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101화 (102/165)

101화

“에?! 우리 대표님이요?!”

녹음실을 나와 레일리와 일행들을 따라온 멤버들.

밤새 광란의 파티를 펼치자는 그녀의 거창한 말과는 달리, 도착한 장소는 다소 평범한 어느 한 아파트먼트였다.

미국 드라마에서 월세를 걱정하며 살던 주인공의 집 같은 딱 그런 정도의.

오늘 아침까지 머물던 안토니의 집과는 당연히 비교도 안 되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스타들이 이런 곳에서 파티를 벌인다는 것도 다소 상상이 안 되는 그림이긴 했다.

그리고 지금.

테이블 위론 병맥주와 간단한 안주들, 그리고 안토니의 전용 소주가 깔린 가운데, 레일리의 얘길 전해 들은 멤버들은 눈동자가 한껏 휘둥그레져 있었다.

“훗, 다들 이렇게 놀랄 줄 알았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겉으로 드러난 ‘H’의 스토리에 대해서만 아는 게 다니까. 실제론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리 쭌이.”

레일리의 얘기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준에게로 향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멤버들과는 달리 하준은 그닥 감흥 없는 얘기들이라는 듯, 무심하게 병맥주만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럼…… 만약 그때 대표님이 레일리를 안 도와줬다면 레일리는 어떻게 됐던 거예요?”

이유진의 통역을 거치지 않고 은호가 곧바로 물어오자, 레일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피식 웃음 지었다.

“아마도 끝도 없는 내리막길을 걸었겠지? 그땐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도 한순간에 다 무너져 버렸었으니까. 그땐 모든 걸 다 포기하려고 했었거든.”

2년 반 전, 그저 반지하방에 갇혀 하루하루를 버티기 바빴던 멤버들이었기에 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당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레일리 마약 스캔들’은 멤버들에게 있어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엔 없었고.

레일리는 그때의 기분을 상기시키는 듯 오묘한 표정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심지어 에이전시나 내 매니지먼트 사람들도 내 말은 전혀 안 믿는 눈치들이었어. 여기저기선 다 나를 물어뜯는 데 혈안이 돼 있는 데다 증거 사진까지 확실하니까 다들 포기한 분위기였거든.”

“헤이헤이, 그때 녹취 파일도 있었잖아?”

안토니가 덧붙여 오자 레일리가 옅게 웃어 보이며 고갤 끄덕였다.

“그랬지. 그놈의 망할 녹취 파일.”

짧게 욕짓거리를 내뱉곤 병맥주를 단숨에 들이켜는 레일리.

옆에서 물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던 존이 연기를 내뿜으며 레일리에게 물었다.

“후우. 딱 그때였지? 쭌이 갑자기 널 찾아간 게?”

“응, 맞아.”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는 듯 레일리가 멤버들을 쳐다보곤 이어갔다.

“어느 날 갑자기 웬 동양인 남자가 날 찾아왔더라고. 그것도 우리집으로 직접. 첨엔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 온 건가 싶어서 바로 경호원을 부를까 했지. 근데, 또 외모나 분위기가 그런 쪽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래서 우선 무슨 일로 온 거냐고 물었어. 일단 우리집 안으로 들어왔단 것 자체가 신분이 보장된 사람이란 의미긴 했으니까.”

잠시 말을 멈추곤 하준과 잠시 눈을 마주치는 레일리.

그러고는 한쪽 입꼬리만을 살짝 올리더니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 앞에서 꺼낸 말들은 아주 간단했어. 자긴 진실이 뭔지 다 알고 있고, 그래서 날 도와주겠다고. 애초에 다 조작된 일들이니까.”

“조, 조작이요?”

이유진의 동시통역을 듣자마자 멤버들이 곧장 반문했고, 레일리는 대답 대신 새 맥주병을 맨손으로 따선 입으로 옮겼다.

“그러고 나서부턴 모든 게 다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지. 녹취 파일이 짜깁기였다는 것도, 나한테 마약이 든 술을 건넨 것도 다 누군가의 음해였다는 게 밝혀지고 말았거든. 알고 보니 나랑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인간이었더라고?”

레일리가 말을 내뱉는 동안 이미 은호는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벙긋거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은호의 일순 달라진 표정 변화에 멤버들도 곧바로 휴대폰 액정 화면을 확인했고, 곧이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은호와 같은 반응들을 보여왔다.

“헐…… 그럼 데뷔 때부터 쭉 같이 일해왔던 매니저가 그런 짓을 꾸민 거야? 와, 진짜 말도 안 돼…….”

멤버들의 격한 반응에도 레일리는 침착한 얼굴을 유지하며 말했다.

“내가 점점 인기를 얻을수록 자기의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처럼 느꼈나 봐. 한번 바닥을 찍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인 거고.”

여전히 멤버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고, 옆에서 얘길 듣고 있던 안토니는 뿌듯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여 왔다.

“그런데 쭌이 그 모든 걸 다 한방에 해결해 버린 거지. 몰래 사진 찍어서 유포한 파파라치를 잡아선 실토하게 만들고, 그 녹취 파일이 모두 짜깁기였다는 것까지 증명해 보이고 말았거든! 순식간에 여론이 바뀐 거야 말할 것도 없는 거고. 크큭.”

“그럼 그 매니저는 어떻게 됐는데요?”

지호의 물음에 이번엔 제프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답해왔다.

