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78화 (79/165)

78화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한 작은 카페.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카페 내 손님이라곤 단 두 사람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지금, 최희원은 연신 눈을 깜빡거리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잘생겼다, 잘생겼다 말만 들었지. 이렇게 실물이 깡패일 줄이야. 기사에서 본 거랑은 완전 차원이 다르네…….’

갑작스러운 하준의 연락을 받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만남을 갖게 된 두 사람.

최희원은 그가 자신에게 왜 연락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의문도 잊은 채, 전혀 다른 감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고는 입술을 뗐다.

“음음. 저를 갑자기 보자고 하신 이유가.”

최희원의 물음에 하준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자님과 일 하나 같이해 보고 싶어서요.”

“일이요? 일이라면 어떤.”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하준의 얘기에 최희원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재차 물었다.

고요한 얼굴을 하고선 하준이 질문을 질문으로 상쇄했다.

“우선 그 전에.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은 만족스러우신가요?”

“……네?”

이번에도 역시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의 말.

하지만, 어투에서 느껴지는 느낌만큼은 마치 자신의 현재 처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미간을 좁히고 하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가 곧 냉담한 어투로 답해왔다.

“그럴 리가요. 그냥 차라리 내일이라도 잘라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는 거죠.”

여전히 미간에 주름이 없어지지 않은 채로 최희원이 하준에게 물었다.

“저에 대해 꽤 많은 조사를 하고 오셨나 보네요? 제 개인 연락처를 알아낸 것도 그렇고.”

일면식은커녕 이젠 연예부 소속조차 아닌 자신과는 그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는 그.

그런 그가 자신에게 갑자기 연락을 취해온 연유에 대해 최희원은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였다.

그의 분위기나 내뱉는 말의 뉘앙스로 봐서는 자신에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연락을 해온 것 같긴 한데.

불쾌함보다는 의심이 깃든 최희원의 눈빛을 바라보며 하준이 온화한 어투로 답했다.

“회사로 연락해 기자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하니까 흔쾌히 알려주더라고요. 통화 종료까지는 30초도 채 안 걸렸던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 알려줬다고요? 대표님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았는데?”

하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짧게 덧붙였다.

“광고 협찬 문의 때문이라고 하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던데요.”

“아……!”

그녀의 표정이 일순 납득으로 바뀌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멘트였으니까.

입을 반쯤 벌리고 있던 최희원이 그 상태로 물었다.

“그럼 저한테 연락을 주신 이유도.”

“아뇨. 그건 그저 기자님의 연락처를 얻어내기 위해 한 말뿐이었고 진짜 이유는 다른 거긴 합니다. 아, 혹시나 정말 협찬이 필요하신 거라면 연결을 시켜 드릴 순 있는데.”

“아, 아뇨! 절대! 네버요! 다른 건 몰라도 회사 좋은 꼴은 조금도 보기 싫거든요!”

손사래를 치며 격하게 부정하고는 최희원이 다시 물어왔다.

“그럼 저한테 연락을 주신 이유가…….”

최희원의 물음에 하준이 왼쪽 손목을 잠깐 확인하고는 답했다.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으니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얘기하겠습니다. B&D 박성환 대표, 저와 함께 끌어내리시죠.”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박성환이라는 이름에 최희원의 눈과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이런 쪽일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말을 뱉지 못하던 최희원이 곧 표정을 수습하고는 겨우 입술을 뗐다.

“박성환 대표요? 그 사람은 왜.”

“왜라는 질문엔 굳이 답하지 않아도 잘 아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누구보다 그걸 바라고 계실 분일 테니까.”

“…….”

역시나 자신에 대해 많은 걸 조사하고 온 듯한 그의 표정과 어투.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의 최희원을 바라보며 하준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연예 탐사 웹 토크쇼까지 진행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기자님이셨죠. 물론 뉴엔미디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분 중 하나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잘나가시던 기자님이 왜 하루아침에 산업부로 옮겨져 고작 협찬 기사나 쓰고 있는 건지 의아한 생각이 들더군요.”

하준의 얘기가 내뱉어질 때마다 그녀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좀 알아봤더니 역시나 외부에서 압력이 있었던 것 같더군요. 산업부로 옮긴 시점과 웹 토크쇼에서 박성환 대표를 언급했던 시기도 묘하게 겹치는 것 같았고. 이후에 웹 토크쇼 하차, 그리고 산업부 발령. 이 모든 게 결코 우연으로 이뤄질 순 없는 일인 것 같은데. 혹시 제 말이 틀렸을까요?”

“…….”

하준의 얘기들에 최희원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정확하고 명료했기 때문에.

불과 6개월 전. 하루하루가 거침없었던 그녀의 연예부 기자 생활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대중들에게 ‘미디어 리터럭시’의 역량을 키워주겠다는 당찬 포부로 시작했던 연예 탐사 웹 토크쇼.

가짜 뉴스와 선정적인 기사를 구분하고 연예계의 숨은 뒷얘기들을 전달하는 그녀의 진행 방식은 꽤나 큰 호응을 이끌어냈었다.

그에 따라 인지도는 물론, 그녀가 속해 있던 뉴엔미디어 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기자로 꼽힐 정도로 그녀는 행복한 나날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 바닥에선 건드려선 안 될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그녀에게 마지막 방송이 돼 버린 웹토크쇼 해당 회차에서, 최희원은 B&D와 그곳의 수장인 박성환을 꽤 직접적으로 비판했고, 발언의 수위 또한 이전보단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물론 자신의 거침없는 상승세에 보다 자극적이면서도 위험한 수위를 욕심냈었다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땐 누구도 자신을 막아설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그 방송이 나간 직후. 으레 그러했듯 쏟아져야 할 어뷰징 기사들은 그 어느 언론사에서도 내보내질 않았고, OTT에 업로드되었던 해당 회차 또한 단 몇 시간 만에 삭제가 돼 버렸다.

