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두 명의 경찰관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경찰서 내부로 들어선 오창석.
그가 안쪽으로 발을 딛자마자, 여기저기서 거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포 좀 더 달라고!! 이 얼음장 같은 곳에서 자다 입이라도 돌아가면 니들이 책임질 거야?! 어?!”
“아, 밥을 먹었으면 담배 한 대 정도는 태우게 해줘야 할 거 아냐?! 이거 인권침해인 거 알지? 내가 나가자마자 여기 있는 놈들 싹 다 고소 때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아, 쫌 조용히들 좀 해요! 다들 뭐 소풍이라도 온 줄 아나. 그렇게들 불편하면 애초에 죄를 짓지 말았어야지. 안 그래?”
“야!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너 이름이랑 계급 뭐야? 내가 딱 기억하고 있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징계 먹게 해줄 테니까 관등성명 대봐. 당장!”
유치장 안의 사내들과 경찰관 사이의 거친 언행들을 지켜보는 오창석의 마음은 일순 긴장에 휩싸였다.
퇴근 후 라면이나 끓여 먹을 생각으로 편하게 있다 갑자기 웬 남성들에게 연행되어 온 지금의 상황.
뭐라 변명할 새도 없이 도주 우려가 있다는 말과 함께 휴대폰까지 압수 당하며 거의 끌려오다시피 했다.
게다가, 자신을 연행하는 이유가 B&D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불법적인 정황들 때문이라는 말은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고 있었다.
어떤 불법적인 정황들을 얘기하는 건지는 둘째 치고, 왜 회사의 대표가 아닌 자신을 체포해 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에 불과한데.
오창석이 자리에 앉으며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조사 전에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십시오.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저를 체포하신 건진 모르겠지만, 회사에 먼저 알리고 변호사를 통해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제 권리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잖아요, 그렇죠?”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이런 곳은 근처에도 와 본 적이 없었던 오창석.
그래도 알음알음 주워들은 건 있었기에 꽤 당당한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수사관의 대답은 그의 기대를 한 방에 무너뜨렸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범죄 은닉 우려가 다분한 사건이라서요. 수사가 모두 끝나고 나면 휴대폰은 돌려 드릴 테니 그때 따로 연락 취하시면 됩니다.”
“아, 아니……! 이거 불법 아닌가요?”
“그것도 수사가 다 끝나고 나면 정식으로 이의 제기하세요. 어쨌거나 지금은 안 됩니다.”
“……하.”
수사관의 단호한 태도에 오창석은 더 이상 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절차들이 잘못된 것 같단 생각은 들었지만, 자신 또한 이런 경험은 처음인지라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자칫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될까 싶어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엔 없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진술들은 이후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거짓 진술이라는 게 밝혀질 시 재판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재, 재판이요? 제가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재판을 받는 게 원칙 아닌가요? 구속 영장은 이미 신청해둔 상태니 구속 재판이 될지 불구속 재판이 될지는 추후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구속이 결정되면 이곳 유치장이 아닌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으시게 될 거고요.”
“구, 구치소라고요? 아니, 제가 왜 구속이 되는 거죠? 전 그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요……!”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도주 우려가 있는 피의자에 대해선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니까요. 물론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하시면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셔도 됩니다. 뭐, 대부분은 기각되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하.”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금방 풀려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오창석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 머릿속이 일순 새하얘졌다.
구속, 피의자, 구치소 등. 그 단어들이 주는 압박감은 실로 엄청날 수밖에 없었고, 자신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동의하십니까?”
반쯤 열린 입으로 거친 숨소리만 내뱉던 오창석이 낮게 읊조렸다.
“……예.”
“녹취에도 동의하시고요?”
“……예.”
사태의 심각성을 안 이상, 오창석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순순히 수사에 협조하고, 자신은 어떻게든 이 위험한 늪에서 벗어나는 것.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수사관이 묻는 질문에 성실하고 진솔하게 답변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비록 그것이 ‘그’에 대한 모든 범죄 혐의들을 인정하는 꼴이 될지라도.
“자, 그럼 조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무척이나 허술하단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오창석의 진술은 시작되었다.
