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꾸는 스타 메이커-73화 (74/165)

73화

잠시 후, 하준의 대표실로 정진웅과 멤버들이 모여 들었다.

밖에서 통화를 끝마친 김지혜가 대표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대표님 지금 들어오시는 중이라고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래. 오면서 확인해 보신다고.”

“후우…….”

김지혜의 말에 정진웅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꽤나 심각해진 분위기를 살피며 은호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희 음방 스케줄이 다 취소된 거예요……? 지상파 3사 모두?”

안무 연습실에서 대표실로 오는 동안 대략적인 상황은 멤버들도 파악한 상태였다.

지난주 각 방송사마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치른 후, 이번 주도 역시나 같은 스케줄을 소화할 예정이었던 .

내일 있을 NTV를 시작으로 SBC, MBS, TBC의 순서로 스케줄이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스케줄을 코앞에 두고 그것도 지상파 3사 모두로부터 일제히 취소 통보가 날아오자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몰라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수밖엔 없었다.

무엇보다, 지난주 데뷔 무대 이후 멤버들을 향한 관심과 이목은 오를 대로 올라간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은호의 물음에 정진웅이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말했다.

“……일단 연락은 그렇게 받긴 했는데 자세한 건 대표님 오시면 알아봐야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비록 자신의 매니지 경력이 그리 오래된 건 아니었지만, 이번 일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쯤은 정진웅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의 신인 그룹이라면 모를까, ‘역대급 대형 신인’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은 에게 방송을 코앞에 두고 스케줄 취소를 통보해 오다니.

게다가, 마치 모두가 짜기라도 한 듯 지상파 3사에서 일제히.

대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래. 일단은 우리가 모르는 뭔가 다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내부적인 착오일 수도 있는 거니까 너무 낙담들 하고 있지는 말자. 응? 대표님이 오시면 자세히 알아보고 금방 해결해 주실 거야.”

혹여나 자신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상황으로 여길까 싶어, 김지혜가 멤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말을 꺼낸 본인은 무척이나 심각한 마음 상태였다.

지금껏 듣고, 보고, 겪어온 바에 의하면 이런 일은 누군가의 압력 없이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지상파 3사 전체에 이 정도의 압박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종편 채널도 아닌 지상파 3사 전체에 이 정도의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더 크게 받아들일 수밖엔 없는 것이었고.

‘대체 왜 우리 애들한테.’

단순 견제와 시기의 의미로만 받아들이기엔 뭔가 쉬이 납득이 되질 않았다.

아무리 보통의 신인 그룹들과는 결을 달리한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는 신인은 신인일 뿐.

이렇게까지 강한 압력을 행사해 가면서 밟아 누르려고 하는 의도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압력을 행사하는 이가 누군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그때, 닫혀 있던 대표실의 문이 열리며 방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왔다.

“대표님.”

모두의 심각한 표정 사이로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 휴대폰을 내려놓는 하준.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며 정진웅을 바라봤다.

“일단 SBC 쪽에 연락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알아봐달라고 했어. 그쪽 얘길 듣고 나면 나머지도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을 거니까.”

“아, 네 대표님…….”

하준이 자리에 앉으며 어두워진 표정의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다들 그런 표정들 짓고 있을 거 없어. 너희가 뭘 잘못했다거나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런 문제였다면 이미 NTV에서도 같은 얘길 해왔겠지.”

“……아, 네. 대표님.”

정진웅으로부터 상황을 전달받은 뒤, 하준은 가장 먼저 구세희에게 연락을 취했다.

혹여나 자신이 모르고 있는 멤버들에 대한 어떤 문제가 있어 그런 거라면 NTV 측에서도 같은 조치를 취했을 테니까.

하지만, NTV 쪽에선 아무런 변동사항이 없음을 전달해 왔고, 그제야 하준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를 누르기 위한 의도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만약 그런 쪽이라면 애초에 제대로 된 답변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기에, 하준은 오는 동안 이재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내막을 한번 알아봐주길 부탁하자, 그도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고.

그의 답변을 듣고 나야 이후에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또한 판단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었다.

“혹시 NTV에선 다른 말은 없었나요, 대표님……?”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정진웅에 하준은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내일 NTV 무대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거니까 예정대로 스케줄 소화하면 돼. 너희들도 하던 연습 계속 하면 되고.”

“아,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

하준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제 막 데뷔한 멤버들에겐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불안하게 느껴질 수밖엔 없을 테니까.

하준 또한 애써 말로 포장하는 것보단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쪽이 낫다는 걸 알기에 별다른 말을 보태진 않았다.

그때, 책상 위로 올려두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려오자 하준은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통화를 연결했다.

“네, 감독님.”

-예, 대표님. 잠깐 통화 괜찮으실까요?

“네, 말씀주세요.”

-대표님께서 부탁하신 내용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요. 아무래도 저희뿐 아니라 지상파 3사 전체에 를 못 서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더라고요. 음방 하는 후배 놈한테 물어봤더니 아주 제대로 으름장을 놓고 갔다고 하는 걸 보니.

이재호의 얘기에 하준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차 확인했다.

차분한 음성을 유지하며 하준이 물었다.

“으름장이라면 누가.”

-그게…… 미르엔 엔터요. 만에 하나 를 출연시키기라도 하면 자기 쪽 소속 가수들은 전원 다 보이콧 선언하게 될 거라고 했다네요. 후우, 그러니 후배 놈도 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쪽 CP가 그걸 수락해 버리니 자기도 따를 수밖에는.

