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일주일 뒤, B&D 엔터.
이른 오전 시각부터 줄줄이 터져 나온 기사들로 인해 B&D의 사무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기자들의 전화는 물론, 사무실 앞까지 찾아와 대표 박성환을 찾는 이들로 무척이나 북적대고 있었고.
좀처럼 수습이 될 것 같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B&D의 전 직원은 진땀만을 흘리며 끊임없이 수습에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뿌연 담배 연기 자욱이 짙게 깔린 B&D 대표실 내론 대표 박성환의 거친 목소리가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다.
“대체 어떤 새끼야?! 감히 누굴 상대로 이런 쓰레기 같은 기사를……! 당장 전화해서 기사 다 안 내리면 가만 안두겠다고 전해! 협박이든 겁박이든 뭐든 다 하란 말이야!”
당장에라도 모니터를 부술 기세로 노려보며 내뱉는 박성환의 지시에 부사장 최규진은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그게요. 형님. 기사 터뜨린 곳이 우리랑 일면식도 아예 없는 종합 언론사라…… 아무리 얘길 해도 들어주질 않고 있습니다. 전혀 씨알도 안 먹혀요.”
“야, 이 새끼야. 이런 일 한두 번 해봐? 협박이 안 통하면 돈으로라도 해결하면 될 거 아냐? 얼마가 됐든 간에 원하는 대로 쥐어줄 테니까 당장 내리라고 해. 당장!”
이번에도 역시나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질끈 깨무는 그.
곧 어렵게 입술을 떼며 말했다.
“그 기사 작성한 기자 놈이 완전 꼴통인 것 같더라고요…… 원하는 걸 다 들어준다고 해도 자기가 원하는 건 이거라면서 다 필요 없다고 하는데. 또 한 번 연락하거나 직접 찾아오면 제가 한 얘기들까지도 다 추가 기사로 내보내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후우.”
지금껏 십수 년을 B&D에서 일해오는 동안 이보다 더 큰 위기는 겪어보지 못했던 최규진.
소속 연예인들의 사고, 방송사와의 불편한 사건들이 종종 있기는 했어도 해결하는 데 큰 애를 먹었던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대표 박성환의 힘이 항상 건재했고, 그의 영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이 바닥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결부터가 달랐다.
이른 아침부터 줄줄이 터져 나와 연예계 전체를 발칵 뒤집히게 만든 해당 기사들은 오롯이 박성환 하나만을 타깃으로 정하고 내보낸 것들.
그리고, 그것들의 내용은 무척이나 적나라하면서도 디테일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실제 정보를 입수해 팩트만을 줄줄이 나열한 것처럼.
국내 최고의 배우 풀을 가지고 있는 B&D 엔터. 십수 년째 단 한 번도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와본 적이 없는 독보적인 기획사.
그 모든 걸 가능케 했던 그곳의 수장이 이번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벌써 열 번째 담배 개비를 입에 물며 박성환이 물었다.
“그 기 자놈 이름이 뭐라고?”
“박용태요. 좀 알아보니까 사회부에서 연예부로 발령 대기 상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큰 거 하나 제대로 물어서 이미지 좀 각인시켜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애송이 같은 새끼가.”
주먹을 꽉 쥐며 죽일 듯 허공을 노려보는 박성환의 모습에 최규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이번에 황 사장님 사고 기사도 이 기자가 썼더라고요. 아무래도 거기서부터 발단이 된 게 아닐까 싶은데…….”
최규진의 얘기에 박성환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일주일 전, 황수철의 사고 기사와 함께 뜬금없이 자신을 저격해온 기사 하나로 인해 꽤 불쾌한 감정을 느꼈던 그.
하지만, 어디까지나 메인은 황수철의 사고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넘어갔다.
누군지 정확히 나오지도 않은 기사에 괜히 가타부타 말을 보태고 해명을 하는 건 되레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 모든 것의 전초가 돼 버릴 줄이야.
복선과도 같던 그것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과 동시에, 황수철의 멍청한 행동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렇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조심하라고 했거늘…… 이래서 멍청한 인간이랑은 오래 엮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무려 20년 가까이를 호형호제처럼 지내왔음에도 지금 그에게 황수철이란 인간은 그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한낱 장애물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박성환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부사장 최규진에게 물었다.
“근데 대체 오창석 이 자식은 어디 간 거야?! 이런 위급한 상황에 코빼기도 안 비추고.”
