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80화 (81/165)

@80화

“다, 당신이 왜 여기에…….”

퇴장하는 사람들 속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낯익은 남자.

그는 바로 팔도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고,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그의 등장에 오창석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반장님! 고생하셨어요. 말씀드린 대로 오늘 연기자분들 출연료는 두 배로 계산해서 계좌로 쏴드릴게요. 와, 다들 연기가 정말 살벌하던데요?”

하준보다 먼저 등장했던 그녀가 한 중년의 남성에게 만족한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고, 그도 흡족하다는 얼굴로 화답했다.

“수당을 두 배로 챙겨주시겠다는데, 아, 당연히 연기파들로만 엄선해 와야죠! 어떻게, 우리 보조출연자들 연기는 마음에 드셨나 모르겠습니다? 하하.”

“어우, 소름 끼칠 정도였는데요? 진짜 경찰서를 방불케 하는 메소드급 연기였어요. 완전 짱!”

“크큭.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 테니 나중에 또 필요하실 때 연락 주세요, 기자님!”

“넵, 고생하셨어요.”

어느새 팔도 엔터의 대표는 자신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고, 두 사람의 대화를 주워 담은 오창석은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보조 출연자……? 기자?”

이곳 내부와는 전혀 매칭이 되질 않는 그 단어들에 오창석의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얘기들이고, 또 지금의 상황은 뭐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 건지.

무엇보다, 왜 팔도 엔터의 대표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고 있었다.

열린 입을 좀처럼 닫지 못하고 있는 오창석을 바라보며 하준이 입을 열어온 건 그때였다.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중간에 한 번쯤은 의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당신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그리고, 지금 이 상황들은 다 뭡니까?”

오창석의 물음에 하준이 경찰서 내부를 가볍게 훑으며 반문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여기가 진짜 경찰서가 아니라는 걸.”

“……그게 무슨.”

무슨 소리냐는 듯 눈동자를 키워오는 오창석에게 최희원이 끼어들며 말했다.

“무슨 소리긴 무슨 소리에요? 이게 다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얘기지. 우리가 파놓은 덫에 당신이 깊이 빠져 버렸다는 거고,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상황이다, 이 말이에요. 오케이? 아 유 언더스탠?”

말을 내뱉고는 최희원이 한심하다는 듯 고갤 내저었다.

“참, 대체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간 건지. 본부장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법에 대해 그렇게 기본 지식이 없어서야. 쯧쯧. 뭐, 덕분에 아주 볼만한 수사극 한 편 찍긴 했지만.”

최희원이 하준을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려왔다.

“안 그래요, 대표님?”

최희원의 조금 전 말들에 그제야 오창석의 머릿속으론 이상하게만 느껴졌던 아까의 상황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찰서 청사 앞을 그냥 지나치며 임시 청사에서 조사를 받게 될 거라고 했던 경찰관의 말.

하지만, 관할지역과는 한참 떨어진 경기도 쪽으로 차를 몰고 왔고, 해당 건물은 ‘임시’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꽤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회사와 변호사 등 그 어느 곳에도 연락을 취할 수 없도록 휴대폰을 압수한 건 분명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부분이었고.

의심은 물론, 분명 부당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진 못했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뿐더러.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느꼈던 분위기는 누가 봐도 경찰서 내부를 방불케 하는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창석이 죽어버린 눈동자만 깜빡거리고 있자, 이번엔 최희원이 이해한다는 듯 태도를 바꿔왔다.

“뭐, 하긴. 갑자기 체포되어 온 상황에선 충분히 그럴 수도 있긴 하겠다. 이제 막 지어져 실제 경찰서를 방불케하는 최신 세트장에, 아주 실감나는 보조출연자들의 연기까지. 모르고 당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그녀의 말에 이제야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했다는 듯 오창석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럼 이 모든 게 다 가짜였다 그 말입니까? 저 하나 속이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연극판을 벌인 거라고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에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입술을 질끈 깨무는 오창석.

대체 이들이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해온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팔도의 대표하곤 고작 한 번 마주한 게 다였기에.

그렇게 한동안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가 갑자기 대뜸 표정을 달리해 온 건 그때였다.

