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오 마이 갓! 이즈 댓 리얼리?!”
화면 위로 띄워진 여러 장의 사진을 바라보며 로버트가 무척이나 과장된 리액션을 선보였다.
“이런 코딱지만 한 곳에서 너희 다섯 명이 살았다는 거야? 침대도 하나 없는 저런 곳에서?”
멤버들의 휴대폰에도 저장돼 있지 않은 사진들.
어떻게 그것들을 입수했는진 알 수 없지만, 화면 위에 띄워진 건 다름 아닌 이전 숙소의 모습들이었다.
멤버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비루한 반지하방의 모습에 로버트뿐 아니라 자릴 가득 메우고 있는 방청객들 또한 비슷한 반응들.
그 사이로, 은호가 통역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물론이지. 우린 저기서 무려 2년 동안이나 같이 살았어. 다 같이 먹고, 자고, 씻고. 또 다 같이 매일매일 연습도 하면서.”
“오우, 마이, 갓! 그냥 숨만 쉬고 있기도 답답해 보이는 저런 곳에서 그 모든 걸 다 해냈다고? 그것도 2년씩이나? 와우…… 너희, 정말 어메이징한 애들이었구나?”
며칠 전 밤 보았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진행을 이어 가고 있는 그.
줄곧 하이 텐션의 톤을 유지시키며 쇼의 분위기를 한껏 흥미롭게 만들고 있었다.
“오케이, 오케이. 그럼 너희가 데뷔 전까진 쭉 저기에서 살았다 이거지? 바로 너희들 앞에, ‘그’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야.”
유독 ‘그’라는 단어에 악센트를 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로버트.
마치 일부러 어떠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은호 또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곧바로 파악한 듯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고갤 끄덕였다.
“맞아. 그가 나타나기 전까진 저 어둡고 좁은 곳에서 매일을 불안에 떨며 지내고 있었지. 언제든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은호가 이준과 멤버들을 잠시 훑고는 다시 로버트 쪽으로 시선을 옮겨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난 뒤론 모든 게 송두리째 다 뒤바뀌었지. 그저 변화라는 단어론 부족할 만큼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말야.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자신이 바라던 대답이 나왔다는 듯 로버트가 다시 톤을 높이며 입을 열었다.
“하하, 역시 ‘그’는 어디에서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줄 아는 남자였어. 그를 보면 꼭 마치 슈퍼맨 같은 느낌이지 않아?”
앞에 앉아 있는 방청객들을 사이에 두고도 계속 ‘그’라는 표현만 쓰며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는 두 사람.
오늘의 게스트가 그저 한국에서 온 케이팝 그룹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던 탓에, 관객들의 얼굴 위론 저마다 궁금함이 떠올라 있었다.
통역을 통해 로버트의 얘길 전해 듣자, 멤버들은 일제히 웃음을 띠며 공감한다는 리액션을 보여 왔다.
“맞아, 그를 보고 떠오르는 느낌을 표현하자면 바로 그런 거지. 물론, 바로 옆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슈퍼맨보다도 훨씬 더 대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를테면 어벤져스를 다 합쳐 놓은 느낌이랄까?”
“빙고!”
방청객들의 표정을 한번 쓰윽 훑고 난 로버트가 카메라 방향으로 고갤 돌리고는 의미심장한 어투로 내뱉었다.
“자, 아마 지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그’가 누구길래 이렇게 떠들고 있나 싶을 거야. 그렇지? 그리고, 도대체 이 케이팝 그룹은 누구길래 바로 이 로버트 펄론쇼에 출연한 건가 싶기도 할 거고 말야?”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의 토크쇼. 당연스럽게도 결코 아무나 출연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시청률과 화제성, 그리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을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선 그 어떤 것보다도 출연자의 조건을 깐깐히 볼 수밖엔 없을 테니까.
그의 쇼를 즐겨 보는 이들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선 결코 모르지 않는 부분이었고.
로버트의 얘기에 방청객들의 눈빛도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와 이 케이팝 그룹의 정체에 대해 로버트가 밝히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와우!”
로버트의 시선이 VCR 화면으로 옮겨졌고, 그와 동시에 방청객들의 입에선 일제히 감탄들이 내뱉어졌다.
화면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바로.
‘그’의 정체가 처음 밝혀졌을 때 보도됐던 어느 한 기사의 메인페이지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어때. 이젠 다들 그가 누군지 눈치들 챘지? 바로 미지의 스타메이커, ‘H’. 여기 이 한국에서 온 케이팝 그룹은 그가 그곳에서 새롭게 키우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야.”
“와아!”
이제야 그들이 왜 이곳에 출연했는지, 어떻게 이 대단한 쇼에 등장할 수 있게 된 건지 모두가 납득한다는 얼굴들이었다.
“오케이. 그럼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고. 너희들은 대체 이곳에 왜 온 거지? 내가 보기엔 그냥 쉑쉑버거나 한 번 먹어 보자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야?”
사전에 미리 합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꽤나 자연스럽게 어느 한 방향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로버트와 .
이번 그의 토스엔 이준이 입술을 떼었다.
