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93화 (94/165)

93화

B&D 대표 박성환의 구속 소식은 연예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촬영장에 모이는 모든 배우들의 입에 연일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방송 및 엔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이슈가 되어, 들어오는 모든 새로운 소식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지난 십수 년간 엔터계를 군림하다시피 했던 그의 구속 소식은 연예계 전반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박성환이 무너진다는 건, 곧 B&D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에.

[국내 최대 로펌 ‘라자드’. B&D 박성환 씨 변호 사임서 제출. 이유는 승률 때문?]

물론 그가 1심과 2심 재판을 통해 다시 복귀의 가능성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분위기가 자못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흘러가는 분위기는 결코 박성환에게 좋아 보이진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의 마음속엔 확신아닌 확신들이 생기게 되었다.

박성환은 실형을 면치 못하게 될 거고.

결국 B&D는 공중 분해 될 거라는.

그런 사람들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입증하듯, 박성환을 대신해 회사를 이끌어가던 최규진은 무척이나 이례적이면서도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B&D의 간판 스타급 배우들을 모두 전속 계약 해지시켜 주는 것은 물론, 일체의 위약금도 받지 않고 순순히 정리해 준 것.

그것은 곧 자신의 수장이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직시하고 있단 뜻임과 동시에, 그간 B&D의 불법 정황들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의미로 간주해볼 수 있는 행위들이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일들의 모든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바로, 황수철.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형량을 줄여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죄를 박성환에게 떠넘겼다.

자신은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모든 캐스팅 과정에선 항상 B&D의 소속이란 걸 밝혀왔다고.

그와 컨택된 다수의 배우 지망생들이 박성환의 접대 자리에 대동됐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증명될 수 있었기에 그의 말은 더더욱 신빙성을 얻을 수밖엔 없었다.

무엇보다, 수사 담당자들의 입장에선 피라미 같은 황수철보단 거물급 인사인 박성환을 치는 편이 훨씬 매리트 있게 느껴지기도 했을 거고.

박성환의 구속 소식과 동시에 B&D를 빠져나가 버린 숱한 배우들. 그리고, 무려 20년이란 시간동안 호형호제하며 지내왔음에도 한 순간에 배신해 버린 그, 황수철.

박성환과 그들의 관계는 지금껏 정이나 의리가 아닌, 그저 비즈니스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박성환의 1심 재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날.

서울 북부 구치소 접견실엔 하준과 박성환이 유리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하, 내 꼴이 얼마나 보기 좋게 변했는지 직접 확인이라도 하러 온 건가?”

구속 상태로 수차례 받아온 조사들, 그리고 몇 평도 채 되지 않은 감옥에 갇혀 지내온 탓에 그의 몰골은 무척이나 수척해져 있었다.

화려함과 동시에 항상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미결수 죄수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다른 죄수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자신을 향해 비소를 날려오는 그를 바라보며 하준이 답했다.

“굳이 내일 재판장엔 직접 나가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시간이 난 김에 찾아와봤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얼굴을 비추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하, 예의? 온갖 추잡한 방법들은 다 동원해서 사람 뒤를 캐놓곤. 지금 예의란 말이 나오나 내 앞에서?”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맞닥뜨린 자신의 혐의에 대한 증거들.

눈앞에 펼쳐진 자료들을 본 순간, 그제야 박성환은 모든 진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되기 시작했다.

해당 자료는 오창석이 아니면 결코 빼내올 수 없는 것들이란 것과, 그가 팔도의 대표에게 완벽히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을.

이미 변호인들을 통해 이번 사건의 최초 수사 요청자가 누군진 파악이 끝난 상태였기에 그것을 추측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염으로 뒤덮인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준이 차분한 음성으로 내뱉었다.

“바깥에서의 일은 모두 다 전해 듣고 있을 테니 잘 알고 계시겠죠. 죗값을 다 치르고 나온다 해도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다는 걸.”

그가 구속되고 흐른 지난 3주의 시간.

이미 B&D의 소속 연예인들뿐 아니라 직원들의 과반수가 퇴사를 한 상황이었다.

그 모든 결정에 있어 B&D 박성환의 동의 또한 분명 뒤따랐을 것이기에 하준은 지금 그의 의중이 어떤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했다는 것임과 동시에, 일종의 체념과도 같은 것.

자신의 눈을 마주하며 차분하게 내뱉는 하준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박성환.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려왔다.

“이제야 확실히 알겠군. 그 눈빛이 왜 그렇게 낯이 익었는지.”

유리막 사이의 하준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대충 의심은 했지만 그래도 설마 아니겠지 싶어 그냥 넘겼었어. 그 어린 나이에 애가 있다는 건 당시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니까.”

“…….”

“하, 참. 근데 수연이 얼굴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보고 있으니 눈빛이 똑 닮긴 했구만. 아주 판박이야. 누가 봐도 같은 핏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박성환이 다시 의자로 등을 붙이며 한쪽 뺨을 쓸어넘겼다.

“어쩐지 항상 집 근처까진 오지 못하게 하더라고. 매번 데려다준다고 해도 극구 안 된다고 하면서. 그땐 뭔가 숨기는 게 있구나 하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했어. 당시엔 나도 지금보단 훨씬 인간적인 사람이었거든.”

박성환의 이번 말엔 줄곧 침착하던 하준의 표정도 일순 바뀌었다.

