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멤버들이 뉴욕 시티필드에서 뜨겁고도 벅찬 감정을 느끼고 있던 때.
정반대의 시각인 한국에선 뜻밖의 손님들이 팔도의 미팅룸을 차지하고 있었다.
때아닌 그들의 방문에 갑작스레 커피를 타게 된 김지혜는 물론, 마침 사무실에 들른 윤채경까지 그들의 신경전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야, 최윤섭이. 몇 년째 동문회도 안 나오더니 여기서 이렇게 얼굴을 다 보네? 근데, 어째 그새 좀 폭삭 삭은 것 같다?”
다소 거만한 자세로 앉아 줄곧 비소를 흘리고 있는 그의 태도에 최윤섭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나야 자연스럽게 늙는 과정인 거지. 용태 너야 스무 살 때부터 이미 30대 후반의 얼굴이었으니까 별다른 변화를 못 느끼겠지만서도?”
최윤섭의 얘기에 박용태의 비소가 일순 옅어졌고, 최윤섭은 김지혜와 윤채경쪽 을 한번 힐긋하곤 박용태에게 물었다.
“근데 네가 여기엔 대체 왜 온 거야? 사회부 기자 놈이 이런 엔터테인먼트엔 볼일이 뭐 있다고. 설마, 기자직 잘리고 구인구직이나 해보겠다고 찾아온 건 아니지?”
박용태에게 말을 내뱉곤 최윤섭이 자신의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그녀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건넸다.
“그쪽은 또 여기에 왜 온 거고요? 다들 여기가 무슨 제 집 안방 드나들 듯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인 줄 아나.”
최윤섭이 내뱉는 얘기들에 박용태와 최희원 모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같은 시각 팔도를 동시에 방문한 세 사람.
그들의 목적은 하나같이 하준을 만나기 위함이었지만, 다들 알다시피 하준은 3주간 미국으로 떠나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세 사람 모두에게 굳이 하준이 알릴 필욘 없는 일이었기에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을 터.
하지만, 곧바로 돌아가기는커녕 이른 시각부터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이더니 이내 미팅룸까지 차지하고 앉은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팔도의 전속 기자 타이틀을 누가 가지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참나. 저기요, 기자 아저씨. 전 그쪽이 아니라 최희원이거든요? 그리고, 안방 드나들 듯 한다고 하시는데 그거야 유하준 대표님이랑 그 정도 사이가 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아저씨야말로 어떻게 여기 들어왔는지 모르겠네.”
“뭐, 뭐 아저씨?!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야, 이 아가씨야! 아직 결혼도 안 한 총각한테 무슨 그런 망발을.”
최윤섭의 발끈함에 박용태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보태왔다.
“크크큭. 야 최윤섭이. 그럴 땐 총각이 아니라 노총각이라고 하는 거야 인마. 저 아가씨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구만 뭐.”
그러고는 박용태가 아까 전 최윤섭의 말을 정정해왔다.
“그리고, 나 이제 사회부 기자 아니고 연예부 기자야. 이번에 발령 신청해서 옮겼거든. 더불어, 앞으론 팔도의 전속 기자로 활동하게 될 거고.”
박용태의 입에서 흘러나온 ‘전속’이란 단어에 최윤섭과 최희원이 일제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 전속 뭐? 네가 팔도의 전속 기자로 어쩌겠다고? 하, 나참 어이가 없어서. 누구 맘대로?”
“저기요, 아저씨. 이제 막 연예부로 옮기셨다는 분이 벌써부터 너무 심하게 김칫국 드링킹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대표님이랑 아주 가까운 친분이 있어야 가능한 거죠.”
두 사람의 어이없다는 반응들에 박용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하하. 이거 벌써부터 견제들이 아주 굉장하구만? 내가 우리 유 대표님이랑 그 정도 친분도 없이 전속이란 얘길 꺼냈을까 봐? 이미 다~ 얘기가 끝난 상황이니까 하는 소리지. 아, 안 그래요, 지혜 씨?”