“아, 창석인 어제 출장 나갔어요. 민아 해외 화보 촬영 있는데 거기 따라갔다 오겠다고. 갑자기 다녀오겠다고 하길래 저도 그러라고 하긴 했는데.”
“하, 참나. 한가롭게 해외 출장이나 가라고 그 자리에 앉힌 줄 알아? 이 자식 이거 돌아오기만 하면 확 강등을 시켜 버리든가 해야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새끼.”
이번 일에 가장 결정적인 인물이 그라는 건 꿈에도 모르고 있을 박성환은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곤 이내 화제를 돌렸다.
“일단 다른 어뷰징 기사들은 절대 쏟아지지 않도록 입들 다 틀어막아놔. 다 사실 아니니까 더 신경 쓸 것도 없고, 곧 강력한 법적 대응으로 응수할 거라고 깔아두란 말야. 행여나 객기 부리는 놈들 없도록.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예. 직원들한테도 다시 한번 대응 매뉴얼 전달하고 최대한 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성환의 지시에 대답을 마친 그가 어쩐지 곧바로 대표실을 나가지 않고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더 남아 있는듯한 그의 얼굴 표정에 박성환이 곧바로 물었다.
“왜. 뭐 더 할 말이라도 남아 있어?”
“아, 그게요. 형님…….”
꽤나 꺼내기 힘든 얘기인 듯 곤란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왔다.
“오전에 몇몇 애들이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요…… 위약금도 다 물 테니 최대한 빨리 정리해 달라고…… 자기들 이미지 더 나빠지기 전에.”
“뭐? 누가?”
최규진이 계약 해지 요청을 해온 소속 배우들의 이름을 열거하자 박성환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책상을 쾅 내리쳤다.
“하, 이 새끼들이…… 지금 그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은혜를 감히 이딴 식으로 배신해?!”
어림도 없다는 듯 박성환이 단호하게 말했다.
“개소리들 집어치우라 그래. 위약금이고 뭐고 절대 해지해 줄 생각 없다고. 해지하고 싶으면 이 바닥 영영 뜰 각오로 해지 얘기 꺼내라 그래. 그럼 소원대로 해줄 테니까.”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최규진의 얼굴도 한층 더 어두워졌다.
계약 해지 요청을 해온 배우들 모두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도 그럴 게, 기사의 내용들은 모두 하나같이 사실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성환과 일이 년을 함께해 온 이들이 아니기에 그것들이 모두 팩트란 것쯤은 알고 있었고, 자신들에게 더 큰 피해가 오기 전에 완전히 연을 끊으려 하는 것이었다.
물론 부사장인 최규진도 지금껏 겪어왔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쯤은 그 누구보다 잘 알는 상황.
그렇기에 좀처럼 심각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대표실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곧장 문을 열어젖히며 다급한 목소리를 내뱉어왔다.
“대, 대표님! 지금 뉴스에!”
홍보팀 여직원의 얘기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부사장이 곧바로 대표실 TV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고.
화면 위론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자이크 처리와 함께 B&D의 로고가 꽤나 적나라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국내 대형 기획사 대표의 불법적인 정황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이 예상되는 이번 사건을 수사 기관이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관심이 여기저기에서 쏠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등장해…….]
앵커의 멘트가 내뱉어지는 동안, 박성환과 최규진의 시선은 곧장 오른쪽 상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적힌 방송국 로고를 확인한 순간 일순 표정이 일그러졌다.
“NTV……? 저것들이 언제부터 뉴스를 진행했다고 지랄들이야?! 당장 전화해서 안 막고 뭐 해?!”
박성환의 윽박에 여직원이 곤란한 어투로 답했다.
“그, 그게…… 그쪽 사장님 지시로 특별 편성된 파일럿이라 어쩔 수 없다고…… 그리고 이거 지금 생방송이라 막을 수도…….”
“이런 씨!”
지상파 3사는 물론, 종편이란 종편엔 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였기에 이런 NTV의 돌발 행동은 그의 분노를 더욱 솟구치게 만들었다.
“거기 사장 년 연락처 지금 당장 알아와. 호랑이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감히 이딴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당장 알아와, 당장!”
“아, 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잔뜩 겁에 질린 듯한 표정과 함께 여직원이 대표실을 빠져나갔고, 다시 담배를 입으로 무는 박성환을 바라보며 최규진의 얼굴 위로도 짙은 어둠이 깔렸다.
