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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77화 (78/165)

77화

유하준이 떠나고, 앉았던 자릴 그대로 지키고 있는 박성환.

이미 그가 방을 나간 지는 10분도 더 지났지만, 박성환은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눈빛, 그 얼굴, 그 분위기.

찰나의 순간 동안 그것들을 마주했던 박성환은 그에게서 엄청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런 얘길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수연의 이름을 언급하고, 자신의 모든 걸 걸어서라도 죗값을 받게 하겠다는 그.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박성환의 뇌리 속으로 어떠한 생각 하나가 강하게 스쳤지만, 그것을 발전시키기란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녀를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고, 또 누구보다 그녀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이었기에.

‘……말도 안 되는 얘기지.’

그럴 수는 없다는 듯 박성환이 고개를 설레 내저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럼에도 머릿속으론 아까 전 그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고, 박성환은 그것이 누구와 닮아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줄곧 굳어 있던 몸을 소파 등받이에 붙이고는 긴 한숨을 내뱉는 박성환.

그와 함께, 그의 생각이 20년 전 그날로 전환됐다.

어느 날 갑자기 사망 소식을 알려왔던 이수연.

유족이라곤 아무도 없었던 그녀였기에 통상 3일에 걸쳐 치러지던 장례식은 2일장으로 짧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상주의 자리를 지켰던 건, 박성환도 처음 보는 한 이름 모를 남자였고.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정리되는 느낌이라 당시에도 의아하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딱 그뿐이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당시엔, 사사로운 감정 따윈 사치라 생각했었으니까.

“이수연은 당신이 죽인 겁니다. 오로지 당신만을 의지하고, 믿고, 또. 당신만을 신뢰해 왔던.”

분명 그녀의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였다.

집으로 가는 횡단보도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말 그대로 ‘사고’.

자신이 직접 목격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그 이름모를 남자가 전해주었던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에 분명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그렇게만 알고 배우 이수연의 삶을 정리했던 거였고.

그런데, 대체 그 말의 의미는 뭐였을까.

“……흠.”

물론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아예 이해 못할 문장들은 아니었다.

자신이 이수연에게 했던 행동들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또한 그것으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또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 사이의 일이었고, 그가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을 터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그리고, 대체 그는 이수연과 무슨 관계이길래.

미간에 강한 주름이 잡힌 채 심각한 생각들을 이어가던 그때, 박성환의 휴대폰 화면 위로 메시지 알림이 떠올랐다.

내용을 확인하자, 그의 아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아빠 주말에 스테이크하우스 가고시퍼요]

미숙한 조작법으로 자신의 바람을 전해온 아들의 문자메시지에 박성환의 굳어 있던 표정도 잠시 풀렸다.

곧바로 답장 버튼을 눌러 메시지 내용을 입력하기 시작하는 박성환.

[그래. 주말에…….]

그런데, 그 순간.

박성환의 머릿속으로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등받이에 붙여져 있던 그의 몸이 자동적으로 떼졌고, 곧 낮은 신음이 내뱉어졌다.

“……설마.”

이수연의 장례식장에 그 이름 모를 상주와 함께 서 있던 어린아이.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그.

박성환의 눈앞에 그 어린아이와 유하준이 동시에 오버랩 됐다.

* * *

늦은 시각, 썬데이미디어 김창완의 방.

결재 서류에 사인을 모두 끝마친 그가 테이블 쪽으로 자릴 옮기며 최윤섭에게 반문했다.

“이수연? 이수연은 갑자기 왜?”

김창완이 되물어오자, 최윤섭은 역시나 그가 알고 있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최윤섭은 하준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답했다.

“20년 전에 활동했던 배우라는데 저는 전혀 모르겠어서요. 그래도 나름 이 바닥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흠, 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최윤섭이 미리 타 놓은 믹스 커피를 입으로 옮기며 그가 말을 더해왔다.

“겨우 한 작품만 하고 이 바닥에선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넌 모를 수밖에 없을 거야. 그 작품도 그렇게 대단한 성적을 둔 건 아니니까.”

“이 바닥에서 사라져요? 왜요?”

“정확히는 이 세상에서 완전 사라진 거지. 그 작품 이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니까.”

“……사, 사망이요?”