뭔가 Tk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때.

아니나 다를까 산업부로의 부서 이동 통보가 내려졌고, 그녀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이 방송에서 언급했던 ‘그’의 압력으로부터 이뤄진 일들이라는 것을.

동시에, 이 바닥에서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던 그녀가 굳어 있던 얼굴을 순순히 끄덕였다.

“다 맞는 얘기들뿐이라 차마 반박할 수가 없네요. 저에 대해 정말 많은 조사를 하고 오신 것도 같고.”

최희원이 앞에 놓인 주스를 크게 들이켜고는 다시 하준을 바라봤다.

“혹시 그럼 제가 그 뒤로 그 인간한테 복수할 날만 기다리면서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오신 건가요? 그래서 제게 연락을 주신 거고요?”

최희원의 물음에 하준은 긍정의 의미로 고갤 끄덕이며 답했다.

“기자님이라면 어떤 외압이나 위험도 충분히 감수하실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미 모든 걸 다 잃은 상태에선 더 두려울 것도 없을 테니까요.”

하준의 얘길 잠시 곱씹어보던 그녀가 대뜸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풉. 뭔가 기분 나쁜 말인 것 같으면서도 또 너무 정확한 말이라 부정을 못하겠네요. 지금이 저한텐 밑바닥 그 자체라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거든요. 딱, 대표님이 말한 것처럼.”

최희원이 등받이에 등을 붙이고는 팔짱을 끼며 하준에게 물어왔다.

“일단 저는 그렇다 치고. 그러는 대표님은 그 인간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끌어내리려고 하시는데요? 겉으로 보기엔 별로 연결 고리도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

“저희 소속 가수를 지상파 전체에 출연하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요. 여차하면 보이콧까지 선언하겠다고.”

“……네? 진짜요? 를 지상파 3사 전체예요?”

잠깐 놀란 듯싶던 그녀가 이내 이상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어왔다.

“근데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박성환 대표를 끌어내리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뭐…… 물론 대표님한텐 큰일일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접근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큰일인 것 같은데?”

하준이 인정한다는 듯 순순히 고갤 끄덕이며 옅게 웃어 보였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보다 깊은 이유들이 있긴 한데, 그건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죠. 아직 기자님의 대답도 듣지 못한 상태라.”

“흐음.”

입술을 말아 물고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 최희원.

뭔가를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하준에게 물어왔다.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대표님의 최종 목표가 뭔데요? 정확히 박성환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예요?”

최희원의 물음에 하준은 고민하지 않고 낮게 답을 해왔다.

“모든 걸 다 무너뜨리는 겁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은 물론, 두 번 다신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요. 또한, 합당한 죗값 또한 받게 할 거고요.”

그가 내뱉는 말속에 분명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고 있지 않음에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 같은 게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깊은 원한이 있길래.’

미간을 좁히며 하준을 바라보던 최희원이 곧 표정을 바꾸고는 고갤 주억거려왔다.

“음, 좋아요! 어차피 그러려고 했던 거 편 하나 더 생기면 좋은 거죠 뭐. 대신 저랑 약속 하나만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중간에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절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요.”

“그렇게 하시죠.”

“그렇게 하시죠가 아니라 그러겠다고 하셔야죠!”

“그럴게요. 물론 기자님도 그러실 거라 믿고요.”

최희원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만족의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다시 앞에 놓인 주스를 크게 한 모금 마시더니 옅은 한숨과 함께 말을 꺼내왔다.

“흐음. 근데 어떻게 끌어내릴지에 대해선 따로 생각해 둔 계획이라도 있으세요? 저도 그동안 여러 불법적인 정황들 같은 건 꽤 수집해 오긴 했지만 이것만으로 법정에 세우는 건 무리거든요. 정황만 있지, 정확한 증거가 되진 못하니까.”

한 손으로 턱을 짚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증거가 없으면 다른 방법은 그냥 ‘빵’ 하고 터뜨려 버리는 건데. 그쪽은 더 어려워요. 이 바닥에서 박성환 그 인간 손이 안 뻗치는 곳이 없어서. 기사를 내보내기도 어려울뿐더러, 낸다 해도 금방 삭제돼 버릴 거예요. 제가 이미 수도 없이 해봤던 거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하준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지난번 최윤섭이 그에 관한 안 좋은 기사를 써냈을 당시에도 아무런 화제조차 되지 못했으니까.

국내 최고 연예 전문 매체라 할 수 있는 썬데이미디어와 뉴엔미디어를 단번에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인물.

그게 바로 박성환이었다.

잠시 어두워진 표정의 최희원을 바라보며 하준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방법은 당장엔 무리가 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죠. 보다 확실하면서도 보다 강력한 뭔가를.”

“보다 확실…… 그래서, 그게 뭔데요?”

다소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하준의 얘기에 최희원이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물었고, 하준은 잔을 들어 올리며 짧게 답했다.

“증거인 동시에 증인이 될 수 있는 것. 그걸 찾을 겁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밤.

어느 한 오피스텔의 현관문 앞으로 성인 남자 두 명이 멈춰 섰다.

도착과 동시에 지체하지 않고 그들은 곧바로 초인종을 눌렀고, 잠시 뒤 안쪽에서 현관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검은 반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그.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를 바라보며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공무원증을 내밀었고.

그와 동시에, 위압감 가득한 어투로 그가 말을 내뱉었다.

“오창석 씨, 본인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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