“잠깐만…… 그럼 이 상황 자체가 다 가짜인 거니까 제가 했던 진술들도 전부 무의미한 거겠네요? 애초에 그런 혐의 또한 전혀 없었던 거고?”

갑자기 달라진 태도로 그가 하준과 최희원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눈동자를 천천히 굴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싶더니 이내 실소를 뱉어왔다.

“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당신들이 뭘 원하고 이런 짓을 꾸민 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단단히 큰 실수 한 겁니다. 이거 다 불법행위인 거 알죠? 것도 경찰까지 사칭한 거면 중범죄라고요, 중범죄.”

어이없다는 듯 숨을 내뱉고는 그가 말을 이어왔다.

“후, 오늘 당신들이 한 짓들에 대해선 톡톡히 그 대가를 치르게 해드릴게요. 경찰 사칭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불법행위들이 포함돼 있었는진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사람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법 자신감 넘치는 어투와 함께 두 사람에게 겁박의 말을 남기곤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창석.

중지와 엄지로 흐트러졌던 안경테를 고쳐 잡으며 하준과 최희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마 조만간 이런 비슷한 곳에서 뵙게 되겠네요. 물론 그땐 세트장이 아닌 실제상황일 거고, 두 사람 모두 아주 높은 확률로 콩밥을 먹게 되겠죠.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비열한 입꼬리를 올리고는 오창석이 하준과 최희원 사이를 스쳐갔다.

그러고는 몇 발자국을 더 나아갔을 쯤.

그의 뒤에 대고 하준이 말을 내뱉어왔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본인이 했던 진술들을 박성환 대표가 알게 된다면 결코 좋은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 같은데요?”

하준의 얘기에 오창석이 몸을 다시 돌려왔다. 그의 눈을 마주 보며 하준이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모두 다 가짜상황이었던 거니 진술했던 부분들은 전혀 효력을 가질 순 없을 겁니다. 물론 애초에 드러나 있던 혐의 또한 있지도 않았고요.”

“…….”

“하지만, 오창석 씨가 오늘 진술했던 B&D 관련한 불법적인 정황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혐의를 오로지 대표 한 사람에게 떠넘겼다는 녹취파일을 박성환 씨가 듣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진술뿐 아니라 모든 증거 자료까지 제출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걸 알게 된다면요?”

하준이 내뱉는 말들에 잠깐 평온해졌던 그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순 굳기 시작했다.

주름진 미간 사이로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고 있는 오창석을 바라보며 하준은 이어갔다.

“그뿐 아니라, 다시는 엔터 관련 일은 하실 수 없게 될 겁니다. 박성환 대표가 가만있지도 않을뿐더러, 본인 살겠다고 회사와 대표를 배신한 사람을 그 누구도 신뢰하진 않을 테니까요. 이 바닥 소문이 얼마나 빠른진 누구보다 잘 아실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오창석의 말을 자르며 이번엔 최희원이 말을 보태왔다.

“곧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로 알고 있는데. 이제 이 바닥에서 쫓겨나면 뭘로 먹고 살려고요? 십 수 년을 자기 회사 차릴 생각만 하면서 온갖 뒤치다꺼리 다 견디며 버텨왔을 텐데. 뭐, 미리 생각해 둔 일자리 같은 건 있어요?”

질문을 던지고는 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곧바로 최희원이 말했다.

“아~ 다른 건 몰라도 운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시겠네! 그쪽으로 알아보면 그래도 자기 밥벌이는 어느 정도 할 것 같기도 하고?”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최희원의 얘기에 오창석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떤 말로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런 오창석을 바라보며 하준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그대로 나가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궁리를 시작할지. 아니면 제게 협조하는 걸로 본인의 꿈을 계속해서 펼쳐 나갈지. 선택하시죠.”

잠깐 사이 찾아왔던 평화는 더 큰 불행으로 바뀌어 자신을 옥죄어오고 있었고, 오창석은 역시나 이번에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그들이 만들어놓은 덫에 빠져 버린 상황이었고, 자신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건 그들뿐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남을 방법 또한 그것 하나밖엔 없었고.