대뜸 자신에게 고갤 돌려오는 박용태에 김지혜가 입을 벌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하하. 그, 그것까진 저도 잘. 대표님이 저한테 그런 얘기까지 막 전달해 주고 그러시진 않으셔서요.”
김지혜의 답변에 최윤섭과 최희원이 이때다 싶어 입을 열어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주 지 혼자만의 착각이었구만? 보아하니 지혜 씨랑 별 친분도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
“훗, 그러게요? 전속 기자라면 응당 사내 직원들하고도 두루두루 친목을 가져둬야 하는 거 아닌가? 풉.”
세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윤채경이 다소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김지혜에게 조용히 물어왔다.
“아니, 저분들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지금 팔도의 전속 기자가 누구냐를 두고 지금 이 이른 시각부터 여기 차지하고 앉아서 저러고 있는 거야?”
윤채경의 물음에 김지혜가 세 사람의 명함을 손바닥에 펼쳐 보이며 고갤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긴 한데…… 세 분 다 저도 일면식이 있는 기자분들이긴 하거든요.”
김지혜가 내민 명함을 살피던 윤채경이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말했다.
“어? 최 기자님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두 분도 나름 이름 있는 기자님들이잖아? 나도 다 아는 이름들인데?”
명함에 적힌 직급과 이름들을 보며 윤채경이 한층 더 의아한 얼굴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근데…… 다들 이거 아니어도 한창 바쁠 사람들이 대체 그 전속 기자가 뭐라고 이렇게 난리들인 거지? 지혜 씨. 저분들이랑 대표님 간에 그간 뭐 오고 가는 것들이라도 있었어?”
최윤섭은 그렇다 치더라도 박용태, 최희원과의 일은 윤채경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던진 물음이었다.
김지혜도 자세한 내막까진 알지 못했기에 아는 부분에 한해서만 답을 내놓았다.
“그게, 최근에 저 두 기자님이 대표님 사무실로 방문하긴 했었거든요. 통화도 부쩍 자주 하시는 것 같긴 했고. 근데 정확히 무슨 일 때문인지는 저도 잘.”
“흐음.”
애초에 한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기자라는 타이틀 자체가 이상한 말이었기에 윤채경은 더더욱 이해가 안 될 수밖엔 없었다.
게다가 그건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하준도 없는 상황에서 여기 이렇게 죽치고 앉아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은 더더욱.
그때, 김지혜와 윤채경의 휴대폰으로 연이은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려왔고, 두 사람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대박. 얘네 콘서트 무대 선 거 반응이 엄청 좋았나 본데요? 와, 이게 대체 몇 명이야……?”
멤버들이 보내온 사진을 윤채경에게 보여주며 감탄을 내뱉는 김지혜.
그러자 윤채경도 하준이 보내온 동영상을 김지혜에게 내밀었다.
“그러게. 나도 대표님한테 반응 어떤지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환호성들이 장난이 아닌데?! 이게 대체 누구 콘서트인지 모르겠을 정도라니까?”
“와아…… 얘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스타 같다.”
엄청난 무대 스케일에 한 번, 그 무대를 오롯이 차지하고 있는 다섯 멤버들에게 또 한 번.
그리고 그들을 향해 보내오는 수많은 관객들의 함성 소리로 인해 두 사람은 감탄과 뿌듯한 반응이 도무지 숨겨지지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세 사람의 신경전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그때, 윤채경이 뭔가 묘수가 떠올랐다는 듯 김지혜의 팔을 툭툭 쳐왔다.
“지혜 씨. 지금 저 사람들은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거지?”
“아, 네, 맞아요. 언니. 그냥 미국에 출장 가신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그래? 그렇다 이거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입꼬리를 씨익 올리는 윤채경.
