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91화 (92/165)

91화

[도난, 음주, 폭행에 교통사고 상해까지. 새벽 강남대로변에서 때아닌 추격전 펼쳐져. 피해 차량 크게 훼손.]

[강남대로변 추격전 가해자, 연예계 캐스팅 디렉터로 밝혀져. 진술 과정에서 다수의 피해자 나와 추가 수사 진행 중. 큰 파장 예상.]

[강남 추격전 가해자 캐스팅 디렉터 A씨. 피해자 녹취록 중 모 연예기획사 엔터 대표 이름 다수 언급. ‘세상 둘도 없는 호형호제’.]

[국내 최대 규모의 배우 전문 기획사 대표, B씨. 사업상 접대 자리에 배우 지망생들 다수 대동! 다년간 불법적인 정황 상당수 포착.]

오전 이른 시간부터 사회면에 올라온 기사는 얼마가 지나지 않아 랭킹뉴스의 상위권을 차지하기 시작.

이후 연달아 터져 나온 관련 기사들까지 더해지자, 오전 내내 뜨거운 화두로 올라서게 되었다.

교통사고 건의 꽤나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물론, 해당 사건의 가해자로부터 비롯된 대형 기획사 불법 정황 의혹들까지.

사회면의 한 사고로 시작된 일이 연예계로까지 번지자 사람들의 흥미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솟을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지금.

해당 기사의 최초 작성자이자 그 모든 기사들을 오로지 독점으로 내보낸 그가 팔도의 대표실에 하준과 마주 앉아 있었다.

조금 전 김지혜가 내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그가 입을 열었다.

“이야, 소속 연예인 수에 비하면 이거 사무실이 너무 좋은 거 아닌가요? 여기서 매일 먹고 자고 해도 전혀 불편할 게 없겠는데요? 하하.”

최희원의 연락을 받고 하준이 해당 기사들을 모두 확인할 쯤.

저장되지 않은 한 번호가 하준에게 전활 걸어왔고, 용건은 하준을 직접 만나고 싶단 것이었다.

하준 또한 자신을 소개해 오는 그의 이름이 해당 기사의 작성자와 동일하다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음은 물론.

그와 동시에 몇 가지의 의문이 떠올라 그의 제안을 수락한 상태였다.

그의 서글서글한 웃음을 바라보며 하준도 입을 열었다.

“오늘자 독점 기사들의 작성자가 다 기자님이시던데. 내용도 꽤나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고요.”

하준의 얘기에 박 기자, 박용태가 수긍한다는 듯 여유 있게 고갤 끄덕였다.

“뭐, 다 사실에 근거해서 작성한 내용들이니까요. 물론 대표님이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가 연예부 아닌 사회부 기자라는 건 이미 하준도 알고 있었다.

그가 오기 전, 그의 지난 이력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조사를 끝마친 상태였으니까.

다만, 그가 사회면을 넘어서 왜 연예면에까지 독점 타이틀을 걸고선 기사를 내보낸 건지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 결코 일반적이진 않은 것이었기에.

게다가, 그 직후 바로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와 이렇게 직접 찾아온 연유 또한.

그런 하준의 의중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듯, 그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흘렸다.

“하하. 사회부 기자인 제가 왜 대표님을 찾아온 건지 의아하신 거죠? 그것도 독점 기사를 내보낸 직후에 곧바로.”

의중을 알 수 없는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하준이 순순히 인정했다.

“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혹, 사고에 대한 내용들 때문이라면 이미 기자님도 충분히 파악하고 계신 것 같던데. 그리고 만약 더 궁금한 게 있으셨다면 제가 아닌 담당 형사님을 찾아갔을 거고요.”

“하하. 이거, 제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 정확히 꿰뚫고 계시네요? 역시 괜히 대표 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그가 잠시 크게 띄웠던 웃음을 다시 옅게 바꾸며 하준을 바라봤다.

