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와, 이게 비행기야 호텔이야? 말도 안 돼, 진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평소 자신들이 알고 있던 비행기 내부와는 너무나도 다른 광경에, 이륙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멤버들의 감탄은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건 역시나 지호.
꽤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왔음에도 비행기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던 지호는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부산을 떨어댔다.
“와…… 침대에 TV에 각종 음식들까지. 어떻게 이게 비행기일 수가 있지?! 게다가 샤워도 가능하다던데. 진짜예요?”
도무지 그칠줄 모르는 지호의 호들갑에 하늘이 민망한 얼굴로 소곤거려 왔다.
“형. 이거 퍼스트 클래스라서 그렇대요. 비행기가 원래 다 그런 게 아니라 대표님이 저흴 위해서 특별히 엄청엄청 좋은 자리로 끊어주셔서요!”
“잉? 진짜? 아, 어쩐지! TV에서 보던 비행기들이랑은 너무 다르다 싶더니!”
지호가 이제야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갤 주억거리고는 하늘에게 물었다.
“그 퍼스트 클래스라는 건 많이 비싼 거야? 얼마나 돈을 더 주면 이런 자리로 예약할 수 있는 건데?”
지호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하늘이 잠시 하준 쪽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게 저도 아까 형들한테 들은 건데요…….”
곧이어 하늘의 입에서 흘러나온 숫자들에 지호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뭐?! 미, 미친!”
순간 높아진 목소리 탓에 주변의 시선들이 달라붙자, 지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나지막이 내뱉었다.
“야……! 그, 그게 진짜야? 원래 비행기 가격보다 그렇게나 많이 비싸다고?! 허얼…….”
일반석 가격도 비싸게 느껴지는 마당에 그것의 수배가 넘는다는 퍼스트 클래스의 가격을 듣고 나자, 지호는 조금 전까지 느끼던 기분들이 일순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아니…… 우리 사람 수가 몇 명인데. 고작 비행기 하나에 그 정도 돈을…… 말도 안 돼.”
지호의 말에 하늘도 수긍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쵸? 저랑 형들도 첨엔 멋 모르고 막 좋아하다가 가격 듣고 나니까 갑자기 맘이 불편해지는 거 있죠? 아직 저희가 벌어다 드린 것도 별로 없는데.”
“……그러게.”
지호와 하늘의 시선이 맞은편 하준에게로 향했다.
데뷔 이후 빠르게 인지도가 높아진 덕에 각종 행사와 광고 문의가 쏟아지곤 있었지만, 아직까진 구체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스케줄을 소화함으로써 얼른 수입을 벌어다주고 싶은 멤버들의 마음과는 달리, 줄곧 여유로운 태도만을 유지하고 있는 하준.
여러모로 적지 않은 지출들이 발생하고 있을 것임에도 그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들이 다소 의아할 수밖엔 없었다.
게다가, 이런 와중에 미국에서 무려 3주 동안이나 머물 예정이라고 하니 더더욱.
하준의 옆 좌석에 있던 은호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대표님…… 저희 정말 안토니 형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가는 거예요? 그것도 가자마자 이틀 뒤에 바로?”
종방연 회식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듣게 된 미국행 얘기.
미국이란 단어 그 자체 때문에도 그랬지만,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안토니 스미스의 단독 콘서트 게스트 때문이라는 것으로 인해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수년간 미국에 거주했던 은호는 안토니 스미스의 콘서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자신의 콘서트에 게스트를 초청 안 하기로 유명한 가수가 바로 그이기도 했고.
은호의 물음에 옆에 있던 강준도 질문을 더해왔다.
“근데 저흰 왜 3주 동안이나 머무는 거예요? 콘서트는 이틀 뒤에 있는데.”
미국행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난 8일이란 시간 동안 오로지 연습에만 몰두해 왔던 멤버들.
3주간의 음악방송 활동이 모두 끝난 데다, 육아 예능도 종방을 마친 상태라 연습 외엔 아무런 스케줄을 소화하지 않았었다.
정진웅에게 듣기론 숱한 스케줄 문의가 들어오는데도 지금은 모두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안토니 콘서트의 규모를 생각하면 남은 시간은 오로지 연습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3주라는 기간은 쉬이 납득이 되질 않고 있었다.
이제 막 데뷔해 왕성한 활동을 펼쳐야 할 자신들이기에 더더욱.
은호와 강준의 연이은 물음에 하준이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왜? 한참 활동해야 할 시기에 너무 길게 자릴 비우는 것 같아?”
마치 자신들의 생각을 다 읽고 있다는 듯 물어오는 하준의 얘기에 두 사람 모두 눈치만 살피며 입술을 달싹였다.
“도착하면 다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하준이 은호와 강준에게 물었다.
“연습은 많이들 했지? 지금껏 섰던 무대들하고는 많이 다를 거라 색다른 경험들이 될 거야. 나중을 생각하면 이런 큰 무대에 미리 서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고.”
“아, 네. 대표님. 그렇지 않아도 오기 전에 공연 실황 영상을 봤는데 정말 엄청나긴 하더라고요. 그렇게 큰 공연장은 난생처음 봤어요! 후우.”
“검색해 보니까 저희가 서는 공연 이후로도 쭉 공연이 예정돼 있더라고요. 각 주마다 돌면서 다 투어 하는 것 같던데.”
강준의 얘기에 하준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갤 끄덕였다.
거기까지 알아봤음에도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모습들이 웃기기도 하면서 귀엽게 느껴졌다.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하준이 잠시 고갤 돌렸다.
그곳엔 이륙 이후로 줄곧 뭔가에 몰두해 있는 이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은호가 하준의 시선을 알아차리곤 입을 열어왔다.
