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한산한 새벽 시간대, 멤버들이 타고 있는 고급 SUV 차량은 강남대로변을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목적지는 없었던 탓에 은호는 그저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만을 좇아 액셀을 밟아나가고 있었다.
“이제 어떡하죠……? 사장님도 계속 통화가 안 되고 있는데…….”
웬일인지 구세희와는 줄곧 통화가 연결되질 않았고,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져 버린 상황에 멤버들 중 누구도 쉽게 판단을 내리질 못하고 있었다.
“일단 숙소로 가자. 거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으니까.”
이준의 얘기에 그제야 목적지를 정한 은호는 백미러를 통해 고갤 한번 끄덕이곤 차선을 변경시켜 나갔다.
룸 안에서의 일들을 모두가 전해 들은 탓에 차 안의 공기는 무척이나 무거운 상태.
하준을 돕겠다고 시작한 일이 되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멤버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란할 수밖엔 없었다.
그때.
“은, 은호 형. 지금 저 차 계속 우리 따라오고 있는 거 아니에요?”
조수석에 앉아 있던 하늘이 자신의 사이드미러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은호도 백미러를 통해 차량 뒤쪽의 상황을 살폈다.
“아까부터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아서요. 우리가 차선 바꾸면 같이 바꾸는 것 같더니 조금 전엔 우리가 우회전 하니까 바로 따라붙더라고요. 게다가 신호도 다 무시하고 오는 것 같고…….”
하늘의 얘기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은호가 곧바로 차선을 변경시켰다. 그러자 정말 하늘의 말대로 독일산 외제차량이 차선을 변경시키며 자신들의 뒤를 따라붙기 시작했다.
“왜, 왜. 뭔데? 누가 쫓아와?”
앞 열의 대화가 심각하단 걸 느끼고는 이슬아가 뒤를 살피며 묻자, 은호가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
“아무래도 아까 거기서부터 계속 쫓아온 것 같아. 그 사람이.”
“그 사람? 서, 설마. 황수철?!”
말도 안 된다는 듯 이슬아가 눈동자를 키우며 덧붙였다.
“말도 안 돼! 그 사람 거의 혼자서 양주 한 병을 다 마셨어! 그 상태에서 지금 저렇게 거칠게 운전하고 있다고?”
“…….”
무척이나 위험하고도 말이 안 되는 일인 것만은 분명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그 외엔 떠올려지는 인물이 없었다.
무엇보다, 독일산 외제차량이 자신들의 뒤를 쫓고 있단 게 확실해진 지금의 상황에선 더더욱.
“다들 꽉 잡고 있어. 어떻게든 따돌려 볼 테니까.”
비장한 어투와 함께 은호가 말을 내뱉고는 오른쪽 발에 힘을 더욱 쌔게 주었다.
그러자 계기판의 RPM과 속력 게이지가 급하게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쫓아오던 뒷 차량과의 거리가 일순 멀어지기 시작했다.
“형! 멀어졌어요! 이제 못 쫓아오는 것 같아요!”
하늘의 말과 동시에 은호의 시야 앞으론 뱅뱅사거리 신호등 불이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는 게 들어왔다.
그러자 은호는 한층 더 액셀을 쌔게 밟으며 사거리 중앙을 빠르게 통과해나갔고, 그곳을 벗어남과 동시에 신호등의 불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됐어요 형! 이제 빨간불이라 더는 못 쫓아올 거예요!”
“후우…….”
그제야 은호도 한시름을 놓았는지 꽉 주고 있던 다리의 힘을 풀고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껏 이런 속력을 내본 적도 없었거니와, 밟는 족족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 이슬아의 고급 SUV 차량에 스스로도 꽤나 놀란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량 뒤편을 계속 살피고 있던 이슬아가 눈동자를 잔뜩 키우며 소리쳐왔다.
“뒤, 뒤에! 다시 쫓아오고 있어!”
긴장을 풀고 있던 은호는 이슬아의 외침에 곧바로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확인했다.
그러자, 여기저기 클랙슨 울리는 소리들 사이로 독일산 외제차량이 미친 듯 질주하며 위험천만한 광경을 연출해 오고 있었다.
“이은호!”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은호가 당황하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자 뒷자리에서 이슬아가 채근해 왔고, 그제야 은호도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끼이이이이익!!
