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81화 (82/165)

81화

“……헐, 그게 다 사실이에요?”

윤채경의 신작 드라마 촬영장.

며칠간 하준에게 있었던 일들을 전해 들은 윤채경은 놀람 반, 황당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그, 그래서. 오창석 걔는 대표님이 하라는 대로 순순히 따르겠다고 한 거예요? 지가 박 대표 혐의 입증할 증거 자료들을 다 빼 오겠다고?”

윤채경의 물음에 하준이 들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입으로 옮기며 답했다.

“네. 어차피 별다른 선택지도 없으니까요. 본인이 진술했던 내용들을 박 대표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고, 그쪽을 택하는 것보단 이편에 서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한 거죠.”

“흐음…….”

미간을 좁히며 잠시 생각을 이어 가던 윤채경이 곧 수긍한다는 듯 고갤 주억거려 왔다.

“하긴, 박 대표 그 인간 귀에 들어갔으면 이 바닥에 다신 발도 못 딛도록 거의 생매장을 시켜 놨을 거니까. 그렇게 될 바엔 대표님 쪽에 서서 일단 자기 살길부터 터놔야겠다 생각했을 거고.”

“아마 최선을 다해서 증거들을 수집해 올 거예요.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박 대표를 집어넣어야만 본인도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될 테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죠.”

하준이 사 온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며 윤채경이 고갤 끄덕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한 모금을 넘기곤 하준을 빤히 쳐다봤다.

“그나저나 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무슨 드라마나 영화도 아니고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대담하잖아요. 그러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했으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시려고! 어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듯 윤채경이 고갤 내저으며 작게 몸서리쳤다.

그런 윤채경의 반응에 하준은 옅게 웃음을 띠어 보였다.

“채경 씨 얘길 한번 믿어 봐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겁 많고 본인 하는 일 외에 세상 물정이라곤 전혀 모르는. 판만 잘 깔아 둔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겠다 싶었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하준이 말을 이었다.

“아마 처음 체포당했을 때부터 완벽히 넘어왔을 거예요. B&D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분명 있었을 거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이미 그 순간부터 의심 같은 건 전혀 할 수 없었겠죠.”

박성환의 밑에서 온갖 뒤치다꺼리들을 다 해 오며 불법적인 일들 또한 상당수 가담해 왔을 오창석.

윤채경에게 들은 그의 성격이 맞다면, 아마도 매 순간 불안한 생각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시키는 일만 하고 있다고는 해도, 행여 문제라도 생길 시 본인 또한 공범에 포함된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기에 가짜 경찰관들이 찾아갔을 때도 분명 머릿속에 짚이는 것들이 있었을 거고.

그런 그의 심리를 이용해 하준은 이번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하준의 얘기들에 윤채경이 얕은 감탄 소리를 내뱉어 왔다.

“그 인간 쫄보라고 한 번 얘기한 걸 가지고 그걸 그렇게나 발전시키신 거예요? 와, 대표님은 엔터 쪽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프로파일러나 뭐 그런 쪽으로 나가 보시지 그랬어요? 완전 심리 쪽으론 타고 나신 것 같은데?”

“음, 그랬다면 이렇게 채경 씨랑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도 없지 않았을까요.”

“아, 그런가? 그럼 그건 쫌……?”

고갤 살짝 까딱거리고는 잠시 웃어 보이던 윤채경이 일순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그래도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박성환 같은 인간이랑 엮일 일도 없었겠죠. 애초에 저 때문에 대표님도 그 인간이랑 엮이게 된 거니까. 제가 아니었으면 아무 상관 없이 대표님 일만 잘하면서 살았을 텐데.”

미안함과 씁쓸함이 담긴 얼굴로 고갤 살짝 떨구는 윤채경.

지금의 이 상황들에 자신도 큰 몫을 차지한 것만 같아 괜한 자책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거기에 대한 모든 뒷수습은 오로지 하준 혼자서 다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일순 시무룩해진 윤채경의 모습에 하준이 옅게 미소를 띠었다.

“뭐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 지금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랑 함께 일할 수 있는 영광은 못 누리지 않았을까요? 여기저기 숱한 러브콜들도 다 거절하고 저와 계약해 주신 분인데.”

“칫, 첨엔 계약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며 사람 완전 개무시했으면서…… 이제 와서 그런 입에 발린 소린 됐거든요? 그때 얼마나 자존심 상했다고.”