* * *
“그러니까 지금 본인은 아무런 죄가 없고, 이 모든 것들은 대표 박성환 씨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 이 말인 거죠? 모든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거고?”
“부인이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니까요? 저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자세히 조사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B&D 자체가 대표 말 한마디로 돌아가는 회사예요. 저 같은 일개 본부장이 뭘 결정하고 저지를 수가 없는 구조다 이 말입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경찰 조사.
수사관이 건네오는 연이은 질문에도 오창석은 줄곧 같은 태도만을 취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박성환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고, 그 모든 일들은 그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고.
“아무리 그래도 접대 자리에 업소 아가씨들을 불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결정은 대표가 하더라도 자잘한 일처리들은 다 본인이 했을 건데. 그럼 당연히 이상하단 것도 느꼈을 거고.”
“예! 당연히 느꼈죠. 지급하는 돈의 액수가 좀 크단 생각은 했으니까. 근데 제가 뭐 그런 쪽으로 단가를 알겠습니까, 뭘 알겠습니까? 그냥 이 사람들은 돈 참 쉽게 버는구나 하고 말았던 거지. 그 액수에 뭐가 포함돼있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았겠냐고요. 하, 참. 답답하네, 정말.”
이렇게 된 이상 오창석도 어쩔 수 없었다.
무조건 자신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모든 죄를 박성환에게 떠넘기는 것.
물론 기본 전제 자체는 틀리지 않았기에 진술할 때만큼은 꽤나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은 박성환의 지시 아래 했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본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걸 몰랐다고요? 보아하니 나이에 비해 승진도 꽤 빨리 한 것 같은데.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충성심이 남달랐으니 그 자리에 앉혔겠죠.”
“수사관님. 아까 저희 집 와보셨죠? 제가 왜 본부장씩이나 달고 그런 방 하나짜리 오피스텔에 살고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월세로. 말만 본부장이지 진짜 특별할 거 하나 없다니까요? 그저 미래만 보고 버티는 겁니다, 미래만. 나중에 번듯한 제 회사 하나 차리겠다는 그 목표 하나만 보고요.”
오창석이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자, 수사관도 그제야 약간은 수긍해가는 모양새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키보드 자판에서 손을 떼고는 오창석에게 물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진술한 내용이 전부 다 사실이고, 9개의 혐의에 대해선 전부 B&D 대표 박성환 씨가 주도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추후에도 번복할 일은 없는 거고요.”
“아이참, 그렇다니까요.”
“이거 다 녹취되고 있는 것도 아시고요.”
“아, 예!”
“흐음. 알겠습니다.”
수사관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금까지 진술한 모든 내용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프린트한 내용물과 함께 인주를 오창석에게 내밀었다.
“지금까지 오창석 씨가 진술한 내용들입니다. 진술한 내용과 다른 게 있는지 확인해 보고 모두 맞으면 각 진술 답변마다 지장 찍어주세요.”
“예.”
진술했던 내용들을 하나씩 꼼꼼히 훑어가며 망설임 없이 지장을 찍어가는 오창석.
약간의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수사관의 입에서 내뱉어진 혐의들을 봤을 땐 자신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가 내뱉어오는 모든 혐의들 중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이라곤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만약 그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쓴다면 자신의 남은 30대 인생을 모조리 감옥에서 썩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뭐. 천하의 박 대표라도 이번만큼은 빠져나가지 못할 거 같은데, 나라도 살아야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지장을 모두 찍어 수사관에게 건네며, 오창석은 잠시 경찰서 내부를 살폈다.
꽤 늦은 시각임에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들.
그리고 이미 조사를 끝마치고 집으로 귀가하지 못한 채 유치장에 갇혀 있는 사람들.
단 일분일초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그가 조심스럽게 수사관에게 물었다.
“저……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모든 질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답했으니까 집으로 귀가할 수는 있는 거겠죠? 그…… 구속 영장도 취소할 수 있는 거고요?”
“일단 진술한 내용들이 모두 사실인지를 확인해 봐야겠죠. 오창석 씨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아이고,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랬다간 큰일 나려고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오직 사실만을 진술했으니 정말 믿으셔도 됩니다, 수사관님!”