“아악!”
급하게 액셀을 밟은 지 얼마가 채 되지도 않아 은호가 급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아왔고, 뒷자리에 있던 인원들은 모두 비명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허, 허헉…….”
은호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횡단보도 쪽으로 튀어나온 고양이 때문.
고개를 든 은호의 시야 앞으론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빛을 빛내고 있는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차량 안의 모든 인원들이 놀란 마음을 채 진정시키기도 전에.
더 큰 충격이 그들을 덮쳐온 건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잉-!
쾅!!!
도로에 멈춰 서 있던 이슬아의 SUV 차량 뒤쪽을 독일산 외제차량이 강한 속력으로 들이박았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강남대로변 위로 울려 퍼졌다.
차량 안의 모든 인원들이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 수억 원 대의 고급 SUV차량의 뒷범퍼는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찌그러져 버렸다.
“으윽…… 다들 괜찮아?”
가장 먼저 고개를 든 이준이 주변을 살피며 물어왔고, 다행히 모두가 안전벨트를 한 덕에 큰 부상을 입은 인원은 없는 듯싶었다.
앞으로 쏠렸던 몸들을 하나둘 일으키고 있던 그때, 운전석 사이드미러로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의 손엔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파악-!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운전석 창문을 향해 그것을 내리치는 황수철.
단번에 깨지지 않자 연달아 내리꽂는 행위를 거칠게 이어갔고, 머지않아 은호의 운전석 창문은 산산조각의 상태가 돼 버렸다.
“후우. 나한테 그 짓을 해놓고도 용케도 여기까지 잘 도망쳐왔다? 그치?”
들고 있던 돌덩어리를 바닥에 내던지고는 그가 안쪽으로 손을 뻗어 운전석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문을 열어 재끼며 은호의 멱살을 밖으로 잡아끌었다.
“하, 고작 이런 핏덩어리 같은 새끼한테 그런 꼴을 당하다니. 너 이 새끼, 간도 크다 그치? 응? 어른한테 그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당장에라도 내리칠 기세로 은호를 노려보던 그가 갑자기 뒷좌석 창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올렸던 오른손을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젖혔다.
“하아. 이것들 봐라…… 이것들 완전 다 한패였구만?”
뒷좌석에 타 있던 이슬아와 웨이터 남자, 그리고 그 밖의 인원들을 확인하곤 황수철의 얼굴에 비소가 흘렀고, 그가 한 손으로 이슬아의 멱살을 잡아 밖으로 빼냈다.
“뭐야, 니들? 대체 뭔데 떼거지로 몰려와 가지고는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거냐고. 어?!”
조금 전 충돌로 인한 엄청난 굉음, 그리고 그 이후 벌어지고 있는 다소 위험한 상황들로 인해 주변의 시선들이 하나둘 이곳으로 달라붙고 있었다.
“후, 그래. 역시 이런 건 말로 해선 도통 알아먹질 못하지. 그치?”
이슬아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거칠게 밀어 버리자 이슬아가 바닥으로 나뒹굴었고, 황수철은 은호를 마주 보며 말했다.
“어디 오늘 한번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그러고는 멱살을 잡고 있던 왼쪽 손을 더욱 세게 쥐며 오른손을 들어 은호의 얼굴 방향으로 빠르게 내려쳤다.
그와 동시에 피할 수 없단 생각과 함께 은호가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거대한 손바닥은 은호 뺨 위로 맞닿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악!!”
은호의 목소리가 아닌 황수철의 비명 소리가 일순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악력에 의해 그의 오른손이 크게 꺾인 상태가 돼 버렸다.
그리고, 허리까지 꺾으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바로, 하준이었다.
“대, 대표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하준의 등장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고, 하준은 황수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량 도난에 음주 운전, 그리고 교통사고 상해에 재물 손괴까지. 기존에 지은 죄만으로도 족히 몇 년은 썩을 텐데. 그걸론 부족했나 보네요.”
황수철의 오른손을 한층 더 격하게 꺾으며 그를 무릎 꿇게 만드는 하준.
그의 비명 소리는 더욱더 고통스럽게 터져 나왔다.
“아아악!!!!”
“앞으로 당신이 겪을 것들에 비하면 지금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아주 긴 시간, 무척이나 외롭고도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게 될 거니까요.”