“…….”

미르엔 엔터.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하준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인물은 단 하나였다.

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에서 이재호가 말을 이어왔다.

-하, 박 대표 그 인간. 자존심상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복수해 올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네요. 그래도 자기 이름값이 있는데 이런 쌩 신인 그룹 애들이나 물고 늘어지다니. 하, 참. 이 정도로 치졸한 인간인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B&D의 대표이자, 미르엔 엔터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그.

바로 박성환이었다.

최윤섭의 우려, 그리고 지난번 오창석과의 일 이후로도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던 그였는데.

자신이나 회사가 아닌, 멤버들을 상대로 이런 식의 행동을 취해올 거라곤 하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하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방송사들에 압력을 가한 것도 박성환 대표라고 봐야겠군요.”

-흐음, 예. 아무래도 그럴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짜기라도 한 듯 동시다발적으로 그럴 순 없는 일이니까. 후우, 이거 괜히 제가 대표님께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그 때 그 일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서…….

“아닙니다. 그 일과는 별개의 일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전 좀 더 알아볼 일이 있어서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

-예, 그러세요. 대표님. 저도 저희 쪽만큼은 어떻게든 뚫어볼 방법이 없는지 한번 찾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들어가세요.

이재호와 통화를 끊자,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김지혜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어왔다.

“박성환 대표요? 그분은 B&D 대표 아니에요? 그분이 왜요, 뭐 어쨌다는데요?”

김지혜의 연이은 질문에 멤버들의 시선도 일제히 하준에게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중 지호의 표정이 가장 심각해져 있었다.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어젯밤 편의점 앞에서의 대화 내용들이 또 한 번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김지혜의 물음에 대답 대신 잠시 생각에 잠기는 하준.

오창석이 내건 제안을 거절했을 당시 분명 그가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취해올 거라곤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자신이 내뱉은 말들은 분명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엔 충분한 그것들이었을 테니까.

“…….”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부딪쳐야 했을 일.

하준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들을 정리해가며 입을 열었다.

“우선 진웅인 각 방송사마다 돌면서 담당 피디들 좀 만나고 와. 이미 어떤 상황인지는 우리도 알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갔는지 한번 알아보고.”

“아, 예. 대표님.”

정진웅에게 말을 마친 하준이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너희들도 지금은 다른 생각 말고 내일 무대 준비만 잘 신경 쓰도록 하자. 첫 무대보다는 더 멋진 무대가 돼야 할 거 아냐.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시선을 아래로 두며 입술만 달싹이고 있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하준이 온화한 어투로 덧붙였다.

“이런 문제 해결하라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너흰 너희 일을 하고, 나는 내 일을 하고. 무슨 말인지 알지?”

하준의 얘기에 시선을 옮겨 김지혜와 정진웅을 잠시 바라보는 멤버들.

두 사람이 눈을 깜빡이며 고갤 끄덕이자 그제야 멤버들도 고갤 주억거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저흰 내일 무대 잘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진웅와 김지혜도 한마디씩 꺼내왔다.

“그럼 전 바로 MBS부터 가볼게요, 대표님. 상황 확인하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도 자리에 있을 테니까 뭐 시키실 일 있으시면 바로 말씀 주세요, 대표님!”

인사를 건네고는 두 사람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겨나가자, 멤버들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호의 머릿속은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이름이 나온 이상, 어젯밤 자신이 주워 담은 대화들을 하준에게 전달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지호야.”

그때, 맨 뒷열에 서 있던 지호를 하준이 불러왔다.

지호가 뒤를 돌아보자, 하준이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아무 걱정 말고 평소처럼 팀 분위기 잘 끌어줘. 금방 해결될 거니까.”

“……아, 네.”

낮은 목소리로 답하고는 시선을 바닥으로 옮기는 지호.

입술을 말아 물고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지호가 다시 고개를 들어왔다.

“저, 대표님.”

“응.”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 * *

10분 뒤, 말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뱉어오는 지호의 얘길 모두 전해 들은 하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다른 모든 얘기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중 하나의 얘기가 망치로 두드려 맞은 듯 강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그랬다고? 자기가 20년 전에 이수연 매니저였다고?”

심각하게 건네오는 하준의 물음에 지호가 입술을 달싹이며 답했다.

“아, 네…… 같이 있던 분이 먼저 말을 꺼내긴 했는데, 그분도 부정하진 않더라고요. 이제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사람 얘길 뭐 하러 꺼내냐면서…….”

“…….”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사람.

이미 이수연과 자신의 모친이 동일인물이란 걸 알게 된 하준은 그 말이 뜻하는 바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조금 전 지호의 말들이 충분히 신빙성 있는 얘기일 수 있다는 생각 또한.

“같이 있던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고?”

하준이 묻자, 지호가 작게 고갤 끄덕였다.

“네, 처음 보는 얼굴이었어요. 그 대표님이 형님이라 부르는 것 같기는 했는데.”

“…….”

지호의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박성환뿐 아니라 그 또한 자신의 모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하준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성환이 20년 전 자신의 모친 옆을 지키고 있었단 걸 알게 됐기에.

지호가 전해준 얘기들을 곱씹으며 하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책상 위로 올려둔 하준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일기 시작했고, 하준은 고갤 돌려 액정 화면 위를 바라봤다.

그와 동시에, 일순간 바뀌기 시작하는 하준의 얼굴.

발신자는 구명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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