“어쨌든 결과가 중요한 거죠.”

그때, 세트장 내로 조연출이 촬영 스탠바이를 알려 왔다.

“5분 뒤에 촬영 들어갈게요! 배우분들 스탠바이해 주세요!”

이미 이전 씬을 찍고 대기 중이었던 윤채경도 다시 메이크업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윤채경의 모습을 지켜보며 하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윤채경은 자신 때문에 박성환과 엮인 거라며 미안해했지만, 하준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이미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지금, 이 모든 것들이 결코 우연으로 이뤄진 게 아닐 것 같단 확신 아닌 확신이 들고 있었기 때문에.

7년 전,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자신을 찾아왔던 판타지 같은 능력. 처음엔 그저 우연의 연속일 거라고만 생각했고, 이후엔 누군가 자신을 실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부분적인 미래 정보만을 주며 자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그런.

물론 그런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지만 애초에 비상식적인 현상이었기에 그렇게밖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악몽 같던 그 꿈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자신의 모친이었다는 것과 그녀의 죽음에 박성환이 깊이 연관돼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주어진 것 또한 결코 우연으로만 받아들일 순 없었다.

미래 예지를 통해 자신이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됐고, 지난 7년이란 시간 동안 거쳐 온 일련의 과정들은 결국 이곳 하나만을 위해 자신을 인도해 온 것 같았기에.

그와 동시에, 하준의 머릿속엔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풀지 못한 한을 아들이 대신 풀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능력을 보내온 건 아닐까.

“아참, 대표님. 근데 왜 최 기자님이 아니라 그 여기자님한테 제안을 하신 거예요? 영향력으로만 보면 최 기자님 쪽이 훨씬 사건을 키우는 덴 클 텐데?”

금세 메이크업 수정을 마치고선 윤채경이 하준에게 물어 왔다.

하준도 잠시 잠겨 있던 생각을 흐트러뜨리고는 답했다.

“원래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법이니까요. 그 기자님이라면 박 대표가 무슨 짓을 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하준이 최윤섭을 잠깐 떠올리고는 덧붙였다.

“물론 최 기자님이 요즘 많이 바쁘신 것 같아서 그런 것도 있고.”

지난번 만남 때 그의 얼굴빛이 꽤나 좋지 않아 보였던 탓에 하준은 굳이 이번 일로 연락을 취하진 않았다.

최윤섭 또한 박성환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분명 도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번 일엔 최희원 쪽이 더 맞다는 판단이었다.

“언니! 대표님!”

그때, 하준과 윤채경의 대화 사이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고갤 돌리자 이번 씬의 주인공인 김민정이 반가운 미소로 다가오고 있었다.

“민정이 왔어? 밥은 먹었고?”

“네, 언니! 최근에 엄마가 저희 집 올라와 계셔서 엄청 든든히 먹고 왔어요. 어머, 오늘은 대표님도 오셨네요?”

“네. 오늘 두 분 다 촬영 씬이 겹친대서 잠깐 와 봤어요. 감독님 얼굴도 뵐 겸.”

“헤헤, 뭔가 대표님이 오시니까 괜히 든든해지는 기분이에요. 이래서 소속사가 좋은 거구나.”

김민정의 얘기에 윤채경이 자신의 전용 의자에서 일어나며 고갤 끄덕였다.

“그럼, 그럼. 회사가 있고 없고 차이가 얼마나 큰데. 너 맨날 혼자 운전해서 오다가 남이 태워 주는 차 타고 오니까 엄청 편했지? 회사는 필수야, 필수.”

“헤헤, 그런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자신을 향해 감사 인사를 건네오는 김민정에 하준도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의도치 않게 팔도의 식구가 돼 버린 김민정.

긁지 않은 복권이라며, 무조건 로또가 돼서 돌아올 거라던 윤채경의 적극적인 권유로 인해 하준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초에 윤채경과 계약을 진행하게 된 이후로, 만 키우겠다는 자신의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기도 했기에.

물론 김민정 또한 일말의 고민 없이 수락해 왔기에 빠르게 체결될 수 있었던 거였고.

“자, 그럼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오디오에 소음 안 들어가도록 모두 잠깐 정숙해 주세요!”