하준이 꽉 쥐고 있던 그의 오른손을 놓으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그간 당신으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들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준이 손을 놓자, 황수철은 마치 큰 골절이라도 발생한 듯 괴롭게 바닥을 나뒹굴었고, 뒤늦게 등장한 구세희가 차 안의 멤버들을 살피며 물었다.
“다들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고?”
“아, 네…… 저흰 다 괜찮아요.”
다행히 멤버들뿐 아니라 모두가 무사한 것 같아 보이자, 구세희도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준에게로 향했다.
“대, 대표님…….”
하준을 돕겠다고 자처한 일이 결국엔 엉망으로 돼 버린 지금의 상황.
이번에도 역시나 하준의 도움으로 무사할 수 있게 됐기에 멤버들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가장 먼저 죄송하단 말을 내뱉어오는 리더 이준을 필두로 멤버들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가는 하준.
이미 구세희에게서 모든 정황들에 대해 듣고 온 상태였기에 어떤 질문을 내던지진 않았다.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만을 짓고 있을 뿐.
“휴, 너희들 잘못 없어. 다 내 잘못이지.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혹여나 하준에게 멤버들이 혼날까 싶어 뱉은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꺼낸 구세희의 말이었다.
지금의 이 모든 상황에 자신의 책임 또한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황수철은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채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고, 사고 차량 쪽으로 경찰차 두 대가 경광등을 켜며 다가온 건 그때였다.
경찰차의 불빛을 발견한 멤버들은 일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모두가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며 초조한 기색을 숨기질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이젠 더 이상 연습생 신분이 아닌 데뷔까지 마쳐 얼굴이 알려진 공인이었기 때문.
그런 멤버들을 바라보며 하준이 말했다.
“걱정할 거 없어. 오는 동안 내가 신고한 거니까. 너희들은 잘못한 것도 없고.”
하준의 말에 구세희도 보태왔다.
“그래. 아무 일 안 생길 거니까 걱정할 거 하나 없어. 안심해.”
아니나 다를까, 구세희의 말이 끝마쳐짐과 동시에 두 명의 경찰관이 다가와 바닥에 뒹굴고 있던 황수철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의 아픈 손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양손에 수갑을 채우곤 차량 쪽으로 그를 연행해갔다.
“아악! 아프다고!! 이거 안 놔?! 아악!”
격하게 몸부림칠수록 수갑에 채워져 있는 그의 손은 더 큰 통증을 유발시켰고, 황수철은 강제로 경찰차 안으로 집어넣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경찰관이 하준과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혹시 신고하신 분이?”
“접니다.”
“아, 네. 이게 단순 교통사고 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몇몇 분은 서(署)로 같이 동행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경찰관의 물음에 하준이 고갤 끄덕였다.
“네, 그러시죠. 저랑 이 친구가 같이 가겠습니다.”
하준이 구세희를 가리키자 경찰관이 차량 안쪽을 살피며 말했다.
“아, 차량 안의 분들 중에서도 한 두 분 정돈 같이 가주셔야 할 것 같은데…….”
경찰관의 말이 내뱉어짐과 동시에 가장 먼저 손을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이슬아였다.
“제가 갈게요. 제가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혹시나 멤버들에게 곤란한 상황이 생길까봐 먼저 자처해온 이슬아.
하준은 그런 이슬아에게로 잠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서에서 뵙는 걸로 하시죠.”
말을 마치고는 해당 경찰관이 다시 차 쪽으로 이동해갔고, 하준도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며 멤버들을 바라봤다.
“곧 진웅이 도착할 거니까 너희들은 바로 숙소로 가 있어. 뒤처리는 진웅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하단 말과 함께 일제히 고갤 숙여오는 멤버들.
그런 멤버들을 바라보며 하준이 말했다.
“자세한 건 일 다 끝내고 나면 그때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하자. 일단은 다들 놀랐을 텐데 숙소로 가서 쉬고들 있고.”
“……네, 대표님.”
말을 마치고는 자신의 차량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 나가는 하준.
그러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멤버들 쪽으로 몸을 돌려왔다.
“아, 그리고.”
운을 띠우고는 멤버들 얼굴 하나하나를 훑는 하준.
이내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덧붙였다.
“도와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