지금껏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이 십 수 년을 왕처럼 군림해 왔던 그.
하지만, 이번만큼은 흘러가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얼굴 표정 또한 지금껏 봐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류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여직원이 나감과 동시에 TV 화면을 꺼 버리는 박성환.
이내 짙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주워듣고 그딴 기사를 내보낸 건진 모르겠지만 백날 떠들어봐야 소용없다고. 어차피 증거 따위도 없이 의혹만 나불거리는 걸 테니까. 후, 내가 그런 것도 대비 안 하고 허술하게 이 자리까지 온 줄 알아?”
사업을 시작하고 확장시키는 모든 과정에 있어 하나하나가 다 치밀한 계산하에 이뤄졌던 것들.
오로지 자신과 부사장, 그리고 오창석 외엔 그 누구도 믿지 않았기에 당연히 증거 따윈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입수했는진 몰라도 정황 따위만으론 결코 자신을 위협할 수 없을 거란 생각했기에.
그런데.
‘그 죗값 지금이라도 제가 반드시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제 모든 걸 다 걸어서라도.’
왜일까. 문득 그의 말이 지금 머릿속을 스쳐 가는 건.
팔도의 대표가 자신을 찾아와 마지막으로 내뱉고 갔던 그 말.
‘아냐. 절대 그럴 리가 없지. 감히 제까짓 게 뭐라고.’
아무리 으름장을 놓고 갔다고는 해도 이번 일과 그를 연관시키기란 어려웠다.
지난 20년간 쌓아온 견고하고도 단단한 벽을 그가 이렇게 단숨에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는 B&D 대표실.
박성환의 앞에 놓인 재떨이 위론 필터만 남은 담배 개비가 소복이 쌓여 갔고, 최규진은 그의 옆자리를 말없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 그렇게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돼요! 아악!”
갑자기 대표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여직원의 만류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낯선 사내 여럿이 막무가내로 박성환의 앞까지 쳐들어왔다.
“박성환 씨, 본인 맞으시죠?”
맨 앞 열에 서 있던 남자가 박성환을 바라보며 물어왔고, 그가 대답을 내뱉기도 전에 ‘공무원증’이라고 적힌 손바닥만 한 물건을 내밀며 말을 덧붙였다.
“박성환 씨를 업무상 횡령, 특경법상 업무상 횡령, 알선 성매매 등 성매매 처벌법 위반, 불법 로비 등의 혐의로 즉시 체포하겠습니다. 앞으로 모든 수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인지하셨습니까?”
“당, 당신들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쳐들어와?!”
박성환이 자리를 박차며 일어나자, 그도 앞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와 재차 물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인지하셨습니까? 대답은 자유입니다.”
“이, 이것들이 진짜.”
갑자기 쳐들어온 사내들을 쳐다보며 박성환이 소리쳤다.
“니들 구속 영장은 있어?! 어디 그런 것도 없이 함부로 이렇게 쳐들어와?! 내가 니들 싹 다 옷 벗게 해줄까? 어?!”
잔뜩 흥분된 톤의 박성환이 윽박에도 불구하고, 맨 앞 열 남자의 얼굴 위론 무척이나 여유로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이런 멘트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가 박성환과 눈을 마주하며 안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박성환의 얼굴 앞으로 펼쳐 보이며 옅은 미소를 흘렸다.
“그런 것도 없이 이렇게 쳐들어왔을까 봐요? 혐의의 크기로 보아 도주의 우려가 다분하기에 당신을 구속 수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영장 확인하시고요.”
그가 영장을 흔들며 말을 마치자, 뒤에 있던 사내들이 박성환의 곁으로 다가와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구속영장을 바라보며 박성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두 손을 강제당하는 것 외에는.
B&D의 전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내들의 손에 이끌려 박성환이 끌려나왔고, 그와 동시에 박성환이 잠시 걸음을 멈추곤 앞 열의 남자에게 물었다.
“누굽니까. 수사를 요청한 사람이.”
최초 신고자를 묻는 그의 질문.
물론 머릿속으론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당연히 대답해 줄 수도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그가 박성환의 몸을 다시 강제로 돌리며 답했다.
“조금이라도 형량을 줄이고 싶으면 수사에 적극 협조하세요. 변호사를 부를 거라면 바로 북구 구치소로 오라고 하시면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