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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87화 (88/165)

87화

같은 시각, NTV 지하주차장.

예상보다 너무 늦게 끝나 버린 임원 회의 탓에 차량으로 향하는 구세희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다급한 상태였다.

“안 들키도록 잘 설치한 거 맞죠? 다른 건 몰라도 대화 소린 꼭 녹화돼야 해요. 안 그럼 다 무용지물 돼 버리는 거라.”

-예, 그럼요! 용산구에서 제일 잘한다는 집에 가서 특별제작까지 한 거라 절대 들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얼음 갈아주러 수시로 들어가서 계속 확인도 해볼 거고요.

“그래요. 일만 잘 끝나면 약속한 돈에 2배로 드릴 테니까, 끝까지 잘 좀 챙겨봐줘요.”

차량에 몸을 싣고는 시동을 켜며 구세희가 덧붙였다.

“지금 출발하니까 옆방에 룸 하나만 잡아줘요. 녹화 내용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셋팅도 좀 해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도착하시면 연락 한 번 더 주세요!

“그래요.”

통화를 끊고는 안전벨트를 매기 전 짧게 숨을 내뱉는 구세희.

혹시나 모를 상황, 그리고 분명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따로 사람까지 고용해서는 조치를 취해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를 불안함이 계속 마음 한편에 자릴 잡고 있었다.

이슬아 뿐 아니라 행여 멤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땐 지금보다 훨씬 일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기에.

하준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일이 오히려 더 큰 짐이 되어선 안 될 것이기에 구세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경이 쏠려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어?”

출발하기 전 네비를 검색하기 위해 다시 휴대폰을 꺼내든 구세희가 살짝 눈동자를 키웠다.

부재중 통화목록에 하준의 이름이 찍혀 있었고, 이 시간에 전화 온 상황이 다소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지난 수 일 간 단 한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었기에 더더욱.

‘설마 아니겠지.’

혹시나 지금의 상황을 알아 버린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만한 루트도 없거니와, 만약 그랬다면 멤버들이 먼저 자신에게 알려왔을 테니까.

지금은 그와 통화를 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란 판단과 함께, 구세희는 휴대폰을 거치대로 옮기곤 엑셀을 밟아나갔다.

이슬아의 미팅 장소까진 약 40분 정도가 소요. 한산한 시간대인만큼 충분히 시간을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구세희의 차량이 지하주차장 차단기를 빠져나와 지상으로 진입했다.

역시나 방송국 앞 도로는 승차를 기다리고 있는 몇몇 택시 외엔 차량이 거의 보이질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 네비 화면을 바라보던 구세희의 눈앞에 ‘유하준’이란 이름 세글자가 일순 떠오르더니, 블루투스로 연결된 차량 내부로 통화 수신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부재중에 이어 또 한 번 걸려오는 그의 전화에 구세희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연달아 전화가 걸려온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뜻이었고, 자신 또한 마냥 당당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천천히 악셀을 밟아나가는 와중에도 구세희의 시선은 계속 거치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녀의 고민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쾅-!

도로로 진입하고 있던 구세희의 차량이 직선으로 서행하고 있던 어느 한 차량과 충돌.

순간적으로 놀란 구세희가 급브레이크를 밟음과 동시에 핸들에 이마를 다소 쌔게 부딫쳤다.

“아오. 뭐야?!”

이마에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해당 차량의 운전자가 밖으로 빠져나왔고,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뒷목을 잡으며 구세희의 차량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아.”

초조함과 당황스러운 마음에 미처 앞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악셀을 밟아나갔던 구세희.

주변을 확인하지 않고 도로로 진입한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알기에 짧게 한숨을 내뱉고는 운전석을 빠져나왔다.

“대체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누굴 골로 보내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잘 보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바로 보험 처리 해드리겠습니다.”

“보험? 이 여자가 보험이면 다 되는 줄 아나. 애초에 운전실력이 안 되면 차를 끌고 나오지 말았어야 할 거 아냐? 나참, 이래서 운전면허를 아무한테나 주면 안 된다니까?!”