이번 씬의 주인공인 김민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조연출이 곧바로 촬영 시작을 알려 왔다.

뒤이어 윤채경과 김민정도 하준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보내고는 카메라 앞쪽으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헤이, 롤!”

“롤링!”

“액션.”

그리고 시작된 두 여배우의 촬영 씬.

연출 감독의 모니터로 비치는 두 사람의 연기 장면을 지켜보며 하준의 머릿속으론 그녀의 얼굴이 스쳐 갔다.

20년 전, 열연을 펼치고 있는 지금의 이 두 여배우처럼 카메라 앞에서 매일을 웃고 울었을 그녀.

그리고, 그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행복했다던 그녀.

하준은 유서의 내용들을 떠올리며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 * *

“황수철이요? 그게 누군데요?”

지상파 3사의 음악방송 출연이 모두 취소되고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멤버들.

퇴근 후 하준에게 전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김지유에게 뜻밖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대표님이 찾고 계신 캐스팅 디렉터라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까 완전 사기꾼인 것 같더라고요. 그분한테 명함 받았던 손님이 오늘 다시 와서는 너무 충격적인 얘기들을 하셔서…….”

일전에 자신에게 황수철의 명함을 보여 주며 자랑했던 그녀가 오늘은 전혀 다른 상황을 알려 왔고, 김지유는 그녀에게 자세한 내막을 물어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얘기들을 듣는 순간, 하준에게도 전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곧바로 찾아온 것이었다.

“근데 대표님이 안 계시더라고요. 지혜 언니 말론 다른 일 때문에 며칠째 출근 안 하고 계시다고…….”

김지유의 얘기에 멤버들도 고갤 주억거렸다.

“맞아요. 저희도 대표님 얼굴 못 뵌 지 꽤 됐어요. 아무래도 저희 일 때문에 그러신 게 아닐까 싶은데.”

그때,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고민하고 있던 이준이 김지유에게 물어 왔다.

“지유야. 그때 너 우리 숙소에서 채경 누나랑 얘기할 때, 그 사람이 B&D 대표님이랑 각별한 사이라고 그러지 않았어?”

이준의 물음에 옆에 있던 은호도 생각났다는 듯 말을 보태 왔다.

“아, 맞아. 그때 그래서 채경 누나가 표정이 되게 안 좋아졌었잖아. 고기도 한 점도 안 드시고. 그거 왜 그랬던 거야?”

“아, 그게…….”

멤버들의 집요한 시선에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김지유는 곧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어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김지유의 얘길 들은 멤버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 황수철이라는 사람은 캐스팅 디렉터라고 하면서 여기저기 지망생들한테 사기를 치고 있고, 그 사람이 B&D 대표랑 아주 각별한 사이라고 했다 이거지? 채경 누나는 그거 듣고 반응이 엄청 안 좋았던 거고.”

은호의 물음에 김지유가 입술을 말아 물며 고갤 끄덕였다.

“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언니가 얘기해 줘서 고맙다고, 대표님한텐 언니가 직접 얘기하겠다고 하셨구요. 그래서 이게 딱히 비밀은 아닌 것 같긴 한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지유에게 이준이 걱정 말라는 듯 입을 열어 왔다.

“걱정 마. 너한테 들었다고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 테니까. 뭐, 대표님도 우리한텐 이런 얘기 하지도 않으실 거고.”

이준의 얘기에 김지유가 고갤 낮게 끄덕였고, 하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꺼내 왔다.

“대표님이 그 캐스팅 디렉터라는 분을 찾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뭔가 안 좋은 쪽이겠죠……? 가뜩이나 저희 일 때문에 지금 엄청 신경 쓰이고 계실 텐데.”

지난번 대표실에서 하준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된 멤버들.

그 당시 박성환의 이름이 흘러나왔고, 멤버들 또한 이번 출연 철회 사태가 그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자신들을 위해 해결하고 있을 하준에게 내내 미안한 마음뿐이었고.

모두가 말없이 심각한 표정들을 짓고 있던 때, 유독 더 어두운 얼굴을 한 채로 지호가 뭔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멤버들에겐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사실을 알고 있는 지호.

그리고 그걸 하준에게 전달했던 며칠 전.

그렇게 한동안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해 가던 지호가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어 온 건 그때였다.

“형들, 제 얘기 좀 들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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