“뭐, 지금쯤 어딘가에서 ‘프리즌 브레이크’나 찍고 있지 않겠어? 매일같이 감빵 동료들한테 괴롭힘 당하면서 말야. 크크큭.”

“아……!”

다행히 사이다로 끝난 것 같은 결말에 멤버들은 고갤 주억거리며 안도의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또다시 시선들이 하준에게로 조심스럽게 옮겨갔다.

“레일리뿐만이 아냐. 쭌한테 이렇게 도움받은 스타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야말로 미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스타 메이커인 거지. 바로 우리 쭌이. 하하하.”

하준을 바라보고 있던 멤버들은 저마다 무언의 감탄들을 내뱉고 있었다.

반지하방에 갇혀 있던 자신들을 이곳으로 꺼내준 것만으로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의 능력.

그가 ‘H’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만큼이나 지금 또한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단순히 안목이 높다거나 감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모든 걸 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의 능력.

마치 앞으로 닥칠 모든 위기들을 알고 있는 듯한 것은 물론이고, 그것의 해결책 또한 항상 완벽히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그간 느껴왔던 것뿐 아니라 지금 이 세계적인 스타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 또한 모두.

아니나 다를까, 안토니를 시작으로 그가 발굴해 낸 스타들이 하준을 바라보며 한마디씩을 내뱉어왔다.

“우리 모두 지금껏 쭌이 당황한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무슨 일이 닥치든 항상 침착한 모습만보여줬었거든. 뭐 물론, 결과 또한 항상 해피엔딩이었고. 마치 슈퍼맨처럼 말야?”

“에에, 무슨 소리야. 슈퍼맨보다 더 대단하지 우리 쭌은. 하늘만 못 날뿐, 능력적으론 어벤저스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대단한 남자라고 우리 쭌이!”

“크크큭. 그럼 이제 다음은 여기 이 케이팝 친구들의 차례인 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제프의 말에 레일리가 한껏 싱그러운 미소를 보내왔다.

“이렇게 쭉 보고 있으니까, 왠지 쭌도 저기에 함께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지 않아? 다섯이 아니라 여섯으로 말야! 제법 잘 어울리는데?”

일열로 쭉 앉아 있는 하준과 멤버들을 바라보며 그들 모두 격한 공감의 웃음소리들을 꺼내왔다.

“오우, 쉣. 진짜 그런 것 같은데? 헤이, 안토니. 다음 콘서트 무대엔 쭌까지 여섯으로 세워보는 거 어때? 그럼 굉장한 무대가 될 것 같은데? 하하하.”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그들의 얘기에 하준은 못 말린다는 듯 웃어보이곤 처음으로 입술을 뗐다.

“아무튼 여기 있는 동안은 다들 신경 좀 많이 써줘. 다음 앨범 전에 많은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직접 데리고 온 거니까. 다들 그래줄 수 있지?”

“흐음? 우리가 그래 주면 쭌은 뭘 해줄 건데? 다시 한국으로 안 돌아가고 여기서 우리랑 쭉 같이 있어줄 거야?”

곧바로 받아쳐 온 제프의 말에 레일 리가 눈빛을 빛내며 동조해 왔다.

“오우, 리얼리?!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인데? 쭌, 우리랑 여기서 계속 같이 살자! 아니면 나랑 그냥 결혼할까? 우쥬 메리 미?”

분명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얼굴만큼은 진심이 가득 묻어 있는 그녀의 표정에 하준이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후우. 내가 괜한 얘길 꺼냈네. 당장 내일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야겠어.”

고개를 절레 내젓곤 맥주병 하나를 들고선 곧바로 일어나는 하준.

조금 전 얘기에 레일리를 향해 크게 웃음소릴 내는 그들을 일별하곤 잠시 창가 쪽으로 옮겨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조용한 골목가의 풍경.

호화로운 고급 저택에서의 화려한 파티보다는 매번 이런 식으로 추억을 되새기는 자신과 친구들이었다.

오랜만에 모인 탓인지 얼마 취하지 않았음에도 기분 좋음을 느끼며, 하준은 조용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여유를 만끽했다.

그런데.

평화로운 골목가 사이로 일순 묘한 움직임들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그들의 모양새가 점점 더 수상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

들고 있던 맥주병을 잠시 내려두고선 눈 아래 광경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한 하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있는 골목가 블록마다 숨어 있던 그들은 무언가 급하게 사인을 주고받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들의 외관 또한 무척이나 수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흔한 미국 강도들의 모습처럼 두건으로 얼굴을 잔뜩 가리고 있는 그들.

짧은 순간 목격한 장면만으로도 결코 가볍게 보이는 행동들은 아니었다.

그때.

“……!”

각 블록마다 사인을 주고받던 이들의 제스처가 훨씬 더 다급해지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저 먼발치에선 한 중년의 남자가 골목길로 서서히 접어들고 있었다.

별다른 일행도 없이 누군가와의 통화를 이어가며 여유롭게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그.

그와 동시에 숨어 있던 강도들의 싸인은 더욱더 비장함을 띠었고, 하준은 곧장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골목 끝을 향해 소리치기 위해 입술을 떼려는데.

갑자기 일순 하준의 시야가 뭉개지며, 기시감이 드는 감각들과 함께 어떠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눈앞을 스쳐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담아내는 하준의 심장 박동 수는 무척이나 가팔라질 수밖엔 없었다.

조금 전 골목길로 접어든 중년 남성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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