구세희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기분 나쁠 만한 거친 말들을 쏟아내는 남자.

평소라면 욱해서 같이 맞받아쳤을 구세희의 성격이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인 만큼 감정을 꾹 눌러냈다.

“당신 술 마신 거 아냐? 그러지 않고서야 도로로 그렇게 일직선으로 들이미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거 경찰 불러서 음주측정 해봐야겠는데?”

“아뇨, 이제 막 회사에서 나온 거라. 혹시 모르니 꼭 병원에 가보시고 차량 수리비랑 병원 치료비 다 청구해 주세요. 여기 제 명함 드릴게요.”

명함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남자에게 건넸고, 남자는 그곳에 적힌 글귀들을 빠르게 훑어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일순 눈빛이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갑자기 뒷목을 잡으며 인상을 구겨대기 시작했다.

“아아! 너무 쌔게 박히는 바람에 아무래도 크게 다친 것 같은데. 이거 당장 응급실 갈 돈이 없어서 큰일이구만……? 당장 안 가면 내일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은데, 흐음.”

명함에 적힌 그녀의 직급을 보고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액션을 취해오는 그.

구세희 또한 뭘 바라고 이러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짧게 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우선 응급실 비용은 제가 먼저 드리겠습니다. 가서 검사받아 보시고 나머진 보험 처리해서 진행해주세요.”

말을 내뱉고는 운전석 문을 열어 지갑을 꺼내는 구세희.

그러고는 5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아아. 지금 보니까 허리도 좀 아픈 것 같고, 어깨랑 등도 충격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거 며칠 간 출근을 못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떡하나……?”

위치상 구세희의 차량 속력은 20㎞도 되지 않았던 상황. 그럼에도 여기저기 아픈 티를 팍팍 내는 남자의 모습에 구세희도 점점 인내심의 한계가 오고 있었다.

“저도 그쪽도 둘 다 서행 상태라 많이 다치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우선 이 돈으로 응급실 먼저 가시고 더 아프면 보험 처리로 진행하세요.”

구세희의 말에 남자가 일순 흥분을 시작했다.

“뭐? 내가 많이 다쳤는지 아닌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이 여자가 그냥 넘어가줄랬더니 안 되겠구만? 당장 경찰 불러서 음주측정이랑 면허 검사까지 다 해봐? 알고 보면 무면허인 거 아냐 당신?!”

흥분된 톤으로 한껏 목소리를 높여오는 남자에, 인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저마다 달라붙고 있었고, 구세희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대로 된 진상에게 걸려 버리고 만 지금의 상황.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그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일단 휴대폰부터 확인해봐야겠단 생각과 함께 운전석의 문으로 손을 뻗는 구세희.

그런데, 무척이나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자신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부르시죠, 경찰.”

일순 눈동자를 키우며 뒤쪽으로 몸을 돌리자, 그곳엔 고급 세단 차량과 함께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고, 그의 얼굴은 꽤나 불편해 보였다.

“경찰이든 보험 회사든 다 불러서 잘잘못 따져보도록 하죠. 그게 당신 꾀병에 속아 주는 것보단 훨씬 나은 일 같으니까.”

다소 화가 난 어투로 남자에게 말을 내뱉고는 하준이 구세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이해가 안간다는 듯 입을 열어왔다.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너답지 않게.”

* * *

한 시간 뒤, 사건은 예상보다 빠르게 터졌다.

차량 안에서 스피커폰을 통해 대화를 듣고 있던 멤버들은 저마다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었고, 모두가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슬아 씨 내 영화 찍고 싶어서 이 자리 나온 거 아니었어? 제대로 된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한 감독이랑 배우 간의 교감이 돼야 할 거 아냐, 교감이! 이렇게나 답답하게 구는데 무슨 소통이 돼서 좋은 영화가 찍히겠냐고!

-아, 그런 게 아니라…….