“요즘 새벽마다 계속 저렇게 작업 중이에요. 카인 형이 다음 정규 앨범은 이준이가 직접 작업해 보라고 하셨다더라고요. 믹싱이나 전체적인 마스터링은 같이해 줄 테니까 한번 해보라면서. 그래서 요즘 틈만 나면 저러고 있어요.”
은호의 말에 하준은 천천히 고갤 주억거렸다.
물론 지현성에겐 자신이 제안한 일이었기에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첫 정규앨범이 될 다음 작업.
이번 3주간의 미국 일정을 통해 멤버들뿐 아니라, 이준 또한 새로운 경험을 쌓고 더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갖길 바라는 하준의 의도였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봐왔던 미래대로 이준의 잠재력이 폭발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단 걸 알고 있었기에.
은호의 조금 전 말에 강준이 의아한 듯 고갤 갸웃거렸다.
“정말요? 그럼 요즘 진성 선생님이랑 카인 형 두 분은 왜 그렇게 늦게까지 작업실에 계셨던 거지? 거의 새벽까지 계속 계시길래 전 저희 신곡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응? 진성 선생님이랑 카인 형이? 왜?”
“모르겠어요. 보컬 트레이닝 받으러 갈 때마다 진성 선생님은 항상 녹음 부스에 들어가 계시더라고요. 목 관리도 엄청 하시는 것 같고.”
“흐음. 그래? 무슨 다른 일이 있으신 건가?”
입술을 내밀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과는 달리 하준은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것 또한 자신의 계획하에 이뤄지고 있는 일이였기 때문이었다.
김진성을 처음 본 날 그에게 약속했던 내용.
그 약속을 지키고 행동으로 옮길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하준은 그에게 미리 운을 띄어놓고 왔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일러주진 않았지만.
잠깐의 대화 뒤 다시 각자의 시간들을 보내기 시작했고, 하준은 일등석에 마련된 헤드폰을 꺼내 귀를 감쌌다.
흘러나오는 음악들 사이로 하준은 몇 주 전 구치소에서의 미래 예지를 떠올렸다.
모든 형이 확정되고 기결수복을 입고 있는 박성환. 그리고 그를 마주하고 있는 미래의 자신을 바라보며 그가 내뱉었던 말.
하준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를 듣는 순간, 심장이 거세게 요동칠 수밖엔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바로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 오로지 그 장면만 보여준 뒤 미래 예지는 사라져 버렸고 그 이상의 정보들을 얻을 순 없었다.
대체 왜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내뱉어졌던 걸까.
그리고, 왜 하준은 먼 미래에 다시 그를 찾아가게 됐던 걸까.
박성환을 무너뜨림으로써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은 끝냈다고 생각했기에 해당 장면들은 더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왜.
복잡한 하준의 머릿속으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하준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OST 사이로 해맑게 웃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 * *
“컥…… 저, 저희 이거 타고 가는 거예요, 설마……?”
공항 도착 직후, 차를 타고 짧은 거리를 이동한 멤버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함과 동시에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헬기의 외관에 모두가 넋을 잃고야 말았다.
멤버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하준이 웃음과 함께 답했다.
“여기서 안토니 집까지 꽤 거리가 있어서 안토니가 직접 보내온 거야. 미국에서 머무는 동안 계속 그 집에 머물게 될 거고.”
“지, 집까지요? 이 헬기가 집으로 착륙도 하고 막 그, 그러는 거예요?”
도무지 믿기 힘든 얘기인 듯 말까지 더듬으며 묻는 지호의 말에 하준이 미소로 화답했다.
“가보면 알게 될 거야. 아마 생각하던 집들과는 거리가 좀 멀지 않을까 싶은데.”
“……와아…….”
아무래도 미국에 있는 3주 동안 내내 이런 반응들을 보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새로운 시야와 경험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자신의 의도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지만.
헬기의 프로펠러가 보내오는 강력한 바람 사이로 멤버들이 좀처럼 입을 닫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 낯선 여자가 다가와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다들 오시느라 고생많으셨죠? 저는 이유진이라고 합니다!”
낯선 미국 땅에서 처음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온 누군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국말에 멤버들이 반가운 듯하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누구…….”
“아, 저는 앞으로 3주 동안 여러분의 통역을 맡아줄 통역사예요! 호호. 대표님이 첫 일정부터 계속 같이해줬으면 한다고 하셔서.”
“……아!”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준에게로 향했고, 하준은 통역사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멤버들에게 말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필요하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통역사님께 물어보도록 해. 너희 영어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첫 일정부터 요청드린 거니까.”
“아, 네. 대표님!”
그제야 멤버들도 표정을 바꾸곤 통역사에게 반가운 인사들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간의 짧은 인사를 나눈 뒤, 통역사가 자신의 명함을 멤버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대부분 같이 있긴 할 텐데, 혹시라도 갑자기 궁금한 거나 도움 필요한 일 있으시면 바로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돼요. 앞으로 있을 콘서트 투어에서도 쓰고 싶은 말이나 문장들 있으시면 언제든 여쭤보셔도 돼고요!”
“투, 투어요? 투어라면 어떤……?”
멤버들의 물음에 이유진 통역사가 의아한 듯 고갤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어머, 혹시 아직 못 들으셨을까요? 앞으로 3주 동안 있을 안토니 스미스 전 콘서트 일정에 가 함께 하는 걸로 전 알고 있었는데.”
“전, 전 콘서트예요?!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요?”
무척이나 놀란 표정들로 말을 내뱉고는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하준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멤버들에게 물었다.
“지난번 일 기억하지? 나 몰래 너희들끼리 일 꾸몄던 거. 음, 뭐. 그거에 대한 복수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