예상치 못한 얘기에 다소 놀란 최윤섭의 반응과는 달리, 김창완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갤 주억거렸다.

“응. 별로 인지도도 없던 신인 여배우인 데다가 당시엔 지금처럼 통신매체 같은 게 발달해 있던 때도 아니라 그냥 조용히 묻히긴 했지. 그냥 알음알음 알 만한 사람들만 알고 넘어간 걸로.”

“……흐음.”

하준에겐 전혀 전해 듣지 못했던 얘기였던지라 최윤섭은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유 대표님도 알고 계신 건가?’

그녀에 대해 알아봐 주길 부탁해 왔던 하준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만약 모르고 부탁해 온 거라면 자신처럼 꽤나 충격을 받을 수밖엔 없을 텐데.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최윤섭이 김창완에게 물었다.

“근데 그렇게 인지도도 없었던 여배우를 부장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건데요? 제가 이름 말하자마자 바로 대답하셨잖아요.”

최윤섭의 물음에 이번엔 오히려 김창완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 창고에 있던 자료들 아직 다 안 본 거야? 몇 날 며칠을 거기에 틀어박혀 살더니?”

“창고요? 이거랑 창고 자료랑 무슨 상관인데요?”

“아, 왜 상관이 없어. 거기에 이수연에 대한 자료도 있는데.”

김창완의 얘기에 최윤섭의 동공이 또 한 번 일순 흔들렸다.

그곳에 있는 자료들이 어떤 용도를 위해 모여 있는 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신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그녀, 이수연은 다른 사람도 아닌 하준이 알아봐주길 부탁한 인물이었고.

최윤섭의 사뭇 심각해진 표정 사이로 김창완이 질문을 건네왔다.

“너 아직 자료도 보기 전이면 이수연이 박 대표 첫 새끼였다는 것도 모르고 있겠네?”

“박 대표요? 박 대표라면.”

“아, 박 대표가 박 대표지 누구겠어? 박성환 말고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박, 박성환이요?”

김창완의 입에서 몰랐던 사실들이 내뱉어질 때마다 최윤섭의 얼굴 표정은 격변하고 있었다.

하준이 알아봐 주길 부탁해온 이수연, 그녀의 사망 소식, 그리고 그녀가 박성환의 첫 담당 배우였다는 것까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던 최윤섭은 왠지 이 연결 고리들이 심상치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치기 시작했다.

최윤섭은 김창완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그 창고 안에 이수연의 자료가 왜 있는 건데요? 아니, 그보다. 무슨 자료가 있는데요? 출처는 어디고요?”

처음 이 방을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는 그의 모습에 김창완이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되물었다.

“왜 그러는데? 설마 이수연이랑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거야?”

“제 말에 답부터 해주세요. 왜 거기에 이수연의 자료가 있는 건지, 누가 어떤 의도로, 무슨 자료를 건넨 건지.”

지금 최윤섭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건 오로지 ‘그들’뿐이었다.

‘제너럴’이라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

그 창고 안의 자료들은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었고, 그건 곧 결코 긍정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이런 불안한 생각이 한층 더 신빙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바로 박성환 때문이었고.

팔짱을 낀 채 최윤섭을 바라보던 김창완이 곧 답을 해왔다.

“자료에 적힌 건 이수연이 재벌에게 스폰을 받아서 주연 자리를 꿰찼다는 거였어. 당시 이수연은 인지도도 없는 신인이었으니까 한 영화에 주연까지 맡은 걸 보고는 충분히 신빙성 있는 제보라고 생각했었겠지. 그래서 내보내려고 준비도 했던 거였고.”

“그럼 그게 기사로 나왔어요?”

최윤섭의 물음에 김창완이 낮게 신음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흐음, 아니. 그 기사가 나오기 전에 이수연이 죽었거든. 그래서 그 자료는 쓸모가 없어져 버렸던 거고. 가뜩이나 인지도도 별로 없는 여배운데 죽고 나서 그런 기사를 내보내 봐야 아무런 화제도 되지 못할 테니까.”

“…….”

얼마 전 자신이 내보냈던 신인 여배우 스폰 관련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

최윤섭은 다시 입을 열어 김창완에게 물었다.

