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꿈’같던 어젯밤을 보내고, 모처럼 깊은 숙면을 취한 .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식탁에 모인 멤버들은 일제히 휴대폰 액정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온기가 뜨겁게 남아 있는 한식을 앞에 두고도 벌써 이십 분째 그 누구도 수저를 들지 않고 있는 상황.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어젯밤 콘서트의 여파로 밤새 숙면을 취하는 사이, 각자의 휴대폰에 쌓인 수많은 문자 메시지들.
가족 외에 이번 미국 일정에 대해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터라 밤새 쌓인 수많은 축하 메시지들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수밖엔 없었다.
자신들이 안토니 콘서트 무대에 섰던 사실뿐 아니라 공연 실황 및 반응들까지도 무척이나 디테일하게 알고 있던 각자의 지인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자신들이 느꼈던 실제보다도 훨씬 과장된 표현들을 써오고 있었다.
둘째. 그런 반응들이 담긴 축하 메시지와 함께 보내온 수많은 기사의 링크들.
자신들과는 정반대 시각인 국내 실시간 연예란 기사들이었고, 그것들의 내용은 또 한 번 멤버들을 당황시켰다.
그저 게스트로서 선 무대에 불과함에도 마치 자신들이 세계적인 위치에 올라선 것처럼 포장돼 있던 기사의 내용들.
게다가, 하나의 언론사와 한 명의 기자가 보도한 것이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각양각색의 헤드라인들은 가뜩이나 잠에서 덜 깬 멤버들을 무척이나 어안이 벙벙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잠들어 있던 그 시각에 대체 한국에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데뷔한 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은 멤버들에게 아는 연예인이라곤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지금.
그런 상황에서 밤새 쌓인 수많은 메시지들 중에선 같은 연예인들에게서 온 것들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먼저 데뷔한 보이그룹 선배들을 포함해 걸그룹 멤버들에게서 온 다소 수줍은 인사말들까지.
물론 그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적은 없었기에 대부분이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보내온 것들이었다.
너무 대단하다, 멋있다, 같은 아이돌로서 자랑스럽다, 한국에 돌아오면 꼭 한번 밥 한 끼 하고 싶다 등등.
개중에선 연락처를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이들도 적진 않았고.
이렇듯, 단잠에 빠져 있던 새벽 시간 동안 벌어진 일들은 멤버들이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 대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래? 메시지가 너무 많아서 다 읽어볼 수가 없을 정돈데……?”
“저도요. 이게 갑자기 무슨…….”
은호와 지호의 당황스러운 반응 사이로 이준이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휴. 그래도 안 좋은 내용들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네. 난 또 밤 사이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와 있길래 혹시나 안 좋은 일이라도 터진 건가 했거든.”
휴대폰 알림을 처음 확인할 당시만해도 멤버들 또한 이준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들이었기에 공감의 표정들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정말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전 여기 온단 얘기 할머니랑 고모 외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하늘의 얘기에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라는 듯 말을 내뱉어왔다.
“나도 마찬가지야. 여기 와서도 무대 준비하느라 휴대폰도 거의 못 봤는데.”
“그거야 다 똑같지 뭐. 내내 긴장 상태였는데 다른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었겠냐.”
“그럼…….”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멤버들의 표정 사이로, 말없이 듣고만 있던 강준은 시선을 어딘가로 옮겼다.
그리고, 그 시선이 마주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며 확신에 가까운 어투로 낮게 운을 떼왔다.
“아무래도…….”
강준의 그 말과 동시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준에게로 향했다.
한편 멤버들이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하준 또한 멤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오전에 눈을 뜸과 동시에 김지혜에게서 사무실에서의 일들을 모두 전해 들은 하준.
뜬금없이 벌어진 세 사람의 신경전은 물론,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들로 인해 적잖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각종 포털사이트의 연예 기사란 랭킹 순위는 물론, 각종 자극적인 헤드라인 문구만 쏙쏙 뽑아내 보도한 오전의 기사들.
국내 최고 연예 전문 매체라 할 수 있는 썬데이미디어와 뉴엔 미디어. 그리고 종합언론사 중에서도 제법 큰 규모에 속한다는 국보일보까지 동시다발적인 기사를 쏟아내자, 그것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수밖엔 없었다.
거기에 그것의 최초 작성자들 또한 다들 한가락씩 이름을 떨치던 기자들이기에 더더욱 높은 화제성과 신빙성을 가질 수밖엔 없었고.
셀 수도 없을 만큼 뒤이어 쏟아진 숱한 어뷰징 기사들과 그 아래 달린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
그것들 하나하나를 모두 눈으로 확인한 하준은 옅은 한숨이 절로 내뱉어질 수밖엔 없었다.
“……후.”
물론 내용만큼은 와 팔도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잘 포장된 기사들.
문제는 과해도 너무 과했다는 거였다.
각 헤드라인 문구마다 ‘아시아 최초’, ‘세계 최초’, ‘케이팝의 새로운 역사’ 등을 서슴없이 써낸 그것들로 인해 마치 전 세계가 인정한 그룹처럼 돼 버린 .
자연스레 그것의 관심은 팔도와 팔도의 대표인 자신에게로 쏠려왔고, 아니나 다를까 밤새 하준의 휴대폰은 마비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물론 그건 현재까지도 마찬가지였고.