“음, 그렇지 않아도 그건 여기서 꼭 한 번 먹어 보고 싶긴 했던 건데.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오늘 저녁은 쉑쉑버거로 정해야겠는데요?”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로 예쁜 웃음을 띠어 보이곤, 이준이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왔다.
“이곳 미국에 우리 를 알려 보고 싶단 생각에 오게 됐어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우릴 기억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준의 말을 통역 담당이 곧바로 전달하자, 로버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갤 주억거렸다.
“오오, 오케이, 오케이. 그래서 오자마자 안토니 콘서트 무대에 서게 됐던 거구나? 듣자 하니 아주 어마어마한 무대를 선보이는 바람에 시티필드 공연장이 용광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던데, 그거 진짜 사실이야?”
특유의 과장된 유머를 선보이며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이준을 쳐다보는 로버트.
이준이 대답 대신 웃어 보이자, 옆에서 가만 듣고 있던 지호가 대뜸 끼어들어 왔다.
“물론이죠, 사실이에요! 저희 목표가 미국에 있는 모든 공연장을 다 녹여 버리는 거거든요! 저희의 열정과 패기로! 하하.”
지호의 다소 과할 정도로 씩씩한 발언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호에게로 향했다.
옆에 있던 은호가 복화술 비슷한 모양새로 지호에게 낮게 읊조려 왔다.
“야 금즈호. 너 너무 급발진 흔 그 으냐? 이거 음층 많은 사람들이 보는 토크쇼라고…… 느 으쯔려고.”
옆구리를 툭툭 쳐 오는 은호의 얘기에도 지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똑같이 속삭여 왔다.
“에이, 뭐 어때요! 우리 같은 신인한테 제일 중요한 게 패기 아니겠어요? 이렇게 엄청난 프로그램에 우리가 또 언제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얌전히 있다 가는 것보단 아예 미친 척하는 게 낫죠!”
그러고는 지호가 로버트를 향해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하하,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인 것 같아요! 하하하.”
혼자만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정말 미친 것 같은 지호의 급발진에 멤버들은 어떻게 말려야 할지 모르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로버트만은 굉장히 흡족하단 얼굴로 곧바로 지호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하하, 헤이 가이즈. 너 완전 내 스타일인데? 아주 재밌는 친구 같아? 오케이, 그럼 내가 뭐 하나만 물어볼 건데 거기에 대해 있는 그대로 솔직히 대답해 줄 수 있겠어? 조금의 거짓도 없이?”
로버트의 물음에 통역을 전달받곤 지호가 당연하다는 듯 고갤 세차게 끄덕였다.
“오브 콜스! 에브리 퀘스천, 암 오케이!”
아무래도 지호는 오늘의 컨셉을 확실히 정한 모양.
미리 사전에 협의된 바는 전혀 없었기에 멤버들은 그 모습이 마치 시한폭탄처럼 느껴질 수밖엔 없었다.
로버트가 어떤 물음을 해 올지, 그리고 지호가 거기에 어떤 식으로 대답을 내뱉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멤버들이 로버트와 지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때.
그가 오묘한 눈빛과 함께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질문을 내던져 왔다.
“너희는 ‘H’, 그러니까 너희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지?”
그의 질문을 곧바로 해석한 은호는 눈동자를 살짝 키워 왔고, 곧이어 다른 멤버들의 표정 또한 은호와 별반 다르지 않게 바뀌어 갔다.
“그게 무슨……?”
지호 역시 그가 내던진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조심스럽게 되물었고, 로버트는 좀 더 몸을 앞으로 내밀며 웃음을 지어 왔다.
“하하, 말 그대로야. 지난 시간 동안 줄곧 베일에만 가려져 있던 그잖아? 무려 안토니 스미스, 제프 깁슨, 존 로이드 등을 키워 낸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도 말이야. 물론 지금에야 그 정체가 밝혀졌다고는 해도 그에 대해 딱히 알려진 정보가 없긴 마찬가지거든. 너희라면 궁금해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해 줄 수 있는 얘기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촬영 전, 이미 하준에 대한 얘기들도 적지 않게 나올 거란 건 멤버들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자신들이 이 엄청난 토크쇼의 출연기회를 얻은 것뿐만 아니라, 이미 인지도나 모든 측면에서도 하준이 월등하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왠지 모르게 선뜻 떠오르지가 않고 있었다.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지호뿐 아니라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멤버들 또한 모두.
그가 어떤 의도로 물어오는진 둘째로 치고, 그것에 대한 온전한 답을 과연 자신들이 알고 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였다.
“엄…… 그러니까. 그게…….”
질문을 받았기에 마냥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만은 없어 지호는 일단 입을 열곤 운을 뗐다.
아까의 패기 넘치던 컨셉을 유지하다 정작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헤매 버린다면, 모두가 이상해질 수밖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멤버들의 당황한 표정을 지켜보고 있는 로버트는 그것과는 무척이나 대조될 정도로 즐거워 보이는 얼굴.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모양새로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음…….”
그런데, 그때.
지호가 입술만 달싹이며 선뜻 어떠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던 그 순간에, 갑자기 앞에 있던 방청객들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약간의 변화를 보이는 수준이 아닌, 마치 엄청난 무언갈 실제로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처럼.
입을 열려던 지호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 또한 그들의 리액션에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곧.
그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