“그거 사실 여부는 확인이 됐던 거예요? 정말로 이수연이 재벌가에 스폰을 받았대요?”

“그거야 나는 모르지. 그땐 내가 그 일을 맡을 때가 아니니까. 나도 내 윗선배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거고. 뭐 근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그럴 만한 정황이 있었으니까 그런 제보도 있지 않았겠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진 않는다’.

최윤섭은 그 말이 분명 틀릴 때가 있다는 걸 이번 김민정 일을 통해서 확실히 깨달은 뒤였다.

그렇기에 그것의 진위 여부 또한 섣부르게 판단할 순 없었고.

자신의 커피잔을 비우며 이번엔 김창완이 다른 얘길 꺼내왔다.

“암튼 이수연은 그렇게 됐지만 박성환은 그 뒤로 쭉쭉 승승장구해 나가더니 몇 해 안 지나서 자기 회사를 떡하니 차리더라고. 그때 나이가 고작 서른 초반밖엔 안 됐을 텐데 말야. 참, 여러모로 이 바닥에선 입지적인 인물이기는 해. 그 인간.”

김창완의 말을 귓바퀴로 주워 담으면서도 최윤섭의 머릿속엔 오로지 이수연과 하준에 대한 생각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왜 하준은 이수연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했을까. 그리고 이수연은 대체 어떤 여배우였던 걸까.

그런데, 김창완이 내뱉은 말들을 처음부터 되짚어가던 최윤섭의 뇌리 속으로 무언가 번뜩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그와 동시에 최윤섭이 심각한 표정으로 김창완을 바라보며 물었다.

“부장. 아까 이수연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죠? 20년 전에?”

“뭐, 그랬지.”

“그럼 혹시 이수연 이름이 본명이었어요? 예명 같은 건 아니었고?”

“흠…… 글쎄다. 자료에 그렇게 적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것까지 내가 기억할 머리는 또 아니잖냐.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

20년 전 교통사고.

그리고 만약 그 이름이 본명이 아닌 예명이었다면.

하준의 지난번 부탁을 떠올리던 최윤섭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수연이라는 이름이 예명이고, 그녀의 본명이 이정화라면.

만약 그렇다면.

“…….”

그녀는 하준의 모친이기 때문이었다.

* * *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

사발면 하나에 편의점용 볶음김치를 모니터 앞에 놔두고는 한 여자가 마우스 스크롤을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책상 주변으론 B&D와 미르엔 엔터, 그리고 박성환과 관련한 온갖 자료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고, 그녀가 보고 있는 모니터 화면 위로도 역시나 박성환과 관련한 기사가 떠 있었다.

“이 개자식아. 너 내가 꼭 잡고 말 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아주 내가 당한 거에 몇십 배, 아니, 몇백, 몇천 배를 되갚아 줄 테니까 딱 그때까지만 떵떵거리고 있으라고. 내가 평생 감방에서 콩밥만 처먹으면서 살게 해줄 테니까.”

그에게 당한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분노가 솟구치고 있는 그녀.

그녀는 자신이 당한 수모를 반드시 갚아주겠노라 다짐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그때, 사발면 옆 그녀의 휴대폰 화면 위로 문자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야, 최희원. 너 협찬 기사 제때제때 안 써낼래? 이게 아직도 연예부 시절 생각하고 막 나가지? 너 그러다 진짜 자른다?]

떠오른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드는 그녀.

그따위 겁박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어디 한번 잘라 보라지. 내가 여기 아니면 어디 갈 데가 없는 줄 아나.”

그러고는 휴대폰을 끄기 위해 전원버튼을 꾹 누르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완전히 꺼져야 할 타이밍에 긴 진동 소리가 대뜸 울려오더니, 곧 화면 위로 저장되지 않은 번호 하나가 떠올랐다.

“누구시죠?”

저장되지 않은 번호라는 건 자신이 굳이 피해야 할 연락도 아니라는 뜻이었기에 그녀는 곧바로 통화를 연결했다.

그리고, 곧이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상대방의 소개말.

그의 말이 끝마쳐짐과 동시에 그녀는 눈동자를 키우며 되물었다.

“누, 누구라고요? 설마…… 제가 아는 그 유하준 대표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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