-아니면. 아니면 대체 왜 내 번호 좀 찍으라는데 그렇게 뻐팅기고 있는 건데? 내가 뭐 잠자리를 요구했어, 같이 여행을 가쟀어? 그냥 가끔 연기 지도나 해줄 테니까 번호나 찍어두라 이거 아냐. 그게 그렇게 어렵나?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쏟아부은 알콜로 인해 김봉식의 어투는 꽤나 거칠어져 있었고, 발음도 간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게 아니라요 감독님…… 제가 지금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번호 따로 적어주시면 제가 집 가자마자 바로 저장하고 연락드릴게요! 아, 아니다. 그냥 지금 바로 외울까요? 저 기억력 엄청 좋은데!

-하, 나참. 배터리 없다고 해서 내가 충전기 가져오라고 시켜서 저기 꽂혀 있잖아? 근데도 왜 그렇게 안 꺼내고 뻐팅기고 있는 거냐고. 뭐, 휴대폰에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도 있는 거야?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때, 두 사람의 대화 사이로 황수철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슬아 씨. 이제 그만하고 얼른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해드려. 기본적인 예의는 있어야지.

파우치 안 이슬아의 휴대폰은 현재 멤버들과의 통화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

멤버들이 지금의 대화를 듣고 끊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기에 섣불리 그것을 꺼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반대로, 그건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형, 형들. 우리가 지금 전화 끊어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슬아 누나도 이렇게 곤란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일단 기다려보자. 슬아가 휴대폰을 꺼내게 되면 신호를 보내줄 거야. 그럼 그때 바로 끊으면 되는 거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지금 끊어 버리면 아무런 증거도 남길 수 없게 되니까.”

이준의 얘기에 멤버들은 한층 더 초조한 얼굴이 되어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불쑥 스피커폰 사이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 사장님? 다른 방에서 충전기가 좀 필요하다는데 지금 안 쓰시면 잠깐만 가져가도 될까요? 많이 급해 보이시는 것 같아서.

낯선 목소리의 정체는 중간중간 룸 안으로 들어왔던 웨이터.

그런데, 그의 말과 함께 갑자기 룸 안으로 엄청난 파괴음과 비명 소리가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쨍그랑!

-꺄악!

유리병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이슬아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자, 멤버들의 얼굴 또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뭐 이 새끼야? 내가 필요해서 갖다달라고 했으면 내가 이 가게에 있는 동안은 나한테 소유권이 있는 거지. 뭘 달라 마라야? 죽고 싶어?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은호가 곧바로 말을 내뱉어왔다.

“야, 이거 안 되겠다. 얼른 구 사장님한테 전화하자.”

그러고는 곧바로 구세희에게 전화를 거는 은호. 그러나 웬일인지 통화연결음이 한참 지나도록 그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질 않고 있었다.

그러자, 이준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은호에게 말했다.

“더 있다간 슬아까지 위험해질 것 같아. 우리 둘이 다녀오자.”

이준의 말에 은호가 곧바로 고갤 끄덕였고, 듣고 있던 강준이 물어왔다.

“우리는요? 우리도 같이 가야죠.”

“아니. 다 같이 가는 건 무리야. 지호랑 하늘이는 더더욱 안 되고. 너흰 여기서 안에 내용 살피면서 계속 사장님께 연락 취해봐. 받으시면 이쪽 상황 바로 전해드리고.”

“형들 정말 괜찮겠어요……?”

근심이 가득 묻은 눈빛으로 물어오는 하늘의 얘기에 이준이 모자를 푹 눌러쓰며 답했다.

“걱정 마. 이런 상황을 아예 생각 안 했던 것도 아니니까. 더 위험한 상황이 되기 전에 꺼내와야지.”

“얼른 가자. 더 늦다간 정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니까.”

동시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준과 은호.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말해주지 않은 채 그렇게 차량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스피커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혼란스러운 소리들 속에, 황수철의 목소리가 갑자기 무척이나 가까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감독님 심기 더 불편해지기 전에 내가 말 들으라고 했지? 이거 꺼내는 게 뭐 어렵다고!

-아악!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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