황망한 얼굴로 한동안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그가 곧 목구멍으로 침을 한 번 넘기고는 고갤 들어왔다.

그리고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준을 바라보며 물어왔다.

“……제가 되는 겁니까?”

* * *

최희원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

최희원이 연신 ‘쓰읍’을 내뱉으며 고갤 갸웃거리고 있었다.

“쓰읍, 그 인간 정말 믿어도 되는 거 맞겠죠? 협조하겠다 해놓고 그 길로 곧장 박성환한테 가서 다 꼰지르는 건 아니겠죠? 눈빛이 영 믿음이 안 가던데.”

좀처럼 거두지 못하는 최희원의 의심에 하준이 핸들을 부드럽게 꺾으며 답했다.

“그렇진 않을 겁니다. 그러기엔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아마 어떤 게 최선의 선택일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거예요.”

“흠, 그렇다면 다행인데.”

최희원이 입술을 잠깐 내밀고는 하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내신 거예요? 전 사실 처음에 대표님 얘기 듣고는 너무 말도 안 된다 생각했거든요. 그런 터무니없는 연기에 누가 속겠냐며! 근데 진짜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완벽히 속을 거라곤 전혀 예상 못 했다니까요? 그것도 본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최희원의 얘기에 하준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초에 순진한 사람이니까요. 겁 많고 대담한 일은 하지 못하는. 그래서 시키는 일만큼은 고분고분 맹목적으로 따르는. 그걸 노렸던 거죠.”

“그 인간이 그런 성격인지는 어떻게 알고 계셨는데요? 혹시 원래 좀 알고 지냈던 사이예요?”

“아뇨. 일전에 누가 알려줘서.”

하준이 이런 계획을 떠올린 것엔 윤채경이 알려줬던 그의 성격이 크게 작용했다.

애초에 정상적인 방법으론 그를 무너뜨릴 수 없단 걸 알았기에, 하준은 묘수를 찾기 시작했고, 그 해답은 바로 오창석이었다.

박성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인물, 그리고 모든 불법적인 정황들 또한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밖에 없는 사람.

생각이 거기에 다다랐을 때, 하준은 윤채경의 말이 떠올랐다.

‘그 인간 완전 쫄보예요, 쫄보. 겁은 드럽게 많은 데다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른다니까요? 그런 인간이 어떻게 박 대표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건지.’

오창석을 이용해 박성환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만한 명확한 증거들을 모으는 것.

그리고, 수사가 시작되고 그가 힘을 잃을 시점이 되면 각종 언론 매체들을 통해 사건을 터뜨리고 키우는 것.

하준의 1차적인 계획은 그것들이었다.

그 이후엔 그가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그 숨겨진 얘기들’을 세상에 알릴 계획이었고.

최희원의 집 앞에 다다르자 하준이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최희원도 창밖을 바라보곤 긴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산업부 옮겨가고 반년 동안 죽어라 고군분투해도 구멍조차 안 보이던 게, 대표님 만나고 나선 순식간에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네요. 물론 뭐,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지만.”

최희원의 얘기에 하준이 고갤 짧게 끄덕였다.

“네. 아직 시작도 안 했죠. 진짜는 이제부터니까.”

“오우, 대표님 비장한 표정 보니까 제가 다 든든한 기분인데요? 후훗.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운전 조심히 해서 가시고 내일 또 연락드릴게요, 대표님!”

싱긋 웃어 보이고는 문손잡이 쪽으로 손을 뻗는 최희원.

그때, 하준이 최희원을 불러왔다.

“기자님.”

“네?”

“이번 일이 다 끝나갈 쯤이 되면 인터뷰 기사 하나만 써주실 수 있을까요?”

“인터뷰요? 음, 그거야 어렵지 않죠? 왜요, 대표님, 뭐 하실 얘기라도 있으세요?”

최희원의 물음에 하준이 고갤 짧게 저었다.

“아뇨, 제 얘긴 아니고.”

“음? 그럼 누구 얘긴데요?”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하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최희원.

그런 최희원의 눈을 마주하며 하준이 낮게 답해왔다.

“20년 전, 잠깐 반짝였던 한 여배우의 이야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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