“인간적이라. 그랬다는 사람이 자신을 믿고 의지한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것도 오로지 당신만을 따랐던 사람한테.”

하준이 내뱉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곧바로 이해 한 듯한 얼굴로 그가 잠시 시선을 내렸다.

그러고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입을 열어왔다.

“난 그 누구보다 수연이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가진 재능뿐 아니라 열정과 의지까지. 내가 날개만 달아준다면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 난 그 날개를 달아주려고 했던 것뿐이고.”

박성환이 다시 고갤 들어 하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저 성실하고 열심히만 산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걸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착각이야. 멍청하게 올바른 길만 간다고 해서 모두가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그럴 것 같았으면 실패한 인생이란 말도 나오지 않았겠지. 물론, 나 같은 사람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일도 없었을 거고 말야.”

하준은 말없이 그의 말을 계속 지켜봤다.

“지름길이 있다는 걸 아는데. 보다 빨리 성공할 수 있고, 보다 더 빨리 유명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는데. 누가 그걸 마다하겠나? 이 바닥에서 성공의 기준이란 게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

“아마 수연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분명 성공한 인생을 살았을 거야. 여배우로서도, 한 여자로서도 말이지. 내가 기필코 그렇게 만들고 말았을 테니까.”

박성환의 말에 하준은 그녀가 남긴 유서를 떠올리며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내뱉었다.

“당신의 그 허영심과 욕심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끝장나 버린 겁니다. 이수연 씨가 죽은 건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사고가 아니라.”

“…….”

하준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에 박성환이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그러고는 이해하지 못한 듯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게 지금 무슨.”

“말 그대롭니다. 이수연 씨는 사고로 사망한 게 아니라 홀로 그 괴로움과 고통들을 견디다 외롭고도 쓸쓸하게 죽어갔단 소립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원흉이 바로 당신이고요.”

“…….”

지난 20년간 추호도 생각해본 적 없던 믿기 힘든 얘기에 박성환의 얼굴은 수습이 안 될 정도로 급격히 굳어갔다.

그러고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럼 수연이가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단 소리인가, 지금? 사고가 아니라?”

하준은 그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시선을 옮겨 남은 타이머의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덧 1분 아래로 내려온 남은 시간.

하준은 황망한 표정의 그를 일별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재판 결과가 어떻든 간에 무조건 항소할 거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하십시오. 설령 2심에서 형량이 줄어든다고 한들, 당신이 지난 20년간 저질러온 짓들은 훨씬 더 크고도 무겁다는 것을요. 비록 그 죄들이 이번 혐의들엔 조금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하준은 단호한 어투로 덧붙였다.

“그러니 5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그 피해자들에 대해 참회하고 또 참회하길 바랍니다. 그게 당신이 죗값을 치를 수 유일한 방법이니까.”

타이머의 시간이 아직 남았음에도 하준은 해야 할 말을 모두 끝냈기에 그를 일별하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데.

등 뒤에서 박성환이 낮은 목소리로 하준을 불러왔다.

“잠깐…….”

목소리에 하준을 몸을 돌리자, 그가 고갤 들어 하준을 바라봤다.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을 믿든 안 믿든 그건 자유지만. 수연인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적어도 나한테 보였던 모습들만은 결코 그런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고.”

조금 전 하준이 꺼낸 말들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격하게 내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건 몰라도 당시 수연이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알아. 만약 나 때문에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면 분명 먼저 얘길 해왔을 거라고. 그럼 나도 끝까지 밀어붙이진 않았을 거고. 말했듯이 그때의 난 지금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어차피 하준에겐 다 의미가 없는 얘기들이었다.

그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모두 쓸모 없는 얘기들뿐이었으니까.

하준이 다시 몸을 돌리려하자, 그가 하준의 등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어왔다.

“수연이가 힘들었던 건 다른 것 때문이었어. 내가 아니라, 다른…….”

박성환이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던 그때, 타이머의 남은 시간이 0을 가리키더니.

띠잉-!

접견실 내부로 울리는 커다란 종료알림 소리와 함께 그의 말소리가 더는 들려오질 않았다.

그와 동시에, 하준의 표정 또한 일순 심각해질 수밖엔 없었다.

그의 말을 더 듣지 않으려 했던 순간, 그가 뜻 모를 얘기들을 내뱉어왔고.

그 말들은 분명 하준의 의구심을 자아내기 충분한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황망함과 어둠이 짙게 깔린 표정으로 하준을 올려다보고 있는 박성환.

그리고, 그런 박성환을 심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하준.

이내 접견실의 문이 열리며 교도관이 박성환을 불러왔고, 박성환도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그런데.

하준이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때, 일순 시야가 뒤집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떠한 장면 하나가 빠르게 눈앞으로 떠올랐다.

장소는 지금 이곳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은 곳.

그곳에서도 미래의 자신과 박성환은 서롤 마주 보며 앉아 있었고, 분위기 또한 지금과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박성환이 입고 있는 죄수복만큼은 미결수가 아닌 기결수의 복장.

즉, 모든 형을 확정받은 뒤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의 미래라는 뜻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이 타이밍에 갑자기 나타난 장면들로 인해 하준은 심각한 마음으로 다음 장면을 기다릴 수밖엔 없었고, 곧이어 박성환의 입이 열리며 그의 말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말이 내뱉어진 그 순간.

하준의 심장은 거세게 요동칠 수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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