“흠, 그래요?”
제발 믿어달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오는 오창석에게 수사관이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럼 그 말들 전부 다 증명할 수 있겠어요? 오늘 한 진술만으로는 재판에서 좋은 쪽으로 판결받긴 쉽지 않을 거예요. 검찰로 송치되면 검사 양반들이 워낙 까탈스러워서 믿어줄지도 의문이고요. 보다 확실히 결백을 증명하려면 아무래도 증거 자료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증거자료요? 자료라면 어떤…….”
“그간 대표 밑에서 온갖 뒤처리를 도맡아 해왔으면 적어도 그때마다 내역 같은 건 남기지 않았겠어요? 하다못해 영수증 쪼가리라도.”
“아, 그거야…….”
“만약 본인이 그걸 증빙할 수 있고, 또 제출할 수 있다면 분명 엄청난 참작이 될 겁니다. 제가 봤을 때 정말 빼도 박도 못할 만한 자료다 싶으면 오창석 씨를 아예 혐의 없음으로 종결지을 수도 있을 거고요.”
‘종결’이라는 단어에 오창석의 눈동자가 일순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곧 이 위험한 늪으로부터의 완벽한 해방을 뜻하는 단어였으니까.
“그, 그럼 제가 다신 이 일에 엮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긴가요? 그, 그, 일사부재리의 원칙 뭐 그런 걸로요……?”
“뭐, 그건 좀 다른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검찰로 송치시키지 않을 순 있겠죠. 그게 제 권한이기도 하니까?”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오창석을 바라보며 수사관이 덧붙였다.
“물론 오창석 씨가 모든 혐의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을 만한 확실한 증거를 가져온다는 전제하에서겠죠.”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이 되어 심각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오창석.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고 긴 시간 동안 피의자의 신분으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낼지.
아니면 그가 제안해 온 조건을 받아들이고 완벽한 해방감을 맛볼지.
자신에게 전혀 다른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 상황이었다.
물론 후자의 경우 약간의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전자를 선택했을 때 느낄 감정들을 생각하면 결코 리스크라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오창석이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자료들 최대한 끌어모아 증거자료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정말 가능하시겠어요? 리스크가 꽤 있는 일일 텐데요?”
“예, 가능합니다. 가능하고말고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고, 그 말은 즉, 시키는 건 무조건 그대로 수행해 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뒷말을 잇는 대신 비장한 표정으로 수사관을 향해 고갤 주억거리는 오창석.
그의 그런 모습에 수사관도 흐뭇한 미소를 보내왔다.
“그 말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거죠? 나중에 가서 다른 말 하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올 겁니다.”
“예, 그럼요. 그랬다간 결국 제 무덤 파는 일이 될 건데 절대 그럴 리가 없죠. 믿으셔도 됩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쯤 하는 걸로 하죠.”
녹음 파일을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사관의 모습에 오창석의 얼굴에도 처음으로 미소가 번졌다.
긴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창석.
유치장 안에 갇힌 사람들을 훑으며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컷! 오케이!”
대뜸 들려오는 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경찰서 내부의 모든 인원들이 일제히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치 드라마 촬영 현장의 마지막을 보는 것처럼 저마다 인사들을 나누며 일순 퇴장을 하기 시작한 것.
그 모습에 오창석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엔 없었다.
무엇보다, 유치장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어떠한 제재도 없이 자유롭게 그곳을 빠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 이게 지금 무슨.”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싶은 착각이 들 만큼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눈앞의 광경들.
입을 반쯤 벌리고선 죽어 버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던 때.
낯선 여자 하나가 오창석이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수사관이 건넨 녹음 파일을 건네받고는 씩 한번 웃어 보이더니.
이내 뒤편의 누군가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된 것 같은데요, 대표님?”
‘대표’라는 단어에 오창석의 목구멍으로 침이 크게 삼켜졌다.
설마 자신이 수사 내내 언급했던 ‘그’는 아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이는 자신이 조금도 생각지 못했던 인물이었고.
그의 등장과 함께, 오창석의 얼굴 표정은 또 한 번 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