그러고는 갑자기 세 사람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기 기자님들? 잠깐 제가 대화에 좀 껴도 괜찮을까요?”
서로 물어뜯다가도 몇 초 만에 다시 연합군이 되었다를 계속 반복하고 있던 세 사람은 일제히 윤채경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자 윤채경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입을 열어왔다.
“으음. 제가 쭉 대화를 지켜보니까 팔도의 전속 기자가 누구냐를 두고 다투고 계시는 것 같던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개인적인 의견을 좀 꺼내 봐도 괜찮을까요?”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서로였기에 윤채경이 꺼낸 말은 꽤나 반가울 수밖엔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윤채경이 힘을 실어주는 사람은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갈 수밖엔 없을 것이기에.
세 사람의 무언의 동의를 받곤 윤채경이 말을 이어왔다.
“음, 정확히 어떤 포지션들을 차지하고 싶으신 건지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속 기자라는 게 여럿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한 하늘 아래 여러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듯이?”
“그렇죠!”
“그리고, 그 전속 기자라는 게 아무나 막 할 순 없는 거기도 하고요?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검증이 된 분이어야 할 테니까?”
“옳소, 오브콜스!”
“흐음, 그래서 제 생각은 말이죠.”
말을 내뱉고는 윤채경이 김지혜 쪽을 잠시 힐긋했다.
그러고는 윙크를 한번 날리곤 다시 입을 열어왔다.
“지금 대표님이 자릴 비운 이 시점에 누가 최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검증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예요. 누가 팔도의 영향력을 최고로 높여줄 수 있는지, 누가 팔도의 소속 연예인들을 가장 잘 홍보해 줄 수 있는지!”
말을 내뱉고는 김지혜와 자신의 휴대폰을 세 사람 사이의 테이블 위로 올려두는 윤채경.
그곳엔 조금 전 봤던 멤버들의 공연 실황 자료들이 띄워져 있었다.
“때마침 미국에서 지금 멤버들이 난리가 난 상황이거든요? 물론 이 자룐 그 어느 매체에도 아직 뿌려지지 않은 거고요. 그럼……”
윤채경이 말을 이으려던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 모두 일제히 끼어들어 왔다.
“오케이!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이걸로 누가 가장 파급력 있는 기사를 써내느냐 해보자는 거죠 지금?”
“좋았으. 어디 한번 해보자고. 조회 수로 할래, 아니면 댓글 수로 할래? 아니면 좋아요 순으로?”
“셋 다 하죠 뭐. 어차피 그거 다 종합적으로 낸 게 연예란 랭킹일 거니까. 누가 어뷰징 기사를 가장 많이 뽑아내는지도 기준에 넣고요!”
“오케이, 콜!”
처음으로 의견이 일치한 세 사람은 곧장 들고 온 가방에서 노트북들을 꺼내며 윤채경에게 말했다.
“가지고 있는 자료들 좀 몽땅 줘보세요. 하나도 빠짐없이. 바로 작업 들어갈 거니까.”
“지혜 씨! 거기 현황들도 좀 알려줘봐요. 아는 대로 다!”
갑자기 전혀 다른 판국으로 바뀌어버린 상황에 김지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윤채경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어, 언니.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요? 이랬는데 대표님은 전혀 다른 생각이시면…….”
김지혜의 걱정스러운 어투에 윤채경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이렇게 하려는 거지. 어차피 결정은 대표님이 하실 건데, 그 전에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 먹어야 할 거 아냐? 이 세 사람의 파급력이면 범죄자도 선량한 시민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라구. 후훗.”
그렇게 윤채경과 김지혜의 꽤나 상반된 얼굴 사이로.
세 사람은 팔도의 미팅룸에서 단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은 채 노트북 자판만을 두들겼고, 결과물은 윤채경의 기대 훨씬 이상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시각.
그때가 돼서야 미국에서 해당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게 된 하준.
그러나, 그땐 이미 그것의 파급력이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