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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스타 메이커-75화 (76/165)

75화

하준이 돌아가고 거실에 홀로 앉아 있는 구명호.

마치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간 것처럼, 복잡한 마음속은 좀처럼 안정이 되질 않고 있었다.

‘전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기엔 너무 많은 걸 알아 버려서.’

자신의 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코 고집을 꺾지 않던 하준.

이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날 때의 그의 눈빛이 구명호에겐 잊히지 않고 있었다.

그와 함께 구명호의 머릿속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왜 더 묻지 않는 게지…….’

유서의 내용을 본 이상, 또 다른 질문들이 건네올 거라 생각했다.

그 유서 안엔 그럴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으니까.

하지만 웬일인지, 하준은 거기에 대해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이 건넸던 유서 또한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떠났다.

‘받을 만한 준비가 됐을 때 다시 가져가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선.

‘대체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거냐, 하준아.’

너무 많은 걸 알아 버렸다는 하준의 마지막 말.

지난 20년이라는 시간은 물론, 유서를 받은 뒤에도 ‘그들’에 대한 어떠한 얘기도 전하지 않았기에 하준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준 또한 자신에게 아무런 것도 물어오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런데 대체 무엇을, 또 얼마나 안다는 건지.

구명호의 머릿속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으로 짙어져만 가고 있었다.

“…….”

허공을 바라보던 구명호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종이로 옮겨졌다.

한동안 그것을 응시하던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유서를 집어 들었다.

20년 전, 당시의 모든 정황들을 알고 난 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구명호.

그 어린 나이의 하준을 지키기 위한 일임과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하준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준에게도 언제고 똑같은 위험이 도사릴 수 있는 일이었기에.

조금 전 하준의 모습처럼 자신의 모친을 향한 그리움이 일순간 분노로 바뀌어 버릴 거라는 걸 구명호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구명호는 이미 ‘그들’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아 버린 상태였기에 더더욱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일이었고.

복잡한 심경으로 유서를 바라보던 구명호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누군가에 전화를 걸고는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당분간 하준이에게 무슨 일이 없는지 수시로 체크해 보도록 해. 혹시나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싶으면 곧바로 나한테 전달하도록 하고.”

말을 내뱉고는 유서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구명호가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준이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게 해선 안 돼. 모든 걸 걸어서라도 그것만큼은 막아야만 한다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도 심각한 어투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강조하는 구명호.

수화기 너머의 짧은 대답과 함께 통화를 종료하고 짙은 숨을 내뱉었다.

그때, 가사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명호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회장님. 오늘 사 오신 전복은 어떻게 할까요? 지난번에 사 오신 것도 아직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상태라.”

그녀의 물음에 식탁 위에 놓인 아이스박스로 시선을 옮기는 구명호.

그곳엔 그가 매번 부산을 갈 때마다 의도적으로 사 오던 전복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오늘 가져온 것까지 포함해서.

“흠…….”

아이스박스를 바라보던 구명호가 짧게 숨을 내뱉고는 고갤 돌리며 말했다.

“어차피 먹지도 않는 것들 그냥 다 버리도록 해요. 다음번 가져올 것들 채워둘 공간은 남겨두고.”

“아,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구명호의 지시와 함께 아이스박스가 있는 주방 쪽으로 다시 사라져 가는 가사 도우미.

정면의 허공을 바라보던 구명호는 그와 함께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 * *

비슷한 시각, 평창동 구명호의 집에 다다른 구세희는 차고 리모컨을 찾기 위해 한 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어디 간 거야? 분명 여기 놔뒀던 것 같은데.”

매번 올 때마다 의식처럼 치러지는 같은 행위.

온갖 영수증과 잡동사니들을 마구 헤집어도 자신이 찾던 물체의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어? 저거 유하준 차 아냐?”

시선을 정면에 두고 있던 구세희의 눈앞에 차고를 빠져나오는 차량 한 대가 보이기 시작했고, 구세희는 단번에 그것이 하준의 차량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뭐야. 나한텐 말도 없이 왔던 거야? 하여튼 이 자식은 지 마음대로라니까. 이왕 올 거면 같이 왔다 가면 좋을 것을!”

멀어져가는 고급 세단 차량의 뒷태에 말을 쏘아붙이고는 열린 차고 안으로 차를 주차하는 구세희.

그러고는 곧바로 정원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나 왔어요.”

신발을 벗으며 부친을 부르던 구세희는 집 안으로 들어오며 또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빠~ 나 왔다니까요.”

평소라면 단번에 모습을 드러내며 반겨왔을 그.

그러나 역시나 묵묵부답인 탓에 구세희는 의아한 생각이 들 수밖엔 없었다.

‘이상하네. 유하준이 왔다 갔으면 분명 집에 계실 텐데.’

하준이 왔다 갔다는 건 분명 외출 상태는 아니라는 것.

혹시나 서재에 있어 못 듣는 건가 싶어 구세희는 서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때, 안쪽에서 아이스박스를 정리하던 가사도우미가 구세희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가씨, 오셨어요? 회장님 지금 주무시러 들어가셨는데.”

“응? 지금 이 시간에요?”