“출처가 어딘지 알고 계시다고 하니 그럼 분명 의아한 생각도 가지고 계시겠군요. 왜 그 캐스팅 디렉터와 B&D 대표에 관련한 기사만 내보낸 건지. 왜, 사고의 또 다른 당사자인 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는지.”

정확했다.

하준이 가지고 있던 여러 의문들 중 분명 하나였으니까.

만약 화제를 끌고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해당 추격전의 또 다른 당사자가 였단 사실을 분명 언급했을 터였다.

그랬다면 기사의 파급력은 적어도 지금의 몇 배는 더 됐을 테니까.

무언의 긍정을 표하는 듯한 하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뭐, 단순히 조회수만 뽑아낼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그편을 선택했을 겁니다. 대표님 아이들이 피해자든 아니든 간에 그건 저한테 별로 중요한 요인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이 사건의 전말을 어떻게 빌드업 시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나 이거겠죠.”

“…….”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가 계속 사회부에 몸담고 있을 때나 적용되는 얘기고,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져서 말입니다. 하하.”

상황이 달라졌단 말과 함께 그의 눈빛의 분위기 또한 일순 바뀌었다.

그가 소파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는 하준에게로 몸을 앞당겨 왔다.

그리고, 꽤나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제가 팔도의 전속 기자 타이틀을 좀 가질 수 있을까 하는데. 혹시 어떠실까요? 오늘 제가 대표님을 찾아온 이유도 바로 그거라서요.”

앞선 얘기가 내뱉어질 때만 하더라도 겁박 혹은 안 좋은 쪽의 얘기가 흘러나올 거라 예상했던 하준.

그러나 전혀 다른 방향의 얘기가 그의 입에서 내뱉어지자, 조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엔 없었다.

무엇보다, 사회부 기자인 그가 자신에게 이런 얘길 꺼내온 의도를 알 수가 없었기에 더더욱.

하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박용태가 곧바로 다시 입을 열어왔다.

“하하. 제 얘기가 너무 뜬금없이 받아지실 거란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대표님은 제가 사회부에 계속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실 테니까요.”

“그럼.”

“예. 오늘 회사에 부서 발령 신청을 해두었어요. 곧 연예부로 옮길 예정이고요.”

“아.”

이것 또한 결코 일반적인 루트는 아니었기에 하준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사회부 내에서도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그.

그간 여러 굵직한 사건들을 취재 및 보도함으로써 입지 또한 꽤나 단단한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일 년 전 지역구 국회의원 하나를 파면시키는 데 가장 큰 일등공신이 그라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런 그가 대뜸 연예부로 옮기게 됐다는 것은 물론, 팔도의 전속 기자 타이틀을 가지고 싶다고 하니 좀처럼 납득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하준이 잠시 침묵을 지키는 동안, 그가 말을 이어왔다.

“제가 좀 알아보니까 박성환 대표가 지상파 방송출연을 다 막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그게 이번 일이랑 어떤 관계가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 결정을 철회하게 만드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려면 박 대표 그 인간 힘을 다 무력화시켜 버리면 되는 거고요.”

박용태가 다시 소파 등받이로 등을 붙이며 말을 더했다.

“제가 사회부에 남아 있는 동안은 아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생각입니다. 뭐 조금만 알아봤는데도 여기저기 구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대충 의혹만 계속 던지다 보면 자기도 몸 좀 사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뭐 그러다 운이 좋으면 정말 수사에 착수할 수도 있는 거고.”

표정과 어투, 그리고 느껴지는 전체적인 그의 분위기는 분명 최윤섭, 최희원과는 달랐다.

이미 확고한 신념과 함께 그에 따른 계획까지도 모두 염두해 둔 듯 보였고, 이 바닥의 섭리가 어떤지에 대해 모두 꿰뚫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하준이 그에게 물었다.

“왜 많고 많은 엔터 회사 중 굳이 저를 찾아오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알고 오셨으리라 생각되지만 저희 쪽 소속연예인은 아주 소수에 불과한데요.”

