가 더 신비하고 신기롭거든? 소원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잔말 말고 지금부터 푹 자는 거야. 도착할 때까지 입도 뻥긋하지 말고. 알았어?”

“읍…… 으으읍!!”

수면 안대에 그대로 입이 틀어 막힌 채 지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 했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나서야 드디어 고요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건, 이 비행기가 이륙한 뒤로 최초의 일이기도 했다.

“저, 대표님. 혹시 뭐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은호와 지호, 두 호자 돌림 형제가 한창 사투를 벌이고 있을 쯤, 하준의 옆자리에 앉은 하늘이 말을 걸어왔다.

하준은 보고 있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선 하늘 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럼. 뭔데?”

“그, 로버트 아저씨랑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인 건가 해서요! 쇼에 저흴 출연시켜준 걸 보면 대표님이랑 되게 되게 각별한 사이인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다른 분들하곤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해서. 그 안토니 형이나 다른 형들하곤요!”

“아.”

하늘이 묻자, 같은 열에 앉아 있던 이준과 강준도 하준에게로 고갤 돌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속으로 내내 궁금해하고 있던 내용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일제히 자신에게 달라붙은 시선들에 하준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다들 말은 안 해도 내내 궁금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하늘이가 물으니까 곧바로들 쳐다보는 거 보면.”

“아…… 헤헤. 두 분 나이도 그렇고 대표님이 직접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하실 정도면 뭔가 특별한 사이인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어쨌거나 저희한텐 너무너무 고마운 분이긴 하니까.”

하늘의 마지막 말엔 하준도 공감한다는 듯 고갤 짧게 끄덕였다.

이번 미국 일정에서 그와 만남을 갖는 것은 물론, 그의 쇼에 출연하게 될 거라곤 하준 자신 또한 조금도 계획에 있지 않던 일이었기에.

그의 토크쇼 출연으로 인해 기대 밖의 엄청난 수확을 얻어가게 된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준은 하늘과 강준, 그리고 이준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도 얘기했지만 내가 프로그램에 나간 건 온전히 너희들만을 위해서였어. 로버트와의 관계하곤 전혀 상관없이.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해서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멤버들의 반응뿐 아니라 방송 직후 각 매체들에서 떠들어댔던 것과는 달리 하준은 다소 담담한 마음이었다.

처음 정체가 밝혀졌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간 일부러 자신을 베일에 감춰왔던 건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땐 그저 자신을 딱히 드러낼 이유가 없었던 것뿐.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기도 했고 멤버들에게도 얘기했듯 그 선택이 분명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이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건 곧 란 이름을 알리기엔 절호의 기회였고, 하준은 물 들어올 때 제대로 노를 젓기로 한 것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알고 있는 해당 미래를 훨씬 더 앞당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기에 더더욱.

자신의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멤버들에게 하준은 오묘한 웃음을 짓곤 말을 이었다.

“음, 그리고. 로버트와의 관계는 딱히 뭐라 한마디로 표현을 못하겠다. 그하곤 워낙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어서.”

“아……!”

당장엔 이렇게밖엔 답변 해줄 말이 없었다.

그와의 관계의 시작을 얘기하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얘기까지도 꺼내어질 수밖엔 없었기에.

수년 전부터 자신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줄곧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이가 바로 그, 로버트 펄론이었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절대 증명할 수 없는 심증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하준의 답변에 멤버들은 수긍한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더 이상의 질문을 해오진 않았다.

하준은 세 명의 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돌아가고 나면 많이들 바빠지게 될 거야.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또 다음 앨범 준비도 시작해야 할 거니까.”

다음 앨범 준비라는 말에 이준은 사뭇 달라진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2집 정규앨범의 흥망은 오로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러는 사이 강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하준에게 물어왔다.

“저희 돌아가면 다른 스케줄들이 있나요 대표님? 이제 음악방송 출연은 다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강준의 말에 하늘도 그 말이 하고 싶었다는 듯 눈동자를 살짝 키워왔다.

하준은 대답 대신 잠시 옆으로 고갤 돌려 은호와 지호가 앉아 있는 자리 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안대 하나를 두고 요상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고, 하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을 띄었다.

그러고는 다시 남은 세 명의 멤버들에게 고갤 돌린 하준.

짓고 있던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입을 열어왔다.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제대로 된 시작인 거지. 의 본격적인 1집 활동의 시작.”

* * *

그로부터 약 6시간 뒤.

인천 국제공항에 상륙한 하준과 멤버들은 곧장 수속을 밟고는 게이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게이트의 문이 열린 순간.

멤버들은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던 엄청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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