왼쪽 손목의 시계를 들어 올려 시간을 확인하자, 아직 8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구명호의 침실 쪽을 잠깐 흘깃하고는 구세희가 말했다.

“흠, 오늘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 조금 전에 유하준 왔다 갔죠? 아빠랑 같이 저녁 먹고 간 거예요?”

“아, 아뇨. 그냥 얘기만 나누다 가셨어요. 오래 있지는 않으셨고.”

“응? 그럼 아빠 아직 저녁도 안 드신 거예요? 저녁도 안 드시고 그냥 주무시러 들어간 거고?”

가사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고갤 끄덕이자, 구세희가 다시 구명호의 침실 쪽을 바라봤다.

“흠. 그래도 식사는 드시고 주무셔야지. 아직 초저녁밖에 안 됐는데.”

구세희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가사도우미에게 말했다.

“저녁상 준비해 주세요. 이제 막 침실에 드신 거면 아직 주무시기 전일 테니까 제가 모셔 올게요.”

말을 마치고는 침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구세희.

그때, 가사도우미가 다급히 구세희를 불러왔다.

“저, 아가씨.”

“네?”

“그…… 회장님께서 아침까진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거든요. 회장님 찾는 연락이 와도 내일 다시 연락 달라 하라고. 그래서…….”

말을 전하면서도 꽤나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사도우미의 모습에 구세희의 의아함은 한층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자신의 부친이 이런 말을 남겼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얕은 숨을 내뱉고는 닫힌 침실 문을 응시하는 구세희.

이내 가사도우미에게 물었다.

“혹시 회장님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죠? 저녁도 안 드시고 그런 말까지 남길 정도면 어디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아, 아뇨. 그런 건 전혀 아니세요. 하준 도련님 오실 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은 좋아 보이셨거든요.”

“하준이가 왔을 때까지만 해도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뉘앙스에 구세희가 재차 되물었고, 그녀는 곤란한 표정과 함께 입술을 달싹였다.

“아, 그게…… 도련님이랑 약간 심각한 얘길 나누시고 난 뒤부터 조금 기운이 없으시더라고요. 도련님 가신 뒤엔 바로 방으로 들어가셨고요.”

“무슨 얘길 나눴길래요?”

“아, 그건…….”

구세희의 이번 물음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그녀.

그도 그럴 게, 그건 그녀의 본분을 벗어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런 반응에 구세희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흐음. 뭐가 있긴 있었나 보네요. 이렇게 곤란해하시는 걸 보니.”

말을 내뱉고는 구세희의 머릿속에 조금 전 차고를 빠져나가던 하준의 차량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단순 저녁 식사를 위해 온 것이었다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자신에게 연락을 해왔을 터.

그럼에도 일언반구 없이 그냥 돌아갔다는 건 뭔가 다른 목적으로 방문했다는 뜻일 거였다.

가사도우미의 곤란한 표정 사이로 구세희가 낮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세요. 아줌마가 알려줬다는 건 회장님껜 비밀로 할 테니까.”

“……저, 아가씨…….”

그녀의 곤란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구세희는 단호한 어투로 다시 한번 말을 내뱉었다.

“아주머니 제가 고용했다는 거 알고 계시죠? 이 집에서 제가 몰라야 하는 일 같은 건 없으니까 얘기해 주세요. 아주머니가 곤란해할 만한 상황은 절대 없을 거니까.”

* * *

구명호의 집을 빠져나온 하준의 차량이 강남대로변을 달리고 있었다.

계기판에 찍힌 숫자가 100을 훌쩍 넘고 있음에도 액셀을 밟고 있는 하준의 발은 좀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빵-!

빵-!

차선과 차선 사이를 거칠게 오가는 하준의 차량 뒤로 다른 차들의 클락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하준은 오로지 자신의 목적지만을 생각하며 거친 주행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하준의 차량이 어느 한 건물의 외부 주차장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운전석에서 내리는 하준.

‘B&D Entertainment’가 적힌 건물 로고가 하준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가고 있었지만, 지금의 하준에게 다른 생각 따윈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지금 당장 그를 마주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퇴근 시간과 겹쳐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하준은 걸음을 옮겨나갔고, 어수선한 시간 탓인지 그 누구도 하준의 움직임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표실이 있는 14층에 도착한 하준.

그와 동시에 대표실 앞 여직원이 하준을 발견하고는 말을 건네왔다.

“어떤 용무로 오셨을까요……?”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외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탓에 그녀도 어떤 응대를 해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질 않는 모양새였다.

하준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대표님 좀 뵈러 왔습니다. 안에 계신가요?”

“아, 대표님요? 계시긴 한데 어디서 오셨다고 전해 드리면 될지.”

“유하준이라고 하시면 알 겁니다. 그렇게만 전해주세요.”

“아, 네.”

그러고는 그제야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 문을 노크하는 여직원.

짧은 대화를 마치고는 하준에게 미소를 건네왔다.

“바로 들어오시면 된다고 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방문이었음에도 망설임없이 자신을 불러오는 그.

하준은 자신의 모친 이정화를 떠올리며 그의 방문을 천천히 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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