“하하하.”

하준의 물음에 대뜸 웃음소리를 내오는 박용태.

그러고는 너무 쉬운 질문이라는 듯 곧바로 답을 해왔다.

“그야 그 많고 많은 엔터 회사의 대표들 중 대표님이 제겐 가장 능력 있는 분으로 느껴졌으니까요. 제가 또 능력 있고 잘생긴 사람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물론 팔도의 미래에 큰 흥미와 기대가 있기도 하고요.”

그가 하준을 바라보며 꽤나 비장한 어투로 말을 덧붙였다.

“다른 건 몰라도 박 대표가 지상파 출연 막은 것만큼은 제가 어떻게든 철회시키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아무리 그쪽 세계에서 그 인간 힘이 막강하다고는 해도 저 같은 사회부 기자한텐 씨알도 안 먹히죠. 한번 잡았다 싶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제 성미이니까요. 뭐, 게다가. 이미 시작한 상태이기도 하고요.”

하준은 이제야 모든 퍼즐들이 얼추 맞춰지는 듯 싶었다.

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왜 당연히 언급되었어야 할 가 기사에 한 줄도 없었는지. 그리고, 왜 사회부 기자인 그가 박성환에 대한 내용까지 굳이 보도함으로써 연예면으로까지 확장시켜 온 건지.

하준은 등받이에 등을 붙이곤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분명 자신의 입장에선 결코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애초에 전속 기자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대표인 자신의 입장에선 기자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어 안 좋을 만한 일은 결코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그가 사회부 기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다는 건, 하준에게 또 다른 생각을 확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했고.

하준이 그의 눈을 마주하며 질문을 건넸다.

“어떤 말씀이신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기자님. 그럼 혹시 뭐 하나만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네, 그럼요. 뭐든.”

“만약 이번 일보다 훨씬 더 크고 심각한 사건에 대해 정보를 입수하시게 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흔들림 없이 보도할 수 있으실까요? 그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으시고요.”

하준의 질문이 건네지자, 그 말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린 듯 박용태가 되물어왔다.

“그 심각한 사건이라는 게 혹시 박성환 대표와 관련된 일입니까?”

하준이 무언의 긍정을 표하는 듯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자, 그가 곧바로 옅은 미소를 지어왔다.

“만약 그런 쪽이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을 것 같은데요? 외부 압력이라는 거, 그거 기껏해야 언론사 광고로 대기업들이 이리저리 휘두르는 건데. 고작 엔터 회사의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우리 같은 종합 언론사 말고 연예 전문 매체라면 또 모를까.”

역시나 하준의 예상대로였다.

이 바닥에서의 박성환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안다고 하면서도 줄곧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해오던 그.

아무리 국내 최대의 배우풀을 가지고 있는 엔터 회사의 대표라고는 해도 언론사를 쥐었다 폈다 하는 대기업들과는 전혀 견줄 바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 말은 즉.

“그게 무슨 사건이든, 또 어떤 크기의 내용이든 간에 제가 내보내고자 하면 그건 무조건 기사로 나올 거라는 뜻입니다. 뭐, 애초에 그깟 압력에 기죽을 제가 아니기도 하고요.”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이번 사건.

이미 오전 기사로 인해 불씨는 지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기름을 부을지 말지는 오로지 하준의 손에 달려 있었고.

박용태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이미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모두 끝마친 하준.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USB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말씀하셨던 제안, 수락하는 쪽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죠. 하지만, 그 전에.”

말을 잠시 멈추고는 박용태의 눈을 마주하는 하준.

곧 차분한 음성으로 덧붙였다.

“기자님께서 제 능력을 보고 오신 것처럼, 저도 기자님의 능력을 확인해볼 수 있을까 하는데. 가능하실까요?”

* * *

그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

능력을 보여달라는 하준의 말에 박용태는 그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동안 잠잠했던 연예계에 엄청난 핵폭탄이 떨어진 건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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