그간 명함을 주고받았던 방송사 관계자들과 기자들, 그리고 저장돼 있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온 메시지는 차마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 있었고, 그것의 내용 또한 제각각이었다.
축하 인사말을 담은 섭외 요청과 인터뷰 요청, 그리고 각종 광고들을 포함한 계약 문의들까지.
하준과 멤버들의 귀국 일정을 묻는 그 연락들은 단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취해오고 있었기에 하준은 아예 휴대폰을 꺼놔야 할 상황까지 이르고 있던 것이다.
“…….”
잠시 고갤 돌려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 멤버들로 시선을 옮기는 하준.
고작 단 한 번의 무대를 선 것으로 너무 과장된 보도가 나간 탓에 다소 머리가 복잡할 수밖엔 없었다.
그렇다고 보도된 해당 내용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입장을 내기도, 또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해 버리기도 애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미 의 먼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이었고 이곳에 온 연유 또한 그것의 초석을 다지기 위함인 것만은 분명했다.
확실한 결과물을 얻어가겠다는 계획 또한 분명했고.
다만 자신의 예상과는 갑자기 달라져 버린 상황들에 머릿속의 플랜들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처럼 느껴졌다.
“저, 대표님!”
식사를 마친 멤버들이 소파에 앉아 있던 하준에게로 다가왔다.
지호가 수영장 쪽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저희 나가기 전에 다 같이 수영 좀만 하고 와도 되죠?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못 해봐서. 헤헤.”
미국 도착과 동시에 줄곧 무대 준비만 매진해왔던 탓에 저마다의 얼굴 위론 기대감 가득한 표정들이었다.
하준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흔쾌히 고갤 끄덕였다.
“그래. 오후 일정까진 아직 시간 충분하니까 편하게들 하다와. 뭉쳤던 근육들도 좀 풀겸.”
“헤헤, 넵. 대표님!”
마치 여름휴가라도 온 것처럼 한껏 들뜬 표정을 하고선 곧장 바깥으로 뛰어가는 멤버들.
다만 이준만은 여전히 식탁에 남아 노트북을 펼치며 뭔가에 몰두해 있었다.
하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준에게 다가갔다.
“이준인 수영을 별로 안 좋아하나 보네. 다들 나가는데 안 나가고 있는 걸 보면.”
하준의 물음에 이준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멤버들을 잠시 바라보곤 고갤 내저었다.
“아, 아뇨. 저도 좋아하는데 지금은 이게 더 먼저인 것 같아서. 생각날 때 바로 작업해야 나중에 훨씬 편하더라고요.”
이준의 얘기에 하준도 노트북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곳엔 최근 들어 이준이 매일같이 켜놓던 작곡 프로그램이 띄워져 있었고, 지금도 역시나 작업을 진행 중인 모습이었다.
“와 보니까 어때. 작업하는 데 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하준이 묻자, 이준이 노트북에서 손을 떼며 곧바로 고갤 끄덕였다.
“네,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여기 있으면서 안토니 형 작업하는 것도 보고 또 어제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도 직접 보고 나니까 느껴지는 게 많더라고요. 떠오르는 영감들도 있었고.”
“그래? 그래서 그런 게 떠오를 때마다 이렇게 바로바로 작업해보고 있는 건가?”
“아, 네. 제가 부지런히 작업하고 또 좋은 곡이 나와야 저희 다음 앨범도 그만큼 빨리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의 첫 정규 앨범이자 다음 앨범 전체를 맡기로 돼 있는 이준.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우산’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 이준의 프로듀싱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를 직접 확인한 하준은 망설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물론 이제 막 데뷔한 그룹이라는 점, 그리고 이준도 이제 막 작곡에 걸음마를 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이나 파격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정규 앨범이 주는 압박감과 무게감, 그리고 거기에 투입되는 에너지와 비용들이란 싱글 앨범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엔 없을 것이기에.
하지만,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하준은 그런 리스크에 대해선 조금도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계획보다 더 빠른 조치들을 취하고 있기도 했고.
이준의 얘기에 하준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다행이네. 이번 미국 일정을 계획한 거에 있어서 이준이 네가 제일 컸었는데.”
“……저요?”
“응. 오늘 오후 일정부터 해서 앞으로의 대부분 일정들은 다 이준이 너한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들이야.”
하준의 얘기에 이준이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하준은 온화한 얼굴을 하고선 이준에게 물었다.
“처음 회사 들어올 때 네가 자기 소개에 적었던 말들 기억나? 가장 만나고 싶은 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답해놨던 거.”
하준이 묻자, 이준은 처음 팔도에 들어올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고는 곧바로 고갤 끄덕이며 답했다.
“그럼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으니까. 대표님 덕에 안토니 형을 만나게 된 것도 엄청 신기하고 감사한걸요.”
하준은 이준이 써놓았던 안토니 외에 다른 인물들을 떠올리며 뜻 모를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눈썹을 으쓱하며 말했다.
“으음. 그럼 안토니는 만나봤으니까 이제 다른 사람들도 만나 봐야겠네? 그래야 이준이 네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니까?”
하준의 뜻 모를 얘기들에 이준은 눈동자를 키우며 그를 빤히 쳐다봤고, 하준은 한창 수영 삼매경에 빠져 있는 멤버들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덧붙였다.
“애들 수영만 끝나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자. 다들 지금쯤 슬슬 모이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